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명유래 ▶ 노곡동(魯谷洞) 일명 노촌(蘆村), 노노촌(老老村), 논어실이라고도 합니다. 마을 뒤편에 함지산과 중턱에는 노곡산성, 일명 팔거산성이 있는데 동네에서는 도덕봉, 관니산성이라고도 하면서 동명을 공자의 고향인 노(魯)나라 취곡(取谷)이라는 뜻으로 노곡(魯谷)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 사수동(泗水洞) 지금의 대구광역시와 지천 경계지점으로 장기터와 샛터로 형성된 자연 마을로, 금호강과 주위 하천으로 둘러싸여 비가 많이 올 때는 자주 침수되는 지역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마을입니다. ▶ 금호동(琴湖洞) 약 310여 년 전 달성군 서재면 세천동에서 살던 선산 김씨가 이 지역으로 내려와 마을을 형성하여 태전교 남쪽 금호, 사수동까지를 문주마을이라고 하였는데, 일제 때 금호강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금호동이라고 불렀습니다. 금호라는 명칭은 물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적합하여 다른 지역 주민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많이 모여들었다는데서 마을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 팔달동(八達洞) 현재 구안 국도 변에 위치한 자연 마을로 400여년 전 성주 배씨가 이주하여 장태실과 작원동을 형성하였으며 그 명칭은 금호강의 지류인 팔거천과 당시 행정명인 달성군에서 그 머리 자를 따서 팔달동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 매천동(梅川洞) 400여년 전 합천 야로 지역에서 야성 송씨가 현재의 태전교 남쪽 문주마을에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로서 현재 매천1동은 매남(梅南)에서, 매천2동은 송천(松川)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조선 광해군 때 아헌 송일기 선생이 사간원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폭정을 간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자 자신의 호를 벙어리라는 뜻에서 아헌(啞軒)으로 고치고 지금의 매남동 지역으로 내려와 매양 서원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였다는 데서 매남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고, 인조때 성주지역에서 야성 송씨들이 이주하였고 매천2동은 앞의 팔거천과 뒤쪽 소나무로 둘러 쌓였다는데서 송천(松川)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해방 후 정부의 행정 구역 개편 때 매남과 송천을 합하여 매천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2. 현황 (2005.10. 31 현재)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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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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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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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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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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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 |
관문동 關門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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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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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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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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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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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
3. 관할구역 노곡동, 사수동, 금호동, 팔달동, 매천동 일원
4. 유적지 [팔거산성(기념물 제6호)]
- 소재지 : 북구 노곡동 산 1-2번지 일대 - 특 징 : 높이 288m의 함지산 정상에 축조된 산성으로 가산산성이 구축되기 전까지 대구 북방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일정한 공간을 둘러 싼 산정식 산성으로 정상은 평편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동쪽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고 서쪽은 바꺝쪽 둘레의 경사진 부분에 성벽을 쌓아 만들었습니다. 산성 서쪽에 망루가 있으며 그 아래 산기슭에는 구암동 고분군이 있고 삼국시대 도질 토기가 발견되어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자료는 북구의회 최인철의장님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펀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