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 크라운산도와 양갱이를 사오곤 했는데.
할머니가 너무 달아서 절레절레한
양갱이는 거의 내 차지가 되었어.
어제도 산도와 양갱이를 이모가 사와서
양갱이는 모두 내 차지가 되었고,
산도는 오랜만에 먹어봤는데 처음 본 녹차맛이었어.
산도는 원래 좋아하지 않는데 그린은 꽤 맛있어.
녹차는 이차가공하지 않고 순수하게
차로 마셔야 기능이 탁월해진다는데.
맛있으면 그만이지.
혼자 다섯봉지를 튿었어. 투둑.
가루가 떨어져도 맛있는 녹차산도.
단것이 땡긴다. 단것.
그나저나 나는 좀 상심하고 말았지 뭐야.
택배아저씨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옷이며 화장품을
신라면이 육십개쯤 들어갈 큰 박스에 가져오셨네.
진지하게 말하지만 오늘로 안 감은 지 삼일째 되는 머리를
빨간 고무줄로 정수리까지 올려 묶고
무지개배색의 후드가 달린 두툼한 녹색털옷을 입고 있는
키172의 여자가 뺑뺑이 안경을 쓰고 문을 열었네.
방안에서는 침입을 용서하지 않는
강아지 한마리 괄괄한 목청으로 짖어대는데.
택배아저씨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네.
이 수취인이 살고 있는 곳은 조금
다른 세계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자신이 4차원으로 통하는 문의
경계쯤에 서있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조금 당황한 택배아저씨가 조심스럽게 건네는
볼펜을 받아들고 나는 싸인을 했네.
손이 조금 떨린 것은 수전증이 도진 것이 아니라
추미선을 새기려고 상자 앞에 쪼그려 앉으려다 문득
내 모습이 4차원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지.
내 눈에는 택배아저씨가 달아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그게 아니라 바빴던 것이겠지.
나는 택배아저씨의 뒷통수에 대고 안녕히계세까지 말하고
얼굴이 빨개져선 안녕히 가세요라고 주저앉듯 말했지.
오늘처럼 인사성 밝은 자신이 싫어질수가 없었네.
택배아저씨는 정신없이 현관문을 닫고 나가고,
나는 상자를 문 옆으로 밀어놓은 다음
내 방문을 괜시리 긁으며 머리를 아주 세차게 휘저었네.
으윽. 젠장. 제기랄. 제길.
눈썹이 검고 얼굴각이 멋지고 이마가 남자답게 네모진,
물색과 비둘기색의 유니폼이 공장장처럼 근사하던
택배아저씨. 다신 오지 마세요.
아저씨. 다신 오지 마요. 흑.
머리맡에 안경이 없으면 매우 불안하다.
두개인지 다섯개인지 구분을 못한다.
안경을 벗은 세계는 온통 번져있어서
나는 하루내내 쪼그려 앉아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은 거의 공포스럽다.
그래서 안경 때문에 성질을 내곤 한다.
식구들의 심기를 위해 요즘은 안경을 끼고 잔다.;;
-안경을 벗을 때는 가끔 외출을 할 때 뿐이다.
다행히 내 안경테는 부러지지 않는 성질의 것이어서
휘어진 것 같으면 조금 교정해주면 된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많아서 대개 부어있다.
워낙 잘 붓는 체질에 좋아하는 음식도
맵고 짠 것인데다가 물은 잘 먹지도 않는다.
먹고 바로 눕기 스킬에선 단연 내가 최고다.
일신이 편하니 아무때나 잔다.기면증인가.;;
그리고 마구 외로워하거나 불순한 생각을 하거나
한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편지를 쓰거나,
블로그나 싸이를 꾸미거나 책을 읽는다.
가장 최근 본 건 윤대녕의 열두명의 연인과 그 옆사람이다.
가끔 홍도가 무지 땡기는데, 하루내내 같이 책을 보거나
밥을 먹을 사람은 없을 것 같아 그냥 생각만 하고 지낸다.
사람이 무장무장 보고 싶을 때는 일기를 쓴다.
오늘은 진짜 내 생일인데
지난 12월에 음력을 양력화하여 세어넘겼다.
그런게 어딨냐며 다들 몇번씩 묻지만;;
그것은 오래된 내 방식인데 왠지 매년 다른 음력생일보다
양력화된 12월 7일은 내겐 더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음력으로 세면 나는 올해 스무살이 된다.
단 며칠 차이로 스물을 두번 살 수 있다는 것.
나는 음력으로 가는 인간이 되기로 했다.
기념으로 치즈고구마볼을 해먹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달라지기로 했다.
티는 별로 안 날테지만.
알아채든 말든 상관없다. 캬하핰.
세수나 해야지.
이유는 없어. 필요도 없고.
나는 바닥에 수직으로 꽂혀있어.
아무도 소리내서 울지마.
이렇게 내가 가슴 앞에 두 팔을 웅크린다면,
동공을 크게 열고 널 쏘아본다면,
내가 공격적이라면, 넌 믿겠니.
바람 빠진 풍선 위를 걷는 느낌. 비틀
몸을 무겁게 누르는 공기.
무턱대고 아무에게나 신경질을 부렸다.
증상은 감기.
아플 때면 아무나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그 어떤 소음도 없이.
그 어떤 의지도 없이.
나는 잠이 많아졌어요.
또 눈에 속눈썹이 자꾸 들어가서 괴로워요.
숱도 별로 없는데.
하필이면 그 중에 긴 것들만 빠져서.
속상해요. 속상해요.
눈물로 빼내는 것보단 내겐
손가락으로 빼내는 게 더 쉬운 일이죠.
울지 않아도.
울지 않아도.
이겨낼 수 있어요. 이까짓것.
울기 직전에 깨문 입술 아래로 가늘게 떨리는 턱.
멋쩍을 때 콧등 위로 찡긋 잡히는 주름.
독특한 취향이나 분위기나 체취.
연기를 잘하는 배우.
하얀 와이셔츠.
알이 크고 각진 시계.
컨버스 운동화.
책장을 넘기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의 구부러짐.
체중보다 무거운 눈물의 무게.
세상의 마지막 순수는 질투뿐이야.
분하지만.
모든 갈라지는 길의 끝에는
희망이란 게 있다.
그리고
길 위의 모든 위태로운 것들은
아름답다.
