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오밥식물원
글/ 구자선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로 초긴장 상태입니다. 하루 확진자 오천 명 시대. 멈춰라. 제발! 이라고 외치지만 이 발이 말을 들어야 말이지요. 화성에 있는 바오밥식물원에 갑니다. 따뜻한 커피와 달달한 베이커리가 있는 곳, 야자수와 바오밥 나무가 있고, 바오밥 열매로 과자를 만들어 파는 식물원 카페입니다. 복잡한 듯 한산한 숲속에 앉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태어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언젠가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한 줌 흙이 되겠지만 지금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살아 숨 쉬는 동안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 속에 묻혀 웃고 떠들고 생각하고 말하며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채워갑니다. 푸른 숲이 좋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발을 디디고 새로운 풍경과 만나는 시간이 나는 좋습니다. 흔하지 않은 풍경 앞에서 감탄사를 내지르며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내 살아있음의 꿈틀거림을 감사하게, 겸허히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새들은 지저귀고 사람들은 재잘거리며 사랑을 나눕니다. 세상 속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저울질도 하겠지만, 숲에 들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만납니다. 보잘 것 없는 내 하나의 사람. 작고 연약한 내 안의 우주. 내 하나를 완성하는데 평생을 걸어도 늘 아쉬움만 남는 날들, 그 속에서 자연에 묻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준비하는지 하나씩 되짚어봅니다.
나는 지금 보잘것없는 들꽃 하나를 바라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누구도 눈길 주지 않지만 홀로 당당하게 제 키를 키우고, 환하게 꽃을 피우는 들꽃 하나를 바라봅니다. 흔하디흔한 망초꽃, 널린 토끼풀꽃, 짓밟히며 자라는 질경이, 바라보면 볼수록 대견하고 경이롭습니다. 나도 자연 속에서는 흔하디흔한 사람꽃이지만 내 안에는 다 보여줄 수 없는 광활한 우주가 공전과 자전을 거듭하며 제 몸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크게 자란 소철을 바라봅니다. 한 개의 손가락 마디가 튀어나와 천 개의 손을 만들고 그 손이 자라나 시들고 나면 그때 하나의 결이 만들어집니다. 시간은 무수한 점을 만들고 점들은 자라나 숲이 됩니다. 구부러진 마디가 조금씩 허리를 펴고 퍼즐을 맞추듯 나란히 제 키를 키우면 나무는 더욱 울창한 숲이 됩니다. 켜켜이 쌓아올린 소철의 비늘이 오래된 이무기의 허물을 닮아 있습니다. 사람도 오래 버티면 저 소철처럼 세월의 허물이 늘어갈 것입니다. 곧고 아름다운 소철의 결이 되고 싶어 나는 지금 여기에 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통 넓은 바오밥 나무도 봅니다. 둥근 몸통이 마치 물통 같습니다. 그 둥치만으로도 물통이 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사실 바오밥 나무는 그리 흔한 나무는 아닙니다. 어린왕자의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나무가 이렇게 내 앞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혼자서는 안을 수도 없는 물통을 높이 바라봅니다. 하마 등껍질 같은 둥치에 작은 식물 트리안이 제 집인 양 터를 잡고 타고 오릅니다. 밋밋했던 나무 둥치가 트리안을 품고 한 땀씩 초록 무늬를 수놓아갑니다. 한 땀씩 손잡고 나무를 오르면 초록물통이 되고 말 것입니다.
호주 퀸즈랜드 원산의 바오밥 나무는 영하 10도에서 섭씨 50도를 견디며 자라는 튼튼한 나무입니다. 자라는 속도는 느리지만 최대 20미터까지 자란다 하니 고층 아파트 한 채가 부럽지 않습니다. 몸통에는 물이 그득 담겨 있고, 오래 비가 오지 않아도 끄떡없이 견딥니다. 종 모양의 노란 꽃은 잎 속에 숨어 피고 지며 보트 모양의 열매를 맺습니다. 마치 소인국의 미니보트 같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높이 자란 야자수, 떡갈나무, 고무나무, 지붕을 장식한 부게인빌레아가 보랏빛, 핑크빛으로 가득합니다. 가끔은 이렇게 가슴을 펴고 하늘을 바라볼 일입니다. 차가운 겨울바람 아랑곳없이 뜨겁게 햇살을 품으며 제 키를 키우는 바오밥 나무숲에 아이의 청아한 웃음소리가 잔잔하고 경쾌한 음악 속에 묻어 파랗게 울려 퍼집니다. 한 주간 열심히 달려온 내게 주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맑은 숲에 조용히 앉아볼 일입니다.
첫댓글 저도 따라 하고 싶은 명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