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이근후 저) 中 /김철년
자식에겐 좀 더 무심했어야 했다
*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같은 사건을 아이가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있어서 놀랄 때가 많다. 내가 아이들 위해 큰맘먹고 한 일을 아이는 전혀 기억 못하기도 하고, 반대로 나에겐 흔적조차 남지 않은 기억인데 아이에겐 뼈아픈 사건으로 각인되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노릇이 어렵다. 내가 준다고 해서 아이가 받는게 아니고, 내가 주지 않은걸 아이가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 부모가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면 자식은 부모의 인생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양분을 섭취한다. 즉 좋은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그저 양육자로서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일만 피해도,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자기 인생을 사는 데 열중해도, 부모로서 역할을 괜찮게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 아이를 잘 기르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된다. 아이와 관계를 맺는 방법은 여타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 그저 나라는 사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좋은 부모라는 상에 억눌리기 보다 그저 온전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할 것,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 부모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자기 삶을 알아서 꽃 피운다.
지난 삶을 후회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았어야 했다.
* 언제나 만족하는 일보다는 후회스러운 일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또 어떻게 살아왔든 ‘그때 그랬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와 아쉬움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후회의 감정이 든다고 해서 잘못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을까?
* 사람은 당연히 타고난 기질대로 살고 싶어 한다. 예민한 사람은 자극이 적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가진 에너지를 모두 발산할 수 있는 역동적인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한다.
환경은 주어지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 과정에서 인격과 자아가 형성된다. 어떤 때는 환경에 맞춰 기질을 누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능동적으로 환경을 바꾸어 가면서 ‘나’라고 부르는 총체적인 자아가 만들어진다. 즉 ‘나’라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해 온 노력의 결과이며, 인생은 기질과 환경 사이에서 매 순간 이루어진 선택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백 년을 살아야 한다면
* 2009년 유엔은 호모 헌드레드, 즉 100세 시대의 도래를 공식화 했다. 그리고 2015년 100세 시대 생애 주기별 연령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1~17세까지 미성년, 17~65세까지 청년, 65~79세까지 중년, 79~99세까지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노인이다.
* 나이들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 바로 내 인생이 온전히 내 손에 있는 자유로움이다. 책임이라는 무거운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청년기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활용해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꾸려 갈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정년 이후다.
끝까지 살아 봐야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들
* 도가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락이다.” 무엇이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고에 사로잡혀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자기만의 세상에 발목을 잡힌다. 그러므로 당신 앞의 현실을 전부라고 판단하지 말라.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믿고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애쓰면, 마법처럼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나답게 사는 것 외에 다른 정답이 있을까?
* 나이가 들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일까. 바로 목표를 중심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나이들어 공부를 열심히 한들 뭐하겠는가.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이제 와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될 수도 없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자랑할 순 있겠지만, 노인의 자랑을 다소곳이 들어줄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어야 할까? 바로 순수하게 그 자체가 재밌어서다. 즉 목표와 결과가 아닌 과정의 즐거움 때문이다.
목표에서 과정으로, 타성에서 자발성으로의 전환, 그것이야말로 나이가 들면 한 번쯤 거쳐야 하는 생의 과업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거기에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답이 있다.
가족은 무엇으로 사는가
* 우리 가족은 오랜 고민 끝에 ‘각 가정과 구성원의 독힙성 보장’이라는 대원칙 하에 함께 살기로 합의했다.