나는 가끔 내가 물없는 사막 같다.
아무 것도 없던 모래 위에
침입자의 발자국이 찍히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불특정 다수의 아픈 자국이 남는다.
나는 끊임 없이 풍화되어야 한다.
생각이란 것 뒤엔 늘상 불순하거나
옹졸한 찌꺼기가 남는다.
아. 역한 냄새.
나의 불순하고 옹졸한 입을 나불대는 것처럼
저것은 가끔 구토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도시의 등불. 허수경.
헤이, 아가씨, 오늘 나랑 같이 갈까
고향 오래비처럼 안아줄게 꽃 한송이
사줄까 밥 한끼 먹여줄까 겁내지 마
그리고 제발 울지마
기차가 지나가는 어디쯤 방을 잡을까
한 이틀쯤 잠잘 곳이었음......
산 속에 환한 배추꽃 무꽃 이대로
아편 같이 시름 없이 아편 같이 꿈 없이
아흐,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아가씨, 가서 돌곱창이라도 구울까
내 손수건이라도 줄까
손수건은 너무 더러워, 아흐 어쩌다가
아가씨, 울지마 고향오래비처럼 안아줄게
볼에 따스한 입술을 대어줄게 그 브래지어 끈 좀
안으로 집어넣어 그 슈미즈도 치마 속으로 넣고
날 울리지마 제발, 철새 같은 이놈의 경부선 같은 날 울리지마
제발 다리를 오므리고 울어 오줌눌래?
자 이리와 여기쯤 와서 내가 지켜줄게
그러고 어디 기차가 지나가는 곳쯤 방을 잡고 나는 너를
재우고, 고향오래비처럼 오줌을 누고 싶어
오줌 줄기의 포물선, 포물선의 고요함, 그리고
쓰러져 잠 속의 시름
눈꼬리에 눈물을 담고 고요함 속에 잠겨
뿌리로 돌아가는 그 고요함 히힛, 고향의
누이처럼 코를 고는 너 곁에서
아아. 니가 내 등에 1분만 손을 대고 있어줬으면 좋겠다.
내 심장과 당신의 심장이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유리가루 잔뜩 묻힌 실로 연결되어 있다면.
따끔거릴 때마다 내가 살아있단 걸 느낀다면.
가끔 명치를 쥐어짜며 자리에 눕는다면.
잠이 들 수 없어 수면제를 먹어야 한다면.
잠이 들어 당신이 날 버리는 꿈을 꾼다면.
그 꿈에서 나는 기간 지난 쿠폰처럼 뒹군다면.
깨어나서도 눈물을 흘릴 수 없다면.
또 목구멍이 뱀의 혀처럼 치명적으로 갈라질 것 같다면.
갑자기 떠오르는 어떤 기억이 국민학교 때 방향이랄 것 없이
온통 귀를 울리던 민방위 훈련 싸이렌 소리를 듣고 책상에
엎드려야 하는 불안과 수치를 몰고 온다면.
그러나. 그것으로 내가 살아 있단 걸 느낀다면.
당신과 내 심장이 콩닥거린다면.
일정한 속도로 뛰는 당신과 내 심장을 연결한
실 위에 울음 같은 유리조각들이 좁은 어깨를 떨어댄다면.
그리하여 오늘밤 또 명치를 쥐어짜며 수면제를 먹어야한다면.
그리고 깨어날 때 당신 생각을 한다면.
안녕. 내 이름은 미선이에요.
나는 나야.
너는 너야.
무능은 뻔뻔.
돈은 부족.
시간은 촉새.
사랑은 궤변.
걱정은 내일.
맞는 말이지?
그렇다면 박수.
짝짝짝.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인 사람을 두 명 알고 있다.
한명은 동아리 선배고
한명은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 아이는 함부로 몸을 굴렸지만
많은 슬픔을 내게 비밀스럽게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아이가 말했던 그 시각의 슬픔은
아직도. 유효하다. 비밀인채로.
종종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지거나
과격하게 단순한 생물이 된다.
그래도 MERRY CHRISTMAS.
그나저나 잘 살고 있을까.
두툼하던 입술처럼 말투가 투박하던 그 아이.
잘 지내니. 몸을 숨긴 채로.
내가 털어 놓았던 은밀하고 아픈 비밀들아.
생일 축하해요. 언니.
생일 축하해. 다리 벌리던 슬픔아.
<아미엘의 일기>와 <체 게바라 평전>
내일은 저 녀석들을 사러 나가야겠어.
재밌는 만화책도 발견했어.
박상선. 타로카페.
빨간 체크무늬 안감의 목이 긴 스니커즈.
거기에 어울릴 속칭 미친년치마도 한개 봐두었고.
겨울용 반바지도 하나 찜해놨지.
그리고 레깅스와 레그워머도 하나씩 사야해.
썰스데이아일랜드에서 예쁜 털모자도 사고 싶은데.
모자 주제에 7만원이라니.
건방진 자식. 그치만 예뻤어. 오오.
박해일.송일국 만큼이나 날 설레게 했다구.
씨제이몰에서 오만원이란 파격적 가격에 내놓은
내사랑 리바이스 청바지와
이에스씨에서 본 헤링본자켓과
움몰에서 흰색이랑 검은색 바둑판무늬 도트랑
예쁘게 떨어지는 은귀고리.
서울에도 다녀와야 하는데.
기차타고 겨울바다도 보러가기로 했는데.
그나저나
어서 알바를 구해야 하는데. 아흑.
역시 캐롤은 MARIAH.
이불은 양모.
수분크림은 ICS.
라이터는 불티나.
야식은 라면.
결린 데는 부항.
우울할 땐 낮은 음악.
겨울엔 잠.
그에게 말해볼까.
좋아한다고.
내가 누군가에게 날카롭게 흘린 눈길이나 말을
하나하나 다 기억한다면
난 지금쯤 손목을 그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 경멸이나 증오는
그의 마음에 이미 음각으로 새겨졌고
난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당신이 내게서 그 어떤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해도 난 아무 할 말이 없어.
카페에서 내려오던 어떤 예쁜 여자가
재떨이 같은 입으로 욕을 해댈 때
입에 걸레를 물었냐며 경멸했지만
나도 똑같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던 건 내 입에서
썅년이란 말을 뱉던 순간이었어.
웃기지 않아?
