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Lectio 1 내 안의 위대한 유치함
Magna puerilitas que est in me
- 삶의 긴 여정 중의 한 부분인 학문의 지난(至難)한 과정은 어쩌면 칭찬 받고 싶은, 젠체하고 싶은 그 유치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 내 안에 유치함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비난하거나 부끄러워하기보다 그것이 앞으로 무엇이 될까, 끝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치고 힘든 과정에서 오히려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그러니 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의 그 마음이 그저그런 유치함이 아니라 '위대한 유치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 pp 26
Lectio 2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
Prima schola alba est
-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평소와 달리 잉여 시간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그냥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생각지도 않게 생긴 이 시간 도안 여러분이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운동장으로 나가 봄 기운에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는 겁니다. 봄날의 아지랑이는 강한 햇살을 받은 지면으로부터 투명한 불꽃처럼 아른아른 피어오르기 때문에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 pp 34
Lectio 3 라틴어의 고상함
De Elegantiis Linguae Latinae
Lectio 4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Lectio 5 단점과 장점
Defectus et Meritum
-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제가 처한 환경을 탓하며 쉽게 부모님을 원망하고 화를 잘 내던 아이였습니다. 가장 하기 쉬운 선택을 한 것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 부모님을 탓하는 것처럼 쉬운 선택으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태도를 바꾸는 것은 힘들지만 일단 제 태도가 변하면, 저를 둘러싼 환경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pp 63
Lectio 6 각자 자기를 위한 ‘숨마 쿰 라우데(최우등)’
Summa cum laude pro se quisque
Lectio 7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Ego sum operarius studens
- 사실 인생은 자신의 뜻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중 많은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마도 계속 그럴 겁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것이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전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냥 "셍 까"라고요.
중요한 건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해요. 그 둘 사이에서 허우적 그리지 말고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 pp86
- 안정적인 삶, 평온한 삶이 되어야 그때 비로소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요. 이것은 착각입니다. "지금 사정이 여러모로 안 좋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이 일은 혹은 공부를 할 수 없어. 나중에 좀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본격적으로 할 거야"라고 하지만 그런 시간은 잘 오지 않아요. 아니.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왔다고 하더라도 이미 필요가 없거나 늦을지도 모르고요. - pp 87
Lectio 8 캐사르의 것은 캐사르에게 돌리고 신의 것은 신에게 돌려 드려라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sunt Dei Deo
Lectio 9 만일 신이 없더라도
Etsi Deus non daretur
Lectio10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
Do ut Des
-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라틴 동맹을 유지시킨 가장 주요한 원칙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도 우트 데스 Do ut Des '입니다. 직역하ㅕㄴ '네가 주니까 내가 준다'인데요, 이를 테면 '기브 앤 테이크'라고 보면 됩니다. 쉽게 말해 공짜는 없다는 겁니다. - pp 115
Lectio시간은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
Tempus est optimus iudex
- 한참의 시간을 돌아와 생각해보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데는 바깥의 문제도 있지만 저의 태도 역시 바람직했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저의 능력이나 제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인정받지 멋했다고 생각하기보다, 오랜 시간 타인과신뢰를 쌓지 못했던 나의 문제도 성찰하고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걸 느끼는 순간 제 안에 차 있던 원망과 미움이 잦아들더군요. - pp 128
Lectio 12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 오늘날 이 명문을 우리 일상과 접목하면 "인간이 원하고 목표하던 사회적 지위나 명망을 취한 뒤 느끼는 감정은 만족이 아니라 우울함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 pp 136
-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달려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공부든 사랑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럴 수 있는 뭔가를 만나고 그만큼 노력을 한 다음에 찾아오는 이 우울한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또 다른 세게가 여러분 눈 앞에 펼쳐질 겁니다. - pp 137
Lectio 13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
- '함께'하고 '더불어'하는 일에 무심하고 귀찮아하지 않길 바랍니다. 내 작은 힘이나마 필요한 곳엔 '더불어' '함께'하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주위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삶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요? - pp 147
Lectio 14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Hodie mihi, Cras tibi
Lectio 15 오늘 하루를 즐겨라
Carpe Diem
-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캄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내일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오늘에 의미를 두고 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숱한 의역을 거쳐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으로 정착되었는데, 주목할 건 이 말이 쾌락주의 사조의 주요 표제어가 도었다는 겁니다.
