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 담겨진 산수경석***
(山水景石)
준수하게 솟아오른 산봉우리 그 밑으로 거울 같은 호수. 그리고 시선(詩仙)들이 노닐만한 정자. 이렇듯 선과 물이 어울리고 거기다 금상첨화 격으로 아담한 정자까지 곁들였으니 과연 이곳이 천하제일경이 아닌가 싶다. 한 폭의 그림보다 더 실감나는 정경이 가슴에 와 닿는 빼어난 산수경정석이다.
곱게 빚어 올라간 주봉 바로 밑에 고풍 감도는 한 채의 정자는 옛적에 많은 풍류객과 묵객(墨客)들이 모여앉아 아름다운 이 산천을 노래하며 주연(酒宴)도 정담을 나누며 해지는 줄 몰랐으리라.
산수경석을 좋아해온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거대한 자연을 담고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심원한 자연경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시키기도 하고 순수한 인간 본연의 심성을 끌어올리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연경 중에서 특히 변화무쌍한 형태의 수석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데 고도의 정신세계를 비상시키는 경지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런 경지는 예술의 경지와도 어떤 상충된 면이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한 점의 수석을 예술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훌륭한 미술작품을 보고 느끼듯이 산수경을 보고 느끼는 감흥은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적? 예술적 욕구를 발산시키는 충만한 에너지 역할을 한다. 미술작품의 우열을 논하듯이 수석도 우열을 논한다. 이때의 기준은 외형적 기교와 생김새 이외에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정신적 가치도 포함되어 있다. 우열을 논한다는 것은 외형적 조화를 감상자가 가장 잘 읽을 수 있게 하는 어떤 심술(心術)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수석의 신묘함에 취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읽고 그 뜻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이는 예술 창작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작위적인가 아닌가는 수석감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외형적 미를 강조한다고 해서 작위를 가하면 이미 그 돌은 그냥 조각품에 지나지 않는다. 수석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닐 때 본래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옛 선인들이 자연경물과 가까이 하면서 심성을 키워왔고 넓혀왔듯이 자연은 인간의 내적? 외적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자연 속에서 찾은 산수경석의 화의(畵意)나 시정을 바탕으로 미를 재구성하여 더 높은 세계로 몰입한다. 자연 그 자체는 무한한 존재이므로 자연을 모태로 한 수석의 미적관조의 세계도 그 한계가 무한하다. 때문에 수석을 평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수석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수석을 평가한다는 것도 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수석은 그 한계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관점과 다르다고 해서 옳고 그름을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수석감상은 자신의 체험과 미적감흥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다만 수석미는 오랜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정제되고 이론의 학습과 정리를 통해 체계화 될 때 많은 수석인들이 공감할 수 있다. 따라서 수석생활이나 감상에 있어서 ‘공감’을 매우 중요시해야하며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적인 수석의 요점
이상적인 수석이 되려면 자연적 요소와 미학적 요소를 고루 갖춘 자연모습 그대로의 돌이어야 한다.
ㄱ. 자연적 요소의 조건
자연의 형태는 우리 마음속에 관념적으로 영원히 변함없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변하지 않는 치밀하고 강도 높은 자연석이 좋다. 즉, 자연이 만들어 낸 본래 상태의 돌이라야 한다. 본래 인간의 정서는 자연을 바탕으로 한다.
작은 자연으로 큰 자연을 대변하는 수석이 자연 그대로의 돌이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조금이라도 인공이 가미되면 대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힘들다. 조각이나 멋진 조형물이 자연 중의 좋은 느낌을 주는 요소를 강조하여 표현한 자연의 모방임을 볼 때 자연의 고귀함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춘 수석은 예술 그 이상의 차원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돌의 전체 밑 부분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지면에 접하여 안정되어야 한다. 거대한 바위나 먼 산 등을 보면 밑자리가 말려 들어간 듯 불안정한 자연은 보이지 않는다. 아주 가까이서 볼 때 밑이 파이거나 깎여 불안한 듯 보여도 멀리서 보면 그 부분이 미미하여 전체가 안정되어 있다. 우리가 수석을 느끼는 것은 마음 깊이 내재한 관념에서 시작한다. ‘자연은 편안하며 안정되어있다.’는 그 관념에 적절해야 비로소 작은 돌에서 큰 자연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 관념적 요소이다.
