마하의료회가 주최하고 파라미타 청소년 연합회가 주관하고 스리랑카 위하라고다가 협력하고 행정자치부, 서울시약사회, 김안과병원이 후원한 제 1회 마하의료회 해외 의료봉사 보고서입니다.
불기 2551년 12월 01부터 12월 06일까지 진료장소는 스리랑카의 하푸탈레의 웰란힌넨학교와 위하라고다(사찰 및 승가학교) 및 인근 마을, 칼루아갈라의 마하보디사, 이상 세 장소였고 의료봉사는 스리랑카의 큰스님이신 와치사라 스님, 안과의사 1, 치과의사 1, 약사 2, 간호사 1, 안과팀 3, 약손회 1, 불교방송 1, 불교신문 1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되었다. 총 606명 진료에 전제 진료건수는 1,543건이다.
약은 순환기계 약물을 비롯하여 소아과 시럽제 등 진료에 필요한 거의 모든 약품을 준비를 하였고 투약은 1일 3회를 기준으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9일분을 조제투약하고 연고류, 베이비 파우더와 파스류는 필요대상에 따라 주고 구충제는 모든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투약했다.
12월 01일 오전 9시 20분 인천 공항을 출발하기 전에 와치사라 스님의 "한국에서 너무나 먼 스리랑카까지 부처님의 자비를 베풀러 가시는 마하의료회에 감사를 들이며 서남 아시아에서 불교문화가 가장 꽃핀 곳은 스리랑카다. 이번 마하의료회의 의료봉사는 스리랑카 및 서남 아시아 불교발전의 초석이며 한국 불교가 행하는 의료봉사의 근저가 될 것이다. 더불어 많이 참아야 되는(전기, 수도, 숙소 등) 의료봉사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었다. 대한항공편으로 도쿄에 오전 11;30 도착하여 스리랑카 항공으로 갈아타고 13;20 콜롬보로 향하여 스리랑카 현지 시각 19:50분 콜롬보에 도착했다.
12월 01일 현지 시각 19: 50분에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내려, 무사히 입국수속을 마쳤다. 약품 통관이 세금을 물어야하는 경우가 많아 원활한 약품 통관을 위해 조제약품들과 파스류 등을 각자 배낭에 담아 들고 들어갔는데 단 한 알도 몰수되지 않고 통과가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불기 2549년 불자이신 주스리랑카 한국대사님께서 공항까지 나오셔서 공항의 VIP 쪽으로 입국을 도와주셨는데 이는 몽골 의료봉사 시 주몽골 한국대사관 측의 무관심과 무성의함으로 인해 의약품 통관으로 큰 곤혹을 치뤘던 것에 비하면 많은 차이가 나는 점이었던 걸 다시 생각나게 했고 그 때의 대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스리랑카는 1960년대는 잘 살았으나 싱할라족과 타밀족간의 테러와 정권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지금은 GNP 1000불의 시기를 살고 있고 150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었으며 1948년 해방된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스리랑카의 사찰에서는 아예 공양간을 두지 않고 마을 주민들이 공양을 아침마다 갖다 드리는 것이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었으나 요즘은 공양간을 두고 공양을 마련하는 사찰도 생겨났다고 한다. 스리랑카에서는 바닷가의 어부들이 다른 종교로 개종을 많이 했는데 그 이유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불심이 깊어 모기조차도 안 죽이고 쫓아버리지만 고기를 잡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어부들의 입장에서는 고기를 잡는 것 자체가 계를 어기는 행위이고 생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개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인구의 팔십 프로가 불교신자인 스리랑카에서는 매월 보름을 뽀야데이라 하여 절에 가는 날로 정해져있고 특히 5월 보름날은 가장 중요하게 행사가 치러지며 사찰 참배 시에 가장 많이 올리는 꽃은 연꽃이고 적도 기후지대로 연평균기온이 27∼28℃로 계절별 온도 변화가 거의 없어 연꽃은 일 년 내내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에서는 불교를 떠나서 정권유지와 일상생활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한다.
