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와 축제 행사
이기정
지역 특산물이나 문화 등을 내세운 각종 축제가 전국 지역마다 홍수를 이루고 있다. 특히 도자기 축제는 경기도 이천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5천 년경부터 토기로 시작하여 고려청자, 조선 분청사기, 조선백자로 이어져 오면서 우리 인간 생활과는 밀접한 생활용품이다. 다른 문화행사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도자기 축제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전국적인 규모로 처음 시작한 곳은 대한도자기공업협동조합과 KBS가 공동으로 1982년 서울 여의도 KBS 별관 건너편 공군부지 공터에서였다. 첫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매년 전경련회관 옆 공터, 중소기업 전시관, 잠실 운동장 광장, 코엑스 뒤 공터 등에서 개최하다 2002년 11월 인천 문학경기장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나는 축제 행사 개최 실무자로 근무하면서 보람도 컸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초창기에는 공동 주최자인 KBS의 적극적인 협조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방송사 여건도 크게 달라져 초기와 같이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행사를 개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행사를 개최할 때마다 내일은 관람객이 많이 올까 많이 팔릴까? 누가 행패는 부리지 않을까 하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1992년 마지막으로 개최한 인천 문학경기장 행사는 축제 이야기만 들어도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문학경기장의 사용 허가를 인천시와 협의하는데 행사장 내에 식당 운영권을 인천시 부녀회에 주라고 한다. 행사를 원활히 진행하려면 먹거리가 중요한 몫을 한다. 물론 제품에 관심이 있어 방문하지만, 관람객이 편히 쉬면서 외식을 겸해서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 요식업체에 맡기면 행사 운영에 도움이 되겠지만 어차피 시의 협조가 있어야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가 있어 시의 의견에 따랐다. 대신 시내 주요 교통요지에 도자기 축제 홍보용 탑과 육교 현판 등 설치 허가를 적극 협조하여 주기로 했다.
부스 설치 작업을 한창 진행하는데 모 단체에서 찾아와 자기들한테 식당 운영권을 달라고 한다. 인천시에 넘겼으니, 시와 협의하여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야 내일 당장 동원 시켜”라고 한다. 다음날 현장에서 신촌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휠체어 탄 사람 20여 명이 와서 현장을 점검하여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급히 경기장으로 가서 책임자를 만나 영세한 도자기 업계의 형편을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하여 해결하였다. 행사장과 홍보물 설치와 방송 광고용 영상물 제작도 마무리되었다.
국내 업체들의 참가 신청을 받아 부스 배정을 앞두고 중국에서 연락이 왔다. 중국 도자기 업체들이 참가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행사 비용에 큰 도움이 되니 당연히 승낙하고 싶었으나. 저가의 중국산 수입으로 국내 도자기 업체들의 피해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섣불리 승낙하기가 어려웠다. 업계들과 협의하여 최종적으로 2 컨테이너 물량을 판매는 하지 않고 전시만 하기로 계약하였다. 개막일을 이틀 앞두고 중국산 전시품이 입고 되는데 무려 40피트 대형 컨테이너 12대가 왔다. 약속과 다르니 2 컨테이너만 입고하고 나머지는 반송하라고 하였다. 중간에서 모집하여 우리와 계약을 한 업체가 중국업체들을 속인 것이다. 중국대사관에서 호출이 떨어졌다. 명동 중국대사관에 가서 계약서를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하였더니 돌아가라고 한다. 결국 중국대사관의 중재로 전시와 판매를 하기로 합의하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머리를 짧게 깎고 체격이 우람한 젊은 사람이 찾아왔다. 경비용역을 자기들한테 달라는 것이었다. 경비용역 업체와 계약이 끝났다고 하니 행사를 잘 치르는지 보자며 갔다. 개막 후 관람객 차량이 행사장으로 들어오려면 건장한 청년들이 경기장 밖에서 차량 진입을 막고 험악한 얼굴로 출입하는 관람객들한테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책임자를 만나서 어렵게 설득하여 행사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행사가 끝났으나 중국업체들의 12 컨테이너 물량이 거의 그대로 남았다. 그러자 남은 물건을 우리한테 인수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철수 못 하겠다고 한다. 현장에서 중국대사관 직원과 인천시와 협의하여 중국업체들은 5일간 철수를 연장하여 판매하도록 합의하였다. 그러나 물량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결국 남은 물건은 대사관 측에서 화교들을 불러 인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회사도 큰 비용 손실을 보고 행사를 마쳤다.
축제 행사가 국내 도자기 제품의 우수성을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고 수출 증대에 기여를 하였으나 정부 지원 없이 업체 참가비로는 행사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렇다고 업체들에 참가비를 올릴 수도 없는 실정이라 결국 개최 시작한 지 20년 만에 많은 사연을 남기고 인천 문학경기장 행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어렵게 시작한 행사가 현재는 전국 각 지역에서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