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7장, 18장, 19장
미가의 제사장의 종교적 타락, 단 지파의 배교 행위, 기브온에서 일어난 반인륜적 사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종교적인 타락, 17~18장은 사사기의 결론의 첫째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미가가 개별적으로 신당을 만든 것, 자기의 집을 섬기는 제사장을 고용하는 것과 단 지파가 북쪽으로 옮겨간 것 등에 대해서 묘사합니다. 그리고 단 지파는 이동하는 과정에서 미가의 집에서 섬기던 제사장을 데리고 갔고 또한 미가의 신당에 있던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빼앗아갔습니다.
17:1~6절
17: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의 한 가정의 종교적인 타락>
이 절들은 미가라고 불리는 어떤 아들이 어머니의 은 천백 냥을 훔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미가가 자기의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자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을 꾸짖는 대신에 관대하게 용서해 줍니다. 나아가 어머니는 아들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절들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가와 미가의 어머니는 율법에 어긋나는 배교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합니다.
구약의 드라빔과 오늘날 드라빔
'한 신상을 새기며', 십계명은 이와 같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엄격하게 지시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나무를 파서, 바위를 잘 다듬어서, 또는 금속을 녹여 부어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미가의 어머니는 은으로 한개의 신상을 새기며 또한 한개의 신상을 부어 만들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때때로 여호와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종교적인 관행을 통해서 여호와를 경배하면서도 자신이 여호와에게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미가의 집'은 여행자와 친척이 머무를 수 있는 방들에 갖춘 다양한 구조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1~4절).
'신당',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집'(히, 베트 엘로힘)을 뜻합니다. 이 신당은 이스라엘 백성이 공적으로 예배드리는 진정한 성소를 변질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었고, 또한 미가는 '에봇'과 '드라빔'(어떤 가정에서 섬기던 신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가는 자기의 아들을 자기의 가정을 위한 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이것은 제사장에 대한 모세 율법을 어기는 행위였습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적인 예배에 의해서 위임된 것입니다. 미가는 아론의 자손도 아니었습니다. (제단에서 회생제물을 드리는 일은 오직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미가는 성소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았던 레위인도 아니었습니다(5절).
7~13절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어떤 레위인의 종교적 타락>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한 레위인이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제사장에게 좋은 보수와 안전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미끼로 삼아서, 미가는 그를 자기 개인과 자기 집을 위한 제사장으로 고용합니다.
'베들레헴의 레위인', 이 레위인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지역에 잠시 살고 있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 받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다른 지파들의 지역에 위치한 마흔여덟 개의 성읍이 레위인에게 거주지로 주어졌습니다(수 21장). 레위인들은 그 성읍들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레위인에게 주어진 성읍이 아니었습니다. 이 레위인은 자신이 에브라임 산지에 있던 미가의 집에 정착하는 것과 또한 미가의 아들 대신에 미가의 집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는 것에 대단히 만족해했습니다(7~13절).
<단 지파의 종교적인 타락>
단 지파에 속한 다섯 명의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미가의 집에 살고 있던 레위인에게 더 많은 돈과 더 큰 세상적인 명예를 제공합니다. 그러자 그 레위인은 기뻐하며 단 지파를 위한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그들을 따라갑니다. 미가의 가정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단 지파 전체가 제사장과 관련된 율법 규정을 어 깁니다.
18:14~20절
18:14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15 다섯 사람이 그 쪽으로 향하여 그 청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에게 문안하고 16 단 자손 육백 명은 무기를 지니고 문 입구에 서니라 17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갈 때에 그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18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니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20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
미가는 스스로 사적인 예배(또는 우상 숭배)를 드리기 위해서 필요한 대상물을 만들어서 집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미가의 잘못된 신앙관을 잘 드러내줍니다. 미가의 잘못된 예배 행위에 대해서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단 자손은 자신들이 사용하려고 그 대상들을 빼앗아갔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단 자손이 본문에서 언급되는 레위인에게 말한 내용은 미가가 이전에 그 레위인에게 말한 것과 똑같습니다.
단 지파는 그 레위인에게 더 많은 돈과 더 큰 명예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그 레위인은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 행위가 어떠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단 자손은 다른 지파를 약탈했습니다. 단 자손의 이와 같은 행위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뱀이나 독사처럼 악하게 다를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창 49:17)을 성취시킨 것입니다(14~20절).
