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관한 시모음 5)
3월의 봄 /전경전
한 것 기지개 켠 어깨 위로
토닥토닥 맞이하는
삼월의 이른 봄비
속살 곱게 곱게 다듬는
붉은 목련, 하얀 목련
수줍은 입가에 송 송이 맺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바람과 비를 앞세운 소식 오더니
움츠렸던 몸과 마음
묵은 흉허물 한 겹 또 한 겹
기쁘게 걷어 낼 때
3월의 봄이
참, 이르게도 왔다.
3월의 향기에 /임영준
한동안 묵혀두었던 아침을
끄집어내어 탁탁 털어보니
언젠가 얼렁뚱땅 구겨 넣었던
열망의 향기가 흘러나온다
들창 가득 드리워진 햇살도
겨우내 둘렀던 조소를 걷고
살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바야흐로 소소한 티끌 하나도
가벼이 흘려보낼 때가 아니다
곧 우리의 질곡이 숙성하여
하뭇이 적셔 주리라 기대하며
일상의 구실을 이어붙이더라도
안온하고 그윽한 내일을 위해
다 받아들여야 할 시점 아닌가
삼월 /권예자
맨 처음
베란다 저쪽 아파트 틈새로
한 조각 푸른 하늘이 보였을 때
눈치 챘어야 하는건데
움츠려 머뭇대는 사이
너는
한 줄기 햇살을 동백잎 사이로
찔러 넣었고
화분 가득 넘쳐흘러 거실에 자리 잡았다
한 번의 약속
맞을 준비도 한 적 없는데
너는 왔고
나는 맞이해야 한다
골짜기 잔설 위에서
언 발 구르는
산 까치 울음에 발목 잡힌
삼월
3월의 추억 /조용순
청춘의 정거장을 지나
지금 어느 간이역을 지나고 있는지
기억의 차창에 매달려
아름다움으로 활짝 피었던
꽃망울 터뜨리던 날의
기적소리 들려오고 있어
애써 잊으려 했던 기억들이
갈망의 3월 언덕을
숨죽여 기어오르고 있으니
지나온 정거장마다
피어 있던 붉은 꽃송이들이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리
사랑이라는 말도 할 줄 몰라
하얀 수줍음이 붉게 물들기만 하던
그날들의 그림은
지나는 정거장마다 덜컹거리며
가슴으로 밀어 넣어야 했는데
맑은 사랑이 보석처럼 아까웠나 보다
혼탁한 세월 속에
바람에 나부끼는 이름을 밀어놓고
억지로 잠재우던 날의 뜨거운 추억은
주르륵 봄비처럼 눈물 흘리며 다가와서
3월 속으로 깊게 파고든다
삼월의 눈 /정해철
하늘이 우는가 보다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눈물이 땅에 닿기도 전에
하얀 가루도 나린다
아마도
겨울이 가기가 아쉬워
벚꽃이 흐트러진 거리에
눈물을 흩뿌리는가 보다
잠시 연출한 그 광경에
사람들도 아쉬웠나보다
가는 걸음 멈추고
겨울이 흘리고 간
눈물 맞으며...
벚꽃이 흐트러진 그 길에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
삼월 /천숙녀
삼월은 가슴마다 파문으로 번져왔어
기미년 퍼져가던 만세소리 외쳐 보자
닭 울음 여명을 쫓아 튕겨 오르는 빛 부심을
꽃 한 송이 피웠었지 총 칼 앞에 태극기로
칼날 같은 눈초리들 맨땅 위에 박아 놓고
선혈 꽃 기립 박수로 한 겨레 된 우리잖아
겨울의 긴 잠 끝 봄빛으로 깨어날래
울리는 종소리에 새 날의 문을 열고
앞뜰을 정갈히 쓸고 돗자리 펼칠 거야
3월의 그대에게 /박우복
어느 꽃이 먼저 필까
기다리지 말아라
꽃잎이 흔들릴 때마다
떨리는 몸과 마음
어찌 감당하려고
가슴을 적시는
봄비도 기다리지 말아라
외로움 안고 창가에 앉아
가슴에 번지는 그리움
어찌 감당하려고
3월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뛰는데.
삼월엔 /권정하
매마른듯하던
나뭇가지마다
파릇파릇 물오르고
연두빛 꿈들이 돋아 오른다
카랑 카랑한
삼월의 늦 설움이
목이 쇠도록 매몰차게 굴더니
오늘에사
양지바른 담가엔
노오란 개나리가 피는구나 !