유부남에게 설렜던 일 따위나
허락 없이 내 구역에 들어온. 그러나 나는
당신의 이름밖에 모른다는 것.
무척 쓸쓸해졌다.
가벼웠던 마음은 무슨 비닐막처럼 훌렁하고 날아가버렸다.
자취 없이 사라질 순 없을까.
그 누구의 마음에 그 어떤 흠집도 내지 않고.
난 내가 오해하고 있는 수천개의 것들보다
더 우습고 얄팍한 생각을 하고 살아.
Quizas,quizas,quizas.
기분이 좋다. 환장하게 좋다구.
나는 지금 바다 위로 튀어오르는
제주산 은갈치 한마리.
니가 지금 나한테 개 같다고 한대도
난 니 뺨을 때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
You know what I'm saying?
아핫!
미치도록 괴롭고 쓸쓸한 때가 올 때까지.
내 곁에 남아. 내게 있어.
나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어디쯤에서
장작보다 더 뜨거워질 마음을 들고 서 있을게.
불안한 구름이 눈을 몰고 온다.
너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더뎠던 만큼.
첫눈처럼 서툴지만, 난 너를
내 심장 가까운 곳에 심어두었어.
언제나 웃고 있는 사람은 마음에
어둠보다 더 지독한 독을 품고 사는 법이다.
폭력보다 잔인한 인생.
캄캄한 생계와 그보다 더 무지막지한 배반.
창밖으로는 넘어온 겨울이 시멘트 바닥에 세로로 꽂히고
그는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 했다.
나는 겁에 질리고 만 귀를 자르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피도 눈물도 없이 살고 싶어졌다.
내가 스무해 동안 가질 수 있던 것은
약간의 거짓과
선의와 악의와 침묵과 합의와 사치와
치사량의 행복과 관심과 무관심과 집착과
자만과 중독과 절망과 오기와 불행과 그리고
플라스틱 뼈를 심은.희망.
나는 지금 뭔가 단단히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 걸지도 몰라.
오늘 아침 수은주는 영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뭔가 껴입지 못한 두 손이 붉게 부풀어올라
연보라빛 매니큐어가 다 벗겨진 손톱들이
주눅들어 한없이 슬퍼보였어.
사위는 비가 올듯 약간 그늘져 있었지만
초겨울 하늘은 표백 세제로 빤 티셔츠처럼 쾌청했지.
난 뭔가 단단히 착각하며 살고 있어.
나를 좋아하세요?
나를 미워하세요?
(중요한 건 니가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난 상관없다는 거지. 위태롭게 곧 빠질 이처럼
혀로 너를 살금살금 밀쳐낼 수 있다는거지.
너를 넘어뜨리고 잔인하게 웃어 줄 수도 있어.
네 연인을 가로채거나
만인 앞에서 네 신상을 비꼬거나
계단에서 굴리거나 발로 배나 얼굴을 밟아주거나
혹은 윤락가로 팔아 넘기든가 말이야.)
나는 아주 나쁘고 못된 년이 되어서
미칠듯이 누군가 나를 증오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경멸할 수 있도록.
나는 아주 깊이 가라 앉아서
하다못해 나뭇잎도 결별하는
배반의 계절 앞에서ㅡ
나는 이제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져내리며
나는 너를 믿지 못하게 될 것만 같으니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너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으니
후에 내가 되게 되게 나쁘고 못된 년이 되어 있어도
안부만은 전해줄래.
혹은 가끔씩 내 생각이 난다고.
그럼 난 겨울이 되어도 울지 않을게.
나의 2001년과 2002년과 2003년과
나의 열일곱과 열여덟과 열아홉과
그리고 나의 절망이나 눈물이나
환호 혹은 꽃 같은 것들이
아직도 벽이나 계단 그늘 밑이나
무거운 유리문에 비친 수위아저씨의 후레시 속,
그리고 마른잎들을 골라내던 화단 위에
다행히도 아직은 안녕히.
예쁜 페페트리(우리가 명명한)가 있는 커피숍에서
네가 85냐. 86이냐.
이렇게 잊기엔 우리의 스물이 억울하지.
그럼 첫눈 오는 날 다시 만나자.
그것이 진눈깨비든. 함박눈이든.
우리의 신세가 엷고 희박할지라도
화려한 절망이냐
천박한 자유냐 따질 것 없이.
첫눈 오는 날에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
더 쓸쓸한 마음으로 기다릴게.
다행히도 나는 아직 무사하니까 말이야.
행복하든지 .
불행하든지.
상관없지만.
쓸쓸하기를.
오로지
쓸쓸하기를.
그냥 서로를 안아줄 수 없어?
내게 강요하지마.
멍청아.
내 스무살이 떠내려 가는데
곧 눈이 온데.
그리고 거짓말처럼
난 이제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었어.
어쩌지. 어쩌지. 나.
내 스무살이 떠내려 가는데
곧 눈이 온데.
그리고 거짓말처럼
난 이제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었어.
어쩌지. 어쩌지. 나.
1년 전 그날에는 많고 많은 다짐을 마음에 세워두고
고등어 자반처럼 희망의 뼈를 추리기도 했는데.
오늘은 잘 다림질된 1년 전 교복을 입고
나는 거울 앞에서 뱅글 돌아보기도 했는데.
희망을 익히는 법 쯤
배워도 좋을 거라고 실실댔었는데.
그런데 그저께 쯤에 나는 알았어.
내가 믿는 그것은 대부분 거짓일 거라는 것.
심장이 뛰고 피가 돌고
귀는 시리고 배도 고파.
살 만하니.응. 살 만하냐구.
옷을 입는 것.
화장을 하는 것.
웃는 것.
시를 쓰는 것.
책을 읽는 것.
착하게 사는 것.
버스를 타는 것.
걷는 것.
밥을 먹는 것.
니 생각을 하는 것.
미래를 생각하는 것.
숨 쉬는 것.
나이를 먹는 것.
그래. 다 귀찮아졌어.
어쩔래. 어쩔거냐구.
쉿.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에게는 비밀이야.
정장이 잘 어울리는 남자는 섹시하다.
희디흰 와이셔츠는 섹시하다.
깔끔한 디자인의 깨끗한 구두는 섹시하다. 오오.
덤으로 니트 조끼가 잘 어울리는 사람은 귀엽다.
