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미의 방문으로 미뤄 둔 일들이 도처에 산적한 구월 첫 주는 바쁘고도 바빴다. 일본 고치현의 미사토중학교 학생들이 지난 달 말 우리나라를 다녀갔는데, 큰 딸의 간곡한 요청에 나도 홈스테이 가정 지정을 허락해 놓은 터였다. 민간외교관 역할에 충실하려 대청소, 식단 구상 등에 에너질 소진하느라 간단한 일본어 회화 몇 마디 익히지 못한 채 어린 손님을 맞고 말았다. 큰 눈망울의 미나미는 아마도 한국의 오지 가정 체험담을 길게 늘어놓을 거라 짐작되지만, 내 딴엔 손님 접대가 힘에 부쳤는지 주부 습진까지 생겨버렸다^^
딸 들 수련회 준비와 계속되는 야근. 아이들 없는 틈 타 술자리 모임에도 참석하는 객기까지 부리려니 고달프기도 한 날 들이 이어질 밖에.. 그리하여 가을을 느낄 겨를도 없이 구월 첫 주를 보내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장소팔&고춘자 버전^^)
각설하고, 금요일 밤. 금요일 밤 근무는 사람을 유독 지치게 만든다. 20분 휴식시간을 틈 타 참꽃에 들러보니 행운의 전조가 온 몸에 감지된다. 바로 내일. 그 분이 하동 땅에 강림(?)하신단다.(여름 공연 끝난 후 참꽃 이야기방에 거의 신격화되어 있는
그를 예우하기 위함임^^^) 내일이란 말이지. 내일. 내일이랬자 몇 시간 후 아닌가. 10시 퇴근하며 학원 간 딸 픽업해 귀가하니 11시. 두 녀석 수련회 다녀 온 이야기는 끝이 없고.. 잠을 잤는지 말았는지 어느새 날이 밝았다.
- 수수인! 수수민! 사복 한 벌씩 챙겨라. - 왜? - 학교 끝나고 하동 가자. - 왜? -그 분이 하동 땅에 강림하신다. 눈치 빠른 우리 딸들은 이제 그 분이 누구인 줄 묻지 않고도 안다.
지난 7월. 광주 촛불 문화제에서 그의 공연을 처음 본 큰 딸 수수인은 그의 노래가 끝나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며
그의 가창력과 카리스마에 전율했다. 동방신기에 깊이 빠져 다른 가수들에겐 인색하기 그지없던 아이들이 그의 노래에 깊이 감동받은
모습이 보기 좋아 8월의 세실 공연장에 데려 가마 약속하고 한동안 들떠 지냈다.
그러나.. 화려한 계획은 모모한 일들로 무산되고 말았다.
오늘. 지리산 항일 투사 위령탑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도 검정색 원피스를 여벌로 챙겨 집을 나선다. 오전시간이 빠르게 지난다.
수련회 후유증이 커 동행을 포기한 큰 딸을 뒤로 하고, 둘째딸만 OOO중 교문 앞에서 차에 태워 옷을 갈아입힌다. 수련회 다녀 온 어제도 학원 수업 못 빠지게 해놓곤, 오늘은 알아서 결석을 시키는 일관성 없는 엄마가 못마땅하담 엄마를 바꾸면 될 것이고..
광양이 가까운 이곳은 기정 떡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 두어군데 있다. 다른 지역에선 증편 또는 술떡이라고도 불리는 이 떡을 서울 분들께 맛 보여드리고 싶어 떡집에 가니 이미 품절이다. 아직 한 낮인데 떡이 조기품절 된 까닭은 조상님 벌초 시즌 때문.. 다른 한 집에 전활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찬바람이 불면 기정떡집은 휴업에 들어가 내년 여름에나 문을 여는데, 미리 예약 안한 내 잘못으로 치환님 가족과 참꽃 사무실 식구들은 아무래도 내년까지 기다리셔야겠다^^
졸라 쪽 팔리게 무슨 기정 떡 선물이냐고 핀잔 할 줄 알았던 아이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곱다.
화개장터에서 우리 밀 팥죽으로 오붓하게 점심 먹으며 나들이를 즐기려 한 애초의 계획이 심상치않은 빗방울로 급 변경된다. 차안에서 김밥 두 줄로 아이 점심을 때우게 하며 순천을 벗어난다.
빗방울이 제법 거세지만 낯익은 풍경들이 정겹다. 기돗발 잘 받는다는 오산 사성암이 보이고, 안개에 휩싸인 노고단이 아스라이 조망된다.
