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장,
“여보세요!”
선미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 아프세요?”
또 다시 고개만을 끄덕이는 선미였다.
“우선 여기를 내려가야만 합니다. 제가 부축을 해드릴 테니 일어서실 수가 있겠습니까?“
선미는 간신히 일어서 보려고 했지만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려나간다.
박정구는 선미를 들쳐 업는다.
“저 아래 있는 차가 댁이 타고 온 차가 맞습니까?”
선미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다.
산에 올라올 때 보았던 승용차가 생각이 난 것이다.
워낙에 산골에 있는 산이다.
평소에 마을 사람이 아니면 이 산에 무덤이 있는 외지 사람들만이 가끔씩 찾아오는 그런 산골에 있는 산이었다.
박정구는 이런 조용하고 한적한 산이 좋아서 이곳에 내려와 있을 때면 하루에 한 번씩을 오르곤 하는 그런 산이다.
박정구는 선미를 차가 있는 곳까지 업고 내려온다.
“아무래도 이 상태라면 운전을 못하실 겁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내 집이 있으니 가서 잠시 쉬었다가 몸이 회복이 되신 다음에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차 키를 주십시오.”
선미는 핸드백을 통째로 내어준다.
박정구는 핸드백을 열고는 차 키를 찾아서 문을 연 다음에 선미를 태우고는 자신이 운전을 해서 선미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아무도 없는 집이다.
가끔씩 내려와서 쉬었다 가는 박정구만의 집이었다.
박정구는 선미를 방에 눕혀놓고는 이불을 덮어준다.
“여기는 병원이 멀어서 어쩐다?”
선미는 방에 눕히자 그대로 죽은 듯이 잠이 든다.
며칠 동안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던 선미는 그대로 혼수상태가 된 것이다.
박정구는 선미의 소지품을 꺼내서 전화번호를 뒤진다.
선정이의 전화번호가 맨 위에 있다.
이미 선미의 신원파악은 운전면허증으로 인해서 확인을 하고난 후였다.
“저 신 선정씨 되십니까?”
“네!”
“신 선미씨라고 알고 계시는지요?”
“네! 제 언니가 됩니다만............ 누구신가요?“
“여기는 경북 영주입니다. 선미씨가 산에서 쓰러져 계시기에 우선 제 집으로 모시고 나서 전화를 드립니다.“
“네? 언니가요? 지금 상태가 어떤가요?“
선정이의 다급한 음성이다.
“아마 혼수상태인 것 같습니다만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제 언니는 암 환자입니다. 거기가 어디쯤인지 제가 가겠습니다.“
“네! 그러시군요. 그러시다면 그쪽에서 오시는 것보다는 제가 모시고 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군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더 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너무 심한 폐를 끼쳐드리는 것이 아닌지요?”
“환자가 급한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어느 병원으로 모시고 가면 되지요?“
선정이는 병원을 알려준다.
안 그래도 혼자서 여행을 떠난 언니가 걱정이 되고 궁금했던 가족들이다.
고집을 피워서 보내기는 했으나 김 여인은 한숨도 자지를 못하고 애가 타는 중이다.
선정이의 연락을 받은 김 여인은 숨을 쉴 수조차 없이 가슴이 아파온다.
영주라면 죽은 남편의 산소가 있는 곳이라는 걸아는 김 여인의 가슴은 더욱 통증이 심해져온다.
얼마나 외롭고 허전했으면 기억도 잘 나지도 않을 그곳엘 갔다는 말인가?
얼마나 쓸쓸하고 가슴이 고독했으면 그래도 남편이라고 그곳에 갔더란 말인가?
김 여인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성경화는 마침 그 때 도착을 한다.
시누이인 선정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성경화는 시어머니가 걱정이 된 것이다.
“어머님! 너무 그렇게 우시지 마세요.“
“어멈아! 우리 선미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으면 그곳에 갔더란 말이냐? 연애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일점혈육도 남기지도 못하고 겨우 삼년 남짓 살고 떠난 사람을 아직도 남편이라고 믿고 가슴에 있는 말을 토하고 싶어서 그곳에 간 것이다.“
“어머님! 저희가 좀 더 형님의 마음을 알고 가까이 다가갔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작은형님이 너무 불쌍해요.“
성경화도 함께 눈물을 흘린다.
“어머님! 병원에 가실 준비를 서두르세요.“
“아버지는 어떻게 하나?”
“어머님! 아버님은 제가 정성껏 모실게요. 지금부터 저희가 여기에 있으면서 아버님을 잘 모실 테니까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고 작은형님을 간병해 드리세요.“
“그래도 되겠니?”
“저희보다야 작은형님께는 그래도 어머님이 제일 좋고 편하실 겁니다.”
“그래! 어멈아! 아버지를 네게 맡기고 간다.“
김 여인은 큰 며느리의 마음 씀이 너무나 고맙다.
박정구는 선미를 우선 가까운 병원에 데리고 간다.
급한 대로 혼수상태에서는 깨어나게 하는 것이 순서일 것만 같았다.
다행히 선미는 그리 오래지 않아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사람이 어찌 그리도 무모하십니까? 그 몸으로 이 먼 곳을 혼자서 올 생각을 하다니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폐를 끼쳐서 무엇으로 보답을 드려야할지...........“
선미는 모르는 사람에게 너무 신세를 지고 폐를 끼쳐주고 있다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모른다.
