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금요일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금요일 저녁에는 원주에서 교향악 연주회가 있었고 토요일은 조카와 우리 부부의 식물원 탐방, 일요일은 대망의 굿판에 쫓아갔다. 이중에 가장 인상깊은 것은 만구대탁굿으로 알려진 민혜경 만신(무당)의 퍼포먼스였다. 어릴 때 동네에서 본 굿외는 한번도 굿이란 것을 구경도 듣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원주의 연주회는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협연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가 압권이었다. 이 피아니스트는 실제 연주를 처음 접하지만 유튜브에서 익히 들어본 연주자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연속극 작가로 유명한 이금림씨다. 어머니는 유명 드라마작가인데 아들은 유명 피아니스트,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 생각된다. 미스 터치가 몇군데 있었지만(환장하게도 지금은 남의 연주 미스를 잡아내는 귀가 생겨버렸다!) 무난했고 힘도 좋았다. 이 연주는 일요일 굿 공연 끝나고 구내식당 가는 중에 예술의 전당 연주회장 마당에서 또 들었다. 원주 연주가 프리뷰 콘서트였고 본 연주가 예술의 전당에서 일요일에 다시 있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남편이 조카(돌아가신 누님의 딸, 대장암 투병중)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서울 식물원에 갔다. 조카는 간호사로 다시 복직하여 일하고 있었고 요즘 의료분쟁으로 더 바쁘다고 한다. 의사가 파업중이어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암투병중이라해도 아직 50대 초반이라 건강하고 지치질 않아 확실히 젊구나 싶었다. 식물원은 생긴지 3년이라 아직 구색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야외로 걷는 길도 나무가 어려 그늘이 지질 않았다. 뙤약볕에서 걷느라 힘들었던 기억만 난다. 식물원보다 돌아오는 길에 본 LG 아트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는 아트센터는 외모부터 특이했다. 멀지만 연주회도 들어볼 겸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마지막으로 황해도 만구대탁굿과 역시 황해도 강령탈춤 공연이 일요일에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있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무려 4시간 짜리 공연이었다. 나는 2시간만 보고 나올 셈으로 갔었는데 앉아 보다 보니 2부도 안볼 수가 없어 끝까지 관람했다. 국립국악원은 예술의 전당,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와 같이 붙어 있다. 한예종은 미국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이나 줄리어드 스쿨같은 실기 위주의 음악대학이다. 여기 출신이 최근 세계 콩쿨을 주름잡고 있다. 임윤찬, 문지영, 손열음, 클라라 주미 강, 양인모 모두 이학교 출신이다. 지나며 보니 캠퍼스는 아담했다. 크기와 상관없이 업적이 대단하다.
우면당은 연주회장이 소규모로 마당극 같은 것을 하기 좋은 사이즈 같았다. 자리에 앉아 민혜경 만신이 등장하고 악사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아무리 서양음악을 공부하고 들었어도 북소리와 징소리를 듣고 느끼는 감동은 뭔가 달랐다.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감흥이랄까. 배우지 않아도 느끼는 그런 것이다. 내 DNA에 내재되어있는 영혼의 소리 같은 것 말이다. 민혜경님은 찾아보니 현직 무당이고 점집도 운영하고 있다. 궁금하면 가보시길.
체구도 작고 얼굴도 작았지만 일단 입을 열고 몸을 움직이면 관객을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어마어마했다. 읊조리는 사설도 즉흥적이었다. 만신이 시키는 대로인지 본인의 가락인지는 모르지만 관객, 악사와 소통하는 모습이 정치인 저리가라였다. 아마 그녀가 하는 점집에 가면 누구나 저절로 기선을 제압당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굿은 3일 동안 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을 축약하고 탈춤공연까지 곁들여 4시간 만에 주파한 것인데 탈춤보다 민혜경님의 공연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녀의 사설과 춤사위는 저절로 흥이 나고 나도 모르게 두손을 비비게 만들었다.(왜 어른들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할 때 모으는 손동작있지 않은가)
마지막의 작두타는 공연은 액을 물리치는 굿으로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진짜 날 시퍼런 작두였고 미리 마련한 높은 곳에 올라가 맨발로 작두타는 모습에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손을 빌며 감탄했다. 그녀가 쓴 모자에는 사람들이 미리 준비한 현금이 가득했다. 나는 몰라 준비 못했는데 원래 굿을 볼 떼 복채같이 현찰을 무당에게 주는 것인가 보았다. 다들 몰려나와 그녀의 모자속에 너도나도 현금 집어넣는 모습을 나는 우두커니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굿을 마친후 그녀는 연주회장의 안내원들을 불러 모자속에서 돈을 꺼내 나눠주고 밖에 있는 직원 몪까지 챙겨 주었다. 우리같은 관객들에게는 붉은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었는데 그 안에는 부적이 들어있었다. 역시 액땜 부적일 것이다.
혹시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국악원에 공연을 보러 오실 분들에게 식당을 하나 추천한다. 예술의 전당 입구에서 들어와 왼쪽 유리계단을 올라가면 구석에 예향 이라는 직원용 구내 식당이 있다. 일반인도 받고 한끼에 9000원(7달러) 으로 저렴한데다 김치와 샐러드는 무한 리필이고 눌은밥까지 후식으로 먹을 수 있다. 식사 내용도 좋다. 오늘은 닭카레에 오뎅탕이었고 반찬도 푸짐했다. 이 식당을 추천했던 친구는 지금 요양원에 있고 정신도 조금 이상해졌다. 혼자 먹으며 생각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그말이 진짜로구나 하고 말이다.
첫댓글 헐 ㅋㅋ 요즘은 굿도 콘서트 공연장 같네요
어릴적 시골에서 작두 타는거 봤는데 신기 했어요
아르테미스님 정말 바쁜 주말을 보내셨네요 이곳 저곳을요
그와중에 교회 피아노 반주도 하시고요?
어릴 때 말고는 처음 봤어요. 현직 무당이세요. 작은 몸에서 내뿜는 카리스마 어마무시합니다.
예배반주는 수요일 시골 교회에서 하고 주일에는 사랑방 모임에서 찬송할 때 반주합니다. 오늘은 서울 공연 보러 가느라 교회 못갔죠. 제가 조금 날라리 교인입니다^^
@아르테미스 ㅎㅎ 저도 날라리에요
근데 집이 두곳이네요 좋으시겠어요
4시간 굿 구경을 하시다니
그녀의 카리스마가
가히 평범치 아니었나봐요. ^^
그러니까요.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토속신앙이잖아요. 이론으로 몰라도 느낌이 전해져옵니다.
늦게 글을 읽었네요. 매우 바쁜 주말이였네요.
은퇴후 시간이 많다보니 한가지 일만 해도 하루가 후딱 가던데…
아르테미스님은 여러가지로 흥미가 있으신듯 합니다.
시간이 그냥 눈깜짝할 새에 지납니다. 가는 세월이 넘 아까와서 다니는 중입니다. 우물쭈물하다 언젠가 하늘나라 갈 날이 올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