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장미의 도전 - 노동자의 이름으로 열어가는 혁명적 페미니즘
오연홍 엮음, 김요한 양동민 양준석 오연홍 전해성 옮김, 숨쉬는책공장 2023.
들어가며
‘빵과장미’를 소개하며
사회주의 여성단체 ‘빵과장미(Pan y Rosas)’는 새로운 종류의 페미니즘을 선언하며 탄생했다. 이들은 여성 CEO의 성공을 꿈꾸지 않는다. 피 말리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남성과 더 잘 ‘경쟁’할 수 있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세계 최고 부자들 명단에 남성과 여성의 숫자가 동등해도 고용불안과 저임금, 다양한 성차별적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삶이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대통령·장관·기관장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어도 다수 여성을 억누르고 쥐어짜는 이 체제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숱하게 경험했다.
여성 살해와 임신중지권 박탈에 맞서 수많은 여성이 뛰쳐나온 거리 시위, 대량 해고와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일으킨 파업, 공장점거, 노동자 자주 관리 운동의 현장에서 빵과장미는 탄생했다. 단결한 여성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며 행진하는 곳에서 남성 동료 노동자도 함께 구호를 외치며 투쟁했다. 그렇게 빵과장미는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혁명적 페미니즘의 길을 개척 중이다.
처음부터 모든 게 순탄했을 리 없다. 싸워야겠다고 결심한 여성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그들의 정부에 대항하면서, 동시에 여성과 성 소수자를 향한 남성 노동자 다수의 편견에도 맞섰다. 여성 노동자의 꺽이지 않는 도전, 그리고 이들과 함께 전진하려는 일부 남성 노동자의 의지가 맞물리며 빵과장미는 성장했다. 2003년 아르헨티나에서 몇십 명으로 구성된 모임으로 시작한 빵과장미는 이제 수천 명의 회원과 지지자가 결집했고, 아르헨티나를 넘어 멕시코·스페인·프랑스·브라질·칠레·우루과이·볼리비아·미국·페루·독일·이탈리아·코스타리카·베네수엘라 등 14개 나라에서 활동하는 국제 네트워크로 폭을 넓혔다.
이런 활동과 성장 과정이 곧 빵과장미의 성격을 규정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계선은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이 아닌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그어져 있다. 촉망받는 여성 CEO가 600명의 여성과 남성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만들어버리는 현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분리주의적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결’을 앞세워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어내는 노동운동의 남성중심주의 관행에 타협하지도 않는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나중으로 제쳐놓으면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성취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빵과장미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는 페미니즘이 이른바 이중체계론과 연관된 특정한 조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이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회주의자는 시각이 좁고, 사회주의자가 아닌 페미니스트에게는 전략이 결여돼있다”는 1914년 루이스 니랜드(Louise Kneeland)의 진술을 채택한다. 여성 의제가 곧 노동자계급의 의제이며, 여성 억압에 맞선 투쟁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과 분리할 수 없다는 시각이 이들의 출발점이다.
이 책은 빵과장미의 다양한 투쟁 경험과 주장을 살펴볼 수 있는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아르헨티나 빵과장미 활동가인 셀레스테 무리쇼와 진행한 인터뷰를 제외한 모든 글은 《일간 좌파La Izquierda Diario》, 《좌파 사상Ideas de Izquierda》, 《논쟁Contrapunto》에 발표되고 미국의 사회주의 매체 《레프트 보이스Left Voice》에 영어로 게재된 기사들이다.
1장 ‘투쟁의 최전선에서’는 빵과장미가 직접 참여한 투쟁 사례를 바탕으로 이 단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활동하며 성장해왔는지 조망해볼 수 있는 글로 구성했다. 첫 두 글은 빵과장미의 역사와 운동을 개괄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비슷한데, 서로 다른 필자가 각자의 시각에서 강조하는 지점에 차이가 있으니 비교해서 읽어볼 만하다. 이어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나 분리주의 페미니즘과 명확히 구별되는 새로운 종류의 페미니즘이 어떻게 모습을 갖춰나갔는지 살펴볼 수 있는 펩시코 투쟁 사례, 기성 정치권에 매달리는 대신 광범한 거리 시위의 힘으로 임신중지권을 쟁취한 사례, 성 소수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을 벌인 사례 등을 접할 수 있다.
