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여행(3)- 소동파와 왕안석(北宋) / 평생의 정적(政敵)

[박영우]

두사람의 대문장가 평생을 정적(政敵)으로..

송(宋)나라 소동파(蘇東坡, 1037~1101)와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함께 당송8대가(唐宋八大家)로 文名을 떨쳤으나 정치적으로는 평생 정적(政敵)이었지요. 정적이라지만 대등한 관계가 아니고, 소동파가 일방적으로 두둘겨 맞는 처지였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필자는 이 두사람의 정치적 소신이 뒤바뀐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왕안석은 얼굴과 의관을 매만질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과 고집의 소유자로, 황제가 바뀌어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네요, 그런 보수적인 색체가 강했던 그가 신법이라는 개혁을 주도한 인물이었다니..

반면 재기 발랄한데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고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소동파는 구법당파였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이건 소동파를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키워준 스승 역시 당송8대가 중 한 사람인 구양수(歐陽修, 1007~1072)로, 그의 정치적 색갈과 무관치 않지요. 당대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였던 구양수는 왕안석를 키워놓고 보니 호랑이(?)로 돌변해 자신에게 발톱(?)을 들이대기에, 그 대항마로 소동파를 키운 게 사실이니까요.

            

 왕안석(王安石, 1021~1086)                     소동파(蘇東坡, 1037~1101)

소동파를 후원한 대정치가 구양수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난 아버지(蘇洵, 당송8대가) 슬하에서 자란 소동파는 어려서 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났었는데, 22세 때 치른 과거시험에서 2등을 합니다. 애초에 1등으로 지목되었으나 과거시험 최고책임자인 구양수가 자신의 제자 답안으로 오인,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코자 2등으로 강등시켰다네요. 그 답안이 매우 탁월함에 같이 심사를 맡았던 시인인 매요신(梅堯臣, 1002~1060)에게, '이제 이 늙은이들은 뒷방으로 물러날 때가 되었나 봐요' 라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뒷날 그는 지인들에게 '먼 훗날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믈겠지만, 소동파는 영원히 기억될 것' 이라는 말도 했다는데 정말 냉철하고 정확한 예측이 아닐 수 없네요.

소동파와 왕안석과의 악연

소동파는 구양수의 후원으로 문단에 화려하게 등단할 즈음 어머니 상으로 3년간 시묘살이를 한 후, 다시 제과(制科, 황제주관 과거)에 당당히 장원급제하여 정계에 입문합니다. 그러나 몇년 못 가서 신법 개혁을 추진한 왕안석에 의해 옛 월나라의 고도 항주(杭州)로 좌천됩니다(1071~74). 그 후에도 중앙무대에 제대로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밀주(密州, 山東성)로 서주(徐州, 江蘇성)로 외곽을 빙빙 돌게 되지요(1074~77). 그러나 자유분방한 그는 가는 곳마다 백성들과 잘 어울리고  많은 시들을 남깁니다. 같은 문인으로 왕안석에게 섭섭함을 토로한 것으로 짐작되는 소동파의 명구(채근담에서도 인용).

爲鼠常留飯 憐蛾不點燈(위서상류반 연아부점등)

(현명한 주부는) 쥐를 위하여 늘 밥을 남기고, (어진 선비는) 부나방을 불쌍히 여겨 등불을 켜지 않는다

  *앞 句는 정적에 대한 배려를, 뒷 구는 왕의 주위에 모여드는 정치꾼에 대한 경계를 암시한 듯..

황국(黃菊)과 황주(黃州)에 얽힌 일화

그 후, 소동파는 또 호주(湖州, 浙江성)로 좌천되었다가 황도(汴京, 현재의 開封)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때 왕안석이 있는 승상부에 인사차 갑니다. 그런데 서방(書房)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 우연히 왕안석의 필적의 시구를 보게 됩니다.

西風昨夜過園林 吹落黃花滿金地 (서풍작야과원림 취락황화만금지)

지난 밤 가을 바람(西風)이 정원을 지나가니, 부는 바람에 노란 꽃(黃菊)이 떨어져 땅 가득 황금이로구나.

그러나 소동파는 이 시구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원래 국화란 바람불고 추워도 시들지언정 떨어지지 않는데, 이 양반 상식이 부족하구나 생각하고 아래와 같은 시구를 써서 그 옆에 슬며시 끼어넣고 나옵니다.

秋花不比春花落 說與詩人仔細吟 (추화불비춘화락 설여시인자세음)

가을 꽃은 봄에 피는 꽃과 달라 떨어지지 않지요, 시인께 말씀드리오니 자세히 살피고 읊으시기를..

괘심죄 때문인지 소동파는 다시 벽지인 황주(黃州, 湖北성)로 좌천됩니다. 임지에 도착하니 평소 알고 지내던 절(定惠院)의 주지가 여러 종의 黃菊 씨앗을 보내와 뒷뜰에 심었는데, 중양절이 가까워지자 노란 국화가 만발합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 바람(西風)이 불고 지나간 아침, 뒷뜰 가득 황국이 떨어져 있는게 아닌가. 소동파는 무릅을 탁 치며 '이 영감이 나더러 스스로 깨우치라고 이곳으로 보낸 거지, 개인적인 분풀이로 보낸 건 아니로구나' 라 했다는데.. 소동파를 황주(黃州)로 보내면서 '한가하여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니, 도리어 책읽고 배움을 넓힐만 할게요(閑暇無事 還要讀書博學)' 라고 한 말이 허언은 아닌 셈. 소동파의 절창 적벽부(赤壁賦)도 이곳에서 탄생했고, 동쪽 언덕이란 뜻의 '東坡' 란 호도 바로 이 황주의 한쪽 구텡이 이름에서 따 온 걸 보면, 그의 '황주 사랑'을 짐작케 합니다.