또한 돌의 전면 중앙이 배부르듯 불룩하지 않고 움푹 들어가서 좌우 양끝이 보는 이의 앞으로 모이는 형태이어야 하겠다. 큰 산을 보게 되면 좌우 끝을 다 볼 수 없고 시야에 들어오는 부분은 모두 양끝이 앞으로 모아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로 산은 전후좌우 사방으로 뻗어있으나 앞쪽으로 뻗은 부분만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자연의 산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빙 둘러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런 돌갗의 주름이나 미세한 돌기? 홈 등은 수석의 묘미를 더해준다. 계곡, 호수, 샘 등의 형태를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느끼게 한다.
흑갈색이나 검은 계통의 색감도 갖추어야 한다. 흑갈색은 고태미가 있고 검은색은 안정감이 있어 미지에 대한 신비감이나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자연은 우리의 관념 속에 빨갛고 파랗거나 하얀 색깔이 아니고 무게 있고 은은하게 남아있다.
수석 전체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지면 좋겠다. 깨지고 모난 바위로 이루어진 산도 멀리서 보면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의 연결로 되어있다.
돌 전체가 군살이 없이 날씬해야 하며 살찐 듯 둔해 보이거나 아래보다 위가 무거워 불안감을 주지 말아야 하겠다. 야윈 것일수록 웅장한 경정을 보인다.
돌의 앞뒤로 적당한 두께를 가져야 한다. 실제로 자연은 안정된 입체로 되어 있다.
수석에 있어서 산이나 능선 등이 돌의 전면에 위치함으로 인해 뒤쪽의 경정이 가리지 않아야 하겠다.
눈에 보이는 주위의 산들이 모두 머리 속에 들어와서는 저마다 좋은 부분만 머리 속에 남아 ‘자연이란 웅장하고 그윽하며 조화가 빼어난 것’으로 관념화되어 이상적인 수석의 조건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ㄴ. 미학적 요소의 조건
사람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공간 설정이나 조화로운 입체의 구성에 필요한 요건을 미학적 요소라고 한다. 수석에서도 당연히 이런 것이 필요하며 미술에서 사용되는 황금분할 구도 등의 요소도 갖추면 좋을 것이다.
수석에서 요구되는 미적인 요소를 여러 가지 돌의 형태별로 알아보기로 한다. 수석은 크게 모양석과 문양석으로 나뉘며 유사한 것으로 화석과 가공석이 있다. 산지별로는 강돌, 바닷돌, 산돌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수석으로 요구되는 조건은 마찬가지이다.
원산형(遠山形) -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산
원경(遠景)으로 아스라이 떠오르는 먼 산을 먼 곳에서 바라보는 산의 경관이다.
원산석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대체적으로 높은 산은 고고한 느낌을, 낮은 산은 평온한 느낌을 준다. 흔히 單峰, 雙峰, 連峰으로 나눈다.
수려한 몸매의 어여쁜 산이다. 그림보다 더 고운 산 수석인들이 누구나 꿈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遠山의 섬형이다. 곱게 빚어 올라간 동그스름한 산봉우리를 정점으로 좌우로 흘러내린 느슨한 능선의 유선미(流線美)가 황홀하다.
우측 산기슭이 드넓게 펼쳐진 평야도 압권이다. 그 푸른 초원에는 풀을 뜨는 소가 한가롭고 목동의 풀피리 소리도 메아리쳐 올 것 같다. 좌측의 산자락이 길게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면서 천연의 방파제를 만들어 아늑한 포구도 생겼다. 도들도들한 지리산 특유의 돌갗이 묘미를 더해주고 시미(詩味)도 안겨준다.