오늘 눈망울이 그렁그렁한
니트 조끼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봤다.
귀여웠다. 오오. 귀여워. 귀여워.
귀여운 녀석은 나보다 키가 오센티미터쯤 작았다.오오.
역시 키가 작은 생물은 귀엽다.
성별을 불문하고. 나이를 불문하고.
제기랄. 나는 키가 큰 게 불만이다.
하지만 나의 그이는 내가 넥타이를 매줄 때
딱 저 높이여야 해.응.응.
모두들 난 결혼을 무척 늦게 할 것이라고 했다.
왜?왜?
내가 과자 같은 건 안 먹게 생겼다고 했다.
왜?왜?
안올거야라고 말해서 모올래 들여다보고만 갈랬는데 치. 뭐. 이런 저런 감동들이. 날. 에이. 희곡 다썼어. 정식으로 뽑아서 갈께. 메일로 받아보는 건 어쩐지 폼이 안나잖아. 에이. 어제에서 오늘이 되니 네가 무지하게 보고싶네. 다행이다. 네게 미안해져서. 이제야 조금 마음도 가라앉고. 감동을 받을 준비는 늘, 네가 시킨다니까.수챗구멍.
오늘은 무지 우울했다.친구야.그야말로 오랜만에 간절해지는 날이었다.나는 근래 무척 생각 없이 살았다.그 전엔 생각이 없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근래의 나는 그 생각이 없다는 생각조차도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네 말대로야.나는 조금 물러서기로 작정한 것 같다.심지어 네게도.예전엔 진부하게도 하루살이처럼 살고 싶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살이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것도 그만두었다.언젠가의 나처럼 변하는 것 같다.언젠가 숱한 관계들은 그저 거미줄 같아서 아무리 똥구멍에서 질질 실을 짜서 엮어도 어느 아침 정오쯤 빗자루로 걷혀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숨구멍.나는 너의 숨구멍.오랫동안 나는 참을 수 없이 숨을 쉬지 않고 살았다.그런 내가 네 숨구멍이 될 수 있을까.나는 함부로 네 손을 잡고 흔들었다.수챗구멍.날 받아낼 수챗구멍.속이 넓고도 넓어서 넘칠 걱정이 없는데도 나는 불안에 진저리쳐야 했다.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온전히 서 있질 못하는 것들이었다.불구로 서 있는 불안.나는 그 언제가에도 완성되지 못할 사람이다.나는 거세당했다.오늘은 넘칠듯이 렌즈 위로 인공눈물을 뿌려대었다.그런데 렌즈를 끼어서 그런지 불어넘치질 않는 거다.차라리 나는 눈을 발칵 뒤집고 거품 같은 울음을 악악대고 싶었는데.오늘은 마치 위로 따위 존재하지 않는 날인 것만 같고 널 다시 만나게 되는 날에 나는 자학 같은 눈물을 흘리고 싶은 거다.널 난폭하게 붙들고 꺽꺽 나를 꺾어대고만 싶은 거다.거미 따위가 똥구멍에서 피를 질질거리며 실을 뽑아대는 것처럼.냉정한 상황을 듣고 난 그날 이후로 나는 혼란스러운 나날이지만.그래.어쩔 수 없지.그것은 마구 날 할퀴고 있어서.그렇지만 나는 괜찮아지겠지.너는 나의 수챗구멍이니까.먹통 같은 수챗구멍이 되어줘.짝발로 선 나는 기댈 수 밖에 없는 숙명적인 불구의 몸.불안은 곧 나이므로.
나도 한 때는 사랑을 염주처럼 목에 걸고 살고 싶었다. 그토록 투명한 갈뫼빛 사랑을. 그런데 어느 날 단 한 번 헛디딘 발이 이렇듯 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줄이야. 그리고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나는 내게 남겨진 것이 막상 젖은 소금 한 되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생은 아마 백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을 몇 겹의 깊은 상처. 그 앞에 놓인 한 그릇의 짜디짠 소금. 나날의 쓰라린 문댐. 결코 되풀이되지 않을 너와 나의 고달픈 그러나 매순간이 숨찼던 사랑. 생은 또한 하루 24시간 동안 무작위적으로 방송되는 위성방송 앞에 잠시 무릎을 접고 앉아 있다 사라지는 것. 이윽고 동공에 모래알처럼 남는 영사의 자잘한 파편. 한 칸 한 칸 죽음을 건너뛰지 않고서는 바꿀 수 없는 채널 부호. 처마 밑에 춥게 웅크리고 앉아 있던 2월의 제비. 그가 남긴 현관 앞의 배설물.
그래. 고작 그러한 것.
윤대녕.수사슴기념물과 놀다
문득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화를 내는 건 언젠가
더 비굴하게 웃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쫄딱 젖은 얼굴로 눕는다.
며칠 전에 돼지고기 탕수육을 먹었다.
맛있었다. 그런데 그만두었다.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고기를 못 먹는다고 병신 소릴 들어야 했는데.
그 때 입술을 깨물고 끅끅거리던 내 이빨에 대한 배반 같았다.
문득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예전엔 그것 하나가 전부일 때가 있었다.
침묵이 가장 날카로운 흉기란 걸 알았다.
슬픔이 골목길 어귀에 하얗게 서 있는 걸 보았다.
나는 너의 미래가 될 수 없다.
자연스럽게 걷기 위해 신경쓴다.
삶이 어색하다.
지나간 것만이 아름답다.
말 똑바로 해. 싸가지 없는 새끼야.
나는 오늘도 동생에게 화를 냈다.
엉엉.엉엉.
항상 지치지 않는 사람.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
어두운 것에 직면해도 그것을 똑바로 직시하는 사람.
저것들은 나의 기록에 없는 것인가요, 선배.
잊은 것이 있어 덧붙인다는 선배의 쪽지는
제게 온통 희망일 뿐이라서
겁에 잔뜩 질린 얼굴에 대고서라도
칼을 날려주세요. 서슴없이. 서슴없이.
희망은 내 유년에는 없던 것이라서
기꺼운 것일 거에요.
선배가 날리는 그 날이 선 희망은.
니 맘 다 안다 말했지만.
난 사실 잘 몰라. 모르겠어.
오른쪽 눈에 다래끼 비슷한 것이 생겼다.
만약 다래끼가 맞다면 나는 처음인데.
바람이 냉정하게 불기 시작했다.
