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YOUR ESSAYLIFE
언양에세이포럼
22기-10차시
일시 : 2024년 4월 23일 (화) 3시 00분
목록
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1 | 향수 (감나무가 있는 집) | 배정순 | 6 | 예수백 |
2 | 이석증 | 김선애 | 3 | 이경자 |
3 | 두더지 소탕 작전 | 권춘애 | 2 | 이혜경 |
4 | 비상구 | 박희자 | 4 | 김순향 |
5 | 엘베 있는 아파트 | 박동조 | 4 | 김연희 |
합평순서 / 권춘애 김순향 김선애 김연희 김인옥 민창현
박동조 박희자 배정순 예수백 이경자 이혜경
1. 향수 (감나무가 있는 집) /배정순6
1. 거실 벽에 신안 앞바다 증도에서 찍은 사진 한 점이 걸려있다. 연초록 수초와 자주색 칠면초가 어우러진 수초 사이로 하얀 수로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바다로 흘러든다. 그 물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고향마을 앞 푸른 들녘을 가르며 나 있는 하얀 신작로 같다.
2. 샛강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섬 젊은 사람들은 하얀 신작로를 따라 육지로 나갔다. 마을을 떠났던 언니 오빠들이 명절 때면 촌티를 벗고 금의환향하듯 그 길을 걸어 돌아왔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들이 다시 돌아가면 허전한 마음에 몇 날 며칠 가슴앓이를 했었다. 나도 얼른 자라 저 신작로를 따라 도시로 나가야지. 그때마다 알 수 없는 꿈에 부풀어 세월을 잡아당기고 싶었다.
3. 학교 졸업으로 그 꿈은 이루어졌다. 서울 입성할 마음에 친구들과의 이별도 아쉽지 않았다. 나의 서울 생활은 언니 양장점을 돕는 일이었지만, 땡볕에 나가 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 삶이 즐거웠다면 지금의 내 삶이 더 행복했을까? 양장점은 잘 되었지만, 수익은 오빠들 사업이 기울어 그 밑 닦기에 바빴다. 형편상 구경 다니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얼마 안 가 그날이 그날 같은 단조로운 삶에 진저리가 났다.
4. 결혼이 탈출구였다.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 그 또한 고행의 시작이었다. 이것저것 감당해야 할 책무가 나를 옭아맸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머리가 반백이 다 되었다. 허무했다. 내 삶은 무엇인가! 최선을 다해 나름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산다고 생각했는데 늙어보니 아니었다. 병든 육신뿐 나를 위해 산 것 같지 않은 회한이 밀려왔다. 자기연민에 빠져 지금부터라도 하고 싶은 건 하고 싶었다.
5. 고무줄처럼 늘어진 시간을 어찌 감당해야 할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고향, 주름진 얼굴은 되돌릴 수 없지만 걸을 수는 있으니, 고향길은 가능하지 않을까? 눈에 안 보이면 정 깊은 사람도 멀어진다고 하던데 고향은 떠나온 세월만큼 깊이를 더했다. 고향에 가 봐야 반겨줄 피붙이 하나 없다.
6. 누군가는 그랬다. 고향은 사람에게 자궁 속과 같다고. 그 땅에서 나고 자라 사람의 꼴을 갖추게 한 태자리이니 그리 말해도 무방하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따뜻한 엄마의 자궁 속, 몸은 타향에 있어도 고향이 그립고 가고 싶은 건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자궁 회귀 본능이 아닐까.
7. 친구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이심전심이었던지 친구 셋이 의기투합 고향을 찾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날을 기다리며 꿈에 부풀었다. 한데 생각잖은 괴질에 발이 묶였다. 그사이 병약한 친구가 불길한 소식을 보내왔다.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우리라고 다를까. 원거리 여행은 차츰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늙은이에게 건강은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8. 한참 지난 후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넣었다. 그들은 고향 가까이 살아서인지 이전과는 달리 시큰둥했다. 나 혼자라도 가겠다고 했더니 친구 한 명이 따라나섰다. 한데 고향에 대한 기대는 주차장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고향은 이미 내가 그리던 모습이 아니었다. 구수한 토속 사투리도, 수더분한 섬사람의 모습도 없었다. 대교 개설 이후 도시 문물이 들어와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9. 낯섦은 마을에서도 이어졌다. 마을 앞 초입에 교회가 없었다면 이게 우리 마을이었나? 싶은 정도였다. 바쁜 농촌이지만 사람의 온기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마을 지킴이 등나무가 초라한 몰골로 서 있다. 등나무 그늘에서 담소를 즐기던 어르신 들은 다 어딜 갔을까? 마을의 변천사를 훤히 꿰고 있는 나무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간 등 돌린 나의 무심함을 사죄하듯 여윈 등나무를 힘껏 끌어안았다
10. 사람을 찾아 마을 회관을 찾아 나섰다. 노인들이 빼꼼히 문을 열고 탐색하듯 고개를 내밀었다. 나를 소개하며 인사를 건넸다. 면면을 살펴보니 큰 오라비 친구분들이었다. 내 지친인 듯 팔 벌려 얼싸안고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11. 윗마을에 자리한 고향집을 찾아가는 길, 우리 집은 와가였는데 관에서 실시하는 지붕개량으로 동네 전체가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해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았다. 집안에 우물을 보고서야 알아보았다. 샘이 있는 집은 우리가 유일했으니까.
