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마침 장마가 주춤한 틈을 타 석모도 보타낙가山(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남인도 바닷가 지역의 산이름을 音譯한 것이라 하고 줄여서 洛山이라 한다 함.말 자체의 뜻은 배꽃처럼 희고 작게 피는 小白花라는 뜻??)의 普門寺 눈썹바위 부처님을 만나뵈러 간단한 여장을 꾸린다.
관음보살의 상주처라고 저마다 주장하는 곳이 여러 곳이다.참배객들이 줄지어 찾는 유명한 암자만 하더라도 낙산사 紅蓮庵, 남해 금산 菩提庵 낙가산 普門寺,여수 向日庵등 어디 한두 군데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보타는 관세음보살을 이르는 말이고 普門은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고난을 구제하고 교화하는 설법을 하시는 곳을 가르키는 말이자 모든 사물이 저마다 일체의 法을 포섭하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라는데 일단 어렵고 알쏭달쏭하게 들린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 닿으면서 혹시 오늘 강화 출신 某씨가 늙으신 부모님께 문안을 드리려 마니산 밑자락에 와있지않을까 하여 전화를 해본다.오늘 강화도에 건너올 계획인데 어젯밤을 뜬눈으로 새워 잠시 눈을 붙이려 아침부터 외롭게 나홀로 술 한 잔하는 중이란다.
그래.. 인간은 개체적으로 외딴 섬같은 외로운 존재이지...바람 불고 파도 치는 외로운 섬에 갇혀사는 우리네 인생을 達觀하려는지 아니면 悲觀하려는지 어젯밤 某씨가 모처럼 시 한 줄이라도 읽어 잠을 설쳤던 것인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파도소리가 섬을 지워내고
밤새 파랗게 달궈진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 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 봐라
삶이라는 것이 뭔가
삶이라는 것이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을 밝혀야 하니....:안도현>
외포리 포구에서 철부선을 타면 산이 셋 솟아있다 하여 三山面이라 불리는 석모도까지 불과 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남쪽으로부터 해명산,상봉산,상주산을 잇는 산길이 십여 km 된다고 했던가...
북쪽으로 권력 투쟁에 실패한 왕족들의 유배지인 교동도가 눈에 들어 온다.연산군,안평대군,광해군,능창대군...거의 다 유배지에서 병들어 죽거나 사약을 받고 죽어서 섬을 나오지 않았는가....지도를 보면 바로 황해도 남단 반도가 지척이다.
걸쭉한 갯벌을 드러내며 철썩거리는 갯물을 거슬러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라온다.하나같이 살찌고 극성스러워 밉살스럽기까지 한 갈매기들이 집요하게 배를 쫓아오며 인간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는다.새들이 물고기를 잡지 않고 野性을 잃어 저렇게 살아도 되나....
관광버스를 타고온 한 떼의 산행객들이 먼저 산에 오르는 것을 기다려 천천히 가벼운 산비탈을 올라간다.운좋게도 그동안 사람의 손을 덜탄 것인지 산입구 길섶에 까맣게 익어있는 버찌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듯 먹음직스럽게 달려있다.손을 뻗고 가지를 훓어 다닥다닥 열린 앙증맞은 과일을 입에 넣는다.과육이 풍성한 것은 아니지만 입안에 감도는 상큼한 맛이 그만이다.
날씨는 맑지 않지만 곧 나타나는 능선에 사방으로 터지는 조망이 안개 속에 그럴듯하다.반듯반듯하게 구획정리가 된 논에 볏모가 푸르고 이제 중국산 소금에 밀려 조업을 멈추어 휑하니 비어있는 소금밭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외포리 포구쪽 풍경과 강화 남쪽의 마니산 모습을 찾아본다.사방의 바다위에 고만고만한 작은 섬들이 고즈넉하게 떠있다.
주황색 산나리 수줍게 피어나고 흰 여뀌꽃 알갱이로 피어나 맞아주는 산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간다.작은 암릉이 나타나 잠시 바윗결을 만지작거리니 바로 오늘의 최고점 327m 해명산 정상이다.긴숨을 몰아쉬고 산중에서의 산의 모습과 흐릿한 바다의 수평선을 내려다보며 편안한 시간을 갖는다
방개고개로 내려와 새기리고개로 오른다.길섶 적당한 바위턱에 걸터앉아 산바람을 쐬며 과일 몇 조각으로 마음의 점을 찍는다.시원한 과일은 소박하지만 짧은 산행의 훌륭한 식사이다.
이어지는 길이 너무 편안하여 갈림길에서 잠시 방심한 탓인지 길을 잘못 든다.갑자기 리본들이 없어지고 산중에 묘지들이 나타나니 직감적으로 이 길이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임을 알아채리고 미련없이 오던 길로 돌아선다.
한 두 봉우리를 넘어서니 산아래 보문사의 전각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눈썹바위 부처님 바로 위 낙가산 삿갓바위에 앉아 상봉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의 흐름을 살펴보고 보문사로 내려서는 가파른 산길로 들어선다
산길이 보문사 극락보전에서 눈썹바위 마애불로 이어지는 계단길의 중간 쯤에 닿는다.이 계단 길의 계단이 418개이니 오늘 같이 더운 날 오르려면 땀깨나 흘려야하는데 중간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조금 수월하게 눈썹바위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다.