그가 정씨였던 것만 생각났다.
겨우 몇 개월만에 잊혀지다니.
나는 그 상실을 조금 슬퍼했을 뿐.
언제까지고 선명한 것은 없다.
시간이란 수표처럼 불안한 것.
다이나믹 듀오와 스타세일러.
마룬 파이브와 하림.이 좋다.
그러니 됐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애정으로 의지를 심는다.
뼈에. 살에. 배꼽에. 입술에.
억지로 살 것 없다.
하지만 난 최근 가장 성실하다.
그래서 조금 용감해졌다.
내일은 약국에 가야지.
눈 아래 속살을 빨갛게 뒤집고선 약사에게 물어야지.
이게 다래낀가요. 하하하.
맹세코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문득 내 생애의 길이가 치욕스러워졌어요.
나는 나의 생애를 길게 쓸 수 없어요.
길이가 중요한 건 아니죠.
하지만 우스워졌어요. 얌전히 개켜놓은 블라우스처럼.
나는 머릿속을 진공으로 두고 떠다녔어요.
언니는 아버지가 불쌍하데요.
엄마는 언니가 철이 들었데요.
증오는 그의 힘이었는데.
그의 마음에 환풍기라도 달았을까. 덜컥.
난 어쩌면 각질처럼 살고 싶었어요.
입엔 걸레를 물고 침을 뱉고
담배를 물고 술잔을 들고.
하지만 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차라리 누가 나를 짓밟아주세요.
혼자 일어설 수 없을 때까지.
과격하게. 과격하게.
분첩에 붙은 하얗고 미세한 가루처럼
지독히 가볍게 몸만 훌쩍 커버린ㅡ 아직 나는
어른이 아닌데도 그러나
그 어떠한 증오도 나의 힘이 되지 못한다면
이젠 나도 철이 드는 건가요.
엄마. 나도 아버지가 불쌍해요.
유난히 작은 손톱엔
그 어떤 달도 뜨질 않고
조금 어둡게 질려있다.
춥다. 춥다.
누구든 안아주고 싶구나.
여름내 앓던 열병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고
마음에 불어찼던 몇번의 폭우도 이젠 그쳐
속모를 컴컴한 구멍들 파였는데ㅡ
희망이란 것 입에서 닳고 닳아
쉽게 흘린 말들 폭우로 꽂히고
그것 꽝꽝 박힌 마음엔
눈물보다 더 끈적하게 흘러내렸을
무수한 구멍의 진물들. 진통들.
그의 손은 진심었을거다.
내가 박은 대못 다 뽑아
내 물관에 심어 녹슬게 해야한다.
진물 말고 녹물이 나도록.
수도꼭지 비틀듯
명치를 쥐어짜면서 매일밤 잠들도록.
나쁜년. 이 나쁜년.
내 마음에. 빈 바구니가. 주렁저렁.
빈 바구니 스무개. 주렁주렁. 걸려 있다.
오늘은 커피를 먹고. 밤새
유서같은 편지. 써야겠다.
연필 꾹꾹 눌러서. 노랗게 곪은. 보름달. 같이.
내 마음. 써야겠다.
병신 같아. 엄마가 새로 사귄 아줌마는.
속눈썹이 차양 같이 드리워진 크고 겁먹은
눈동자의 딸애를 데리고 우리집에 왔다.
차례 올릴 음식 준비를 도우며
청소에 빨래까지 하려고 들었다.
열여섯살 막내에게도 존대를 하는
아줌마의 잔뜩 움츠러든 어깨와 목에
엄마는 부항을 떠주었다.
모녀의 눈은 깊고 우울했다.
아이는 극히 말수가 적었고
아줌마의 웃음소리는 높았다.
오래 신음한 흔적.
얼굴 곳곳에 묻어있는 통증들.
가난이 미안해서.
사는 것이 민망해서.
웃으면서도 앓고 있었다.
화가 났다.
널 도려내면 내가 죽어.
넌 내게 파묻혀 있었어. 주욱.
그러니 친구야ㅡ
네 앞에선 꽃 같이 피어날테니
염려하지 말어.
.난 어찌되든 괜찮아.
멎어있었다.
큰 손바닥 위에 올려 논
아무 감정 없는
손.이 왜 이리 바짝 말랐냐며
마디.마디를 쓰다듬어도.
신경이 마비된 것처럼.
꽁꽁.싸맨 마음에
찬물 끼얹은 것처럼.
오늘에서야 알았다. 덜컥.
그렇게 화를 낸 건 드물지.
알겠지만. 난 화를 잘 안 내잖아.
아무 것 아닌 농담에 정색한 건.
곪아터진 거기를.
네가 자꾸만 들춰댔기 때문이야.
정말 내가 구차했기 때문이야.
무감각해지는 것.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
감정을 닫는 것.
아무 것에도 격렬해질 수 없다는 것.
생각이 얇아지는 것.
내가 가늘고 날카로와지는 것.
하지만.
입꼬리에서 피실하게 흘린 그.
또라이같은 년.이란 말이.
이렇게 몇날며칠.
날 쑤셔박을 줄은 몰랐어.
소심하다.고집이 세다.우울한 글을 쓴다.머리를 부비거나 어깨를 다독이는 것이 좋다.돼지고기 안 먹는다.쇠고기도 안 먹는다.화가 나면 눌러 참다가 한번에 터뜨린다.칭찬을 좋아한다.술 먹으면 얼굴이 엄청 빨개진다.기본적인 시비는 가릴 줄 안다.장단점이나 기분을 잘 파악한다.기분파다.자존심이 강하다.낯선 사람과는 말을 잘 안한다.원래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싫은 사람 앞에서는 웃지 않는다.청바지,면티에 모자 눌러 쓴 자기 모습이 편하다.키가 크다.몸에 힘이 없다.혼자 버스에서 웃긴 생각이 나면 당황해하면서 웃는다.예의를 모르는 사람이 싫다.약속시간에 거의 늦는다.이기적이다.자기합리화 잘한다.부끄럼이 많다.목소리가 작다.목소리가 낮다.전화 받으면 가끔 남잔 줄 아는 친구도 있다.안 그런척 잘한다.잠이 많다.항상 하품을 한다.스스로를 괴롭힐 줄 안다.상관 없는 것에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눈을 크게 뜨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선입견이 강하다.좋아하는 것엔 잘 매달린다.남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싫다.나는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낮은 목소리를 좋아한다.적응하는 것은 힘들다.우울하면 바로 티 난다.거의 우울하다.단정한다.정색한다.아니라면 눈빛이 건조해진다.찌른다.외면한다.제외시킨다.체념이 빠르다.미안하다.스무살밖에 안 먹었다.그는 유부남이다.고맙다.추위를 잘 탄다.운동을 못한다.길치다.방향치다.겁이 많다.곧잘 입을 다물어버린다.과거에 매달려 산다.정이 많다.싫은 것엔 냉정하다.비극이 좋다.친해지기 어렵다.오래 걸린다.자기애가 강하다.답답하다.답답하다.왜 이렇게 살까.멍청이다.멍청이 같다.나.