12.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집주인인 당숙모가 집에 없었다. 집 안에 들지도 못하고 감나무가 있는 뒤꼍으로 향했다. 늦가을 썰렁한 감나무밭, 그 많던 감나무는 잘리어 밑동만 남아 있거나 고목이 되어 앙상한 가지를 벌리고 있었다. 감나무 덕에 내 유년의 뜰을 포실하게 가꿀 수 있었는데..., 감나무며 집안 이곳저곳에 아쉬움이 거미줄처럼 널려 있었다.
13. 친구는 마루에서 쉬게 하고 혼자 뒷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산소를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뒷동산은 친정 소유여서 조부모님을 모신 선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봄이면 참꽃 따고 삘기 뽑으러 올랐고, 자라서는 땔감용 솔가리를 긁어모으기 위해 올랐었다. 한데 이곳도 우거진 숲이 발길을 막았다. 숲에 갇혀 산 능선만 둘러보았다. 밤이면 무서워 덜덜 떨던 꿀제도, 가뭄에 불을 피우던 봉화대도 가늠이 안 되었다.
14. 무성한 숲에 갇혀 있자니 옛시조 한 수가 떠올랐다. 조선 초 성리학자 야은 길재(1353~1419)의 회고가 중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구절이다. 고향을 잃은 것 같은 헛헛함, 그분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서는 이 마음, 친구와 함께여서 다행이었다.
15. 거실 마루, 여전히 갯벌 사이로 흐르는 물길이 꿈틀댄다. 이 전과 느낌은 사뭇 다르다. 세월은 나만 훑고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향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아픈 기억 하나하나도 소실되지 않고 생을 다할 때까지 함께 할 것 같다. 오늘따라 벽에 걸린 사진 속 하얀 물길에 눈 맞춤이 길어지고 있다.
2. 이석증/김선애3
1.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면서 도로 침대에 누웠다. 순간 또 이석이 반고리관으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벌써 세 번째 재발이다. 당분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생각되자 한숨이 나왔다.
2. 몇 년 전에 처음 이석증이 시작되었을 때 많은 불안감으로 떨어야 했다. 무슨 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며 어디가 고장 났는지도 궁금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위아래로 움직여도 빙빙 돌았다. 오로지 로봇같이 앞에만 볼 수 있게 목을 고정시켜야만 했다.
3. 놀란 가슴을 안고 이비인후과를 방문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한 결과 이석증이라고 진단이 내려졌다. 반고리관이 수평을 담당하는 기관인데 이석이 들어가서 방해를 하니 빙빙 도는 증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치료방법이 간단해서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이석치환술이라며 몇 번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위치를 바꿔주면 치료가 끝났다고 했다. 주의사항을 알려주는데 이석이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베개를 높게 해서 잠을 자고 급하게 고개를 돌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별 이상 없이 치료가 되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4. 이번에는 치료를 해도 잘 낫지가 않았다. 계속 머리는 띵하고 몸은 붕붕 뜨는 느낌이었다. 잘 한다는 병원으로 옮겨서 진단을 받았더니 수평 반고리관으로 이석이 빠졌으며, 오른쪽이 심하고 왼쪽도 빠졌다고 했다. 그동안 오른쪽 후방 반고리관으로 빠졌다고 치료를 했으니 나을 수가 없었다. 이석이 전정기관에 딱 붙어있지 못하고 반고리관으로 가서 둥둥 떠다니며 어지럽게 만든 결과로 고통을 겪은 것이다.
