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머털도사에 나오는 머털이의 스승은 누더기 도사입니다.
그렇다면 실제에서 머털도사(문용포)의 진짜 스승은 누구일까요?
바로 신영복 선생님입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며 읽던 선생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내게 때론 매서운 죽비가 되어 성찰하게 하기도 하고, 때론 부드러운 바람이 되어 격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양심'과 '관계'에 대해 새로운 성찰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이 한국어로 옮긴 책 <사람아 아! 사람아>와 <루쉰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후로 나온 책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처음처럼-서화에세이>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1999년이이었을 겁니다.
선생님의 뜻을 잇고 선생님과 관계를 맺는 인터넷 누리집 <더불어숲 www.shinyoungbok.pe.kr> 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붓글씨 작품 <無鑑於水>를 얻어서 내 삶의 경구로 여기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선생님을 모셔서 초청강연회를 열고자 했습니다.
전화로 메일로 연락을 드렸지만 완곡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때 선생님을 뵈러 성공회대학교를 찾았습니다.
이른바 삼고초려를 한 셈입니다.
나도 그렇고 제주의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드렸더니 강연을 수락해주셨습니다.
2000년 10월 27일 우당도서관 강당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라는 주제로 초청강연회가 열렸습니다.
300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모여서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가끔씩 선생님에게 연락도 드리고 직접 찾아뵙기도 했습니다.
2006년 봄에는 선생님을 찾아뵙고 곶자왈 작은학교를 열 계획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선생님 가르침을 잘 살려 학교를 '작은 숲', '작은 진지'로 세우고 꾸려가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격려와 함께 학교 현판 글씨 몇 점을 써주시고, 또 작품 글씨 2점('처음처럼'과 '함께 여는 새날')을 따로 보내주셨습니다.
그해 겨울에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사람 시상식에 참가했다가 다시 성공회대학교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곶자왈 아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대학원 수업 종강 파티였는데 우리 아이들도 무대로 나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날 kbs 고민정 아나운서도 만나고, 다음날엔 kbs 공개홀로 가서 개그콘서트를 관람하고 '옥동자' 정종철씨도 만났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제주도에서 강연을 하신지 어느덧 10년이 흘렀습니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선생님을 모시고 강연회를 열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선생님 강연 섭외를 부탁했습니다.
11월 초 서울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평화교육 대회에 참가한 뒤 나는 부랴부랴 청주로 향했습니다.
청주교대에서 신영복 선생님 강연회가 있어서였습니다.
7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또 수 백여 명의 사인회가 끝난 뒤에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에게 제주 강연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22일 제주에서 선생님 초청강연회가 열렸습니다.
나도 곶자왈 작은학교 오돌또기 아이들을 데리고 강연회 장소에 갔습니다.
그 중 몇 명은 1월 7일부터 21일까지 15일 동안 필리핀 민다나오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입니다.
자기들 스승의 스승을 만난다고 하니 피곤함을 무릅쓰고 기꺼이 나선 아이들입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신영복 선생님만이 아니라 방송인 김제동님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물론 김제동님에게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아줌마들의 힘'에 멀리 밀쳐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ㅎㅎ
강연 다음 날, 선생님과 더숲 트리오 선생님들과 함께 제주 여행을 했습니다.
김남흥 원장의 안내로 돌하르방 공원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선흘곶자왈 동백동산을 둘러본 뒤에 곶자왈 작은학교를 찾았습니다.
선생님의 뜻을 살린 학교.
세상의 변화를 모색하는 작은 숲(진지)이 되고자 하는 학교를 안내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도 둘러 새롭게 걸린 사진들도 보고 박훈일 관장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날 밤 돌하르방 공원 게스트 하우스에선 선생님과 더숲 트리오와 함께 하는 작은 이야기 마당도 열렸습니다.
17명의 제주사람들이 모여 강연회 때 못다 나눈 선생님 이야기도 듣고, 더숲 트리오 선생님들의 노래도 들었습니다.
따뜻하고 정겹고 의미있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22일 강연회 때 깜짝 출연했던 김제동님이 이 자리에도 참석했습니다.
사회 문제 토론으로 조금은 무거웠던 자리가 김제동님 덕에 즐거운 자리가 되었습니다.
즐거운 웃음을 던지는 유머를 하면서도 그는 꽤 진지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가까운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김제동님에게 <곶자왈 아이들과 머털도사>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 사인도 해주었습니다. ㅎㅎ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다음 휴가 때는 곶자왈 작은학교에서 머물러도 괜찮겠냐는 뜻을 전해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좋겠습니다.
대안교육에도 관심이 많고,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가 우리 학교를 찾고 우리 아이들을 만난다면 정말 좋은 일입니다.
24일, 떠나시는 날에는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앞오름을 올랐습니다.
10년 전 제주에 강연을 오실 때도 함께 오름을 오르지 못하셨습니다.
어제도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하기도 했지만 몸도 성치 않으신 상태라 예정했던 오름을 오르지 못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전 날씨와는 달리 햇볕도 비치고 바람도 그리 차갑지 않았습니다.
오름을 오르고, 분화구 둘레를 다정하게 걸었습니다.
"올레보다 오름이 더 좋네." 그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오름에서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내게 붓글씨 다섯 작품을 주고 가셨습니다.
세 작품은 선생님이 제주에 계실 동안 여러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드렸습니다.
지금 남은 건 <함께 여는 새날>과 <함께 가자 우리> 입니다.
한 작품은 곶자왈 작은학교에 걸어 두고, 다른 한 작품은 꼭 필요한 곳에 귀하게 쓰일 것입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본디 이야기는 토끼의 자만심에 빗댄 거북이의 우직함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들려주십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했습니다.
걸음이 빠른 토끼는 느림보 거북이를 앞섰습니다.
앞선 토끼는 거북이를 앝보고 도중에 풀밭에 누워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거북이를 앝보고 잠을 잔 토끼도 나쁘지만 잠든 토끼 앞을 살그머니 지나가서 이긴 거북이도 나쁩니다.
"토끼냐 일어나! 함께 가는 친구가 되자"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끼를 깨워 함께 걸어가는 거북이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함께 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일러주시는 말씀입니다.
나 개인도, 곶자왈 작은학교도 이 귀한 말씀 소중히 여겨 실천하겠습니다.
'여럿이 함께' 해서 '새날'을 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흘 동안 선생님을 뵐 수 있어서 정말 반갑고 기뻤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더숲 트리오 선생님들도 고맙습니다.
즐겁고 정겨운 노래도 들려주고 때론 선생님과 함께 좋은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민다나오 보름 여행의 피로가 싹 가시는 날들이었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첫댓글 우이령을 좀 더 게으르게, 강아지처럼 걷지못한게 약간 아쉽네요.. 두꺼운 방어본능을 한꺼풀씩 벗고 좀 더 열렸으면 좋겠는뎅.
오랜만에 나오면 누구나 쭈뼛쭈뼛하게 마련이잖아요? 더불어숲 전체모임이 아니더라도 나무님들을 가끔 보면 다음엔 더 잘 열릴거에용~ ㅋㅋ
링크걸린 사진을 보니까 작년 딱 이맘때 제주도에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진보적 선생님들 몇분하고 올레길과 오름에 올랐었는데 저 역시도 올레길보다 오름이 더 좋더군요. 사진 보니 또 가고 싶네요.^^
제주 오름 오른지 언제던가, 설 쇠고 다시 오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