왕안석의 신법 개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총칼없이 개혁을 성공한 예가 없고, 설령 초기에 성공하는 듯 보여도 개혁의 열매를 따먹은 새로운 기득권이 생겨 단순히 부와 권력의 이전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지요. 왕안석의 신법은 징세와 군역이 주요한 내용으로 그 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양수와 같은 기득권 세력과 마찰이 심했고 권력투쟁의 양상을 띄어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왕안석은 그 자신이 뛰어난 문장가임에도 과거시험에서 오랫동안 채택해 온 시(詩)와 부(賦, 산문)를 없애려고 함에 특히 소동파나 구양수 등 문인들의 반발을 불러왔지요. 대의와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왕안석의 신법도 양면성이 있음을 빗대어 지적한 소동파의 절창 한 수(題西林壁) 붙입니다.

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횡간성령측성봉 원근고저각부동))

옆에서 보면 고갯마루 가로 보면 봉우리​,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제각기 다르구나​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불식여산진면목 지연신재차산중)

여산(廬山)의 참모습을 알 수 없는 것은​, 몸이 이 산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오

  *그 유명한 眞面目, 즉 진짜 모습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

소동파와 왕안석 화해하다

소동파가 황주에서 다시 황도로 소환될 때, 왕안석은 벼슬을 그만두고 하남(河南)의 여주(汝州)로 퇴거하여 머물고 있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일부러 나귀를 타고 마중나온 왕안석과 짧은 기간이지만 화해하고 좋은 친구로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조용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게 어떻냐는 왕안석의 제안에, 지난날의 섭섭함을 애둘러 표현(次荊王韻四節)합니다.

騎驢渺渺入荒陂 想見先生米病時(기려묘묘입황피 상견선생미병시)

(이 몸이) 나귀 끌고 아득히 황량한 곳으로 갈(좌천) 때, 생각해 보니 선생께선 몸이 아프지 않았었지요.

勸我試求三畝宅 從公已覺十年遲(권아시구삼무택 종공이각십년지)

제게 넓다란 전원주택을 사라 권하시는데, 공께서 진작 그랬으면 좋으련만 10년이나 늦었군요

소동파와 인연이 깊은 항주(杭州)

춘추시대 월나라의 왕도였고 절세가인 서시(西施)의 고향인 항주와 소동파의 인연은 깊습니다. 처음 벼슬길에 올랐다가 좌천되어 내려갔던 곳도,  나중에 자진하여 찾아간 데도 항주입니다. 소동파는 이곳에 깊은 애정을 갖고 명승지 서호(西湖)를 정비하여 수재를 없앴다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 멋스런 호수의 풍광을 서시(西施)의 미색과 비교한 시(飮湖上初晴後雨)가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지요.   

水光澰灩晴方好(수광렴염청방호)  물빛이 찰랑이고 반짝이니 갠 날이 마침 좋고
山色空濛雨亦奇(수색공몽우역호)  산색 비어 있는듯 흐릿하니 비오는 날 또한 기이하네
欲把西湖比西子(욕파서호비서자)  서호를 들어 서시와 비교하라면
淡粧濃抹總相宜(담장농말총상의)  옅은 단장이나 짙은 화장이나 모두 다 맘에 든다 하리

끝으로 소동파의 '정치판'에서의 맘고생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시 한 수 붙입니다.

洗兒戱作(아이를 씻기며 장난삼아 짓다)

人皆養子望聰明(인개양자망총명)  사람은 다 아이를 기를 때 총명하길 바라지만

我被聰明誤一生(아피총명오일생)  나는 총명함 때문에 일생을 그르쳤다오.

惟願孩兒愚且魯(유원해아우차로)  오직 바라거니 아이가 어리석고 또한 노둔하여

無災無難到公卿(무재무난도공경)  재앙없고 고난없이 큰 벼슬에 이르기를

(소동파의 수난은 황주 좌천으로  그치지 않고 또 혜주(惠州, 廣東성)로 좌천됩니다. 그후, 그를 질시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하이난 섬(海南島)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주로 거주하던 리족(黎族)과 함께 7년간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철종의 죽음으로 휘종(徽宗)이 즉위하면서 제거옥국관(提擧玉局觀)이라는 명예직에 봉해져 상경하던 도중, 큰 병을 얻어 상주(常州)에서 66세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합니다.)

蛇足 : 필자가 20여년 전에 장사차 홍콩을 거쳐 하이난 섬(海南島)에 가게 되었는데, 동행한 대만 중문대 교수가  남쪽 산야(三亞) 지방의 해변에 세워진 비석을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해 주데요. 머리나쁜 필자는 그것이 소동파가 말년 귀양온 곳에 세워 진 시비(詩碑)라는 걸 한참 후에나 알았습니다. 그 교수 답답해 하던 모습이 지금도 역력합니다만..

[여림]

너무 재미있어
읽기 마저 아까워요!
월영선생!
여러 해 전에 들은 이야기로
소동파가 장가를 여러 번 가고 처복도 많았다는데....
그 이야기도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