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최명애
아침에 전화벨이 울렸다. 작은 손자가 열이 심해 입원한다는 기별이다. 큰 손자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부랴부랴 서울로 향했다.
어린이집 하원때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뛰어왔다. 엄마와 동생이 안보여도 잘 놀아주니 기특하였다. 낮에 잘 놀던 아이가 저녁이 되어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하였다. 퇴근해서 온 아들은 해열제를 먹으면 괜찮아진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걱정이 되어 아이 곁에서 수시로 열 체크를 하느라 밤을 꼬박 세웠다. 새벽까지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결국 다음 날 아침에 엄마와 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이의 몸이 싸늘했다. 아이를 들추어 업었다. 병원 현관에서 며느리를 발견하고 몸의 중심이 비틀거리며 앞 쪽으로 몇 발자국 휘청거리다 넘어졌다. 마음이 급한 탓이었는지 차도와 연결된 턱에 걸렸다. 등에 업힌 아이를 놓지 않으려고 했지만, 넘어짐과 동시에 아이가 위쪽으로 밀려나와 쑥 빠져나와 내동댕이쳐졌다. 아뿔싸,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머리를 든 순간 몇 미터 앞에 떨어진 아이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며느리와 주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놀란 표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손자의 얼굴과 몸 이곳저곳을 만져 보았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나를 부축하며 염려하는 며느리의 소리가 귀에 들릴 리 없었다. 옆에서 깔깔 웃으며 “할머니, 너무 웃겼어요.”하는 해맑은 손자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40년 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직장생활을 하느라 친정어머니가 아들을 돌보았다. 퇴근 후에 아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었다. 포대기로 아이를 둘러쌌으니 다행히 아기는 등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아픈 것은 아랑곳할 겨를이 없었다. 부끄러워 벌떡 일어났다. 아픈 무릎을 주무르고 있을 때 깔깔 웃으며 “한번 더해 봐!”라며 졸랐다. 몸이 말 타듯이 덜컹덜컹거렸으니 재미있었나 보다. 순수하고 귀여운 녀석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아들이 결혼 한 후에 이야기를 들려 주었더니 “아이구 불효자네.”하며 씨익 웃었다. 내 어깨를 시원하게 주물러 주었다. 옆에 있던 며느리도 “어머니 큰일 날뻔 했어요 우리 남편 안다쳐서 정말 다행입니다.”라고 거들었다.
만약에 열이 나고 있는 손자를 다치게 했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면목이 없었을까? 밤잠을 설치고 몸과 마음이 균형이 깨어진 탓이었지만, 평생 손자를 보며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 거다. 저녁에 퇴근한 아들이 무릎에 약을 발라주고 파스를 붙여 주었다. 할머니들의 손자사랑이 지극하지만 애써 아이를 본다고 해도 다치기라도 하면 아이 본 공은 어디가도 쥐구멍이라도 찾았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친정어머니가 우리 아들을 9살까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마음 따뜻한 아이로 키워주셨다. 아들은 큰 탈 없이 건강하게 키워 준 외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하고 고마워한다.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주며 안부를 묻고 방문도 자주 한다.
나 역시 외할머니 사랑을 잊을 수 없다. 할머니는 어릴 때 다친 탓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편식이 심한 나를 위해 밥을 먹도록 하려고 무진 애를 쓰셨고, 추운 겨울에도 밤에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면 사러 나가셨다. 시험기간에는 공부하는 손녀가 잠이 올까봐 늦은 시간 까지 옆에서 함께 불경 책을 읽으셨다. 갑작스런 심정지로 떠나셔서 안타깝고 슬프지만, 할머니께 받은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며느리의 육아 휴직이 끝나고 2년 정도 큰 아이의 육아를 맡았었다. 내 아들을 키울 때 돌보아주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해주고 싶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 기다려주었다. 아이가 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즐겁게 보니 다 귀여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바르게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으로 사랑하고 인성이 좋은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었다.
요즘도 “할머니 어부바 하고 싶어요.”하며 씨익 웃는다. 아기때 자주 업혔던 기억이 좋았던 모양이다. “할머니 그때 병원에서 넘어졌잖아요.”하며 재미삼아 종종 이야기를 한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정말 해맑고 귀엽다,
아들이 할머니 사랑을 기억하고 있듯이 6살이 된 손자도 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는 듯하다. 그래, 내리사랑이 최고다. 할머니들의 내리사랑은 하늘 아래에서 어느 것보다 귀하다. 손자의 해맑게 웃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첫댓글 할무이 한번 더 넘어지기 해줘요.
ㅍㅎㅎㅎ
귀여워라
나도 가끔은 외손 때문에 서울로 불려가는데요 무척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