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공직의 나래를 펴다 -11- (다시 만난 선생님, 윤재풍 교수)

[옴부즈맨]

■ 다시 만난 선생님, 윤재풍 교수

어느 날 진급시험 대상자 발표가 있었는데, 공무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진급 시험을 볼 것이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명단에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이름이 없어 한편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서무주임을 보고 있기 때문에 과장이 주는 인사 고과성적을 내 손으로 ‘수’를 확인하고 인사계에 제출했는데, 어떻게 ‘양’으로 뒤바뀌어 있단 말인가?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인사계에서 돈을 받아먹고 인사고과를 조작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가장 투명하고 객관성이 있어야 할 인사담당 부서까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있으니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가슴이 순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당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보직을 이용해 ‘남의 가슴에 멍이 들게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하였다. 그런 일이 벌어졌지만 나는 꿈이 있기에 그들을 용서하고 학업에만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름휴가를 거의 반납하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있는 방송통신대학교 출석 수업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이렇게 두 해를 학업에 몰두하여 보내고 나니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드디어 졸업하게 되어 꿈에 그리던 학사모를 어엿하게 쓰게 되었다.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매우 기쁜 나머지 졸업식 전날 밤에 너무도 힘들게 공부한 지난날을 생각하며 한없이 울었다.

그날 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운명을 하시기 직전에 온 가족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큰 형님한테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이 생생하게 귓전에 들려 왔다.

“힝오를 어떻게 하든지 꼭 가르쳐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두신 것이다. 몸이 아주 여윈 아버지의 돌아가실 때에 그 모습이 그날따라 왜 그리도 보고 싶었을까?

나는 언제나 이상과 꿈을 안고 살았다. 모든 것이 부족한 자신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위치에 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해야 따라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퇴근 후 늦은 시간까지 텅 빈 사무실에서 책과 씨름을 하다가 너무 무리하여 코피를 쏟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처절한 투쟁은 나를 더욱 단련시키고,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말단 공무원으로 대학공부를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특히 상사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는 견딜 수가 없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시골 어느 장터 후미진 곳에서 소금을 팔고 계실 어머님을 생각했다.

무엇보다 입학생의 5분의 1도 졸업하기 어렵다는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이 한 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학점이수과정이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 이 학위를 받기위해 자신과 처절하게 싸우며, 모든 고통을 이겨냈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니 감격의 눈물이 넘쳐 흘렸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졸업사진을 벽에 걸어두고 매일 매일 새로운 각오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욕심으로 등록금이 가장 저렴한 S대학교 3학년에 편입을 했다. 공무원으로서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를 결정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고향에서 방위를 받으면서 한국방통대학에 입학하여 전남대학교에서 출석 수업을 받을 때 감명을 받아 ‘나도 저런 교수가 되겠다.’고 다짐을 하게 했던 윤재풍 교수님을 이곳에서 다시 만나 학문의 깊이를 더해가는 인연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는 윤재풍 교수님을 참으로 경외한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다. 학자로서의 인성과 지성에서 풍겨 나오는 성품(聖品)이 고고한 성균관 선비와 같다. 윤 교수님은 정말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시고,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참 학자로서 강의 준비를 충실히 하여 주로 이해위주로 주로 열강을 하셨다. 강의가 끝나시면 온 몸에 땀이 흠뻑 젖으셨다. 나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일요일이나 휴가, 명절 등을 모두 반납하고 공부와 싸우다 보니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때는 학업을 포기하려고 마음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공부라도 마음이 내키지 않은 상태에서 하게 되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때로는 자포자기를 하여 스스로 무너지는 나약함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고, 어머니를 떠 올리며, 엿장수와 야경시절을 회상하면서 마음을 다졌다.

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견주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공부 역시 자신과의 싸움이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가되 남보다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할 필요는 없다.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한발 한발 내 딛다보면 언젠가는 결승선을 밟게 되고 더 큰 경주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천신만고 끝에 S대학교를 졸업을 하게 되어 두 번의 학사모를 쓰면서 이제야 정상적인 학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칠 줄 모르는 대항마처럼 학문의 고속도로를 무한질주 하였다. 두 번의 졸업사진을 벽에 나란히 걸어 놓고 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그 해 신촌에 있는 Y대학교 대학원에 응시했으나 이상하게 떨어졌다. 그 다음해에는 S대학교 대학원에 응시하여 필기고사에서는 합격을 했는데, 공무원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F를 받아 다시 고배를 마셨다.

지금은 대학원 선발 과정에서 신분과 직급은 관계가 없겠지만, 당시에는 최소한 서기관 이상의 직급을 가진 자를 주로 선발했다. 나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대학원 3수만에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 합격하여 다시 윤재풍 교수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