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있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이다. 다른 사람의 몫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무작정 자신이 갖고 싶은 것,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생각하는 마음은 다툼의 으뜸 요소다.
둘째는 욕심 내는 대상과 관련한다. 다툼은 서로 같은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생긴다. 같은 것을 먹으려 해야 하고, 같은 곳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초콜릿, 누군가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면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됐다고 해도 곧바로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쉽게 예를 들어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소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옆 사람이 내 산소를 빼앗아 간다고 그와 다투는 일은 아직 없다. 싸우지 않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것이 무한하리만큼 많기 때문이다.
세 번째 조건은 조작, 혹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다. 심지어는 앞서 예로 든 산소조차도 머지않아 다툼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갈수록 청명한 공기는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60억 인구가 모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말고는 어차피 서로 갖겠다는 대상은 일정수준에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순자는 이상과 같은 논리를 매우 고전적인 형태로 정리하고 있다. 순자에 따르면 주(周) 왕조가 태평성대일 수 있었던 이유는 훌륭한 임금이 사람들이 다투는 재화나 사회적 지위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적절히 나눠 주고 그대로 살도록 다스렸기 때문이란다. 물론 순자의 설명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들린 것은 훌륭한 성현의 가르침이 매우 큰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임금이 사회적 재화나 신분, 지위를 분배하기 위해 사용했을 기준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가 한창이다. 사교육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맞다. 누구도 이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공교육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속에는 거짓이 숨어 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대학에 잘 들어갈 수 있다는 말과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그냥 막연하게 공부를 잘하려는 것보다는,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목표인 대학, 그것도 세칭 'SKY'라 불리는 명문대에 입학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사교육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단순히 공교육에 대한 실망스러움 때문일까? 사교육은 좀 과장되게 이야기해서 약 9000명(SKY 입학 정원이 대략 이 정도 된다)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다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는 남들보다 앞서겠다는 자기 이익추구의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더 나은 교육환경을 추구하는 그 마음을 이기심이라고 몰아세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SKY의 모집정원이 60만명이 돼야만 이 무한경쟁은 끝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사람들은 어떤 정책이 나오더라도 그 속에서 또 더 나은 자리를 선점하고자 사교육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전체 분배의 몫과 그것을 서로 가지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처음부터 너무 큰 격차가 있는 것을 뒤로한 채 그냥 무작정 공부를 잘하도록 도와준다고만 말하는 것은 이 사회,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9000명과 나머지 59만 1000명들이 보다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건전한 사회를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낭떠러지를 향해 60만명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치열한 경쟁보다 말이다.
조선일보 2009.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