단봉형(單峯形) - 드높은 위용과 격조 높은 기품
단봉으로 뚜렷한 경정은 없지만 단단한 석질의 돌갗이 곰보처럼 들고 나는 변화를 주어 수석미 관상에 큰 보탬을 주고 있다. 두고 온 고향의 뒷동산처럼 포근하게 생긴 자애롭고 안온한 산. 그래서 어린시절 엄마의 품에 안긴 듯 따사로운 정감이 넘치는 편안한 산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어렸을 때 성장한 고향과 어머니는 **도 못 잊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가 항시 그리는 심상 속의 고향산은 유명한 명승지의 명산이 아닌 그저 둥그스름한 온화하고 유순한 산이다. 꾸밈이 없는 그리 예쁘지 않은 산이기에 더욱 고향의 老母가 그리워지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얼굴 같은 산이다.
산봉우리 하나 우뚝 솟아오른 산의 형태를 말한다. 비록 봉우리는 하나이지만 우뚝 솟은 기상과 산봉에서 기슭까지 내려 뻗는 능선의 흐름이 유연하고 소박한 맛이 있어야 한다.
이 산형은 비교적 단순하여 쉽고도 어렵다. 원추형 돌에 봉이 하나 불쑥 솟았다고 무조건 단봉으로 보면 안 된다. 반드시 좌우 능선의 흐름이 유연하게 기슭까지 흘러내려와 산다운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단봉은 그 하나의 봉에서 드높은 위용과 격조 높은 기품이 감도는 산형을 갖춘 것이 바람직하다.
험준한 산의 윗부분 봉우리만을 나타낸 것, 뒷동산의 낮은 야산봉, 가파른 산악이지만 봉우리 하나로 솟아있는 것, 높은 화산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렇듯 하나의 봉우리가 솟아나 산의 경치를 암시 상징해 주는 돌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냥 볼품없이 원추형으로 솟았다고 하여 모두 단봉형(單峯形)으로 보지 않는다. 반드시 좌우로 능선의 흐름이 있어야 하고 전체에 산세의 기운이 잠겨 있어야 한다.
앞쪽으로도 경사지게 흘러내리는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 골짜기와 파여진 듯하게 우묵한 형상이 한두 군데 퍼져 흐르면 기품이 썩 돋보인다. 그리고 될 수록 한 쪽 능선이 가파르고 다른 쪽의 능선은 보다 밋밋하게 흘러서 봉우리의 중심이 어느 한쪽으로든 좀 치우쳐서 위치해 있는 것이 이상적이다.
쌍봉형(雙峯形) - 조화와 균형의 극치미
선은 조형예술의 기본이고 모든 형태의 윤곽이 된다. 강한 선이 또렷하게 윤곽을 그린 유연한 곡선의 유려한 율동감 그 생동하는 여운(餘韻)이 아련히 퍼지면서 아득히 보여주는 멀고 먼 원경의 그림 같은 원산의 극치미... 詩가 흐른다. 근경인 주봉은 天工이 곱게 빚어 만든 듯 어여삐 솟았고, 원경인 원봉은 아득히 가물거린다. 남한강 고운 모래에 다듬어지고 해맑은 물살에 씻기어진 아취 있는 형? 질? 색 하나도 나무랄 데 없는 빼어난 돌이다.
주봉(主峯)과 부봉(副峯)의 두 봉우리가 멋지게 어우러진 산형을 말한다. 이 경우 산용(山容)다운 모습이 되려면 주봉(主峯)과 부봉(副峯)이 동질성을 지닌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한다.