집을 지을때부터 그 원칙을 적용했다. 우리부부는 살던 집터를 내놓았고 자녀들은 각자의 경제적 능력과 취향, 형편에 따라 집을 다르게 설계했다. 또 출입문을 따로 내어서 사생활이 보장되도록 했다. 독립성 보장이라는 원칙은 생활규칙에도 적용되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남의 집에 드나들거나 미리 약속을 잡지 않고 불러내는 일이 없게 했다. 또 가족 공동의 행사는 반장이 맡아서 시간과 장소를 잡아 미리 공지하도록 했고, 반장은 6개월마다 돌아가며 맡았으며 각 가정 현관의 비밀번호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함께 살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자녀들이 주말을 자유롭게 보낸다.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마련되니까 꼭 언제까지 모두 모여야 한다는 강제가 사라졌다. 주말을 온전히 충전의 시간으로 보내니 자연히 가족간 갈등도 줄었다. 자식들은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도 다른 가족들에게 많은 도움을 얻었다. 우선 아이들의 등하교를 할머니가 맡았다. 또 집에 어른이 여럿이니 언제든지 아이를 봐 줄 사람은 한두 명쯤 있게 마련이다. 자녀들은 마음 놓고 일에 몰두했다, 손주들도 좋은 영향을 받았다.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어른들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받으니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진로의 선택지가 많아졌다. 사촌지간에 부대끼며 다복하게 생활하니 사회성은 덤으로 자란다.
말이 통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
* 나이가 들면 왜 말이 많아질까?
첫째는 집중력 저하다. 말에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곁들인다. 그런데 집중력이 저하되니 인과관계를 쉽게 놓치고 연상에는 비약이 생긴다. 곁들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는 것이다.
둘째 경험이 쌓여서다.
나이가 들면 살아온 햇수만큼 다양한 경험이 방대하게 쌓이고, 사람과 세상을 판단하는 나름의 잣대도 확고해진다. 그래서 해주고 싶은 말 또한 많아진다. 도와주고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바로잡아 주고 싶어서, 함께 기뻐해 주고 싶어서.. 여러 이유로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한다.
* 말을 줄이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소통하려면 공통분모가 필요하다. 공통분모가 넓을수록 대화는 깊어진다. 공통분모를 만들기 유리한 사람이 누구일까? 과거와 현재를 모두 경험한 나이든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의 경험을 노인들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 내가 젊어서 외할머니와 대화를 자주 나누었던 이유는 늘 온화하게 웃으시며 내가 하는 말에 맞장구쳐 주셨기에 자꾸만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것이다.
화내는 것도 습관이다
* 나이가 들면 감정적으로 위축된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인식은 좋은 쪽보다 나쁜 쪽에 훨씬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은연중에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이런 부탁을 해도 될까? 하기 싫은 일을 나이 많다는 이유로 억지로 해주는건 아닐까?..이런 생각이 행동을 위축시키고 말도 거르게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표현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 나이가 들면 자연히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난다. 아무리 위생에 신경을 써도 노인은 스스로 그 냄새를 자각하기가 어려우므로 스스로 주변에서 알려주면 고마워할 일이다.
* 나이 들어 화가 늘어봐야 자기 손해일뿐이다. 안그래도 외로워지기 쉬운 시기인데 부적절한 화로 그나마 돈독하던 관계마저 잃어서야 되겠는가. 자꾸만 화날 일이 많아진다고 느낀다면, 자기 눈에 쒼 색안경의 정체부터 파악해 볼 일이다.
더 건강해지겠다는 욕심은 일찍 버린다
* 니이가 들면 건강은 나빠진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강이 좋아져도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호전일뿐, 전반적으로는 하향 곡선을 그린다. 의학용어 가운데 ‘비가역적’이라는 말이 있다. 되돌릴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나이 들수록 병의 가짓수는 늘어날 것이다, 왜 관리를 잘 못했느냐고 스스로 비난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죽을때까지 따라오는 병이라면 병과 함께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편이 낫다.
나이가 들면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습관을 들인다.
* 나이가 들면 여행이든, 공부든, 봉사든,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안그래도 일상이 단조롭고 행동반경이 줄어들고 인간관계가 협소해지는 시기다. 노년의 삶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외로움이다. 외롭지 않으려면 내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 절대 거창해지지 말라.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하자고 제안할 것, 그 작은 시도가 몇 배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골치 아픈 대소사는 전부 자식에게 넘긴다
* 어머니는 전통이라는 이유로 힘에 부치는 일을 떠안기 보다 조상을 모시는 형식을 현실에 맞게 적극적으로 바꾸는 편을 택하셨다.
