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리님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9탄!!!

[보노보노]

9.

저녁 당직이었던 마이크 목사님은 아침 6시에 퇴근한다.
자신도 피곤했을텐데, 오랜만에 늦잠을 잔 나를 깨우지 않고 기다렸다.
미안해서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아침의 항구.
밀물때 물이 들어왔다가 썰물때 바닥이 드러나는 둑방이 있다.
사람들이 그 안에 갇힌 고기들을 잡는다.









오늘은 바에트 소장이 오토바이를 빌려주기로 했다.
섬의 일주도로는 40km.
4시간이면 충분히 한바퀴를 돌아올수 있다고 했다.

낮 근무자가 오는 시간은 7시반.
근무교대 때마다 산 밑으로 내려올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아침을 먹어야 하니까 큰 문제는 아닌데, 다시 걸어 올라가는게 큰 일이다.
천둥이에 실려 다닐 때는 몰랐는데, 다리에 근력이 많이 떨어졌다.

오늘 근무자는 리차드 Richard.



그런데, 바에트 소장이 일이 있어 못나온다고 했다.
오토바이도 빌릴 수가 없다.

롬블론 일주를 위해 오늘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는데,
오토바이가 없으면, 일정이 수포로 돌아간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오토바이라도 빌려보기로 했다.
리차드와 같이 시내로 나왔다.

몇군데 오토바이를 빌려주는 곳이 있었지만 500페소 이상을 요구했다.

기름값까지 합하면 큰 지출이다.

롬블론에 머무를 이유가 사라졌다.
하지만 타블라스로 돌아가는 배는 이미 떠났다.

약속을 안지킨 바에트 소장이 야속하다.

롬블론.

하는 수 없이 다시 거리를 배회했다.

시내에 머무는 외국인은 나 혼자인 듯 했다.
내가 지나갈 때 마다 코레아노라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동네에 소문이 빨리도 퍼졌다.

찬찬히 거리를 돌았다.

스페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다리.




버려진 폐차안에 묶인 원숭이도 만났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은 롬블론 성당이다.



성당옆에는 롬블론에서 가장 시원한 그늘이 있다.





낮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성당에서 그럴 수는 없다.

마을 광장에 어린이 잔치가 벌어졌다.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군것질도 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분수대도 있고 널찍한 공원이 딸린 건물이 보였다.
롬블론 시청이다.
벤치에 앉아있던 한 남자를 만났다.
눈이 마추쳐 살짝 인사를 건넸는데, 말을 걸어온다.
그는 배로 두시간 걸리는 코브라도 Cobrador 섬에 살고 있다고 했다.
정말 멋진 석양이 있다고 했다..
꼭 한번 놀러오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가고 싶지만,  일단 가면 3일은 더 소요 될 것이다.
머리속이 혼미하다.
무슨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두시간을 돌아다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본 것 같다.

다시 기상관측소로 돌아왔다.

날씨가 무척 좋다.
하지만 뜨겁다.

멀리 타블라스가 보인다.

섬 한쪽에 멋진 요트 한척이 정박해있다.
물어보니 롬블론 지역의원의 것이라고 한다.

잠시후 바에트가 올라왔다.
약속을 못지켜 미안하다고 했다.
이미 지난 일이다.
여행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항상 그랬다.

바에트에게 지난 여름 여객선 침몰사고에 대해 물어봤다.
바로 롬블론 근처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는 벽에 걸린 일기도를 보여줬다.
올해 필리핀을 지나간 모든 태풍의 괘적이 그려져 있다.
보통 일년에 20차례 가까이 태풍이 온다고 했다.
그 대부분이 필리핀의 동쪽 해안선을 타고 북상하는데,
지난 6월의 태풍은 바로 롬블론 근처 시부얀해를 통과했다.

왜 선박 운행을 통제하지 않았을까.

바에트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상관측소는 기상이 악화되면 주변 항구에 출항금지령을 내린다.
하지만 이미 항해중인 선박을 통제하는 권한은 없다.

여객선이 마닐라를 떠날 당시 세부 남쪽 해상에서 저기압의 발생이 보고 되었다.
대형 여객선이라면 운항이 가능한 수준이다.
저기압은 곧 낮은 단계인 1급 태풍으로 발전했다.

아마도 선장은 선사로부터 통보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항지속 여부는 선장의 판단에 맡겨졌다.

바탕가스 부근의 해상은 잔잔했다.
선장은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승객을 가득 태웠고, 운항을 취소하면 한바탕 항의와 환불소동이 벌어진다.

800명 승선규모의 가장 큰 대형 여객선이다.
왠만한 파도는 거뜬히 헤쳐나갈 수 있다.