아무리 바빠도 아이 양치질을 위해 구례 휴게소에 잠깐 들른다. 어쩌면 인사드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처음 대면하면서 양치도 안함 예의가 아니잖니? 지저분한 휴게소에서 칫솔 타령 없이 엄마 칫솔로 양치를 하는 작은 딸이 고맙다.
다시 출발을 서둘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섬진강변을 달리며 잠깐 감회에 젖기도 한다. 1991년.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처음 도로 주행 연수를 받던 길이 이 길이다. 왕 초보 주제에 섬진강변의 풍광에 감탄하다 쌍둥이 아빠라는 강사님께 엄청 혼났던 기억이 새록새록.. 드디어 하동. 화개장터, 남도대교 지나 악양면 최참판댁 가는 길로 들어서니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가을이 실감된다. 빗발이 약해졌지만 안개에 휩싸인 지리산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행사장인 취간림에 도착한다. 기념탑 제막식이 이제 시작되고 있고 저 멀리 치환님의 실루엣이 잡힌다. 정장을 갖출 여유가 없다. 농로가 임시 주차장이라 장소도 마땅치 않고. 아이 때문에라도 정장을 갖춰 경건하게 참여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다.
행사장 들어가는 길을 치환님이 막고 계셔 어쩔 수 없이 인사를 드린다.(믿거나 말거나^^) 알아 봐 주시니 기분이 좋다. 딸 아일 인사시키고 기념촬영도 성공. 우하하하...
비가 잠시만 참아주면 좋으련만.. 빗속에서 헌다례가 행해지고 지리산 은사 시인 이원규님의 비문 낭송이 이어진다. 크로스 오브 앙상블 허브의 공연이 끝나자 안치환님이 무대에 오르신다. 그들의 반주로 ‘내가 만일’을 부르신다.
내리는 비 때문에 음향 기기는 비닐로 덮이고 천막 아래서 공연이 계속된다. ‘광야에서’.. 우리의 치환님은 결국 천막 밖으로 나오시고야 만다. 우산 받치고 있는 손이 부끄러워 우산을 접었다 폈다를 몇 차례..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시인과 같은 공간에서 들을 수 있어 참 좋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끝났지만 아쉬움을 접는다. 비 내리는 야외 공연장. 그것도 경건한 위령탑 제막식 현장에서는 앵콜을 외치지 않는 불문율이
존재한다는 것 여러분 모두 잘 알고 계시지요?
이어지는 이야기 1. 꽃 이번 공연에도 물론 꽃다발을 드렸다. 모모한 일들로 지금은 이원규시인 댁 꽃병에 꽂혀 있을지도 모르나 치환님도 예쁜 꽃이라 하셨다.
이야기 2. 대박 대박 난 모모한 이야기가 있으나 공개 할 수 없음이 그저 안타깝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모두들 무조건 절 축하해 주시압!
이야기 3. 팬 클럽 안당의 이호정님, 공주천사님, 참꽃팬님, 못난이인형님, 담쟁이의 꼬마야님 처음 뵈었지만 반가웠습니다. 끝.
후기 저 또한 지리산을 좋아합니다. 매화꽃 만발한 봄 밤. 지리산 자락 악양 끝 별님이네서 고로쇠 물에 꽃잎 띄워 마시던 그 시절이
불현듯 그립습니다. 치환님이 홈그라운드에 오셔 너무 좋았답니다. 치환님은 아마도 지리산 계곡을 사랑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벌초를 더 자주 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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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에..읽고 또 읽어도....참 좋네요.....좋은저녁시간 되세요.....
소중한 추억이 담긴 여행기 잘 읽었어요. 그 모모한 얘기 여기서는 공개해 주삼요,^^
히어리님 지난 여름 수고 많으셨구요...그 수고 의 보람이었나봐요...그 기쁨이 생활에 활력소가 되시겠죠??..가을도 건강하세요...^^
음~~ 대박2..그립당..대박이라~~~?? 만나면 이야기 해주시겠죠...아무래도 내가 겁나 질투할까봐 비공개 하는것 같은데?? 어차피 짝 사랑입니다요??.....이 짝사랑 앞으로도 생을 다하는 날까지 쭈우욱 지속될것이며.... 오직, 내 희망 , 에너지 , 나를 사랑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좐이랍니다... 너무도,,,멋진걸요??
그나 꼬마야... 대단한 열정이군요.. .제주도에서...나 보다 더 한 분이 있넹??
부산에 있으실때 가시는것 같아요....부산과 자주 왕래를 하시는듯......홍길동꼬마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