공식언어는 싱할라어(싱할라족)와 타밀어(타밀족)이고 나머지는 영어를 쓰고 여자들은 관청에서 근무복 또는 예복으로 인도식 사리를 입는다. 매년 12월이면 이미 우기가 끝나는 시기인데 올해는 아직 비가 간간히 내리는, 말하자면 우기의 끝자락에 우리는 의료봉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콜롬보 공항에서 21:00 기다리고 있던 버스로 7시간 정도 가는 스리랑카의 북부 하푸탈레로 향했다. 가는 도중 23:00, 한국에서 이번 행사를 도와주러 스리랑카로 오신 도윤스님의 정성스런 김밥으로 휴게소에서 늦은 저녁을 대신했다.
12월 02일 03:00 숙소인 하푸탈레의 군부대에 짐을 풀고 이틀 반 동안 있을 진료와, 만나게 될 스리랑카 사람들에 대한 기대로 몸은 피로하였으나 잠을 쉬이 이룰 수 없었다.
12월 02일 09:00 숙소를 출발하여 버스로 20분 정도 구불구불 산속으로 들어가 첫날의 진료장소인 하푸탈레의 웰란힌넨 학교도 도착하니 마하의료회를 환영하는 학생들의 손마다 꽃과 태극기가 들려져있었고 이미 많은 환자들이 무리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서둘러 교실로 들어갔다. 진료장소로 사용하게 될 교실의 위치를 투약하기 편리하게 정리하고 환자들이 대기하면서 불편하지 않도록 긴 의자도 준비해놓고는 학교 마당에 모셔진 법당 앞에 모여 간단히 예불을 모시고는 진료를 시작했다.
13:00, 상당히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장실에서 스리랑카 뷔페식으로 준비된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오후 진료에 들어갔다.
언어는 노년층을 중심으로 영어가 통용되기는 하나 주로 싱할라어로 언어 소통이 되는 관계로 통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재작년에는 코이카 단원들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성의있게 곁에서 도와줘서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으나 올해는 통역요원의 부족으로 챠트지에 복약지도를 스리랑카어로 써서 현지 학생들의 도움으로 정말 재미있고 즐겁게 투약을 할 수 있었다. 학생들과 우수한 학생들을 소개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17:00 진료 종료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줄지어 기다리고 서 있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 오늘 접수된 환자들은 종료시간과 상관없이 모두 다 투약해줬고 접수 시간 이외에 온 환자들은 18:00 전깃불이 나갈 때까지 정말 바쁘게 투약했다.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지만 어둠 속에 우리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지켜봐주던 주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12월 3일 06:00 기상하여 조식 후 하푸탈레에서 위하라고다로 3시간에 걸쳐 이동했다. 말하자면 스리랑카 북부에서 콜롬보쪽으로 내려와서 꼬불꼬불 산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위하라고다에 도착했다. 위하라는 절, 사찰이라는 뜻이고 고다는 촌이라는 뜻이니 위하라고다는 사하촌을 의미한다고 한다. 위하라고다에는 사찰 및 승가학교가 있으며 도착하자 학생들과 사미승, 부주지스님이 반겨주셨다. 13:00부터 서둘러 접수, 진료, 투약을 하고 시간 날 때마다 환자들의 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담았다. 즉석에서 나오는 사진이 몹시도 신기한 듯,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즐겁고 기쁜 표정으로 짧은 행복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18:00 마찬가지로 전깃불이 나갈 시간. 어제의 경험을 살려 불이 나가기 전에 서둘러 투약을 종료했다. 위하라고다 사찰의 보리수에 모신 부처님께 오늘도 무사히, 차질없이 진행된 것에 감사의 예불을 모셨다. 이 날, 숙소는 위하라고다 사찰의 2층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준비해간 침낭으로 잠자리를 마련했다.
