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골프장은 코스가 재밌다. 일본의 M&K사가 山勢를 그대로 살려 설계한 코스는 홀의 시야가 모두 트여 있어 장타를 휘두르고 싶은 浩然之氣를 부추긴다
李 健 實
1946년 부산 출생. 고려大 불문과 졸업. 조선일보 체육부 차장, 스포츠조선 체육부장·부국장 역임. 스포츠조선에 「SC골프칼럼」 280회 연재.
李健實 스포트 라이터
찬송가가 울리는 골프장
누군가 골프장에서 『하느님…』을 찾는다면 십중팔구, OB를 냈거나 스리 퍼트를 했을 때일 것이다. 하도 어이없고 기막히면 한숨과 함께 이 말이 절로 나오니까. 그런데 팅 그라운드도 아니고 그린 위도 아닌 곳에서 하느님을 찾는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진다면 어떨까?
충북 청원군 옥산면 환희리 산 102번지. 떼제베(TGV) 골프장.
「유관순 누나」가 만세를 불렀던 아우네 장터에서 20분 거리인 이 골프장에는 매주 일요일 오전 7시와 9시, 11시, 세 차례 찬송가가 울려 퍼진다. 두 시간씩 터울을 둔 것은 캐디들의 라운드 출발시각을 배려한 것이다. 새벽 라운드를 맡은 캐디들은 18홀을 돈 뒤 11시 예배를 보고, 아침 근무組(조)는 7시 기도를 올리고 필드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예배방식도 유다르다. 같은 시각 서울 압구정동 광림교회에서 행하는 목사의 설교장면을 위성중계로 받아 대형 스크린을 보면서 영상예배를 드린다.
『저희 골프장에는 신앙을 가진 도우미(캐디)가 50명이 넘습니다. 이른 아침 하느님께 기도하고 라운드를 나가면 그만큼 마음이 깨끗해지고 손님 맞는 분위기도 상쾌해지지요』
회원관리부 양인근(38) 차장의 말이다. 이곳에는 信友會(신우회)가 있다. 회장은 2층 레스토랑의 박정수(40) 조리부장. 회원은 프런트 직원들을 포함해 100여 명. 예배당은 주말 골퍼들에게도 개방된다. 기도하고 싶으면 누구든 동참할 수 있다.
이 골프장의 대표는 甘炅徹(감경철·60) 회장. 광림교회 장로이자 기독교 TV사장이다. 그래서인지 코스의 이름부터 크리스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일반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아웃코스(out course)나 인코스란 표현 대신 모세(Mose), 여호수와(Joshua), 갈랩(Caleb), 솔로몬(Solomon·10월 오픈예정) 코스로 명명돼 있다.
『골프의 라운드를 가나안땅으로 가는 行路(행로)에 비유한 것이지요. 좋은 스코어를 내려면 창조와 인내, 용기, 그리고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甘회장의 설명이다.
7월30일로 개장 4주년이 되는 TGV 골프장은 이름부터 특이하다. 하필이면 프랑스 초고속 열차의 이름을 땄을까?
『YS시절 추진되던 경부고속열차의 역이 바로 골프장 초입에 들어서게 돼 있었지요. 그래서 이 레일을 달릴 고속열차의 이름을 붙인 겁니다. 「TGV 타고 TGV에 골프 치러 가자」가 당시 카피였으니까요. 지금은 옛 얘기가 됐지만…』
이 골프장은 코스가 재밌다. 일본의 M&K사가 山勢(산세)를 그대로 살려 설계한 코스는 홀의 시야가 모두 트여 있어 장타를 휘두르고 싶은 浩然之氣(호연지기)를 부추긴다. 그러나 그게 함정이다. 능선을 살리다 보니 경사도 많고 도그 레그(dog leg)도 많다. 오기를 부리면 저만 손해다.
드라이버 잘 쳐놓고 더블 파로 홀 아웃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나비 넥타이처럼 그린 주위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벙커도 애물단지다. 지금까지의 최소타 공식기록은 68타. 그만큼 어렵다. 일반 골프장에 비해 3∼5타 더 나온다고 보면 맞다.
올 들어 홀인원 7개 터진 홀도
이곳에는 곳곳에 트랩이 깔려 있다. 이른바 「2%의 傾斜(경사)」가 그것. 100m거리에 2m의 高低(고저)가 있다는 얘기다. 인체는 이 정도의 경사에 대해서는 느끼지 못한다. 최소 5%가 넘어야 대뇌가 감지하고 그제야 체중을 바로잡으려고 동작한다. 둔감한 사람은 이 마저도 못 느낀다.
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에는 10% 경사도 흔하다. 그 정도가 되면 어드레스부터 달라져야 한다. 한 사람이 똑같은 채로 똑같이 쳤는데 어떤 곳에서는 슬라이스가 나고 어떤 곳에서는 후크가 걸린다면 바닥의 평형을 체크해 봐야 한다.