내 목소리가.조금 많이.작다는 걸.안 것은.정말.
최근의 일이다.난.움찔했고.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난.일부러 크게 말하려 하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눈을 크게 뜨는 것과.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것은.
에너지 소비량이 많아. 힘들고.
매우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난 게으름을 구걸하며 산다.
오늘도 목숨보전을 위하여.
사실.내가.느릴뿐더러.길치이고.방향치란 것에 매우 화가 났다.
그리고.참을성이 희박하고.투정을 잘 부리고.엄살이 심하며.
욕을 잘하고.거짓말에 능숙하며.생각 없는 말을 툭툭 잘 내뱉고.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내가.
느릴 뿐더러.길치이고.방향치란 것에 또 화가 났다.
그래서.헤맨다.한동안 come undone.이란 노래를 즐겨들었다.
실패하는 것이 삶이라면.주저앉기 이전에.헤맨.기억이라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가끔씩.
내가 쪼다이기 때문이다.벼엉신.
외롭고 웃긴 가게에 들어오세요.
오렌지 색 가발을 쓰고서.
시간은 흐르고.
빛을 뿜어요.
새들이 헤엄치듯이.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그대가 있고.
내가 있고.
마시는 컬러풀한 술.
컵에 남아 있는 건.
우리들의 이름 뿐.
외롭고 웃긴 가게에 들어오세요.
하얀 선이 우뚝 서 있는.
술병이었을까.
아님 파란 유리새.
조금씩 가라 앉는 걸.
알고 있나요.
알고 있나요.
보라색 기탈치며.
노래를 불러 주세요.
아무도 그대 눈을.
바라보지 못할거예요.
나처럼.
깊게.
그대가 있고.
내가 있고.
마시는 컬러풀한 술.
컵에 남아 있는 건.
변하지 않는 우리.
이름.
외롭고 웃긴 가게.이상은.
실수를 하면 콧등 위로 잔주름 몇개를 세워 찡긋.
그의 버릇. 그의 버릇.
난 어지러웠어요.
안되는 것. 안되는 것.
하지만 알아주세요. 알아주세요.
슬프다.
만약에. 내가.
조금 더. 일찍.
당신을.
만났더라면.
그리고. 슬프다.
이것도. 이내.
식어버리고. 잊혀질.
사소한 것이라면.
동이 트고 있었지. 달은 기우뚱했고.
답이 내려지지 않는 문제에 우리는 갸웃거렸지.
스무살에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거리를 비틀거리다 털썩 쓰러져 잠드는 거라고.
그런 배짱쯤 가졌다고.
하지만 우리 잠들지 못하고 갸웃거렸지.
내 눅눅함을 말려주는 사람아.
내 불투명을 사랑해주는 사람아.
네 앞에 서면 안도하는 나를 본단다.
그 어떤 욕도 천박하지 않은 것이고.
그 어떤 희망도 결코 처절하지 않은 것.
지독히 행복한 사람이구나. 나는.
네 질투마저 다정해서
저렇게 동이 트는 줄도.
나는 모르고.
가르쳐주지 않았잖아.
애초에. 그런 것 따위.
기대하는 건 사치.
당신. 우는 소리했지만. 결코.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
짐작했지만.
뱉어내지 마.
진심. 당신의 본심.
뭐야. 뭐냐구.
난. 싫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습관이지.
생활이지.
증오와 사랑의 미묘한 관계.
내가 널 버리면
난 살 수 없을지도 몰라.
극사실주의 같은 충고.
무서워졌어요.
사물의 사소한 방향조차도
날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에요.
당신만해도 그런걸요.
난 아직 믿을래요.
난 아직 믿을게요.
각별해진 삶에 대한 애정.
불안해진 난.
웃고 있을지도 모르지.
울고 있을지도 모르지.
가로등 불빛이 유리창에 부딪혀 번져.
착각이 일어나는 밤. 왠지.
누군가 내 생각 해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
그게 누구든.
지금이든 아니든.
고마워. 그대.
희망. 열정. 집착. 불안. 공포. 수치. 결별. 그 밖의 잡다한 것들. 그리고. 형상화.
다정한 체온.
상냥한 체온.
친근한 냄새.
넉넉한 품.
I need you.
I need you.
난 솔직히.
그를 위해
울어줄 자신.이 없어.
그렇다고
미안.하지도
않을 것 같어.
그래서
미안.
난 네 생각보다
차가운 사람이야.
잔인한 사람이야.
미안.
눈물은 눈 앞쪽에서
말릴 틈도 없이 주륵.
눈물은 뜨거운 것.
온몸이 달아올라서
앓던 밤에
네 생각이 났어.
다음번엔 몸이 우는 게 아니라
마음이 울었으면 좋겠어.
눈물은 뜨거운 것.
눈물은 뜨거워야만 하는 것.
비에 잠길까.
고막을 낮고 굵게 울리는 노랫소리.에
우기를 잘 타는 내 귀.를 맡겨두고.
우기에 비가 오지 않으니 마음엔 눅눅함이ㅡ
마른 빵처럼 부스러기진다.
가라앉은 기분을 억지로 추스리려고 하지 않았으면 해.
버거워. 진심이 아니라면.
슬픔이 백태 같이 잔뜩 끼어서
무슨 큰 배라도 침몰시킨 것 같은.
깊이 가라앉은 단단한 슬픔들이
철근처럼 박혀 있는 눈. 그 마음.
익사할 것 같지.
나도 나이가 좀 더 먹으면
맑진 않아도 깊은 눈 가질 수 있을까.
