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충효길 3코스 걷기 그리고 현충원 참배 후기 <1>
<2021년 9월 25일>
지난번 동작충효길 1코스 고구동산길과 7코스 까치산길 걷기에 이어,
오늘은 동작충효길 3코스 한강나들길을 걷고, 날머리 동작역에서
국립서울현충원 내부순례길을 따라 참배하는 일정이다.
3코스 한강나들길은 지극한 효심이 면면히 흐르는 길이며,
아울러 '충(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노량진역에서 출발, 선비의 절개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육신 역사공원],
노량진 정수장 배수지공원인 노들나루공원에 세워진 [한강방어선전투 전사자 명비] 참배,
'아버지{사도세자 - 장조(莊祖)로 추존}를 그리워하는 정조의 마음이 녹아나는 [용양봉저정],
한강 노들강변으로 나서면, [심훈 문학길]이 이어지며, [학도의용병 현충비] 참배 후,
[효사정]에서 1차 휴식, 효사정은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노한>의 효심으로
조선 효도의 상징이자, 한강변에서 경관이 빼어난 정자로 유명하다.
노한은 모친상(喪) 때, 이곳에서 3년간 시묘(侍墓).
흑석역에서 한강수변길을 따라 동작역까지,
3코스 걷기는 끝나고, 국립현충원 참배.
'忠과 孝' 걷기와 참배 일정 마무리 !!!
[동작충효길 3코스 한강나들길]
(노량진역 ~ 사육신역사공원 ~ 노들나루공원 ~ 용양봉저정 ~ 심훈문학길 ~ 효사정 ~ 한강수변길 ~ 동작역)
노량진역 2번출구
사육신역사공원 정문, 안쪽으로 홍살문도 보이고 ~~~.
정문에서 도로(노량진로) 건너편은 뉴스에도 자주 언급되는 [노량징 컵밥 거리]
사육신 역사공원 안내도
사육신 사당과 조망명소로 가는 갈림길에서 선채로 역사 공부
사육신과 생육신, 사육신에 김문기 포함여부 논란, 언제부터 왜 사육신이 칠육신이 되었나 등등.
1455년(단종 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즉위, 이에 의분을 품고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김질이 변심하여 한명회에게 고변(告變), 세조의 친국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여섯 충신을 사육신이라 부름.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고자 숙종 7년(1681) 이곳에 민절서원(愍節書院)을 세웠고,
정조 6년(1782) [신도비]를 세웠으며, 1955년 육각(六角)의 [사육신비]를 세웠다.
1978년 서울시는 충혼을 위로하고 충의(忠義) 정신을 널리 현창하고자 면적을 3,240평의 묘역을
9,370평으로 확장하고 의절사, 불이문, 홍살문, 비각을 새로 짓고, 역사관 조망명소 등 명실상부한 역사공원으로 자리매김.
*** 이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그 후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허묘(墟墓)도 함께 추봉.
*** 김문기는 1456년 단종 복위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주살당할 때, 이 사건 모의자로 군기감 앞에서 처형.
(조선왕조 실록과 추강집의 기록이 달라, 1977년 7월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특별위원회를 구성, 1982년 최종 결론은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顯彰)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결의, 기존의 사육신은 그대로 두었다.
***** [사육신]은 생육신 남효온(南孝溫)이 쓴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六臣傳)」에 실려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 생육신(生六臣)은 목숨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충신불사이군 정신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평생 야인생활을 함으로써
세조의 부도덕한 왕위 찬탈에 저항한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성담수·남효온]을 말한다.
***** 생육신 김시습이 거열형을 당한 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김문기··유응부유성원 등의 시신을 수습,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 묻었다.(박팽년은 국문 중 사망, 유성원은 잡히기 전 자결, 그후 모두 거열형(車裂刑) 집행.
***** 당시 단종 복위 관련 사건으로 처형 당한 사람은 모두 70여명에 이른다.
'忠臣 不事二君' 즉,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이문]
[의절사(義節祠)]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
김문기 포함, 일곱 충신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정조 6년 1782년 신도비(비각은 1978년)
육각의 사육신비
사육신역사공원의 조망명소
한강 철교, 강 건너 멀리 북한산, 우측 끝 남산N타워.
사육신역사관
역사관 입구, 백송 옆으로 있는 흰꽃배롱나무의 아름다운 수피(樹皮)
노들나루공원으로 가는 길, 우측으로 사육신 묘역
래미안 트윈파크 아파트 정자목인 [느티나무], 인고의 세월이 묻어나는 느낌. 우리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은 걸까?
노들나루공원 [한강방어선전투 사망자 명비] 참배(2016년 제막).
