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세기도 더 지난 일이었네. 부모님들이 아침 일찍부터 들판에 일하러 나가시면 집 보는 일은 으레 나이 어린 우리들의 일이었을 수밖에...먹을 거리는 커녕 갖고 놀 변변한 장난감조차 하나 없는 초가집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애꿎은 강아지나 닭을 쫓던 그때, 불쑥 삽작문(사릿문의 경상도 방언)을 들어서며 어린 우리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손님이 있었으니...
6.25전쟁이 끝난지 겨우 5년 정도가 지난 시기였으니 전국 방방곡곡엔 전쟁에서 몸을 다친 상이군인들이 넘쳐났다. 나라란 것도 건국한지 3년 만에 북괴의 침략으로 전국토가 초토화되는 전쟁을 치렀으니 상이군인이나 유족을 보살필 여력이 있을 턱이 만무하였으니, 생활력이 없는 장애를 가진 상이군인들은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으니 전국을 헤매 다니면서 문전걸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격상시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부상을 입은 군인, 경찰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제대로 예우하겠다는 정책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랄 정도로 환영할 일이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보훈 대상자들을 너무 소홀하게 대접해 왔는데, 그러고도 애국애족을 강조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건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신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데, 국가는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영화『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2009)은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챈스 일병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하는 실화를 그린 영화라고 한다. 시신을 염습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항공기들에 옮겨 운구하는 장면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을 모심에 시종 엄숙하고 예우를 다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병의 고향집으로 시신을 옮겨가는 과정을 담은 장면은 영화의 압권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던 모든 차량들이 라이트를 켜고 운구차량을 호위해서 달리는 모습, 그게 바로 우리들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에게 바치는 존경의 표현이자 의무의 발로가 아니고 무엇일까.
소설집 『수난이대 』(하근찬, 하서출판사, 2004)에는 동명소설 외 일곱 편의 단편소설들이 실려 있다. 수난이대(受難二代)라는 말 그대로 2대에 걸친, 긍까 아버지와 자식이 겪는 환난의 역사를 기술한 소설이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남방지역에서 팔 하나를 잃었고, 아들은 6.25 전쟁에 참전했다 다리 하나를 잃었으니 한 가족으로 겪은 엄청난 수난이었다. 무사히 귀환하리란 기대로 역으로 마중나갔지만 뒤늦게 목발에 의지하여 절뚝이며 다가오는 아들을 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아버지...순간의 실망과 좌절로 아들을 뒤에 두고 나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지만 가는 길에 단골 주막집에 들러선 국수를 곱배기로 주문하여 아들에게 먹이고, 개울을 만나자 아들을 업고 건넌다. 장차의 삶에 실망하며 풀이 죽은 아들을 다독이며 함께 힘을 모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격려하는 아버지.
에궁! 중국 전한시대의『회남자(淮南子)』란 책에 나오는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은 인생에서 겪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수시로 바뀔 수 있으니 한 가지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라고는 하지만...소설 속의 아버지와 아들이 겪은 불행은 어찌 뒤집을 단서조차 없으니 가슴이 답답할 뿐이라 하겠지만, 서로 의지하면 살아갈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은 그나마 아들에게 가느다란 희망을 갖게 하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