난 아직 그 무엇도 가라앉힐 수 없거든.
무슨 해저 같은 것도 아니거든.
두 조그만 발목. 복숭아뼈 간지런 깊이거든.
내 마음에도 누가 익사해줘.
발을 담그는 그 순간부터.
왠만한 호수가 익사의 기억을 갖고 있듯이.
내게 익사해줘.
난 고약해서 둥둥 떠오를 차가운 몸은 싫어.
내 깊숙히 가라앉혀
떠오르지 않는 전설을 만들어야지.
난 더 깊고 깊은 바닥을 파놓을게.
말을 많이 하면 |
저학년 땐 국민학교였고, 4학년인가 5학년엔가에 초등학교로 바꼈었다. 그 때는 백원만 까줘.라던가 한 입만.을 남발하는 걸 즐겼고. 띠쑐라,나 허쳐.를 비롯한 이상한 말을 많이 썼었따. 쇠팽이를 손바닥에 올리는 연습을 하거나 따조를 100개 이상 모으는 것. 그리고 딱지로 퍼크를 하거나 요요를 멋진 폼으로 할 수 있는가가 주요 관심사였다. 음. 난 인형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미미나 제니는 없었지만 색칠공부를 하거나 종이인형을 오리거나 것도 아니면 예쁜 눈을 그리는데 집착했었다. 우연히 5학년 때 고무줄 놀이판에 합류해서 우리반에서 유관순을 하는 몇 안되는 아이 중에 내가 포함되었고, 한뼘을 할 때면 언제나 내가 히든카드였었지. 하지만 내 약점은 체력이 금방 딸린다는 거였다. 난 무척이나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는데. 그 땐 소중한 사람이나 친구라는 개념을 몰랐다. 엄마나 언니. 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중학교에 와서 친구라는 게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ㅡ질투라는 것도 알게 됐었지ㅡ날 좋아해주던 녀석들 중엔 지금도 서로 보고파하고 그리워하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발라당벌러덩 까져서 연락 끊긴 친구도 있다. 내가 몹쓸 짓도 많이 했는데 되먹지 못한 나를 여지껏 그리워해주는 친구 녀석은 대학에 가질 않고 경기도에 있다. 그 녀석이 소중한 녀석이라는 걸 안 건 얼마 안됐다. 난 얼마나 나쁜 년인지. 그래도 기다림의 끝엔 뭔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에게 내가 남고 나에게 그가 남았으니. 고등학교에 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목숨 같은 친구도 얻었다. 시도 얻었다. 난 줄곧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라는 걸 알게됐다. 음.음. 그래. 그건 아니야. 음. 이건 아닌데. 내가 생각하던 대학생활이란 이게 아닌데. 요즘 들어 기를 쓰고 문창과에 갔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이래봤자 소용 없지만. 정말이지. 이런 건 아니었거든. 고전 공부하다가 머리에 쥐가 나서 차라리 다 때려치워버릴까. 이런 것 따위. 그래도 언니들을 생각하면. 음. 큰 언니가 그랬다. 어느날 문득. 문자를 보내서 니가 하고 싶은 것. 대학다닐 때 다 해보라고. 근데 그건 너무 책임 없이 툭. 던진 희망이었다. 아ㅡ 희망.희망. 내 마음에 문틈이 조금 벌어져버려서 양은냄비처럼 금방 달궈졌다 금방 식는다. 그리고 아무 성과 없이 반년이 지나가는 것이다. 이런 건 아니었는데.음.음. 친구야. 적어도 이런 건 아니었는데. 응. 친구야.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이나.
모르는 척.
당하는 사람이나.
괴로와. 괴로와.
뭐든지. 부욱 찢어서
집어 삼킬 수 있다면.
집어 삼키는 족족.
다 소화시킬 수 있다면.
아아아ㅡ 아아ㅡ
어서 밤이 되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어.
양갱이로 기둥을 세우고
벽은 온통 맛있는 비스킷들로 가득.
지붕은 카스테라구요.생크림을 얹었어요.
그 위엔 슈가 파우더를 뿌렸지요.
천장엔 유과며 박하사탕들이 모빌처럼 매달려 있고
창고엔 아직도 달콤한 것들이 넘쳐나요.
설탕을 뿌리면 썩지 않아요.
멀지 않은 곳에 토마토쥬스강이 흐르고
강아지는 별사탕 꽃을 핥아 먹는 걸 좋아해요.
매일 분유 향기가 나는 바람이 불어 와요.
상상.
상상.
오늘따라 혼자 걷는 게 별나게 어색하고 쓸쓸해서.
아주 느릿느릿. 걸었지.
눈을 감고 걸어 다녔는지도 몰라.
발 뒤축에서 푸슉.푸슉.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지.
.
자꾸 뭔가 확인하려고 하는 습성은.
좋지 않아.
친구야. 울어도. 울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시들 준비 같은 건 하지 않아요.
날 돌봐주던 소년은 떠나갔어도.
바람이 부니까.
난 흔들.거릴거에요.
바람이 부니까.
난 그저 흔들.거리고 있는 것 뿐이에요.
빗줄기가.너무도 끈질기게 살을 타고 흘러.내려.그 온도가.그 미지근.한 온도가.어쩌면 내 마음보다 높은 열을 내고 있어서.잠들기 전.열꽃처럼 번진 몽롱함 중에.난 무어라도 건져내려고 애를 썼는데.함께 갔던 한평짜리 식당에서 그.등을 돌려.야 하는 좁은 공간에서.할머니가 흥얼거리던 처량한.노래.단무지 속에서 씻은 김치 쪼가리.를 발견한 순간.난 아까보다 더 크게.입에 넣은 단무지.를 우걱.거렸지.체했어.미지근.하게 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줄기 속 추억.할 거리를 찾다 감당할 수 없어.이만 헤어지자.오랜만에 잡은 손이 어색.해서.
난.우산 속에서 자꾸만 너를 밀쳐내.려고.
누가 너를 떠밀었니.
슬퍼졌다.그게 나니.정말 나니?
빠르게 저 아래로 낙하하는 것들을 본다.
갑자기.나의 시간이 빠르게 낙하하는 것을 본다.
뛰어내리지 마.내가 널 떠밀었대도.
그렇게.그렇게.쉬운 일이니?
슬퍼졌다.제발.단숨에 뛰어내리지 마.