“제가 서울까지 모시고 갑니다.”
“아니에요! 이제 저 혼자서도 갈 수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폐를 끼쳐드렸습니다.“
“이미 서울 가족들에게 연락을 다 드렸습니다. 형제분이 내려오시겠다고 하신 걸 제가 모시고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박정구는 운전대를 잡는다.
선미는 아무런 말도 하지를 못하고 박정구가 하는 대로 운전석의 옆자리에 앉는다.
박정구는 의자를 비스듬히 해서 선미가 편안하게 누운 자세를 하게 해 준다.
“병명은 이미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의학이 얼마나 발달이 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암 정도는 이제 불치병이 아닙니다. 그러나 댁처럼 그렇게 도망을 다니다가는 정말 고치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그 정도의 고통을 받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사람마다 모두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그 실상을 파헤치고 들어가 보면 그 나름대로 모두 한두 가지의 고통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힘을 내시고 이겨 내십시오.“
“충고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제 아내를 잊기 위해서 가끔씩 여기에 내려와서 지내곤 한답니다. 제 아내는 십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그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아내를 잊지를 못해서 아직도 괴로워하고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아내를 세상 어느 무엇보다도 사랑했습니다.“
박정구의 얼굴에 슬픔이 묻어난다.
한동안 박정구는 입을 다물고 운전에만 몰두를 한다.
선미는 그런 박정구를 말없이 지켜볼 뿐이다.
“열심히 치료를 받으십시오. 살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다면 이겨내지 못할 병이 없습니다. 왜 치료를 받아보지도 않고 도망을 가려고 생각을 합니까?“
“아마 이젠 지칠 대로 지친것만 같아요. 더 이상 살아가야할 이유도 욕망도 없고요.“
“그래도 아직은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부모님보다 앞서 갈 생각을 합니까?“
“.........................”
박정구는 운전을 하면서도 선미의 상태를 살핀다.
“아무런 신경도 쓰시지 마시고 눈을 붙이세요.” “그래도 어떻게?..................”
“모셔다 드리기로 약속을 했으니까 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박정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운전에만 신경을 쓴다.
병원에 도착을 하자 이미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선 선미의 상태부터 살핀다.
“아 이고! 선미야! 괜찮은 거니?“
김 여인은 선미를 보자 또 눈물 바람이다.
“엄마!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셨지요?“
“내가 걱정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 몸은 견딜 만하고?“
선미는 응급실로 들어간다.
또 다시 각종 검사가 이뤄지고 나서야 선미의 입원이 결정이 된다.
하루라도 수술을 늦출 수가 없다는 것이 의사들의 결정이다.
박정구는 말없이 모든 상황들을 지켜본다.
선미가 병실로 올라가자 그제야 가족들은 박정구에게 감사의 인사들을 한다.
“이렇게 신세를 져서 무엇이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종엽이가 인사를 한다.
“그래도 그만 하시기가 정말 다행입니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이 되어서 수술만 잘 받으시면 좋아지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디 나가서 저희들하고 식사라도 하십시다.“
“아닙니다. 저는 오늘은 바빠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박정구는 종엽이가 함께 식사라도 대접해 주려하자 바쁘다는 말로 그 자리를 떠난다.
박정구는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이다.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이 혼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살았던 집이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자식들인 남매는 아내의 친정에서 공부를 시킨다고 미국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엄마도 없이 풀이 죽어서 지내는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나니 세상에 아무도 없는 외톨이가 되어버린 박정구였다.
아내하고는 영어와 수학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외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교수직을 꿈꾸던 사람들이었지만 결혼을 하고 학원을 운영해 보자고 한 아내의 말에 따라서 함께 학원을 운영해 오고 있었다.
학원은 생각보다 수강생들이 많아서 한창 붐비던 때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후 강의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 학생들을 보내야 하는데 갑자기 운전수가 급한 일로 차를 운전할 수가 없는 사정이 되었다.
평소에 운전에 자신을 가지고 있던 아내는 손수 학원 차의 핸들을 잡고 학생들을 귀가시키고 있었다.
갑자기 핸들 고장을 일으킨 시내버스가 학원차를 들이 받아 버렸던 것이다.
그 사고로 아내만 그 자리에서 숨지고 학생들은 다행히 다치기는 했어도 사망한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박정구는 날벼락 소식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를 못하고 방황을 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학원차를 운전했던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가정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던 것이다.
아이들은 누가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이 방황을 했고 삶이 버거워졌다.
다행히 처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제야 박정구는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자신이 더 이상 망가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을 수습을 하고 나서야 모든 것을 정리하고 대학에 시간제 강사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나이도 사십이 넘은 나이가 된다.
박정구는 일주일에 서너 번 나가는 강의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고향에 내려가 조용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리고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시를 쓰고 문단에 등단을 한 것이 이년이 된 것이다.
이제 박정구는 시간제 영어 강사로 보다 시인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선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선미의 외로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선미의 두 눈에는 깊고도 슬픈 외로움이 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너무나 슬퍼보여서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글: 일향 이봉우 |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자식들(23회)"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샘물은 퍼 낼 수록 맑아 지듯 우리도 자주 만나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