삼월 마지막 날
山行하고 싶어라
오늘 아침 차창가에서 문득
피어오르는 안개속에
떠오르는 햇살 바라보며
山行하고 싶어라.
山行길에
분홍빛 진달래도 보고
두룹 순도 꺾어 보고
버들강아지 그 포송한 가지도
꺾어내어
그대 손에 가만히 쥐어주고 싶어라.
3월에는 꽃이 되고 싶다 /윤보영
3월에는
꽃이 되고 싶다.
마음에서
고운 향기가 나는 꽃!
나를 보고 다가오는
바람에게
미소로 안부를 전하고 싶다.
안부에
향기를 나누는
여유가 담겼으면 좋겠다.
여유속에도
한번쯤, 꽃을 심은 마음도
헤아려 보아야겠다.
꽃인 나를
모두가 알아볼 수 있게
아름다운 꽃이 되고 싶다
꽃을 보는 사람마다
가슴에 행복에 담기는
행운의 꽃이었으면 좋겠다
꽃인 내가 행복한 것처럼
모두가 행복한 꽃이 되었으면 더 좋겠다
3월 눈 /송정숙
간다는 것은 사람의 정이나
계절의 모습도 아련한 슬픔
내 길이여서
오늘도 힘껏 살다 간다
3월이 가기 전에 /장수남
삼월이 가기 전에
혼자 남은 게으름뱅이 꽃샘추위
몸을 잔뜩 움츠리고
떠날 채비에 바쁜 오후.
화사한 강변도로엔
아직 철 이른 벚나무가지가
배꼼 배꼼이 실눈 뜨고. 뚝아래
얘 야. 넌. 누구지.
돌 틈새 작은 마당
민들레 파란색방석 깔고
드문드문 모여앉아 아기꽃웃음
터뜨릴 기세.
강둑을 조금만 걷다보면
엄마의 그리움을 찾는. 너는 강물
강과바다는 서로 엉켜
하얀 눈물 누덕누덕 쏟는다.
낙동강 하구
갈대숲에는 때늦은 겨울철새
한 마리가 아직도
바쁘게 날개를 푸드덕
누굴 기다릴까. 넌. 언제. 갈 거야.
꽃샘추위 친구 되어 떠나면
어떻겠니.…….?
3월 /하석
비록 산골짝 눈과 얼음 다 녹지 않았어도,
북풍 더 이상 아니 불고, 봄볕 고요히 머무니,
낙엽더미 이불 아래 동면하던 뿌리들 싹틔우며,
고운 꽃잎부터 먼저 피우며 돋는 이른 봄꽃들,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복수초, 제비꽃, 노루귀.
새봄은 예쁜 꽃망울 먼저 터트리면서 북상한다.
숲 가지들은 겨울눈 부풀리며 싹트려 준비하고,
매화, 생강나무, 산수유는 꽃망울 맺고 터트리며,
개울가 버들강아지 피어나니 새봄은 넉넉하여라.
강변엔 긴 겨울 얼음 녹아 물 흐름 조용한데,
분주히 물질하는 물오리와 물닭도 활기차구나.
봄은 생명과 부활의 계절, 새로운 한해의 시작.
세월은 가도, 새봄이 있기에 새 한해를 맞는다.
3월은, 3월에는 /성백군
땅이
악을 쓰는 소리
어미가 새끼를 낳나 봐요
안 들린다고 해서
흙이 갈라지고 벌거벗은 나뭇가지가 찢어지고 하면서
싹이 돋을 때 나는 소리가 없겠어요
안 보인다고 해서
산혈(産血) 터지고 눈물이 방울방울 맺힘이 없겠어요
아픔이 너무 크면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데요
당신이 남편이면
조심하세요
아내의 산실에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맞고 할퀴고 물리고 꼬집히고……
그동안 아내에게 못 한 것, 잘한 것, 사랑한 것까지
다 합쳐서 곤욕을 치를 겁니다
미워서도 아니에요. 사랑해서도 아니에요
생명이 태어날 때는
그저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안 되기 때문에
땅이 그러는 그래요
그늘 밑 눈[雪] 달래 보내고
꽃샘추위 눈치 보며 살금살금 기어 나오고……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면
아빠처럼 훈풍이 어루만지고
엄마처럼 해가 볕을 모아 호호 불며 입김으로 품어주지요
싹이 사람이 아니라고 그저 흘려보내지 말아요
3월은 자연의 산실이에요
산실 속에 들어와 고생도 해보고 훈훈한 정도 느껴봐요
당신이 남자라면
3월에는 여자가 되어보는 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