차라리. 퍼엉.펑.터져버렸으면 좋겠다.
좀 데어도 상관 없으니.
우리의 관계. 나의 내일.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은 곤혹의 지지부진이다.'
퍼엉.펑. 그래. 속시원히 터져버려.
내 꿈에 니가 있었는데.
악몽이었어. 난 너무 무서워서.
널 두고 달아났는데.
넌 다시 내 앞에 나타나서.
내 걱정을 하는거다.
이런.내가.니 곁에 있어서.
미안해.미안하다.
내 창고에 종이상자 같은 거 잔뜩 주워다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넣어두고 싶다.
잊어야 할. 쓸데없는 기억이라도.
이제 가물가물한데.
그 얼굴. 그 이름.
흐느적 꿀꿀병.에 걸려버렸지만.
뭐ㅡ 그래도 오늘은 짱짱한 햇살이 제법이니.
다림질한 반듯한 와이셔츠는 아니라도
빨래집게에 매달린 팔랑팔랑한 양말쯤은 될 수 있겠어.
미치고 환장하고 싶다.
시. 사람.
토마토와 오렌지로 배를 가득 채우고
생각하거나 일어나거나 숨 쉬는 것조차
귀찮아지려고 하니.
요즘 나의 생활이란 참 말이 아니라서.
슬퍼하는 것 따위 기꺼워하는 것 따위조차
귀찮아지려고 하니.
덜컹이는ㅡ
덜컹이는ㅡ
기차. 그 불편한 의자.
여행 가고 자와.
같이 가요. 두 손 꼬옥 잡고.
착한 웃음. 마음 가벼운 사람아.
새벽이 낮게 깔리고 |
|
|
양식의 맨 위 양식의 맨 아래 |
언젠가 아스팔트 위로 쓰러진 기억.
찢긴 아가미처럼 피를 울컥이던 기억.
부웅ㅡ 날았던 그 짧고 낮은 비행.
날카로운 경적소리와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
게으르고 느리게 깜박이던 눈꺼풀.
너무 쉽게 달아나던 트럭.
살고 싶어.
길바닥에 털썩 치인 권태.
살고 싶어.
정말 살아 있는 것처럼 살고 싶어.
아ㅡ 추워. 비 온다. 푸슬푸슬. 오늘 이 일기를 쓰는 것을 꿈에서 본 적이 있다. 한 번 더 겪고 있는 기분. 새벽에 일어나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으면서 딱딱해진 빵을 씹으면서ㅡ 비에 젖으면 왜 모든 것이 흐물흐물해질까. 어제는 우산도 못챙겼다. 고약스럽게 비는 쏟아지다가 찔끔거리다가. 닫힌 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얇은 소리. 가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내 감은 귀. 그래도 내 이름을 불러주ㅡ 이름이 불릴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시리도록 반가운 일. 청량고추를 썰어 넣은 된장국. 국을 뜨는 회백색 손. 나는 한 늙은이의 죽음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나 기록은 허튼 짓. 콜록. 청량고추는 왜 이렇게 매운거지. 콜록. 날카롭게 목구멍을 찌르는ㅡ 담배연기. 비는 울고 있는 게 아니다. 친절하기도 하지. 비슷한 감정들을 우산으로 가려둔 채 자연스럽게 거리를 만든다. 비 오는 날은 우울해져. 울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이. 빈 공간 때문이야. 그 눅눅한 공간. 가는 비ㅡ 누군가 익사할지도 모른다.
가장 슬픈 건.
그 어떤 아릿한 기억도 갖지 못했다는 것.
봄이 괴로웠을 뿐.
여전히 가슴에 스며드는 사람이 없다.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는 건가.
봄이 지나가면 나아지겠지.
열꽃도 피지 못하고.
금새 식어버렸어ㅡ
숨구멍. 아가미. 아가미.
귀나 등보단 겨드랑이에 달리면 좋을거야ㅡ
서로 포옹하는 순간에 열리도록.
뻐끔뻐끔. 뽁뽁.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하루를 절실하게 진심으로 살아내고 싶었다.
더이상 어린애처럼 사랑을 보채지 않아.
가장 잘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희망의 어떠한 여지도 포기하는 것.
우리 사이엔 더이상 그 무엇도 바랄 수 없어요.
봄은 위험한 계절.
성급하지 말 것.
이미 엎질러졌거나.
비틀거린다.
우스울 정도로 금새 취해버리고 말았어.
크ㅡ
화창할 예정.
복잡한 생각은 잠시 아무렇게나 접어두자. 오래된 종이처럼.
곰팡내가 난다.
햇볕도 쐬고.
내 눅눅함을 좀 말려야겠다.
가벼워지자.
생각해야 할 것들은 많고.
쓸 시도 잔뜩이야.
바람이 불면 마음이 텅텅ㅡ 소리를 내면서 울려.
사랑한다 그립다 말로 하지 않으면
내 안의 그것들조차 움츠러들어서 결국엔 사라질까봐 겁이 나.
언제부터였을까.
가슴보다 머리가 헤픈 웃음을 짓기 시작한 건.
지독히 냉정해지겠다고.
아무리 다짐해봐도 킁킁대며 나와 닮은 사람을 찾고 있었어.
누구보다 절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감정의 홍수지.
가슴이 비옥한 사람이 좋아.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다가서고 멀어지지.
오래두고 익힘을 당하고 싶어.
서서히 내려앉아 털어내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
뽀오얀 먼지처럼. 그래. 그렇게.
하루하루 불행을 씹거나 비극을 삼켜.
우습기도 하지.
나와 그들의 경계를 지독히 미워했지만.
언제나 먼저 선을 긋는 건 나부터였어.
한발짝 물러서서 무슨 측량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경계에 꽃이 필까.
이유 없이 담 너머 봄을 투정하고 있었어.
나를 견디는 것조차 버거워서.
내 진심이 보이면ㅡ
내 보채고 징징거리는 사랑이.
너는 그리워질 날이 있을까.
너와 내 손을 꼬옥 포개고.
우리 심장을 포갤 순 없어도.
마음은 나눌 수 있으니.
아마 난 붕- 떠서 날아가버릴거야.
그립다. 미치도록.
방금 너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했어.
-거짓말.
<숨은 그림 찾기>
당황한 표정, 어색한 웃음, 미안한 마음, 진실, 말이 많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