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 필승, 충성

[김연창]

MBC FM 양희은, 송승환이 진행하는 여성시대는 목요일마다 남성시대를 방송한다.

여기에 '장용의 단결, 필승, 충성'이라는 코너가 있다.

군대생활 재미있는 이야기 가운데 세편을 골라 방송하고 상품도 준다.

내가 여기에 사연을 보낸건 순전히 일등하면 드럼 세탁기를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비록 세탁기 대신 시디카세트에 만족해야 했지만, 전국에 이름을 드날렸으니 가문의 영광이 아닐까.

근데 이거 들은 본 넘 하나도 없나, 작년 5월에 방송되고 연말 특집에 다시 한번 나왔는데....

그건 그렇고 여기 주인공, 고문관 이름 아는 사람.......

2년전에 대구에서 함양으로 귀농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남자랍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일정한 스케줄이 없기에 여성시대를 매일같이 듣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가끔 차를 타고 갈 때면 항상 주파수는 MBC FM에 고정시켜 놓습니다. 여성시대를 가끔 듣다가 어느날 장용씨가 하는 군대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릅니다. 어제도 제 농장에서 굴삭기로 작업을 하다가 장용씨 이야기 재밌게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전굴연(전국 굴삭기 연합회)회원은 아닙니다. 한참 작업을 하는데 이 코너를 시작하길래 전파가 잘 잡히는데로 이동하고 시동을 끄고 발을 창에 올리고 느긋하게 즐겼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하늘아래 첫 땅인 산꼭대기이기에 전파가 깨끗하게 잡히는 곳이 따로 있거든요. 서론은 이정도로 하구요.

필승!
장용씨 안녕하세요. 구호를 보면 아시겠지만, 장용씨와 같은 계열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군대생활 뻥이라고 하면, 해병대를 빼 놓을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옛날처럼 사령부가 독립을 했지만, 제가 군대생활 할 때는 해병대는 해군 소속이었지요. 

제가 병 522기이니까, 장용씨랑 기수를 따지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아부성이 짙지요)
저는 나이 사십하나에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그리 활달하거나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내성적인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하고 모범적인 사람이었지요. 
그런 제가 혹여나 군대생활을 해병대에서 할 것인지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 무지막지한 해병대를 내가 어찌 감히 갈 수 있을까,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휴가 나온 해병이 바짓단에서 저렁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날까, (이 소리에 대한 설명은 장용씨가 해 주세요) 역시 특별한 군대는 틀려, 환상과 근접하지 못할 두려움으로 보던 그 해병대에 내가 갈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친구가 장에 가니까 거름지고 장에 간다.
옛 속담이 정확하게 적용되는 예가 저입니다. 

대학 2학년말에 죽어라고 붙어 다니던 친구 녀석이 영장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 녀석이 지가 갈려고 그러지도 않았는데, 해병대에서 불렀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징집’을 당했지요. 해병대는 지금도 경쟁률이 평균 4:1이라고 하데요. 그렇게 기를 쓰고 들어가기도 힘든 해병대에서 친구를 스카우트 했던 것입니다. 
참고로 해병대는 2주에 한기수씩 입대합니다. 한달에 두기수니까 일년에 24기수가 늘어나는 셈이지요. 대게가 지원해서 오지만 가끔 지원이 적을 때는 무작위로 징집도 합니다. 한겨울이나 한여름에는 지원을 잘 안하기 때문입니다. 
입대하는 친구를 진해에 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저놈 휴가 나오는 꼴을 어떻게 볼거나. 온갖 폼과 뻥을 다 칠 것인데 그걸 어떻게 다 받아 줄거나. 그 놈 폼 잡은 모습과 제가 후줄그레한 육군복 입고 여자애들을 만나는 모습을 대비해보니 ‘야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데요. 제 여자친구와 그 녀석 여자친구는 서로 친구 사이로 넷이서 많이 싸돌아 다녔거든요. 