그렇다고 이 골프장의 홀들이 모두 어려운 건 아니다. 캐디들이 가장 좋아하는 홀은 갈렙 7번(파3 145야드). 30도의 오르막인 이 홀은 2단 그린이지만 표면이 盆地(분지)처럼 돼 있어 운만 따른다면 홀인원을 기대할 수도 있다. 올 들어 벌써 7개가 터졌다. 이 골프장에는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총 51개의 홀인원이 나왔는데 올해는 7월4일 현재 20개가 기록돼 있다.
알바트로스가 나온 홀도 있다.
작년 여름 모세 6번홀(파5 483야드)에서 30代 남자 골퍼가 세컨샷 한 것이 그대로 컵으로 기어든 것. 내리막의 이 홀은 세컨샷 지점이 왼쪽으로 휘어진 주전자 꼭지처럼 돼 있어 드라이버로 티 샷을 하면 손해다. 스푼으로 정확하게 페어웨이에 갖다 놓고 롱 아이언으로 승부해야 한다. 오른쪽이 연못이고 그린 앞은 벙커다. 그린의 경사도 15도 내리막이라 쉽지 않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TGV의 간판 홀은 여호수아 9번홀(파5 584야드)이다.
여기는 벙커가 아주 좋다. 페어웨이의 한중간을 큰 구렁이가 대각선으로 휘감고 누워 있는 형상인데 벙커 길이만도 족히 80야드가 넘는다. 이 홀에는 세 군데에 대형 벙커가 있다. 팅 그라운드에서 180∼200m 왼쪽 지점에 첫 번째 크로스 벙커가 있고 그 다음 페어웨이에 지렁이 벙커가 똬리를 틀고 있으며 마지막 벙커는 그린 앞을 옹기종기 막고 있다. 이 벙커들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린에 올라 설 수 있다면 상당한 고수다. 벙커 모래는 硅砂(규사)다. 바다나 강의 흙모래가 아닌 차돌모래다. 가벼우면서도 입자가 커 한번 빠지면 헤쳐 나오기 쉽지 않다.
충청권 대표 골프장
여성 골퍼들을 애먹이는 홀도 있다. 여호수아 2번홀(파3). 그린이 섬처럼 떠 있는 아일랜드 홀로, 거리(155야드)가 만만찮다. 우드를 잡으면 공이 그린에 멈추지 않고 아이언은 짧아서 「풍∼덩」 한다.
그린의 경사도 파도처럼 일렁거려 스리 퍼트가 십상이다. 현재 27홀(1만365야드)인 이 골프장은 올 10월이면 퍼블릭 9홀(솔로몬 코스)이 개장돼 총 36홀이 된다. 그때쯤이면 명실공히 충청권 대표 골프장으로 나서게 된다.
요즘 이 골프장에는 승마 트랙 공사가 한창이다. 甘회장에게 물어보았다.
―골프장에서 웬 승마입니까?
『종합위락시설 단지로 가는 걸음마지요. 10월이면 36홀이 되는데 컨트리 클럽(Country Club)의 모양새를 갖춰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골프장 외에 최소한 승마장이라도 있어야 「TGV CC」라고 큰소리치지요. 말은 호주에서 30필 정도 들여올 예정입니다. 내년에는 스키장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콘도를 지어 실버타운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사실 국내 골프장들은 이름표만 CC일 뿐 알맹이는 거의가 GC(Golf Club)다. CC는 골프장 외에 다른 위락시설이 갖춰졌을 때 붙이는 이름인데 우리네 골프장들은 달랑 골프 코스 하나만 갖고 CC 행세를 하고 있다. 그건 GC란 표기가 맞다.
―요즘 경기가 바닥이라는데 골프장 수지는 괜찮은 모양이지요?
『예전만은 못합니다. 그러나 아직 문닫은 골프장이 없는 걸 보니 그럭저럭 현상유지는 되는 모양입니다. 골프기사에 「부킹난」이란 단어가 오르내리는 걸 보니 손님은 있는 것 같습니다』
참 희한한 일이다. 도심지 상가를 비롯 해 서민들의 생활주변은 눈에 띌 정도로 불황인데 골프장은 예외라니. 공무원들의 골프장 출입도 뜸해졌고 시중의 소비심리도 크게 위축됐는데….
한국골프장경영협회가 최근 발표한 지난 5월 말까지의 골프장 이용객을 보면 참 우습다. 전국의 117개 회원사 골프장에 415만 명이 입장, 작년 같은 기간(407만 명)보다 1.8% 증가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골프인구의 확대와 은행 저금리, 부동산 거래단속으로 인한 유휴자금의 정체, 중년실업이 빚은 週中골프의 확산 등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글쎄…」다. 주말에 한 번 라운드하는 것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현재 이 골프장의 주말 그린피는 정회원 5만원. 週中회원 7만원, 非회원 17만원이다. 여기에다 카트 사용료(1인당 2만원)와 캐디 피(팀당 7만원), 그늘 집 식대(1인당 1만∼2만원)가 추가되니 非회원이 주말에 나서려면 기본으로 22만∼23만원이 든다.