21~31절
21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더니 22 그들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붙어서 23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하니 24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간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27 단 자손이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여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 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 29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였더라 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미가가 살고 있던 성읍으로 부터 달아나면서 단 자손은 자신들이 훔친 값진 물건들을 대열의 맨 앞에서 가게했습니다. 그리고 무기를 지닌 사람들을 맨 뒤에서 오겠습니다. 이것은 미가나 또는 미가의 이웃들이 쫓아와서 그 물건들을 다시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30절에서 이 레위인의 가계뿐만 아니라, 또한 이름이 처음으로 소개됩니다. 그는 모세 손자로서 이름은 요나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심각한 배교 행위는 심지어 모세의 직계 자손에게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사로잡히는 날'(30절) 이 표현은 남유다 왕국의 백성이 바벨론 제국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날(주전 587년)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면 단 지파는 맨 북쪽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북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이 앗수르 제국으로 사로잡혀 갔던 사건(주전 722년)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북이스라엘의 열 지파중에 에브라임 지파와 단 지파의 배교 행위는 너무 심각해서 요한계시록 7장에서 두 지파는 제외되고 레위 지파와 요셉 지파가 열두 지파에 포함됨). 어쨌든 단 지파의 제사장 요나단과 요나단의 자손은 몇 세기 동안 단 지파 안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 역할은 포로로 끌려가는 것과 더불어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21~31절).
<기브아에서 일어난 반인륜적 사건>
이 장에서는 성경에서 언급되는 가장 추악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가 소개됩니다. 곧 기브아 성읍의 불량배들은 어떤 레위인의 첩을 강제로 윤간하고 나서 냉혹하고 잔인하게 그 여인을 그대로 길거리에 내버려두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19:10절~21절
19:10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 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16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그 당시 예루살렘은 가나안 족속 가운데 하나인 여부스 족속의 통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12절에서 여부스는 이방 사람의 성읍이라고 불립니다. 기브아는 예루살렘에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레위인은 예루살렘보다 기브아가 자신들이 밤을 지내기에 더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브아에는 이방인이 아니라, 베냐민 자손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날 밤 이 레위인에게는 대단히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노인이....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이스라엘의 도덕적인 부패 상태를 지적하는 것으로서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이 레위인을 맞아들인 사람은 기브아 주민이 아니라 반면에 에브라임 산지에서 그곳으로 이주한 어떤 노인이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이 레위인과 레위인의 첩에게 제공한 접대는 결코 접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돔 사람들이 롯의 방문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접대 방식이었습니다. 곧 레위인과 특별히 레위인의 집을 정면으로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할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은 도덕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부패했습니다(10~21절).
22~30절
19: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불량배들', 히브리어 본문에는 '베네 벨리야알'(벨리야의 아들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벨리알'은 '무가치한' 또는 '부패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입니다. 그런데 신구약 중간 시대의 문헌에서 이 히브리어 단어는 사탄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고후 6:15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벨라인이 어찌 조화되며'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벨리알은 바로 사탄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곧 문자적으로 "우리가 그를 알고자 한다"를 뜻합니다. 이 히브리어 동사는 성관계를 갖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9:5에서도 똑같은 히브리어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해당 본문에서 소돔의 남자들은 롯을 찾아온 손님들과 동성애를 즐기고자 했습니다(22절).
이 레위인이 자기의 첩의 죽음에 대해 보여준 반응은 이 레위인의 마음이 얼마나 돌덩이처럼 냉혹한 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줍니다. 이 잔혹한 레위인은 자기의 첩의 시체를 열두 도막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도막식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12지파가 기브온으로 달려오게 했습니다. 나중에 사울도 한 겨리(두 마리)의 소를 잡아서, 도막들을 내어 열두 지파에게 보냈습니다(삼상 11:7).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구절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곧 기브아 사람들의 냉혹하고 잔악한 행위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첩의 시체를 열두 도막을 낸 것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전자를 가리킬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27~30절).
도덕적으로 극악한 사건이 일어난 기브아는 베냐민 자손의 성읍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를 징계하기 위해서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지파들의 총회가 소집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분명히 이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파들에게 그 사건에 가담했던 불량배들을 내어주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베냐민 지파는 전쟁을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