그래서 지원 했지요. 대구육군통합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는데, 놀랐습니다. 개떼, 앗! 방송용어로 적절치 않으니, 구름떼처럼 몰려든 지원자들. 나처럼 범생이는 합격은 틀렸구나 생각할 정도로 대부분 건장하고 눈매도 부리부리한 무서운 녀석들이 뿐이었습니다. 그런 막강한 경쟁률을 뚫고서 제가 해병대를 갔지 않겠습니까.
또 참고로, 제가 입대할 시기가 가장 경쟁률이 세답니다. 일월에 지원해서 삼월말에 입대하니까. 대학교 이학년 마치고 군대 가려는 사람, 대학 진학에 실패한 사람이 군대나 일찍 갔다오자 하는 마음으로 지원을 많이 하거든요. 그리고 사월쯤이면 봄이니까 훈련 받는데도 제일 수월할 것이다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장용씨는 아시겠지요. 대한민국 군대가 주둔하는 곳은 전부 이상기후 지역이란걸. 포항 구정동(해병 1사단)은 사월의 낮이 그렇게 더운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빤바라(빤스 바람 선착순)하던 사월의 밤이 사막처럼 춥다는걸 또 어찌 알았겠습니까. 암튼 잔머리 굴리다 400명 가까운 머시마들은 고생 무지했지요.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를 시작하겠습니다. 

한참 신병 훈련에 단내가 슬슬 나서 악만 받쳐 올 때쯤이죠. 순하기만 하던 제가 서서히 인간병기(?)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해병대는 번호 붙여가는 행진도 ‘하나, 둘, 셋’ 그러지 않습니다. ‘악! 악! 악!’으로 번호를 대신하고요. 대답도 ‘예’가 아니라 ‘악’으로 합니다. 
자꾸 ‘악, 악’거리면 진짜 악이 받치지요. 아 그 징글징글한 교관들의 살벌한 눈빛. 도대체 인간적인 감정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로보캅 같아 보이던 교관들. 진짜 밉데요. 아무리 사소한 흠집도 핑계 삼아 뺑뺑이를 돌리니 나중엔 밉다밉다 살의마저 느끼게 되지요. 
그런 교관을 감히 아주 열받게 한 동기놈이 있으니, 너 이 방송 들으면 넌 줄 알겠지. 이 고문관아! 반성 많이 하고 잘 살고 있겠지.

훈련소에서도 가끔 집에 편지를 쓰게 합니다. 그 편지는 한꺼번에 거둬서 붙이기 때문에 중간에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지요. 일설에 따르면 다 개봉해서 검열하고 다시 붙인다고 하데요. 그래서 그 고문관 동기가 딴에는 머리 굴린다고, 선임기수 훈련 마치고 나갈 때 밖에서 좀 붙이라고 편지를 줬다네요. 그 부탁 받은 선임 참 착하게도 그 말대로 했답니다. 하지만 어찌 알았겠습니까. 포항 우체국에서도 해병대 주소 적힌 것은 친절하게 검열하라고 해병대로 돌려 보내 준다는걸.
하지만 그 녀석 편지 내용이 ‘사랑하는 순자야’ 뭐 이런거나 ‘친구야 보고 싶다’ 이렇게 건전한 것이었음, 그날의 악몽은 없었겠지요. 
아 엄청난 파장이었습니다. 친구한테 보내는 그 편지 내용을 연병장에 모아 놓고 그 내용의 당사자인 교관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읽어 줄 때에는 경악했습니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짓는 게 마치 ‘자~알 되았다. 이제 니들은 죽었다’ 하는거 같았습니다. 
차마 그 내용은 여기에 적을 수 없습니다.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한 쌍욕으로 자기 소대장인 교관을 처절하게 씹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교관, 그날 저녁 자기 당직이 아닌데도, 일부러 근무를 바꾸데요. 드디어 밤 9시 ‘연병장에 선착순 집합’하는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갔지요. 어느날 보다 더 빠른 동작으로 집합했습니다. 

우린 그날 밤 대한민국 군 역사에 나오는 기합의 종합백과사전을 경험했습니다. 원산폭격이라 하는 ‘꼬라박아’는 기본이고, 이거하고서는 졸 정도로 익숙해진 상태지요. 한강철교로부터 시궁창 기기, 좌로 굴러 우로 굴러 한 삼십분 하다보면 저녁 먹은 거 다 반납하지요.
암만 그래도 그리 오래 철저하게 짓밟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녁 아홉시부터 새벽 네시까지 무려 일곱시간을 그렇게 뺑뺑이를 돌리더니, 대열을 맞추라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이제부터 노래를 부른다. 제목은 불효자는 웁니다. 발사’

‘불러봐도, 울어봐도..... 훌쩍..... 못 오실 어머님은.... 엉엉.... 원통해 불러보아도. 땅을 치고 통곡해도.... 꺽꺽.... 다시 못 올 어머님은..... 이잉 이잉..... 불초한..... 이!이!이!이잉’

장용씨 악에 받쳐 설움에 우는 소리 아십니까. 글자로는 도저히 표현 못하겠습니다. 리얼하게 부탁드립니다. 