12월 4일 06:00 스리랑카의 신선한 아침 기운 속에 예불, 반야심경, 108배를 하며 환희심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09:00 하룻만의 만남과 헤어짐이지만 못내 아쉬워하며 학생들과 스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버스로 향하는데 어제 드린 약을 드시고 아픈 곳이 다 나았다는 인사를 하러 할머니 한 분이 와치사라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는데 정말 기뻤다. 위하라고다를 떠나 3시간이 소요되는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신, 고대 왕조가 있던 캔디의 불치사로 향했다. 오전 10시에 치아사리를 친견할 시간인데 늦어서 친견은 못 했지만 불치사에서 예불을 모시고 도윤스님의 불치사에 관한, 부처님 치아진신사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스리랑카 왕조에서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왕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로 진신사리 친견은 왕권의 옥새를 보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진신사리 친견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15:00 불기 2549년 스리랑카 의료봉사시에 인연이 있던, 깜빠의 파샬라 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조계마을로 이동하여 둘러보고는 재작년에 현고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되새겼다. "스나미 피해를 둘러보러 오셨던 법장 스님께서 이미 십 수년 전부터 개신교에서 천 오백 명의 선교 인원을 파견하여 선교활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고는 한국불교가 주변 불교국가를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셨고 조계종 차원의 조계마을 건설을 위해 2만 5천 평의 부지를 마련하셨으며 이제는 법인으로 스리랑카 정부가 승인하고 고아원을 비롯한 조계 마을 건설을 위해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이다. 이제 잘 사는 불교국가가 된 한국이 유럽이나 미주대륙까지는 몰라도 주변 아시아 국가를 위해 이바지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번 의료봉사가 해외 진료봉사의 또 다른 교두보 마련이며 조계종으로서는 의료인력의 동원으로 상호 필수불가결한 관계가 될 것이다."
한창 공사중인 조계마을을 둘러보고는 다음 진료장소인 마하보디사가 있는 칼루아갈라로 가는 길에 한국에 갖고 갈 실론티를 각자 준비했다.
21:00 왓치사라스님이 한국에서 오신 것을 알고는 주민들이 호롱불을 밝히며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진료는 24:00까지 이어졌다. 밀려드는 환자들로 하여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었지만 우리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한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게 큰 기쁨이 되었다. 투약하고 남은 약이며 장비를 정리하여 짐을 꾸리고 새벽 한시에 도윤스님이 정성껏 마련해주신 해물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스리랑카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리랑카 사람들과의 마음의 교류가 아쉽기만 했다. 몇 몇 분을 제외하고는 그저 아름다운 스리랑카의 밤하늘을 보며 더위 속에서 마하보디사의 마당에 앉아 있는데 마침 반딧불이가 여럿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한국에서도 못 본 진기한 모습, 탄성이 절로 나왔다.
12월 05일 06:00 새벽예불을 모실 때 제 1차 마하의료회의 해외의료봉사가 여법하게 이뤄진 것에 대한 감사와 더욱 깊어지는 신심으로 새벽 햇살 속에 108배를 했다.
09:00 2시간이 소요되는 아띠나갈르 사찰로 이동하여 부처님 진신사리탑에 예배하고 보리수에 모신 부처님께 합장예불하고 왓치사라스님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13:00 네곰보로 향했다. 한 시간을 무더위 속에 달려 네곰보 바닷가에서 인도양의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차 한 잔을 했는데 이 짧았던 여유로움은 며칠을 잠을 설치고 힘들었던 의료회원들과 김안과 팀 사이를 더욱 돈독케 했고 한국을 떠나온 몇 일만에 정말 편안한 시간이 되었다.
17:30분 인도양을 바라보며 샌드위치와 차 한 잔을 마시며 공항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모든 일정을 끝내고 세 차례의 의료봉사에 정말 온 마음을 다해 통역을 맡아준 삼과 그 동료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 함께 고생하고 같이 즐거워하면서 보낸 몇 일이 참으로 꿈처럼 느껴졌고 만나면 헤어지는 게 정해진 이치니, 자, 건강하고 보람되게 젊은 날을 보내길 기원하며 헤어졌다.