5. 이석이 떨어져 빠져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일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요사이 몸이 많이 허약해진 것을 느꼈다. 일을 많이 줄였는데도 스트레스를 받고 피곤해서 힘들었다. 해마다 체력이 점점 부족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는 무리하지 않고 쉬면서 면역력을 올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석이 위험을 감지하고 제자리를 탈출하여 반고리관으로 옮겨가는 것은 지금 상태가 안 좋으니 쉬라고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6. 하지만 재발률이 높은 병이라서 늘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이석치환술이라는 치료방법은 간단한 느낌이지만 쉬운 만큼 자꾸 반복되는 경우가 제법 있어서이다. 이병을 앓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가 보다. 또한 칼슘이 부족해서 단단하게 붙어 있어야할 이석이 가루처럼 흩어져 반고리관으로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외부충격, 바이러스감염, 약물의 부작용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7. 얼마 전에 아침 일찍 모임에 가다가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꼼지락거리다가 조금 늦게 출발을 해서 마음이 급했다. 중간쯤 왔는데 도로가 꽉 막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틈만 보이면 차선을 바꾸려고 마음을 먹었더니 바로 옆에 공간이 보였다. 재빨리 옆 차선으로 옮기는 순간 서있던 차의 옆을 살짝 스쳤다. 그 차의 운전자가 차문을 열고 나오자 나도 차문을 열고 나가서 차의 상태를 살폈다. 내 생각에는 카센터에 가서 아주 조금 묻은 페인트를 지우면 될 것 같으니 일단 가보라고 하고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8. 저녁때까지 연락이 없기에 카센터에 가서 잘 해결되었거니 싶었다. 하지만 곧 전화가 걸려와 하는 말이 카센터에 알아보니 삼십오만 원 정도 견적이 나왔다고 하면서 송금해 달라고 했다. 삼십만 원에 해결을 해보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그냥 송금을 해주었다. 어쩌겠는가? 조금 빨리 가려다가 사고를 냈으니 들어줄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나 마음은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내차의 페인트가 다른 차로 떨어져 나간 것에 대해 억지로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상대방차에 내차의 페인트를 제거하려면 비용이 들어가야지만 가능한 일이 되고 만 것이다.
9. 내가 가던 차선이 옆 차선보다 좀 막혀도 가만히 기다렸으면 될 일인데 옆 차선으로 옮기려다 일어난 일을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귓속의 이석처럼 전정기관에서 자리를 지키고 않고 탈출해서 반고리관으로 가버린 꼴이었다. 자기 차선을 잘 지켰다면 뒷수습을 위해 이리저리 혼란을 겪으면서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머리에서 지우기로 했다. 나의 건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0. 살다보면 똑바로 갈 수 없는 일이 간혹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그냥 밀어붙이면 탈이 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막상 일이 벌어지면 변명과 핑계꺼리가 왜 이렇게 많은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 일생동안 똑바로 사는 일은 정말 어렵지만 되도록이면 정도를 지키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3. 두더지 소탕 작전/권춘애2
꽁꽁 얼었던 겨울을 이겨내고 잘 자란 양파 두둑을 살펴본다. 밭두둑에 숭숭 나 있는 두더지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나의 두둑도 모자라 다른 쪽 두둑에도 두더지 구멍이 뚫려 있다. 무질서하게 뚫려 있는 구멍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산만하다.
작년 가을이었다. 지인들과 나눠 먹을 배추를 심었다. 수시로 드나들며 배추벌레를 나무젓가락으로 잡았다. 목마르지 않게 물을 주며 쑥쑥 자라길 정성을 다해 키웠다. 수확할 때가 되어갈 무렵 배추 포기 아래쪽이 상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물을 너무 많이 준 탓이라고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다.
배추가 튼실하게 자란 걸 확인하고 몇 포기씩 뽑아 나눔을 했다. 무심코 상한 배추 쪽을 보게 되었고 배추 옆쪽에 구멍이 나 있는 걸 발견했다. 가끔 나타나는 들개들의 발자국인 줄 알고 무심하게 지나쳤다. 들개들이 밟아 배추가 상한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찾은 배추밭에는 구멍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상한 배추 한 포기를 뽑아 보니 구멍은 들개들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구멍은 땅 밑으로 깊게 뚫려 있었다. 혹시 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지던 남편이 범인이 두더지라고 확신을 했다. 뱀이 아닌 것에 다행이었지만 배추 한 포기도 아니고 몇 포기에 입을 댔다는 것에 화가 났다.