나는 호주가 되면서 내 권한으로 모든 기제사를 양력으로 바꿨다. 그리고 할아버지 세대까지만 제사를 지내기로 공표했다.
우리 가족은 제사문제를 깊이 논의했다. 제주인 내가 부모님 제사만 지내고 그 윗대 조상의 제사는 설날과 추석에 지내기로 결정했다. 제사라는 형식도 우리 현실에 맞게 변형된 방식을 구상해 보자고 제안했다.
한 가구당 한 가지 음식을 장만해서 제사상을 차릴 것, 각자의 종교에 따라 최대한 경의를 표하는 방법으로 예를 올릴 것이라는 원칙이 세워졌다.
나는 의학자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만을 믿고 사는 처지다. 그래서 증명되지 않은 사후 세계나 조상신의 존재를 말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제사란 망자를 위한 의례가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슬픔을 달래고, 떠나간 사람들을 기리를 자리가 바로 제사다. 그러므로 제사는 무엇보다 산 자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 자식이 어느만큼 나이를 먹으면 자식의 뜻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 실수투성이라도 스스로 헤쳐 나가도록 어느정도는 무심해져야 한다.
* 부모 노릇의 최종 목표는 자식의 독립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멋지게 홀로 서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이가 수만번 넘어지며 걸음마를 배우듯, 자식들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독립에 성공한다. 부모가 먼저 자식에게서 떨어져 나가야 자식도 비로소 제 앞가림을 시작한다.
배우자를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 ‘안된다’는 분명한 이유를 들어서 거절할 때 주로 사용한다. 그건 안돼요, 왜냐하면..하는 식이다. 반면 ‘싫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거절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안 된다’에 비해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냥 싫어서 싫다는 것이다.
거절은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렵고 힘들다. 예기치 않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산뜻하게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싫어요”를 “안돼요, 왜냐하면”으로 고쳐 말하기를 추천한다. 거정당했다는 느낌이 덜하고, 그 근거가 타당하면 앙금없이 새로운 대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 배우자를 고정된 틀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은 오래된 부부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세월이 흐르면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지만, 배우자의 시선만은 그대로다. 자연히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고 심드렁해진다. 싸움도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한다.
배우자에 대한 선입견은 워낙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졌기 때문에 단번에 교정하기는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다음 세가지 방법을 권한다.
1. 우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으라.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토해낸 배우자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2. 배우자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배우자는 이해하기 전에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다. “저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라고 비난하기 전에 그가 그런 사람이란 걸 받아들이자.
3. 말투를 조금만 바꾸자. 존댓말은 화나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한 발자국 떨어져 사태를 바라보는 데 효과적이다. 또 존대를 하는 상대에게 막말을 퍼붓기는 어려운 법이다.
* 나이들어 가장 좋은 친구는 단연 배우자다. 좋은 친구를 잃기 전에 생각해 보라. 내 좁은 시야가 배우자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지를.
돈 까짓것 없어도 괜찮다는 배짱을 키운다
*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불안에 떤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그 대상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노년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이 드는 게 불안하고, 사후를 알지 못하기에 죽음이 두렵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자꾸만 돈이 무섭고 돈 이야기에 휘둘린다. 노후자금으로 10억이니 20억이 필요하다는 말들은 그야말로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이다. 골프도 치고, 여행도 가고, 품위도 유지하면서 살려면 20억도 부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돈을 원하는가? 나에게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은 구체적으로 얼마인가? 골프야 안쳐도 그만이고, 여행도 안가면 그만이다.
용돈이나 쥐여 주는 할아버지 역할에 만족할 것인가?
* 자식들을 결혼시킬 땐 기쁨만큼 걱정도 컸는데, 손자의 결혼은 마냥 신기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한창 자랄때를 돌이켜봐도 떠오르는 추억이 별로 없다.