하지만, 태풍은 여객선의 항로와 일치되게 북상했다.
게다가, 2급 태풍으로 세력이 커졌다.

관측소에는 레이다 장비가 없다.
무전기는 있으나, 여객선의 주파수를 알지 못해 교신이 불가능한 상태.
선사측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결국 여객선은 롬블론 남쪽 시부얀해에서 태풍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이미 태풍은 더욱더 강력해진 3급태풍.

선체는 파도에 요동치고, 배안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여객선은 결국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침몰했다.

거센 파도에 몸을 던질 수 없었던 대다수 승객들은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태풍이 잠잠해진후 잠수부들이 가장 먼저 꺼낸 것은 파인애플 농장에서 사용하는 농약통이었다.
수백명의 시신이 아직도 바다속에 있다고 했다.
바에트는 행방불명된 선장이 아직 살아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필리핀 어딘가 신분을 숨기고 숨어 있을거라고 했다.

이번 여행중 3번 배를 탔다.
앞으로도 몇 번이나 배를 더 타야할 지 모른다.

태풍이 잦고 섬이 많은 나라다.
왜 이토록 태풍경보 시스템이 취약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아무것도 모른채 부모 품에 안겨 수장된 아이들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선장이 배를 돌렸더라면.
관측소와 교신이 되었더라면.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육지와의 사이에 바다가 있다는 것으로 이동에 큰 제약을 받는다.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심적으로 먼 느낌이다.

아무래도 천둥이가 있어야겠다.
리차드가 저녁에 신기한 고기잡이를 가는데도 따라가지 못했다.
시내와 떨어진 곳에 사는지라, 가더라도 돌아올 방법이 없다.

그는 손전등과 작살로 한 양동이 가득 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해가지면 고기들이 연안으로 모여든다.
잠수해 들어가 손전등으로 고기를 유인해서 쉽게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해가 지고 달이 뜨기 전에만 가능하다.

아쉽다.

빠가사 관측소에서는 다들 처음 하는 질문이 종교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보통 웬만큼 친해지고 난 뒤에나 물어보는 것인데.
알고보니 직원들이 모두 기독교인이다.
두시간마다 한번씩 관측하러 나가는 것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 성경책을 본다.
그중 리차드는 최고의 성경박사다.
내가 묻는 모든 질문의 답을 성경을 뒤적여 금방 찾아낸다.
대단하다.
그 머릿속에 성경 검색기능이 있는 듯 했다.
내일, 토요일에 교회모임에 같이 가자고 하였으나, 더 이상 롬블론에 머무를 수 없다.

리차드는 퇴근후 고기를 잡으러 떠나고, 다시 마이크 목사님이 올라왔다.
두 번째로 보니 다시 반갑다.

대단한 분이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두시간마다 기상을 관측해야 한다.
태풍이 오면 한시간 마다 관측을 나간다.
비바람이 부는 날도 마찬가지다.
그리고는 한 달에 오천페소를 받는다.
공무원이지만, 한직이다.



이튿날, 당직을 마친 목사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시내로 내려왔다.
이제 롬블론에 오면 머물곳이 생겼으니 언제든 다시 오란다.
이틀동안 옆에서 밤을 지켜숴 고마웠다.



선착장 부근 카페에서 아침을 먹었다.
언제나처럼 커피와 계란과 빵이다.

타블라스 행 배를 탔다.




언덕위에 관측소가 보인다.
일요일 예배를 위해 다시 마이크 목사님이 낮 당직을 선다고 했다.
배가 떠날 때 나와서 보겠다고 했었는데, 너무 멀어 잘 보이지 않는다.



롬블론의 저녁에 굉음을 울려대던 발전소 바지선이다.
발전소가 없는 섬에 실려와 디젤연료로 전기를 만들어낸다.

다시 산 어구스틴항으로, 지프니를 타고 다시 오죵안으로 돌아왔다.
윌리 목사님이 언제쯤 다시오냐고 문자를 계속 보내왔었다.
시부얀 섬까지 돌아볼 작정이었으나, 천둥이 없이 고생만 할 것 같아 포기하고 예정보다 일찍 돌아왔다.

내일은 파나이 Panay 섬으로 갈 작정이다.
오늘 낮은 천둥이와 함께 타블라스를 좀 돌아봐야 겠다.
배 시간을 알아볼 겸 까띠클란으로 가는 배가 떠나는 로옥 Looc 까지 가보기로 했다.