눈썹처럼 드리운 바위밑 직벽에 관세음보살상인 커다란 마애불이 나타난다.앉은 키가 9m가 넘는다는 마애석불이 조금 뭉툭한 인상으로 바다를 굽어보고 계신다.석불의 연세가 의외로 젊으시다.1928년생이니 우리 모친과 같은 나이인데...
오로지 信心하나로 無心한 돌을 쪼아 인간 같은 부처의 형상을 만들고 인간이 지닌 따뜻한 감성을 불어 넣는 손길은 위대한 손길이다.없는듯 있는듯한 은근한 미소,숨결이 느껴지는듯 아닌듯한 뭉툭한 코,감은듯 뜬듯한 눈자위,살짝 올라간 입꼬리...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지만 표정은 어디서 본듯 만듯 무표정한데 산듯 죽은듯 천만년을 살아오시는 의미심장한 얼굴 모습인가...
造佛華應禪師라고 씌어있으니 언제 누가 이 부처님을 만들어 모셨는지 알 수 있다.그 당시 금강산 표훈사 주지의 솜씨로 빚어낸 부처이시다.
처음으로 야외법당에서 염주는 없지만 108배를 드리기로 한다.제대로 격식을 갖추지는 못하지만 五體投地 비슷하게 공손한 자세를 갖추며 열심히 절을 올리니 30배도 올리기 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절이란 무엇인가...절을 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을 담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생활 건강의 한 방편으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절은 자신을 최대한 낮추는 행위라는 말씀이 들려온다.누구 말대로 빌어서 무슨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세의 業報를 소멸시키려는 갸륵하고도 순수한 마음의 발로인가...
땀을 흠뻑 흘린 자리를 깨끗이 닦고 절을 끝내니 멀리서 바라보던 어느 보살이 기특하게 여겼는지 말랑말랑한 떡 몇 조각 보시하신다.점심에 곡기가 들어가지 않은 터라 그맛이 꿀맛이고 바로 부처님의 선물이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극락보전의 부처님께도 3배를 올린다.이곳에 이른 발길이 첩첩 산을 넘고 발아래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왔기에 극락보전에 씌어진 원효대사의 게송이 마음에 와닿아 서투른 솜씨로 그 뜻을 헤아려본다.
靑山疊疊彌陀窟(겹겹의 푸른 산은 아미타불이 사시는 곳이오)
蒼海茫茫寂滅宮(넓고 푸른 바다는 적멸궁 그 자체이네)
나한을 모신 석실 나한전 앞에 오래된 향나무가 서 있다.
석실에서 들려나오는 염불 소리를 들으며 오후 한 때 아주 옛날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데 낮이 깊은 만큼 술이 깊은듯한 某씨가 강화도로 달려갈 터이니 늦더라도 기다리라는 소식을 전해 온다.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 이른바 孤掌難鳴인데 空念佛이언정 오고 싶다는 그 마음은 알아차릴 수가 있다.모셔진 나한들은 신라 시대에 어부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이라는데....
다시 버스를 타고 철부선을 타고 외포리로 나와 시원하게 해수 사우나로 땀을 닦아낸 다음 오늘 오르지 못한 석모도 상주산이 잘 바라보이는 황청포구의 어느 횟집에 닿는다.
오래 전에 맛을 본 살찐 제철 숭어의 맛을 떠올리고 숭어회를 주문하지만 주인 스스로가 기름 냄새가 난다고 권하지 않는다.연안 바다의 오염이 그만큼 심하다는 이야기인가...꿩 대신 닭이라고 얇게 저며 낸 제철 병어의 고소한 맛도 아주 훌륭한 맛이다.살짝 씹으면 병어 뱃살의 기름이 고소하게 한입 가득히 퍼져온다.
회 조금 먹었다고 저녁을 거를 수는 없는 일.....엄지 손가락 보다 굵은 강화 인삼과 찹쌀을 넣고 푹 끓여낸 토종 약병아리 삼계탕의 구수하고 차진 맛이 그럴 듯하다.계란 두 알 싸들고 서울 올라온 사람이 닭한마리 통채로 먹는 맛은 아주 각별하다.운전을 맡았기에 소주 한 모금 안하는 인내를 보이는 것이 힘들었지만...
첫댓글 南公의 글을 읽으니 아주 오래전에 가 본 보문사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산행은 안하고 그저 먹던 기억만?) 마지막 그림은 삼계탕같이 보이는데, 강화인삼이 들어가니 맛이 괜찮겠군요 ~~
강화도에서 유일하게 서울 손님들이 찾는 곳이라하오.강화대교 바로 지나서...
모씨는 무슨 일이 있나 ? 일요일 아침부터 술타령이라니. 그나저나 일요일 새벽마다 길 떠나는 사람을 어찌 토요일 저녁에 불러내나 ? 심술도 부릴 일이 따로 있지 내원참, 원참내, 참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