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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꿈을 가진 나그네 원문보기 글쓴이: 박경진
전북 김제 모악산 기슭에 위치한 금산교회는 1905년 테이트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전주에 선교기지를 둔 미국 선교사 테이트(최의덕)는 정읍을 가기 위해 모악산 자락을 넘어 금산리를 통과하곤 하였다. 말을 타고 다니는 선교여행이었기에 말이 쉬어가는 마방에 들렀고 자연스레 마방 주인이었던 조덕삼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예수를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그의 사랑채에서부터 금산교회가 시작되었다. 한편 김제지주 조덕삼(1867~1919)의 할아버지 조정문, 아버지 조종인은 본래 평안도출신으로서 중국 봉황성, 고려문을 넘나들며 홍삼장사 등 무역을 하는 거상으로 유명했다. 김제부자로서의 조덕삼의 삶은 남쪽의 넓은 김제평야와 금산의 금광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꿈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김제평야의 광활한 농경지, 그리고 금산의 금광에 대한 꿈을 안고 재산을 정리하여 단독으로 배를 빌려 이삿짐을 실고 남하하였던 것이다. 군산앞바다에서 만경포구를 거슬러 김제읍을 지나 금이 많이 난다고해서 붙여진 금산에 도착한 조종인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금광업에 투자하면서 평안도 거상답게 토지를 매입하고 정착하며 아들 조덕삼의 앞길을 튼튼하게 하였다. 이자익은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하면서 놀랍게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3대 총회장에 당선되었다. 장로교역사상 총회장을 재임한 역사가 없다. 그런데 이자익목사는 총회장을 3번씩이나 역임하는 등 장로교회사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를 키워낸 인물이 바로 자기 집 머슴을 자기보다 먼저 장로로 받들며 교회를 섬겼던 조덕삼 장로이다. 이렇게 빛나는 신앙생활을 살았던 조덕삼장로의 손자가 바로 국회의원이며 주일대사를 역임한 조세형 장로이다. 금산교회는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한국식과 서양식의 건축특징이 병존하여 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5평 정도의 강단은 2단으로 꾸며 결과적으로 3층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전래의 제단구조이면서 동시에 뜰-성소-지성소로 이루어지는 성막의 3중 구조를 연상케 한다. 금산교회당 안에는 초기부터 사용하던 풍금과 강대상, 강대의자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ㄱ’자 예배당은 그 골조가 100년 동안 손상 없이 잘 보존되어 있었으나, 2001년 봄 대대적인 개보수작업이 이루어져 지금 더욱 완벽한 옛 모습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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