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200900578
지리교육과
이 다솜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로 동기들과 꽃놀이를 가기로 하여 구박물관인 충남역사박물관에 다녀오고, 답사를 또 가게되어 시내를 돌게 되었다.
강남을 가기 위해 공주 금강철교를 건너서 걸어가기로 하였다.
금강철교는 서울에서 목포를 연결하는 국도 1호선상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공주읍과 장기면을 연결하기 위해 1932년 1월 2일에 착공하여 1933년 10월 23일에 준공하였다. 철교가 완성되기 이전에는 배를 연결하여 왕래하였으나 비가 올 때에는 금강의 수량이 증가하여 통행에 어려움이 많았으므로 마침내 철교를 건설하였다. 철교의 길이는 약 514m,폭6m였으며, 교각의 평균 높이는 약 20m였다. 한국전쟁 당시 2/3가량 파괴되었던 것을 1952년에 복구하였으며,2002년에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현재는 1t 트럭 이하의 화물차량과 승용차급에 해당되는 차량의 강남에서 강북 방향으로의 일방통행만 허용하고 있다. 다리 상하에는 총천연색의 조명등을 가설하여 금강의 밤을 밝히고 있다.
건설 당시로써는 최첨단 공법으로 건설되어 교량 건설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교량사적 가치와 조형적 가치가 더해져 교량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금강철교를 항상 학교에서 강남으로 넘어 갈 때 다리 정도로만 생각하고 건넜었는데, 역사적 의의가 많은 다리라는 것을 알고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갈 때는 몰랐는데 오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다시 걸어 오느라 너무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강남으로 들어오면서 가장 처음에 본 것은 공주에 와서 제일 처음듣고 축제때도 가보았던 공산성이었다.
공산성(公山城)은 사적 제12호로, 충청남도 공주시에 소재하고 있다.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으로 백제의 문주왕 원년(475) 한강유역의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후 삼근왕·동성왕·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옮길 때까지 웅진시대의 도성이었으며 그 후 신라·고려·조선 시대에도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였다. 백제의 문주왕이 고구려의 압박으로 인해 무너졌던 위신, 백제의 중흥을 위한 거점지였다는 것을 배우기만 했었는데 더욱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공산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해발 110m의 야트마한 야산에 지어진 산성답지 않게 천혜의 요새를 방불케한다. 오르막에 위치한 성문들은 한없이 높아 보이고, 성 뒷편은 금강이 가로막고 있는데, 적군들이 용케 강을 건너도 낭떠러지 절벽위에 지어진 성벽을 오르긴 불가능하다. 때문에 성안으로 들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진다.
두번째로 들른곳은 일제시대에 공주의 읍사무소 터이다.
공주가 교통과 교육의 도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물로써, 공주 21년 토박이인 친구의 말로는 최근까지는 미술학원 이었다고 한다. 증거로 간판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리모델링을 하는지 공사를 하고 있어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어 아쉬웠다.
세번째 장소는 제민천 이었다. 전공시간에 교수님께서 공주는 제민천이 있어 살기 좋은 도시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신 적이 있으신데, 그 말씀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제민천은 금강수계에 속하는 지방2급 하천으로서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의 210전 번지선 수로를 기점으로 하여 봉황동과 중학동의 경계부, 반죽동과 중동의 경계부, 교동과 산성동·금성동의 경계부를 거쳐 금강 합류점에 이르기까지 총 연장 4.21㎞이다.
시가지를 관류하는 일부 구간은 복개되어 있고, 시가지의 하수도로 이용되기도 하여 대체로 자연하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시가지를 흐르는 탓에 하천 연변에 상가와 주택이 밀집하고, 양옆으로는 도로가 지나가며, 금성교·왕릉교·산성교·대통교 등의 다리가 건설되어 있다.
특히 대통교를 건너게 되었는데, 대통교의 앞 거리는 일제시대 도청의 중심거리 였다.
그러나 대전으로 도청이 옮겨가자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선배님들께서 참관실습을 나가셔서 몇번 가보았던 사대부고를 갔다. 사대부고가 옛날에 충청감영터 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충청감영은 공주 지역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1603년(선조 36)에 공주 지역에 설치되어, 1932년 대전 지역으로 충청남도 도청이 이전될 때까지 있었다. 현존하는 많은 조선 후기의 문서들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으로의 공주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지리교육과 춘계정기답사에서 강원감영터를 갔었는데 그때 설명 해 주셨던 것들이 떠 올랐고,
답사보고서를 쓸때 그 곳을 맡아서 조사 했던 것들이 떠올라 좋았다.
다음은 공주의료원과 중동초등학교로
공주의료원은
1910. 9. 5. 충청남도 공주 자혜병원 발족 1955. 1. 10. 충청남도 공주병원으로 개칭
1982. 7. 1. 지방공사 충청남도 공주의료원으로 전환 1994. 11. 12. 인턴수련병원 지정
2006. 03. 13. 충청남도 공주의료원으로 개칭
100년의 역사를 가진 의료원으로 충청감영의 자리였다가 사대부고로 고정된 것으로 보인다.
중동 초등학교도 1906년 세워진 학교로써 역사가 깊다.
공주 토박이 친구가 90몇회라는 소릴 듣고 놀라웠으며,
역시 공주는 근대의 모습을 가진 도시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마지막으로 공주 중동성당을 갔다.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1897년 5월 8일 설립하였다. 초대 신부로 프랑스 선교사 기낭(Guinnand)이 부임하였고,당시에는 지금의 공주,천안,논산,서천 지역, 충청북도 남쪽 지역등을 관할하였다. 현재 성당의 사목 관할 구역은 공주시 중동,중학동,산성동,금학동,옥룡동,계룡면,반포면 일원이다. 전통 목조 건축에서 현대건축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평가되어,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 142호로 지정되었다. 때마침 이때 미사를 보고 있어서 밖으로 소리가 다 들렸는데 마음이 경건해 지는 것 같았다.
이번 답사를 통해서 지리교육과를 다니며 항상 살고 있는 공주에대해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답사를 가면 항상 다른 지역을 가기 때문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과제로 말미암아 공주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관심이 생겼다. 앞으로는 지리학도로써 공주에 대해 더욱 조사해보고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든 즐거운 답사였다.
보너스로........ 꽃놀이 다녀온 사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