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거의 모든 선답자의 산행기는 순행의 기록이라 역행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 기록들이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런 이유로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지도 않고 길을 나서면서 발품을 많이 팔게 되었다. 아무리 산길샘이라 해도 비산비야(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인 곳이 많은 영산기맥 길을 정확하게 찾아갈 수가 없다. 명감과 찔레가 뒤덤벅이 된 가시덤불 속을 불가피하게 통과해야 하는 경우 진퇴양난인 상황에 처해있기도 한다. 비가 내리는 상황이라면 우울하기까지 한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대중교통 편으로 접속과 귀가가 용이한 지역이라 쉬는 날 틈틈이 마루금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승달산(깃대봉)-사자바위산-노승봉-구리봉-연징상-남산-상봉산/병산(우회)-감봉산-곤봉산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28.4km, 실제거리 32km, 접속거리 6km
- 산행일시 : 2024년 5월 1일(수) 06:40~18:40(12시간)
★ 기록들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쉬는 날이기도 하지만 수업도 없고 해서 두번째 답사를 이어가기로 한다. 목포역에서 5시 34분에 출발하는 200번 첫차를 타고 구암삼거리에서 하차한 후 4km 떨어진 마루금까지는 잰걸음으로 이동했다. 6시 40분 감돈재에 도착하자 누더기 옷으로 갈아입고 등산채비를 마쳤다. 날씨는 금방 비가 내릴 듯 흐리지만 오후 약한 비가 내리다 그칠 것으로 예보했다.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흐린 날씨가 산행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
길이 뚜렷하여 꽃장고개를 넘어 큰 묘가 자리한 둔덕봉과 승달산(319.2m)까지 부드럽게 이어갔다. 이곳 특징은 산 정상마다 후손이 제대로 관리하지도 않은 묘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속도가 3.5~4km/h에 이를 정도로 순탄했다. 승달산 깃대봉(333m)은 마루금에서 떨어져 있다. 깃대봉을 다녀오자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노승봉은 시그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봉우리 같지가 않다. 하루재에는 주막인 듯한 가건물이 위치해 있으나 9시가 안 되어서인지 문은 굳건하게 닫혀 있었다. 사자바위산에 이르자 목포대학교 전경이 뚜렷하게 들어왔다.
구리봉에서 잠시 쉼을 가졌다. 과일주 한잔하고 있을 때 인근 주민이 어린 아들과 함께 무덤밖에 없는 봉우리에서 재잘대다가 내려갔다. 구리재에는 서낭당 같은 큰 나무가 있고 태봉재는 개활지처럼 열려있었다. 인근의 마협봉은 다녀오지 않았으나 288봉에서는 배낭을 부려놓고 떡을 먹으며 쉼을 가졌다. 한재를 지나 가파르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오르자 전망대에 이어 전망의 숲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삼거리를 넘어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연징산을 찍고 내려오다가 사진 찍는 것을 깜빡했다. 삼거리에서 급하게 왼편으로 튼 내리막길이 마루금이 맞는지 의문이 생겼지만 가다보니 산길샘의 내 위치와 엇비슷하게 들어맞았다.
13시 가까이 이르자 조금씩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대로 정확하다. 비옷을 준비하지도 않았지만 입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 양이 미미하다. 넓직한 바위 위에 도시락을 꺼내 반주와 함께 식사를 마친 후 초당대 기숙사 삼거리 쪽으로 내려섰다. 도로를 따라가는 것도 아주 잠깐 희미한 숲길을 따라 게 50여분을 진행하자 드디어 민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진다. 산길샘을 보며 도로를 따라가다가 대파 쫑을 따고 있는 농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밭한가운데를 가로 질러 올라갔다. 당연히 싫은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종종 그렇게 통과한 산꾼들을 만난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무덤 위에 난 희미한 숲길은 차라리 막아버리는게 나을지 모르겠다. 들어가기만 하면 명감나무 가시덩쿨에 갇히기 일수였다. 1번 국도인 평룡교차로를 통과하여 도로를 따라가다 병산을 찾아들어가야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병산 이르기 전 오른쪽으로 잘못 빠져나와 교천리 방면으로 하산한 다음 도로를 따라 60번도로가 만나는 지점까지 이동했다. 신발은 완전히 젖어 질퍽거렸고, 양쪽 중지발가락은 물집이 잡힌 듯 쓰리기 시작한다.
60번 도로 지나서도 도로 따라가다 잠깐 숲길 같지 않은 길에 들어갔다 나오길 수차례 반복하다 수반육교를 건넜다. 다시 밭을 가로질러 가다 도산제삼거리에서 숲길로 올라서자 희미하지만 마루금이 이어져 있다. 186봉을 넘어서자 길은 점점 뚜렷해지고 이내 감방산(258m)에 이르게 된다. 얼었던 맥주가 풀리자 맥주한잔을 마셔보지만 기분이 상쾌하지가 않다. 신발뿐만 아니라 온몸이 다 젖어서 그럴 것이다. 감방산 능선을 내려서자 장교리쪽 날머리를 찾을 수가 없다. 산길샘을 대비하면 엉뚱하게 가시덤불로 안내를 하고 있어 별 수 없이 월봉쪽 815번 지방도로 내려섰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앉아 남아있는 떡을 다 치우고 과일주를 마신 다음 작동마을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한 할머니가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길래 인사를 했더니 누구냐고 한다. 등산하다가 내려왔다고 했더니 여기 산이 어딨냐고 되묻는다. 굴다리를 넘어선 후 함평버스터미널까지 도로를 따라가면 5.7km이지만 마루금을 따라가면 훨씬 더 가까웠다. 제비산 들머리는 이외로 찾기 수월했고, 그럭저럭 유순한 길을 따라 올라가자 제비산이 위치해있다.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지 곤봉산까지는 길이 좋아서 이내 도착했다. 마지막 사진을 찍고 함평초등학교 방면으로 하산한 후 함평터미널에 서둘러 갔지만 목포행 버스는 3분전에 떠났고, 8시 18분 막차를 타야했다. 행색이 거의 거지 수준이라 화장실에서 한찬동안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은 후 목포로 향했다.
<감돈재 들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