먼 거리를 시간을 들여 오가며 정성으로 키운 배추를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두더지란 놈에게 도둑맞았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쫓아내야 하는지도 알아보라고 남편에게 닦달했다. “먹을 것이 없었나 보네. 배추도 많은데 겨울 동안 녀석들 먹을 만큼 남겨두자.”라고 말하는 남편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좋은 마음으로 나눠 먹자고 동의했다.
겨울이 오면 산짐승들은 먹거리가 없어 산 아래로 내려온다. 겨울철에는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멧돼지도 가끔 보게 된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은 사람도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두더지도 먹이를 찾아 헤매지 않고 우리 밭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떠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큰 착각이었다.
겨우내 자란 양파밭에도 두더지 구멍이 나 있다. 구멍이 난 쪽에 심어져 있던 양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배추도 모자라 이제 양파까지 야금야금 훔쳐 먹고 있다. 배추가 있는 곳을 정확하게 뚫고 올라오더니 양파가 심어져 있는 곳도 그 옆을 정확하게 뚫고 올라와 독식을 했다. 밭두둑에 난 두더지 구멍의 숫자를 보자면 한 마리는 아닌 것 같다. 염치도 없는 녀석들이다.
봄이 되면 떠날 것으로 생각하고 온정을 베풀었건만 놈들은 우리가 나눈 대화를 엿듣고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제 아예 밭 전체를 헤집고 다닌다. 미물도 은혜를 안다고 하던데 두더지란 놈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가 보다. 은혜를 배신한 두더지에게 이제 더 이상의 베풂은 없다. 나는 두더지를 도망가게 쫓던지 죽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관용을 베풀던 남편도 두더지가 땅을 파고 다니면 작물이 안 된다는 걸 알았다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두더지를 퇴치하는 약을 산다고 하지만 그걸 기다리다가는 힘들게 키운 양파를 수확도 해보지 못하고 몽땅 빼앗길 형편이다. 나는 씩씩대며 구덩이에 흙을 밀어 넣고 꾹꾹 눌러 밟았다.
다시 간 양파밭에는 저번보다 더 많은 두더지 구멍이 보란 듯이 뚫려 있다. 두더지가 우리에게 한번 해 보자는 싸움을 거는 느낌이다. 항아리에서 소금 한 바가지를 들어내 두더지 구멍에 밀어 넣고 있는 힘을 다해 꾹꾹 눌러 밟았다. 그래, 나도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두더지도 식구가 불었는지 구멍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그사이 아까운 양파를 많이도 도둑맞았지만, 드디어 오늘은 내가 이길 것 같은 예감이다. 내 손에는 두더지 약이 들러있다. 밭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믿을 수 있는 약이다. 두더지 소탕을 위한 든든한 무기다. 두더지 구멍을 샅샅이 찾아 약을 넣고 흙을 덮는다. 힘들여 밟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승리를 위해 위풍당당하게 힘차게 눌러 밟는다.
두더지 소탕은 이제 시작이다.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두더지가 몽땅 사라질 때까지 계속 이어갈 것이다. 살구꽃이 바람에 흩날린다. 얄궂은 두더지와의 싸움으로 봄이 가고 있는 줄도 몰랐다.
4. 비상구/박희자4
1. 사방이 막힌 듯 답답하다. 문은 분명 열려있는데 나는 갇혀 있다. 빠져나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2. 신혼 초 경상도 사람들의 억센 말투에 적응하지 못했다. 언제나 한발 물러서 있는 나를 남편은 우물가에 어린애 내놓은 듯 불안해했었다.
3. 늦가을 해 질 녘이었다. 문을 열어 놓고 청소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부뚜막에 쥐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다. 놀라서 들고 있던 빗자루를 휘둘렀더니 놀란 쥐가 문지방을 타고 넘어 방안으로 들었다.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퇴근해 오던 남편이 내 비명을 듣고 상황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화를 버럭 냈다.
4. 쥐새끼 한 마리에 놀란 나를 어이없다며 쥐를 잡으라고 윽박질렀다. 새댁인 나를 몰아치며, 화를 내는 남편 모습에 당혹스러웠다. 쥐를 잡아야 한다는 것도 두려운데 나를 지켜보던 남편 때문에 겁에 질렸다.
5. 어디에 숨었는지 몰아내어야 한다는 마음에 손전등을 들었다. 틈새가 있는 곳을 비추다가 장롱 밑에서 공포에 질려 나를 보던 쥐의 까만 눈과 마주쳤다. 내가 먼저 놀라 비명을 지르고 울음보를 터트렸다.