주봉(主峯)이 우뚝 솟아 기세를 보이고 그 옆으로든 앞으로든 보다 낮은 산봉우리인 부봉(副峯)이 위치하여 단봉형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두 개의 봉우리 생김새가 이질적인 형상을 가져, 마치 검둥이와 흰둥이가 나란히 서 있는 것과 같은 엉뚱한 별개의 모습이라면 그리 좋지가 않다. 두 봉우리는 동질성을 지닌 조화를 이뤄야 보기 좋다.
역시, 능선의 흐름에 변화가 있으면 더욱 좋고, 돌갗(피부)에 주름이 잡혀 있어 골짜기의 이미지를 풍겨주면 더욱 좋다.
그리고 주봉과 부봉 사이에는 서로 연결되는 능선의 흐름이 있어야 하며, 두 봉우리가 별개의 것처럼 뚝 떨어져 있는 형상이라면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돌이 풍겨주는 분위기에 따라 두 봉이 각각 독립되어 있는 상태가 더 돋보일 때도 있다.
때로는 주봉(主峯)과 부봉(副峯) 사이가 우묵 파여져 물이 고이게 된다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호수의 경치를 아울러 품게 되며, 이것을 쌍봉 호수석이라 부를 수 있다.
연산형(連山形) - 연이은 봉마다 심원한 묘미가
산형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주봉을 중심으로 부봉, 원봉이 좌우로 뻗어나간 태산준령의 웅장한 산세를 느끼게 하는 돌을 말한다. 돌 주름이 산맥처럼 생기 있게 뻗히고 크고 작은 봉이 우뚝우뚝 솟을수록 웅장미가 있다.
봉우리가 서로 이어져 가는 산맥의 형세가 이루어져야 그 변화에 심원한 묘미가 있다.
泰山峻嶺을 방불케 하는 연봉들이 높고 낮게 줄기차게 이어져 있다. 좀 이색적인 山容을 보여주는 경관으로 뻗어나간 산세가 뚜렷하고 능선의 변화 있는 흐름도 이상적이다.
봉우리마다 제각기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도 매혹적이다. 산자락 밑에 약간의 배들이도 묘미를 더해주고 왼쪽 기슭에는 계류가 넘쳐흐르다가 폭포로 변하여 기운찬 물기둥을 땅에 꽂는다.
봉우리 사이로 하얀 석질이 박혀 아래로 흐르는 형상을 가지면 그것은 멀리 폭포가 떨어지는 광경이어서 연산형(連山形)은 아주 우람하고 수려해진다.
봉우리가 많이 솟아 있는 돌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석에 대한 유명한 기록이 있다. 중국 송(宋)대에 이름난 서화가로 ‘돌 미치광이 (石狂)’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많은 애석 일화를 남긴 미원장(米元章)(1051~1107)은 길이가 한자 정도밖에 안되는 연산석(連山石)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돌에는 서른여섯 봉우리가 비죽비죽 솟아있고 못과 구렁과 동혈(洞穴)이 갖춰진 명석이었다. 미원장(米元章)은 그 연산석(連山石)에 대해 시를 읊기를,
“…… 단정히 바라보면 비로소 산하를 보는 기분이다……. 비와 이슬은 그 봉우리 아래에 있으니 어찌 초목이 번성하는데 부족함이 있겠는가…… 머리를 들어 우뚝이 솟은 봉우리들을 보자니 지극히 높고 가파로우며 반드시 그 밑에는 신선한 물이 있음을 알겠다. 이 깊고 맑은 물은 하늘 구름의 경치를 끌어 모아 물 위에 비치게끔 한다.……”
검봉형(劍峯形) - 창검같이 예리한 준엄한 산세
산봉우리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뾰족 솟아올라 흡사 금강산의 만물상을 연상케 하는 준엄한 산세의 창검 같은 예리한 산을 말한다. 솟아오른 봉의 높고 낮음이 분명할수록 좋으며 삐죽삐죽 돋아난 봉마다 날카로운 예지와 박력이 깃든 남성적이고 동적인 산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