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 다시 무릎을 꿇을 수 있을까요?
성경 본문 : 에스라 9장1절-6절.
설교 자 : 지 명숙 목사 <2023년 9월27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가장 최근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때는 언제였습니까?
옛날 교인들과 요즘 교인들 간에 차이가 나는 것 중에
하나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기도할 때는 당연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마룻바닥 이였고, 기도원은 다
마룻바닥 이였기 때문에 기도할 때는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목사님이 무릎을 꿇지 않고 그냥 책상다리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젊은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무릎을 꿇지를 못합니다.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합니다.
① 무릎을 꿇는 것이 무릎 관절에 가장 안 좋다고 해서
무릎을 안 꿇어봤기 때문에 무릎을 못 꿇는 분들도 계십니다.
② 또한 이제 우리의 문화도 입식문화화 되었기 때문에
늘 의자에 앉아있기 때문에 무릎을 꿇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무릎을 꿇고
기도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예배를 드릴 때
백성들 앞에서 놋 단 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참고 성경 <역대 하>6장 13절-14절)
②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참고 성경 <다니엘>6장 10절)
<다리오> 왕 때 <다니엘>을 시기하는 자들이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는 한시법을
왕에게 만들게 했을 때, <다니엘>은 그것을 알고도 하루에
3번씩 집에 창문을 열어놓고 무릎을 꿇기 기도했습니다.
③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참고 성경 <누가복음>22장 41절)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④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 죽을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참고 성경 <사도행전> 7장 59절-60절)
무릎 꿇고 기도하시면서 돌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⑤ <베드로>도 <욥바>의 죽은 여 제자 <다비다>를
다시 살리는 기도를 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참고 성경 <사도행전> 9장 40절)
⑥ <바울>도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헤어질 때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참고 성경 <사도행전> 20장 36절)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입니다.
⑦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다가
며칠 간 <두로>에 머물다가 떠날 때 모든 교인들이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참고 성경 <사도행전> 21장 5절)
무릎을 꿇고 기도한 자들은 다양하나 기도한 때는
다 매우 중요한 때였습니다.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이였습니다.
오늘날은 무릎을 꿇는 일이 매우 드문 일이 되었지만,
성경을 보면 중요한 인물들이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것을 보게 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느냐,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느냐,
아니면 책상다리를 하고 기도하느냐하는 기도하는 자세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무릎을 꿇는 데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무릎을 꿇는 신앙생활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1. 기가 막힌 일을 만날 때 무릎을 꿇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 약 4개월이 지났을 때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이방사람들과 연혼(連婚)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방 사람들과 연혼했기 때문입니다.
(참고 성경 <에스라> 9장 13절)
그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돌아 온지 4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다시 <가나안> 족속의 사람들과 연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백성의 방백과 두목들이 앞장을 섰습니다.
아마도 돌아온 자들 중에 여자들인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백성의 방백과 두목들이 <가나안> 여인들과의
결혼을 주선한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에스라>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① 이것은 결혼의 문제입니다.
다른 문제라면 어떻게 해결할 희망이 보이지만,
이것은 결혼의 문제 아닙니까?
얻은 아내를 내보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며느리를 내보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데 벌써
자녀를 낳은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참고 성경 <에스라> 10장 44절)
그러니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 합니까?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선거 당시
장인이 빨치산 활동한 것 때문에 공격을 받을 때
한 말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아내란 버리란 말입니까?”
이미 결혼해서 사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
대통령은 못해도 아내는 버릴 수 없는 일입니다.
결혼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지금 이런 문제를 만났습니다.
② 이것은 백성의 지도자들이 앞장서 한 일이 아닙니까?
<바벨론>에서 돌아 온지 4개월 밖에 안 되어서 백성의 지도자들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데, 그 지도자들을 책망하면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에스라>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만났습니다.
그 때에 <에스라>가 한 것은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았습니다.”
(참조 성경 <에스라> 9장 3절)
절망하는 것입니다.
어찌 할 수 없는 일을 만난 자들이 취하는 자세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을 당했을 때 <에스라>는 어떻게 했을까요?
이방인과 연혼하지 말라는 말씀을 아는 자들이,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큰 매를 맞고 <바벨론>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자들이
이방 사람들과 연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두려워 떨면서
<에스라>에게 몰려왔습니다.
<에스라>는 “저녁 제사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참조 성경 <에스라> 9장5절)
제사장이 성도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에스라>가 하나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참조 성경 <에스라> 10장 1절)
기가 막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
백성들도 회개를 하고, 많은 무리가 모였습니다.