손주의 경우엔 다르다, 성장의 과정이 처음 보는 듯 대견하고 신기했다. 손주들은 어떤 저지레를 해도 예쁘기만 하고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켜도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 세대차이를 그냥 두면 조부모와 손주들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된다.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대상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한다는 것은 알려는 노력이다.
* 타인과 부대끼며 자라는 경험이 드문 요즘 아이들은 비교적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 부모도 한둘뿐인 아이를 키우는데 여간 공을 들이는게 아니다. 그 결과 생기는 부작용이 ‘황제병’이다. 아이가 부모나 조부모를 신하처럼 부린다는 것이다.
* 인공지능의 발달로 현존하는 직업의 상당수가 사라질거라 전망한다. 그런데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고유의 능력이 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즉 공감력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1인 가구가 대세가 될수록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각광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공감력은 어떨게 키울까? 사람과 많이 부대낄수록, 사람을 깊이 사귈수록 공감력이 자란다.
조부모가 손주들을 위해 해줘야 하는 역할이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 조부모가 그저 용돈이나 쥐여주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러선 안 된다. 손주들과 자주 만나며 어른을 대하는 법도 알려주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각의 폭도 넓혀 주어야 한다. 하다못해 사촌지간인 손주들끼리 자주 만나 어울리게 하기에도 조부모라는 위치가 가장 좋다. 손주들의 세상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손주 사랑의 요체다.
시에 재능 없는 내가 20년째 시를 낭송하는 까닭
*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직업으로 삼으면 스트레스를 받는게 정상이다. 그래서 긴장을 풀어 줄 다른 활동이 필요하다. 이길 필요없이, 더 잘할 필요 없이 그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함으로써 모든 긴장을 푸는 것, 바로 취미 생활이 필요한 이유다.
어릴때부터 성적 경쟁, 취직 경쟁, 진급 경쟁에 시달렸다. 경쟁의식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부지불식간에 취미생활마저도 잘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일을 잘 하겠는가. 잘하는 일은 직업 하나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좋아하는 만큼 즐기면 된다.
* 직업을 잃는다고 해서 인생을 잃는게 아니다. 퇴직의 시기에 인생이 덜 휘청이려면 취미의 세계도 다채롭게 구성해야 한다. 물론 젊어서부터 취미 몇 개 쯤 마련하면 좋겠지만, 퇴직 즈음에도 늦지 않다. 뭐든 좋아하는 만큼 즐기겠다고 마음먹으면 부감이 없다. 그러니 부디 취미를 포기하지 말라. 좋아하는 일을 할때 찾아오는 풍요로운 즐거움을 살아가는 한 마음껏 누리기를 바란다.
당신에겐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습니까?
* 심리학자 앤서니 스토는 우리네 인생은 두가지 상반되는 충동이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고독을 통해 자기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충동이다.
더 늦기 전에 나를 위해 해야 하는 일, 용서
*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원한을 품는 것은 다르 사람에게 던지려고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상을 입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 용서는 마음 먹는다고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괜찮다가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잊었다 싶다가도 문득 떠올라 온몸을 떨게 하는 게 원한의 감정이다. 그래서 용서도 성급한 마음으로 접근하면 탈이 난다. 차근차근 할 수 있는 만큼 용서하는 것이 옳다. 용서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다음의 세단계를 권한다.
1. 나에게 상처를 준 대상과 관계를 끊으라.
나의 행복을 위해 상처로부터 멀어지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것이 나를 위해 하는 용서의 첫걸음이다.
2. 여유가 생겼다면 상처받았던 그 상황을 새롭게 이해해보라.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입장에선 그럴수도 있겠다는 이해의 여지가 생긴다.
3. 내가 나를 용서하자. 멋대로 해석해서 미움과 양심을 지녔던 그 옹졸함을 스스로 용서한다는 뜻이다.