콜롬보에서 12월 05일 현지 시각으로 21:00 스리랑카 항공으로 이번 의료봉사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스리랑카의 의료혜택은 정부시설의 경우 무료로 규정하여 국민 누구나 혜택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시설과 인력 부족 때문에 실제로는 일부 계층에 제한되어 있다. 의료혜택을 받는다하여도 무상이라 그런지 의료의 질도 떨어지고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의 약이 효과도 떨어져 유상으로 운영되고 있는 개인 의원으로 옮겨가는 추세라 한다. 돈 있으면 누구라도 양질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결핵·영양실조·필라리아가 여전히 심각한 질병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번 스리랑카 의료봉사에 별 문제는 없었고 다만 늘 그렇듯이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자세한 복약지도를 못 해주는 점이 아쉬운 점이지만 복약지도를 한글로 쓰면 스리랑카 학생들에게 스리랑카어로 그 밑에 써서 투약봉투에 적어줘서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해봤는데 의외로 정확한 복약지도가 되었던 것같다. 투약과 복약지도에 동참한 현지 학생들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환자들은 덥고 습한 기후로 주로 피부염환자가 많았으나 환자들 자신은 별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았다. 소아환자는 소아용 연고제를 주고. 주로 맨발로 생활하니 발에 상처도 많이 생기고 제대로 소독하고 치료를 하지 않아 발에 염증이 심한 환자도 많아서 이에 경구용 약제를 투약하고 소독하고 연고제를 사용하도록 알려줬다.
유난히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았는데 이는 대부분 불규칙적인 식습관이나 영양상태가 양호하지 못해서 오는 게 원인이 되는 것 같았다. 특히 중년층의 복부비만이 많은 이유는 저녁 식사 후 포만감을 느낀 채로 바로 잠자리에 드는 생활 습관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번 의료봉사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호흡기계 환자가 유난히 많다는 것인데
상류층이 아닌 다음에는 스리랑카 대부분의 주거 형태가 시멘트 바닥과 중간에, 천장이 없이 집 바닥 위로는 지붕이 있고 고온다습한 기후의 영향인 듯, 양쪽 벽은 사람의 허리 정도까지만 벽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벽의 윗부분은 통풍이 잘 되도록 나무 가지로 엮어진
형태이기 때문에 낮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차가워진 공기가 호흡기에 이상을 일으킨다고 본다. 마땅한 이불이 없이 간단한 천을 덮고 자거나 남자들의 경우는 낮에 입고 다니던 살롱이라는 천으로 만든 치마같은 걸 벗어서 덮고 잔다고 하니 찬 기운을 느끼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관절염 환자가 많았고 당뇨보다는 고혈압 환자가 많았으나 국가적으로 의료혜택을 주는 관계로 장복하는 약들은 모두 갖고 있었다.
예상 외로 소아환자가 많아서 소아환자를 위해 소아용 약제를 더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어른이나 아이나 비타민을 원했고 준비해간 비타민은 한달 분씩 지퍼백에 담아 나눠줬다. 육안으로도 영양상 문제가 있어 보여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다.
평균수명은 남자 68세, 여자 73세로 남아시아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나 최근 인스턴트 음식을 섭취하게 됨으로써 수명이 짧아지고 있으며 이에 반하는 정책으로 패스트 후드를 점차 멀리하는 추세라 한다.
끝으로 제 1차 마하의료회 의료봉사가 여법하게 원만히 이뤄지도록 큰 힘이 되어주신 왓치사라 스님과 도윤스님께 삼배를 올립니다.
첫댓글 오늘 아침 10시부터 지금까지 쓰느라 정신없었는데 쓰다보니 너무 긴 게 아닌가 합니다. 늙으면 말이 많아진다더니... ㅎㅎ
스리랑카에 봉사를 가신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니 저희가 본듯이 알수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참 많지요.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