6. 지금 내 심정이 그때와 다를 바 없다.
7. 사업을 시작하고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내가 느낀 시간의 무게는 배가 되었지만, 고단한 십자가가 무겁다고 하지 않으려 했다. 숙명이라 여기며 따뜻한 가슴으로 매 순간 달려왔었다.
8. 오랜 시간 공들여 조직을 만들며 열정을 쏟았다. 실력 있는 강사를 채용해 앞에 세우고 손발을 맞춰온 실장에게 업무를 맡겼다. 회사에서 지향하는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이 기량을 발휘하도록 나는 뒤에 서 있었다.
9. 오랜 세월 해 오던 아침 프로그램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가벼웠다. 업무적인 작은 일까지 벗어나니 후련했다. 대표로서 전반적인 운영을 했다. 운영의 큰 맥만 짚고 강사와 실장업무로 세분화하니 일의 효율성도 높았다. 나만의 시간을 영위할 수 있어 행복했다. 접어두었던 악기도 배우고, 수필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다. 바쁘게 걸어왔던 시간에 보상으로 여기며 감사했다.
10. 하루하루가 즐겁고 평안했다. 마음에 꾹꾹 눌러 두었던 버킷리스트 우선순위에 두었던 것들이 하나둘 꽃을 피웠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11. 연초에 회사 대표가 새로 부임했다. 정책이 바뀌었다. 심혈을 기울여 이루어 놓은 내 조직이 찬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초창기부터 함께 한 간부들이 건강한 토양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12.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측하지 않았던 경우의 수가 꼬리를 물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던가! 회사 내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팬데믹으로 경기 침체가 사업에 영향을 미쳤다. 뛰고 있는 현장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꽃잎이 떨어지듯 조직의 숫자가 줄어갔다. 사업은 당연히 위축되었다.
13. 어느 순간 위기를 느끼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에 서 있던 나의 부재가 크게 들어왔다. 환경이 어려울수록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리더와 눈을 마주 보며 소통하여 노고를 알아주고 다독여 주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 힘이 자양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14. 그렇다고, 명분 없이 내가 자리로 돌아간다며 실무자들의 역량 부족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이 조직을 관리하는데 생채기를 내는 일이다. 대표가 변덕 부리는 체면 없는 것도 볼썽사나운 일이다. 결국에는 신뢰 관계로 이어질 것이다.
15. 하지만, 이대로 장롱 밑에 갇혀 겁에 질린 생쥐 눈빛이어서는 안 된다. 하루가 아쉽다. 대표 방을 벗어나 조직을 한눈에 읽던 본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서 흩어진 맥을 추스르고 조직의 기운을 전환 시켜야 한다. 밤잠을 설치며 고심을 거듭했다.
16. “아! 그랬었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엄지와 중지 손가락을 힘차게 튕겼다. 마찰음이 경쾌하다. 막힌 방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가 있었다.
17. 그랬었다! 사무실로 이사하던 날, 사무실을 방문했던 건물주가 한 말이 떠올랐다. “대표님! 대표님 자리 잘 잡으셨네요. 이쪽으로는 수맥이 흘러서 이쪽에 사장실을 두었던 사업장들이 대략 망해서 나갔습니다.”
18. 건물주는 지금 내가 벗어나려는 이 방문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었다. 그 말은 건물주가 할 말은 아니라고 모두 얼굴을 찌푸렸었다. 그 목소리가 비상구 벨 소리로 내게 들려왔다. 10.8
5. 엘베 있는 아파트 /박동조4
1. 아파트 후문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몇 계단을 앞서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도란도란 말을 나누며 올라갔다.
“나는 꼭 돈 벌어 엘베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갈 거야”
2. 남자의 결연한 말투 때문이었을까? 다른 말은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리고 그 말만 콕 귀에 박혔다. 여자는 아무런 대꾸 없이 듣기만 했다. 남자는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꼭 돈 벌어 엘베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갈 거야” 힘주어 말하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다른 이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다짐하는 말로 들렸다. 마음 안에 출렁이는 희망의 파장이 얼마나 컸으면 우연이 엿들은 내게까지 충격파가 전해 졌을까. 그 말이 깊고 깊은 잠의 세계로 밀어 넣고 살았던 어떤 기억을 흔들어 깨웠다.