이처럼 회원과 비회원 간의 그린피 차이가 많아지자 올 초에는 이상한 일도 있었다. 당시 한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났다.
「최근 골프장들이 가짜 회원들 때문에 골탕을 먹고 있다. 이들은 회원명의를 도용해 부킹하고 프런트 직원이 회원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약점을 이용, 회원요금만 내고 입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골프장 측은 이 얌체족들을 적발하기 위해 앞으로 내장객의 신분증과 회원카드를 대조하기로 했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골프장에서 회원을 사칭하는 「짜가」가 있다니. 그런데 이 대목에서 웃을 수 있는 골프장도 그리 많지 않다.
1990년대 후반 지어진 골프장들은 「IMF」란 외환위기를 헤쳐 나오기 위해 각종 회원권을 남발했고 이제 와서 그것에 발목이 붙잡혀 있다. 회원의 종류도 하도 많아 프런트에서 헷갈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필자는 교회장로인 甘회장이 무슨 연유로 골프와 인연을 맺었는지 궁금했다.
『사업을 위해서였지요. 제가 나이에 비해 좀 일찍 광고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당시 거래처 파트너들이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그때 어느 선배가 「20년 차이는 술자리 교제가 안 되니 골프장에서 승부해라」고 일러 줍디다. 25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는 돈 벌기 위해 골프를 했고 지금은 골프장하면서 돈 버네요.
『…』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때 옥외광고를 하셨지요? 광화문의 전광판도 만드셨고. 그런데 골프장 경영에 뛰어든 이유는 뭡니까?
『옥외광고는 한계사업입니다. 일본도 1964년 도쿄올림픽을 전후해 옥외광고가 호황을 누렸지만 그 10년 후 사양길로 빠졌습니다. 옥외광고는 세우기도 어렵지만 철거도 힘들지요. 여기에 땅임자나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상은 끝이 없으니 업자로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겁니다』
한국도 서울올림픽이 끝나면서 이미 이런 상황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파구로 선택한 것이 골프장이란다.
―핸디캡은 얼마입니까?.
『한 자리 숫자는 됩니다. 잘 맞을 땐 70이고 시원찮으면 80 정돕니다. 골프장 오너가 싱글은 쳐야 체면이 서지요』
환갑에 싱글이라, 대단한 실력이다.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 발표로 TGV 회원권이 많이 올랐다면서요?
『행정의 중심지가 이쪽으로 오면 아무래도 덕을 보겠지요. 정치인이나 주한 외교관, 기업가들이 자주 찾을 테니 개인카드는 몰라도 법인카드는 잘 팔릴 것 같습니다』
―TGV가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가 있습니까?
『셔틀버스 운행과 친절한 캐디지요.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출발하는 TGV 버스는 수도권 애주가 골퍼들에게는 최고 인기입니다. 귀갓길의 음주운전 때문에 「라운드 후의 한잔」을 단념해야 했던 분들은 버스를 이용하면서 아연 생기가 살아났어요. 클럽 하우스에서 뒤풀이를 한 뒤 버스 타고 한숨 자고 나면 서울에 도착하고 주말에는 전용차선으로 달리니 시간도 절약되고 왕복무료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마도 국내 골프장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곳은 저희뿐인 것 같습니다』
캐디에 대한 평가는 필자도 수긍한다. 인터넷의 골프전문 사이트(www.golfsky.com)도 「골프장 평가하기」에서 TGV를 100점 만점에 65.37점으로 채점하면서 10개 항목 가운데 「주변환경(7.4점)」과 「코스설계(7.1점)」, 「캐디(7.1)」에는 높은 점수를 줬다. 그만큼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이곳의 캐디 피는 정가제다. 팁은 사양한다.
손님이 『수고했다』며 팁을 얹어 주면 그 돈은 프런트에서 예쁜 쪽지에 싸 손님에게 되돌려 준다.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저희는 손님의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캐디 ○○○」
현재 캐디는 130여 명. 이들은 두 달간의 합숙을 통해 캐디마스터 최유정(36)씨로부터 인성교육과 현장실습을 받고 라운드에 나선다. 교육이 철저해서인가? 모두가 열심히 뛰고 친절하다. 이들의 月수입은 평균 180만원.
하루 한 라운드씩 週 6일 근무도 가능하다. 해가 긴 여름에는 하루 두 라운드를 뛰기도 한다. 두 라운드를 뛰는 여름에는 격일근무도 가능하다.
골프장 측도 여름철을 맞아 특별서비스에 나섰다. 7월1일부터 두 달간 라운드를 마친 고객에게 생맥주를 무료 제공하고 있다. 하계휴가철을 맞아 1박2일 라운드를 희망하는 가족이나 단체손님들에게는 골프장에서 10분 거리인 옥산면의 아파트(24평형 방 3칸)를 빌려 주기로 했다. 1박에 1인당 1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