때가 되면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을 이제는 용서해 보겠다고 마음먹어 볼 일이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손주의 그림에 할아버지가 들어가기까지
* 피를 나눈 사이라고
모두 가족인 것은 아니다. 갈등과 화해, 눈물이 있어야 진짜 가족이 된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 80년 인생을 누구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나고 보니 내 인생은 거대한 우연과 수많은 인연의 힘으로 여기까지 이끌려 왔음을 알겠다. 우연과 인연이 좋은쪽으로 작용했기에 지금껐 살아남은 것일테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므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한 번쯤 숙고해 볼 일이다. 이 정도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아무나 누릴수 있는 권리가 아니며, 내가 잘해서만 얻어진 결과가 아니다.
지난 삶을 제대로 정리하는 법
나이가 들면 진지하게 참회의 시기를 거쳐야 한다. 의식적인 수준에서의 잘못만 떠올릴 일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해로움을 준 일은 없는가, 의도치 않더라도 죄를 감춘 일은 없는가 등을 차분하게 생각해 보라. 마음깊이 간직한 후회와 부끄러움마저도 결국은 내 삶의 일부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야말로 축복받은 노년을 보낼수 있다.
삶과 평화롭게 이별하는 법
만약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마지막까지 분노와 억울함에 쌓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게 된다. 모든 걸 정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화롭게 보내야 할 말년에 세상에 대한 분노와 타인에 대한 증오로 몸부림치게 된다. 이럴 경우 본인도 괴롭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보내야 하는 주변 사람들의 가슴에는 더 큰 상처가 남는다.
죽음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손님이다. 그러므로 차근차근 정성스레 맞을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죽음을 자연스럽고 평안하게 맞이하는 것만큼 값진 선물도 없다.
지금 당장 베풀 수 있는 7가지 나눔
* 불가에서는 물질이 아니어도 베풀수 있는 7가지 보시를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한다.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씨, 친절한 행동, 착하고 어진 마음, 편한 자리를 양보하는 자세, 잠잘 곳을 제공해 주는 배려가 그것이다.
봉사를 특별하게 생각지 말라. 나눔은 결코 여분의 시간과 재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찾아보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일에서도 베풀 거리가 많다.
인생 후배들에게 전하는 3가지 당부
1. 노인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마음을 갖추라.
노인이 가진 조건이란 유리한 것이 별로 없다. 우울한 일, 슬픈 일이 더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면 전부 나쁜 조건만 있는 건 아니다. 몸도 마음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소일을 할 구석은 어디엔가 있다.
자신의 나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틈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재간이 있는지 살펴보기를 권한다. 틀림없이 자기만의 것이 존재한다.
2. 서두르지 말고 야금야금 실천해 보라.
여유롭게 과정을 즐기겠다고 마음 먹으면 급할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차 눈에 띈다. 새로운 발견이 늘어날수록 즐거움이 커지고 즐거움은 꾸준함으로 이어진다.
3. 내가 거둔 곡식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
나이가 들면 지나온 삶을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노년기의 평온과 만족감은 과거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훨씬 수확량이 많던데 하는 생각을 멈추고 지금 가진 곡식을 어떻게 쓸까를 꿈꿔 보길 권한다.
다 큰 자녀는 되도록 빨리 독립시킬 것
* 부모의와 갈등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부모가 자식을 너무 억압하면서 키우 경우고, 다른 하나는 너무 방임하면서 키운 경우다. 같은 부모의 사랑이라도 자녀에 따라 억압이 되기도 하고 방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면 나머지는 아이의 자생력을 믿으라. 아이는 부모말고도 세상과 만나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그 아이의 고유한 힘이자 독특함이다. 그것 까지 부모가 좌우할 수는 없다.
* 아이에게서 차근차근 독립하는 연습을 하라.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고충이 바로 아이가 독립할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나이 서른이 넘어도 독립 의사가 전혀 없고 부모의 보살핌 아래 계속 살고 싶어 한단다.
