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李天秀) | ||
개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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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Lee Chun-Soo | |
출생일 | 1981년 7월 9일(1981-7-9) (27세) | |
출생지 |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 |
키 | 172cm | |
포지션 | 윙 포워드 / 윙어 / 공격형 미드필더 | |
클럽 정보 | ||
현 소속팀 | 전남 드래곤즈 | |
등번호 | 9 | |
유소년 클럽 | ||
2000-2001 | 고려대학교 | |
클럽1 | ||
연도 | 클럽 | 출장수 (골) |
2002-2003 2003-2004 2004-2005 2005-2007 2007-2008 2008 2009- |
울산 현대 호랑이 레알 소시에다드 → 누만시아 (임대) 울산 현대 호랑이 페예노르트 → 수원 삼성 (임대) → 전남 (임대) |
36 (15) 13 (0) 15 (0) 48 (17) 12 (0) 3 (1) |
국가대표팀2 | ||
2000- | 대한민국 | 79 (10) |
1 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만 카운트되며, |
이천수(李天秀, 1981년 7월 9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윙 포워드이다. 현재 페예노르트에서 임대되어 전남 드래곤즈 소속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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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출생으로 부평초등학교, 부평동중학교, 부평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였다. 경기장을 논바닥처럼 힘차게 휘젓고 다닌다고 하여 '미꾸라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빠른 측면돌파로 부지런하고 민첩하게 공간으로 빠져나가 상대 수비 두, 서너명을 순식간에 제친다 하여 '아시아의 다람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2001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한 뒤, 2002년 K-리그 준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신인상을 받게 되었고,[1] 2002년 FIFA 월드컵에서의 활약과 K-리그의 활약을 종합하여 'AFC 올해의 신인상'에 선정되었다.[2] 2002년 FIFA 월드컵 직후 레알 소시에다드에 이적하면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첫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3] 그러나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이듬해에 CD 누만시아로 임대되었다.[4] 하지만 CD 누만시아에서도 부진을 떨치지 못해 결국 2005년 3월에 국내로 복귀했다.[5] 국내로 복귀해서는 다시 기량을 회복했고, 인천 유나이티드와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고[6][7]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역대 최소 경기로 K-리그 통산 50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는 등[8] 친정팀인 울산 현대 호랑이가 우승하는 데 한 몫 하였으며, K-리그 MVP를 받았다.[9] 2006년 팀이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는데 한 몫 하였고,[10] A3 챔피언스 컵에서는 J리그 우승팀 감바 오사카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6-0 승리를 견인했고[11] 중국 슈퍼리그 우승팀 다롄 스더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여 4-0 승리를 견인하는 등[12] 총 6골을 넣어 대회 MVP와 득점왕에 뽑히기도 하였다.[13]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알 샤바브를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쳐 6-0 승리를 견인하는데 크게 공헌하여[14] 팀의 4강행을 이끌었다.
2007년 8월 31일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페예노르트로 이적이 확정되면서, 다시 한 번 유럽 리그로 진출하였다.[15] 초반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눈에 띄었으나, 선발과 교체 출장을 반복하다 2008년 1월 발목 부상으로 리그 막바지에 복귀했지만 부상 재발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어서 2008년 7월 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1년간 임대되면서, K-리그 무대에 다시 복귀하였다.[16] 그러나 부상을 당하여 제대로 출전하지 못하였고,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결장하였다. 그 후 무단으로 훈련에 불참하기까지 하여 수원 삼성 블루윙즈 구단은 그 해 12월 24일에 그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하고 방출하였다.[17] 우여곡절 끝에 전남 드래곤즈의 박항서 감독에 의하여 전남 드래곤즈에 들어왔고,[18]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봉을 백지 위임하였다.
2000년 4월 5일,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라오스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4강진출에 기여했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다시 국가대표로 활약하였다. 특히, 예선 1차전 토고전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예선 3차전 스위스전에서의 패배로 16강행이 좌절되었고, 그라운드에 엎드려 펑펑 우는 이천수의 모습은 경기를 시청하던 국민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2007년 2월 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친선경기에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어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19] 이 골은 축구팬들이 뽑은 '2007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20]
172cm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그라운드 여기저기를 누비며 예리하게 상대 빈틈을 파고드는 플레이로 대표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바람같은 움직임과 정확한 슈팅은 이천수의 강점 중 하나이며, 상대가 누구든지 주눅들지 않고 겁없이 달려드는 플레이가 인상적이다.
그는 프리킥으로 많은 골을 뽑아냄에도 불구하고 페널티킥 성공률이 좋은 편이 아니다. 많은 이들에게는 2000년 하계 올림픽 조별예선 모로코전의 결승 득점으로 기억에 남아있으나 이 결승득점은 페널티킥 상황에서 그가 찬 볼이 골키퍼의 발에 맞고 나온 것을 득점으로 연결한 것이고, 2006년 A3 챔피언스컵의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전에서 페널티킥 키커를 자처했다가 상대 골키퍼의 품에 안기는 실축을 범했다.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와의 경기 후 그는 언론에 "의식적으로 가운데로 찬 공이 골키퍼에게 걸린다. 앞으로는 차지 않겠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천수는 타고난 스타기질을 가진 선수이다. "미꾸라지"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그는 그라운드를 부지런히 휘젓고 다닌다. 이 별명은 재야운동가인 백기완 선생이 직접 붙여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는 돌출행동이나 발언은 수많은 안티팬들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2002년 FIFA 월드컵 직후 자서전 형식으로 출간된 "당돌한 아이 이천수가 말하는 월드컵 뒷이야기"라는 책에서 "국내에는 존경하는 선수가 없다", "모 선배는 바람둥이다", "황선홍 선배에게 맞았다는 소문을 들은 친구들이 황선홍 선배를 때리려고 했다"는 내용이 실린 것에 대한 기사가 보도된 일과 2003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면서 "야구가 싫었다"는 발언을 한 기사가 보도된 일, 레알 소시에다드에서도 그는 "여기에 오래 있지 않겠다. FC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서 몸값이 최고인 선수가 되겠다"는 발언을 하는 기사가 실리는 등 지금까지의 자신에 관한 신문기사가 팬들의 심기를 건드릴 뿐만 아니라 K-리그에서 그는 잦은 돌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이유로 안티팬들은 그에게 "입천수", "혀천수"같은 달갑지 않은 별명을 붙였다.
급기야 2006년 10월 22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심판에게 욕설을 하였고,[21] 6게임 출장 정지를 당하였다.[22] 뿐만 아니라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할 당시에도 폭행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고, 열애설에다 고소까지 당하기도 했다.[23]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한 후에는 2009년 3월 8일 K-리그 첫 경기인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슛을 성공시켰음에도 오프사이드 판정이 선언되자 주먹 감자를 날린 뒤 총을 쏘는 시늉을 하였고, 이것이 중계 화면에 잡히면서 또 다시 문제를 일으켰으며,[24] 이에 대한프로축구연맹은 다음 날인 3월 9일 상벌위원회를 열었고, 그에게 6게임 출장 정지와 벌금 600만원, 홈 경기에서 선수 입장식때 페어플레이기 기수로 등장하라는 사회봉사활동을 명령하였다.[25]
2005년에는 정몽준 전 축구협회장과 함께 고양 백양중학교에서 일일 특강을 하기도 했다.[26]
한 때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김지유와 교제한 바 있으나, 2006년 결별하였다. 그 이후 베이비복스 출신의 연예인 심은진과 잠시 교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