멋진 해변은 없지만, 타블라스도 충분히 자연이 아름다운 섬이다.
그리고 섬 곳곳에 순박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타블라스의 남쪽 끝에 산타페 Santafe 라는 마을이 있다..
이름 자체로 흥미를 끈다.
로옥을 지나 길을 나섰으나, 진흙 구덩이가 곳곳에 있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나왔다.

이 작은 타블라스를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도 한달은 족히 걸릴 것이다.
고작 이삼일 머물다가 또 어디로 가서 뭘 한다는 말인가.
여행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마닐라에서 3년을 살았다.
어느날, 내가 알고 있는 필리핀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떠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
여러 곳을 둘러봐야겠다.

그래서 떠난 여행이다.

마음속에는 필리핀 일주에 대한 계획을 품고 있었다.
민도로, 팔라완을 거쳐 네그로스, 보홀,  민다나오까지 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일런 생각이 밀려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민도로에, 바탕가스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필리핀이 있는데, 더 멀리, 더 많이 가보려고 생각 해왔다.

사람들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도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심정으로 오죵안으로 돌아왔다.
파나이 가는 배는 내일 오전 9시에 있다.
내일 일요일 예배가 있는 걸 알지만, 배 시간 때문에 참석이 힘들다.
윌리 목사님이 아쉬워한다.

내가 저녁식사를 대접해야겠다.
뭘 먹고 싶은가 물으니, 아무거나 좋다고 웃으신다.
치킨 아도보로 메뉴를 정했다.
요리는 목사님이 해주기로 하고, 막내 딸 베스와 함께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짐이 많아질 것 같아, 루이에게 트라이시클을 빌렸다.
오토바이하고 비슷할 줄 알았는데, 운전 조작이 꽤 힘들다.

핸들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린다.

닭 2마리와 감자, 생강을 넉넉히 샀다.

목사님 요리가 꽤 수준급이다.
맛있는 저녁이 되었다.

식사후 목사님과 담소를 나눴다.
목사님은 민도로 출신이다.
타블라스 교회는 교단의 다른 지역교회보다 사정이 열악하다.
아무도 부임하지 않으려해서 자기가 왔다고 했다.
교인이 30명이 채 안된다.
지난번 헌금을 내는 걸 보니 다들 동전만 넣었다.
지폐라고 해야 20페소짜리다.
생활이 어려울 것이 뻔하다.

목사님은 일주일에 한번씩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다.
이번주 무상지원 쌀에 대해 이야기 하려했다고 원고를 보여주었다.
국비로 구입하는 쌀 가격에 거품이 있다고 했다.
일부 정치인들이 쌀 수입업자와 결탁해서 구입가를 비싸게 만들었다.
그 차익을 정치인이 챙겼다는 것이다.

롬블론에서 봤던 요트 얘기를 했더니, 부정부패는 이미 고착화 되었다고 했다.
공공사업비의 20%가 해당지역 정치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더군다나 모두 편법으로 하는 것이라, 법을 고치지 않는한 처벌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민중의 삶은 바닥인데, 정치인들은 권력을 이용해 공공연하게 자기 배를 불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전기도, 가스도 없이 숯불에 밥을 해먹는다.
그들의 세금으로 정치인은 요트를 구입한다.

왜, 사람들은 이런 부조리에 항거하지 않는 것일까.
예전, 스페인에, 마르코스에 대항에 투쟁했던 그 정신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목사님은 사람들이 돈맛을 알았다고 했다.
나와 내 가족을 생각할 뿐, 더 이상 전체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고 했다.

목사님같은 분이 정치를 해야 할 것인데.
민중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힘을 가져야 할 것인데.

내가 안타깝고 분하다.
그러나 나는 체게바라가 아니다.
그저 힘없는 이방인일 뿐이다.

이 땅에 더 이상의 보니파시오는 없는 것일까.

[지나가는행인]

기대되는 여행기 입니다 제가 꿈꾸는 바로 그 여행입니다. 하지만 난 한국이고 ^^;;

[보노보노]

네 님들때문에 올리기 힘든 작업도 마다하지않고 올립니다..감솨합니다..

[spoby]

오늘도 기행을 읽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진정한 여행입니다.

[장군]

무지 고생하셨네요...매번 기행기 읽고 저도 한번 가보고 싶은 여행입니다...

[박꾸에]

이거 다쓰시면 책내셔도 되게써요 진짜~

[♧덩혀뉘]

잘읽었습니다.

[^________^]

정말 만나고 헤어지고..만나고 헤어지고...쉽지 않은 일일거라 생각됩니다...^^;

[gardenb]

감사합니다.

[Johnie]

어딜가나 정치인들때문에 서민들은 힘이드는군요 ㅠ

[꼴통]

덕분에 이곳 현지사정을 리얼하게 게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