부모가 비빌 언덕이 되어 주기 때문에 자녀가 버티는게 아니겠는가. 즉 자녀가 집을 나가지 않는 이유를 잘 들여다보면 자녀를 끝내 놓아주기 싫은 부모의 속마음도 한몫한다.
* 독립을 세단계로 나누어 실행할 것을 권한다.
1. 자녀가 사춘기가 되면 30% 가령 놓아주라.
2. 성인이 되면 또 30%가량 놓아준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제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성인으로 거듭난다.
3. 한 가정을 이루면 30%를 놓아 준다.
그리고 남은 10%의 끈으로 장성한 자녀와 관계를 맺으면 탈이 날 일이 없다.
* 홀로 설 능력을 갖추고 나서야 독립시킨다는 생각은 이치에 안 맞다. 광야에 떨어진 다음에야 인간은 비로소 길을 개척하는 법이다.
언제까지나 도전적으로 살겠다고 결심할 것
* 카푸치노라는 이름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인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서 비롯되었다.
이 형제회의 수도복에는 두건이 달려있었는데 짚은 갈색 위에 우유거품이 얹힌 모양새가 그 두건과 비슷하다고 하여 카푸치노라는 이름을 붙였다.(두건은 이탈리아어로 CAPPUCCIO. 카푸치오)
* 나이가 몇 살이든 오늘치 인생 앞에서 우리는 모두 초보다. 처음 살아본다. 내일이라는 미지의 대륙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도전적으로 살겠다고 각오하라.
어느 날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감정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열심히 살아온 결과로 찾아오는 아쉬움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때 정말 알았더라도 더 잘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때에라도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출 것
전 세계 70억인구 중 하나와 몇사람이나 거쳐면 연결될까? 평균 6단계였다. 좀 과장하여 6명만 거치면 전 세계인이 내 친구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좁은 세상에 사는게 분명하다.
* 스치는 인연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내가 한 행동이 언제고 내게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나를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성심껏 대하자.
단순하게, 더 단순하게 살아갈 것
* 나이가 들면 감정도 사고도 복잡하고 산만해진다. 특별한 병이 아니더라도 사고 연상이 느려지고 생각의 회전이 둔해진다. 더욱이 기억의 결손과 맞물려서 사고는 중구난방으로 흩어지고, 결과적으로 사고의 내용까지 잡동사니가 되어 버린다. 말의 요지가 흩어져 삼천포로 빠지는 게 바로 사고력 저하 때문이다.
* 감정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 사소한 일에도 노여움을 타는 경우가 많다. 상식적으로 판단하고 단순하게 이해해도 될 일을 왜곡해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다.
* 나이가 들면 자극에 따른 감정적 반응도 굳어지기 때문에 이를 단박에 수정하기는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나마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훈련이다. 즉 화를 느끼면 “나 화났어”라고 말하고, 서운함을 느끼면 “나 서운해”라고 말해 보라.
감정이 증폭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속으로 꿍끙앓다가 나중에 공격적인 태도로 표출된다. 상대방이 당연히 내 감정 정도는 헤아려 줘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알리지 않은 감정을 상대가 어떨게 알겠는가? 건강한 관계는 감정을 안전하게 나눌 수 있을 때 형성된다. 그러므로 자기 감정을 알리고 표현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떠올리면 웃음이 나는 따뜻한 추억을 최대한 많이 만들 것
* 나이가 들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무면 8할이 옛날이야기다. 친구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사소했던 일상의 추억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희한한 일이다.
* 젊어서는 멀리 있을 것 같던 행복이었지만, 정작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떠올리는 행복은 마음만 먹으면 매일 누릴 수 있을 만큼 지척에 있었다는 사실이 허무할 지경이다.
* 사소하고도 소중한 추억들이 모여 인생을 빛나게 한다. 추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다. 당신이 포착한 오늘치 추억이 먼 훗날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좋은 추억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며 살기를 바란다. 우리는 일상의 곳곳에서 즐거울 수 있다. 결국 남는 것은 행복했던 추억들뿐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