노래는 그렇게 새벽 밤하늘 별빛에 가 닿았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땅을 비추는 밤별에 
400 사내들의 울음은 먹물처럼 번졌습니다.
저도 울었습니다.
서른쯤에 혼자되셨던 어머님 생각에 
까까머리 사내는 꺼이꺼이 울었답니다. 
까지고 터져 피 딱지 앉은 팔꿈치가 아픈줄 몰랐습니다.
눈물은 흙 칠갑한 얼굴을 타고 선명하게 내렸습니다.
회한에 찬 눈물은 더욱 짰습니다.
그 땐 그렇게 맘 먹었었는데,
제대하면 꼭 효도하리라, 고생 그만 시켜드리리라.
하지만 이 글 쓰려니 또 눈물이 앞섭니다.
산수국처럼 단아하던 어머님이 
간경화로 세상 소풍 마치신게 
벌써 6년이네요.
한줌 재로 허망히, 옹색한 시립납골당에 잠들어 계신 어머니
자식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 부질없네요.
불효한 자식의 가슴에 어머니는 내내 누워 있답니다.  

아! 이날 이벤트의 진실은 다음날 알았습니다. 
대대장님의 특별 정신교육수업이 오전부터 있었습니다. 단상에 올라오시는 대대장님의 가슴에 훈장이 하나 달려 있었습니다. 먼 자리에서 실눈으로 바라보니. 바로 그건
아주 새빨간 카네이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날이 5월 7일 이었고, 오늘이 8일 ‘어버이날’이었습니다.
편지요. 그거는 그저 한낱 꼬투리에 불과하다는걸 그 때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그 날은 그랬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병대는 그렇게 아주 의도적으로 사람을 독종으로 만들기도 하고, 인간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군대 갔다와야 인간된다는 말 만고의 진리입니다. 

*우리 집에도 함 놀러 온나......  여거다.... http://cafe.daum.net/bluevillfarm

  참고로, 이태환이! 여기는 야한거 올리는데 아니다.

[이태환]

허허~~그눔 재주가 신통타..울동기면 한번쯤 생각나는 해피다...(참고로 울 훈련소사진중 내옆에있는동기가 주범이다..)

[이태환]

522기 갤러리코네에전반기수료사진뒷쪽에서두번째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해피다(두번째는바루 이태환이구)

[변해준]

감동적이다. 훈련소시절의 회상과 어머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도 느껴지고,김연창의 글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앞으로 이런 글들이 많이 게시되었으면 좋겠다.

[박성용]

해피가 얼마전까지 연락이 되었는데 지금은 안된다..대구의 동기들아 해피좀 찾아봐라~~~

[황남연]

잘썼다....나도 이방송 애청자인데...방송은 애석히도 못들었구나...ㅎㅎㅎ...마저 그때가 생생히 생각난다...해피는 잘있는지...

[노충남]

해병댄 역시 다재 다능한 인간들의 집합체야 그러니 다들 해병댈 부러워하고 좋아들하지 우리청애서도 해병댈 다들 엄청좋아한다네.....

[최문철]

늦게나마 이글을 읽고 새삼 그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ㅋㅋㅋ 자슥들이 울음을 우는데 대성 통곡들을 하더만 ㅋㅋㅋ내는 속으로 뭐빠지게 기합받는데 눈물이 나오남 하구 ㅋㅋㅋ그날 난 눈물 한방울 안나더라구 그래서인지 정말 독하게 살고잇다 ~~

[서승열]

해피하고 친했다. 소청도에 있다가 백령도 통신대에서 근무했었지. 하수용.. 제대하고 나에게 책 몇권 보내줬었는데.. 경기도 고양에 산다고 3년전에 연락왔었는데 . 번호가 바뀌었다. 정말 보고싶다 그 자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