이들이 추구한 쾌락은 세속적이고 육체적이며 일시적인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 다시 말해서 충만한 삶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 동양식으로 표현하자면 안분지족 安分知足을 의미합니다. - pp 162
Lectio 16 로마인의 욕설
Improperia Romanroum
Lectio 17 로마인의 나이
Aetates Romanorum
- 하늘의 새를 보세요. 그 어떤 비둘기도 참새처럼 날지 않고, 종달새가 부엉이처럼 날지 않아요. 각자 저마다의 비행법과 날개짓으로 하늘을 납니다. 인간도 같은 나이라 해서 모두 같은 일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개짓이 있어요.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나가는 겁니다. - pp 181
Lectio 18 로마인의 음식
Cibi Romanorum
Lectio 19 로마인의 놀이
Ludi Romanorum
- 휴식의 종류와 방법에 대해서는 아마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한두 시간씩 산책하는 게 좋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영화나 만화책을 보는 것도 휴식이 될 겁니다. 혹은 게임도 지나치지만 않다면 휴식의 일환이 될 수 있고요.
운동은 특히 권하는 바입니다. - pp 204
Lectio 20 아는 만큼 본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탄툼 비데무스 관툼 쉬무스) -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 사람마다 자기 삶을 흔드는 모맨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힘은 다양한 데서 오는데 그게 한 권의 책일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일 수도 있고, 한 곡의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잊지 못 할 장소일 수도 있고요. 그 책을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알았기 때문에, 그 그림을 알았기 때문에,그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그 장소를 만났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눈뜨게 되고 한 시기를 지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모멘텀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은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죠.그래야 책한권을 읽어도 가벼이 읽게 되지 않고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흘러듣지 않게 될 겁니다. 누군가와의 만남도 스쳐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의미 있는 만남이 될 것입니다. 한 순간 스치는 바람이나 어제와 오늘이 다른 꽃망울에도 우리는 인생을 뒤흔드는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 pp216
Lectio 21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Desidero ergo sum (데지데로 에르고 숨)
- 저는 끊임없이 '慾욕'하고 '망望'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위해 달릴 때 존재의 만족감을 느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나를 충만하게 하는 욕망이 필요한 때입니다. - pp 224
Lectio 22 한국 사람입니까?
Coreanus esne?
Lectio 23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ulare
Lectio 24 진리에 복종하라!
Oboedire Veritati!
Lectio 25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Vulnerant omnes, ultima necat
Lectio 26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Dilige et fac quod vis (딜리제 에트 픽 쿼드 비스)
- 누구도 자기 생의 남은 시간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그렇게 또박또박 살아갈 밖에요.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매일 매일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남은 생 동안 간절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p267
Lectio 27 이 또한 지나가리라!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케 트란시비트!)
- 지금의 고통과 절망의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엔가 끈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 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pp 274
- 마태복음 6장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에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pp272
-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기쁘고 행복한 그 순간에는 최대한 기뻐하고 행복을 누리 돼, 그것이 지나갈 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와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위해 지금을 살면 됩니다. 힘든 순간에는 절망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분노를 잠시 내일로 미루어 두는 겁니다. 그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보는 것이죠.
세상에 지나가지 않는 것이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것은지나 가고 우리는 죽은 자가 간절히 바란 내일이었을 오늘을 살고 있 습니다. 지나가는 것들에 메이지 마세요. 우리 조차도 유구한 시간 속의 잠시 머물다 갈뿐입니다. - pp275
Lectio 28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Dum vita est, spes est (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 한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여러분 중 누군가는 삶이 고통스러워 죽음으로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자살을 금기시 합니다. 자살은 죽어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의 해당해요. 그러나 저조차도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그 선택을 생각했던 적이 없지 않습니다. 그 무엇이기 전에 저 역시 참으로 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순간들에 이 두 문장을 떠올리자 삶으로부터 발을 뗄 수 없었습니다.
Letum non ominia finit (레툼 논 옴니아 피니트)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Dum vita est, spes est (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한, 희망은 있다.
-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으로 살다가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영원이 신의 시간이라면 유한은 인간의 시간일 겁니다. - pp284
감사의 글
‘삶의 책장’을 짓는 라틴어 수업을 기억하며 - 제자들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