일동 묵념 <아피오스님이 보내주신 사진>
이 표석이 없었다면 깜빡 잊을 뻔했다. 이곳이 정수장이었음을 ~~~. 1910년부터 2001년까지 였나 보다.
노들역 2번 출구 앞, 동작충효길 탐방안내센터에 근무자가 계신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노들역 3번출구로 나오면 [용양봉저정], 아버지 사도세자(장조 추존)를 그리워하며 화성 능행차 오갈 때
이곳에서 식사도 하고 쉬기도 하며, 바라보는 풍광이 마치 '용이 뛰놀고 봉황이 날아 오르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주교사 터] 한강 도강을 위한 주교(舟橋 - 배다리) 설치 등을 담당하는 관아로, 정조 13년(1789) 설치, 고종 19년(1882) 폐지
현충로를 건너 한강 노들강변으로 나서면 [효사정]까지 걷기 좋은 [심훈 문학길]이 이어진다.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언제 읽어도 가슴이 찡하다.
♣♣♣ '어머니' '엄마'란 말이 주는 포근함에 여기 전문을 퍼올립니다.
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 적삼 차입해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었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지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 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를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순사를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나 들어가는 듯 하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들어 있는 방은 28호실인데 성명 삼자도 떼어버리려 2007호로만 행세합니다. 두 간도 못되는 방 속에 열아홉 명이나 비웃두름 엮이듯 했는데 그 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시골서 온 상투장이도 있구요. 우리 할아버지처럼 수염 잘난 천도교 도사도 계십니다. 그 밖에는 그날 함께 날뛰던 저의 동무들인데 제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귀염을 받는답니다.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려쪼이고 주홍빛의 벽돌 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짓무른 살을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 뉘우침과 슬픈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은 어머니가 몇천 분이요 몇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 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먹기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에 더위가 씻겨 내리고 높은 담 안에 시원한 바람이 휘돕니다. 병든 누에같이 늘어졌던 감방 속의 여러 사람도 하나 둘 생기가 나서 목침돌림 이야기에 꽃이 핍니다.
어머님!
며칠 동안이나 비밀히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덧 멈추고 날은 오늘도 저물어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니의 건강을 비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다운 듯 먼 촌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
1919년 8월 29일
심훈(1901 ~ 1936) 호는 海風.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시인 영화인, 대표작은 상록수 영원의 미소. 그날이 오면. 등
학도의용병 현충비 참배
일동 묵념 <아피오스님이 보내주신 사진>
심훈 '그날이 오면'
[효사정]
현판은 <노한>의 17대손인 노태우가 썼다고 한다.
1차 휴식 및 간식 나눔
효사정에서 흑석동 방향.
효사정에서 한강 상류 조망, 여의도에 개점한 현대백화점 광고 [THE HYUNDAI SEOUL]
흑석동 성당 정문 안쪽에 자리잡은 [심훈생가터 표지석] *** 이틀 전 성당에 들렸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흑석역에서 머루터널을 지나 한강수변길로 동작역으로 간다.
보는 사람이 즐겁다. 온 세상이 흥겹다. 이렇게 좋을 수가 ~~~ ~~~.
동작역 2번출구에 있는 [동재기 나루터] 표지석.
강변에 검붉은 구리빛 색깔의 돌들이 많아 구리 동'銅'을 써서 동재기 나루터, 한자로는 동작진이라 불렀단다.
맨발의 청춘.
동작주차공원에서 현충원 참배 등 향후 일정 설명
카페 회칙 설명과 함께 9월 중 우수회원으로 등업하신 회원님 소개. <오렌지님. 마라도너님. 꽃게님.>
감사 인사하는 꽃게님에게 열화와 같은 박수로 축하!!!
선채로 사과 한 쪽씩 나누어 먹으며 3코스 걷기 마무리하고 현충원으로 ~~~.
동작역 4번출구 도로에 세워진 표지석. 동작충효길 2코스와 3코스 연결지점이기도 하며 국립서울현충원 동문 입구 쪽이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사진과 글들을 보니 그날의 걷기가 생생하네요^^ 오랜만에 강변길도 반가웠고 흐르는 강물까지도 ... 트레킹이 아니었음 그냥 무심히 지나첫을 많은 것들을 눈에 마음에 담아 봅니다. 항상 리딩하시느랴 수고하시는 지기님의 열정과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으시고 담아 기록해 주시는 청파님이 계셔서 무한 감사드리며 함께한 벗님들 다음길에서 뵙겠습니다 ~
오렌지 님.
함께 걷는 길, 덕분에 늘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