2장 ‘멀리 내다보며 전진하기’는 빵과장미가 지향하는 정치 전망을 다룬다. 성장과 팽창의 시대를 지나 침체와 위기의 시대로 접어드는 내내 자본주의는 체제를 관리하기 위해 인종차별이나 애국주의 따위와 더불어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을 활용하여 노동자계급을 분열시켜왔다. 이윤 창출에 모든 걸 종속시키는 자본주의가 그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로부터 여성 억압에 맞선 투쟁은 무엇보다 자본주의라는 뿌리를 도려내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런 투쟁이 정점에 다다른 사례로 1917년 러시아혁명의 성과를 다룬 글도 포함했다. ‘사회주의 역시 또 하나의 억압 체제에 불과한 게 아닌가?’, ‘사회주의에서도 여성 억압은 사라지지 않았잖아.’ 혁명의 용광로에서 솟아난 창조적인 결실과 그 이후 벌어진 스탈린 반혁명의 결과를 구별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이런 결론으로 건너뛰기보다는, 이 책에 실린 글의 안내를 받으며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면밀하게 짚어보는 일은 비할 수 없이 유익하다.
3장 ‘여성해방의 전략을 위한 토론’에도 빵과장미의 정치 전망과 연결된 글을 모았는데, 주로 논쟁적인 방식으로 주제를 다룬다. 지난 몇년 간 두드러지게 성장한 흐름으로 ‘99%를 위한 페미니즘’ 운동을 들 수 있다. 필자들은 ‘99%를 위한 페미니즘’ 운동이 흔히 여성 파업과 결합하면서 노동자계급과 거리를 뒀던 그간의 페미니즘에서 진보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한다. 그러면서도 이 운동이 어떤 점에서 모호하거나 약점이 있는지 짚으면서 전진을 위한 방향을 탐색한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 재생산을 둘러싼 논의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적 재생산 이론은 과거 마르크스주의가 명시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은 부분을 풍부하게 채워간다는 점에서 많은 토론 과제를 안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성과를 부당하게 왜곡하거나 잘못된 구실로 기각해버리는 모습도 나타난다. 필자들은 수잔 퍼거슨, 실비아 메데리치 등의 주장을 소개하며 논쟁적으로 문제의식을 전달한다. 이번 책에 포함하지는 못했지만 낸시 프레이저, 마리아 미스, 리즈 보걸 등 페미니즘 논쟁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론가들의 주장을 다룬 글도 있다. 이후 기회가 닿는 대로 소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 장에는 빵과장미의 국제 선언문을 실었다. 빵과장미는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고 나라마다 투쟁의 역사와 정치 환경이 다르다. 그래서 어디서는 여성 살해에 맞선 투쟁이 핵심 과제가 되고 어디서는 임신중지권을 위한 투쟁이 시급한 과제가 되는 등, 나라마다 활동의 강조점에 차이를 보인다. 이런 전술적 유연성과 더불어, 각 나라의 다양한 실천을 단일한 전략적 지향으로 묶어내기 위한 기준점으로서 국제 선언문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글에 포함된 모든 규정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화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이 체제 문제를 비껴가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을 넘어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페미니즘을 모색하는 데 빵과장미의 주장은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믿는 자가 통치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나라의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으며 만년 1위의 오명을 쓰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동안 당연한 것처럼 여성의 몫으로 떠넘겨지는 돌봄노동의 하중은 더 무거워졌고, 이는 고스란히 여성의 실업 위기로 이어졌다. 지하철역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스토킹 범죄에 목숨을 잃었다. 한 대학생은 교내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건물에서 추락사했다. 인력 충원 요구를 고집스럽게 거부하며 2인 1조 근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교통공사, 경비인력을 줄여가는 대학, ‘안전보다 이윤! 비용 절감!’이라는 자본의 논리가 모든 곳에 손을 뻗치고 있다.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서 가부장적 여성 억압에 맞설 수 없다는 빵과장미의 주장은 오늘날 한국에서 더없이 적절하다.
낡은 체제에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체제를 꿈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다. 기후정의 운동에서 자본주의 규탄 목소리가 두드러지게 확대된 것도 이를 표현한다. 이제는 집권 세력에 반대한다면서 또 다른 자본가 정당에 의존하려 하거나, 성별 분리주의에 갇힌 기존의 페미니즘과는 다른 종류의 페미니즘이 절실하다. 빵과장미는 그런 전망이 시급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