3. 내가 사는 집은 엘리베이터가 보편화되지 않을 때 지은 6층짜리 아파트다. ‘뭐가 씌었다’라는 말이 있다. 이 집을 살 때 내가 그랬다. 지인의 소개로 집을 둘러보러 온 내 눈에 제일 먼저 띈 건 거실 안까지 파고든 환한 햇볕이었다. 앞 베란다에서는 멀리 첩첩이 두른 산이 보이고, 뒤 베란다에서는 연둣빛 뒷산이 정원처럼 가까웠다. 아침저녁으로 그런 풍광들을 마주하고 산다면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4. 그 자리서 계약서를 썼다. 그 무렵, 이 도시에서도 엘리베이터를 장착한 고층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랐다. 다가오는 시대는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가 주거 문명의 대세가 될 거라는 현실적인 이유 같은 건 내 머리에 없었다.
5. 이사 오고 얼마 지 않아 나의 이상주의에 빨간불이 켜졌다. 무거운 짐을 6층 꼭대기 층까지 올리려면 무릎이 시큰거리고, 심장은 발작하듯 요동쳤다. 문제는 나이였다. 세월이 한 켜 한 켜 쌓일수록 몸의 기운은 반비례로 쇠락해 간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젊을 때의 삶은 예측이 불가하나 생활 전선에서 물러난 노년의 삶은 불 보듯 짐작이 가능한 것을, 왜 그것을 간과했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이 가까운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은 게 후회되었다.
6. 거기다 풍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눈에 익는 순간부터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걸 이 집이 증명해주었다. 뒷산에 진달래가 피고, 벚꽃이 만발해도 “어머나, 꽃이 폈네!” 한 번 감탄하면 그만이었다. 반면 엘리베이터 있는 집에 대한 욕망은 좀처럼 크기가 줄어들지 않았다.
7. ‘세상에 집은 많다, 마음과 주머니 사정이 맞아떨어지는 때가 오면 해결될 일’이라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즈음, 남편이 백혈병에 걸리는 시련이 닥쳤다. 크나큰 근심은 작은 근심을 축출한다. 어떤 걱정도 경각에 달린 가장의 목숨 앞에서는 먼지와 같았다. 앞날의 안위를 보장하는 돈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을 마련하려는 꿈도 목숨을 살리는 조건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그를 살릴 수 있다면 움막 같은 집에 세입자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가장이 곧 집이라는 말을 뼛속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8. 남편이 일곱 달의 입원 생활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날은 하늘도 청명했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꼭대기 집인 6층까지 난간대를 붙들고 83개 계단을 겨우겨우 올라가는 그의 뒤를 일곱 달 동안 간이침대에서 잠자며 간병한 내가 혹시나 넘어질까 그를 받치는 자세를 하고 뒤따랐다. 그때처럼 엘리베이터가 절실했던 적이 없었다.
9. 치료와 투약 기간, 그리고 관리 기간을 합쳐 무려 다섯 해, 남편은 진단이 나는 순간 말기 암으로 분류되는 백혈병을 거뜬히 이겨내고 완치판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일할 수 있는 건강 상태는 아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은 차라리 체념하는 게 낫다. 그가 병마를 맞는 순간 내 머리에서는 엘리베이터 있는 집에 대한 꿈이 미련 하나 없이 사라졌다.
10. 나는 적응력이 남다르다. 단점만 보여 짜증 나던 집이 엘리베이터를 체념하고부터 장점이 더 많이 보인다. 십여 년 전까지도 평수가 좁아 갑갑했던 집이, 체력이 고갈된 나이에 이르고는 청소하기 수월해서 좋다고 쾌재를 부른다. 서민 아파트라 잘난 척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마음을 편하게 한다. 계단 오르내리면서 단련되어서일까? 이사 오기 전부터 불편했던 무릎관절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멀쩡해졌다. 날씨가 궂어 공원 걷기가 어려운 날은 계단 오르기로 운동을 대신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나를 두고 생겨난 말 같았다.
11. 앞서가는 남자의 꿈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젊다는 말은 뭐든 꿈꿀 수 있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닌가. 월급 모두를 저축해도 십여 년의 세월이 걸려야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의 주민이 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토록 갈망이 크다면 젊은이의 꿈은 이루어질 거라고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12. 아파트 나이 서른일곱 살이다. 외벽에는 재개발을 위한 현수막이 붙어 있다. 재개발이 이루어지면 덤으로 값도 오를 것이다.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아파트로 거듭날 테고. 현수막의 문구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십 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나도 오래 살면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 주민으로 거듭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