내편이 모인 것입니다.
(1) 기가 막힌 일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내 편이 모여옵니다.
그러자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명령을 내려서 이방 여인들을 다 내어보내게 하라”는 것 이였습니다.
그러면 자기들이 힘써 돕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에스라>가 해야 하는 말인데, 할 수 없었는데,
그 말을 <스가냐>가 대신 해준 것입니다.
(2) 기가 막힌 일, 어찌 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이렇게 나를 돕는 자들이 일어납니다.
기가 막힌 일, 어지 할 수 없는 일을 만났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돕는 자들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러자 <에스라>가 힘을 얻어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참조 성경 <에스라> 10장 5절)
그래서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을
<예루살렘> 성전 뜰로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얻은 이방 여인들을 내어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인 무리가 큰 소리로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물론 반대한 몇 몇 사람도 있습니다.
(참조 성경 <에스라> 10장 15절)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종을 했습니다.
(3)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기가 막힌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이렇게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에는
기가 막힌 일도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이것이 해결 될 문제입니까?
그런데도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자 아주 순조롭게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기가 막힌 일,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와
꿇어 엎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편의 사람들이 모여옵니다.
여러분을 도울 자들이 일어납니다.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해결 될 줄 믿습니다.
2.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해결되는데,
과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까요?
과연 인간이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은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 예배를 드릴 때 집례자가 “예배를 드립시다”라고
회중을 예배로 초대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르쿠>(Barkhu)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바르쿠라>는 말은
<베라크>( - berekh)라는 말에서 온 말입니다.
이 <베라크>는 “무릎을 꿇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하면 다 무릎을 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①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② 인간이 인간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처럼 살았는데,
다시 하나님의 종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살려던 데서 이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번 좋은 자리에 앉으면 다시 낮은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한번 쌀밥을 먹으면 다시 보리밥을
먹는 데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돌아가게 하십니다.
“어떻게”는 모든 부정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시는 것입니다.
화를 내시기도 하시고, 소리를 지르시기도 하시고,
때리시기도 하시고, 부러뜨리시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명심해야 합니다.
Joseph Telushkin이 Brandeis-Bardin Institute
(지금의 American Jewish University)에서
가르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설립자 Dr. Shlomo Bardin은
불같은 성격의 교육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주말 예배시간에 한 학생이
자기는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무릎 꿇는 것을 공개적으로 거부를 했습니다.
그러자 <바뎅> 박사는
“우리는 예배드릴 때 무릎을 꿇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아니니 무릎을 꿇어라.
너보다 더 높은 어떤 것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원하신 분은
너보다 더 높으실 것이다”라고 하면서
<바뎅> 박사는 화를 버럭 내면서
“그러니 무릎 꿇어 이 자식아. 무릎 꿇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학생이 무릎을 꿇지 않자, 교수는 학생에게
쌍소리를 하며 화를 내면서 무릎을 꿇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신의 경지에 올라있습니다.
① 능력이 신의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거의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전염병, 전쟁, 가뭄이 들어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지 않습니까?
돈은 의지해도 하나님은 의지하지 않습니다.
② 인간의 가치가 신의 경지에 올라있습니다.
인간을 최고로 여기고, 인간의 생명을 최고로 여기고 있습니다.
칠팔십년 살다가 가는 인간을 신의 경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릎을 꿇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 앞에 다시 무릎을 꿇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 사람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바벨탑>의 무너짐과 같이 하나님이 크신 팔로
인간을 치기 전에는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기가 쉬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 인간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에 두 배가 <러시아> 해안에
떨어져 있는 <흑해>에서 충돌 했습니다.
두 배는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수백 명의 승객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조사팀이 밝혀낸 사고의 원인이
그 사고의 소식을 더욱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레이더의 장애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나
짙은 안개와 같은 자연적인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교만 때문 이였습니다.
각배의 선장은 다른 배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배 다 길을 비켜줄 수 있었다.
그러나 뉴스 기사에 의하면 어떤 선장도
다른 배에게 길을 비켜주기를 원치 않았다.
두 선장 다 너무 교만해서 먼저 길을 비켜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었습니다.
죄악으로 교만해진 인간은 죽기 전에는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리고 망한 후에야 교만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지나갔습니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인간이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지 않으면 결국
망하게 됨을 명심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조용히 무릎을 꿇어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