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관점에서 본 코로나 팬데믹
임 학 균
등대 그리스도의교회
* 팬데믹은 ‘인류 역사의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였다.
아즈텍 제국(1200-1521)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북부를 지배했던 강국이었다. 이 제국이 하루아침에 멸망하였는데 그 과정이 정말 놀랍다. 제국의 멸망원인은 군사력이 아니었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수만 또는 수십만 명의 제국 군사력이 불과 500여명의 군사력에 멸망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천연두였다.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1000명이 채 되지 않는 인원으로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천연두가 결정적이었다. 코르테스 군과 아즈텍의 1차 전투 때 숨진 병사의 천연두 균이 퍼져 2년 만에 당시 황제 쿠에트라바신 등 아즈텍 인구의 25%가 사망했다. 남미 페루의 잉카제국도 당시 퍼진 천연두 바이러스로 몰락했다. 잉카 제국의 왕과 왕실 가족을 포함해 원주민 인구의 60% 이상이 천연두에 쓰러졌다. 아즈텍과 잉카제국은 그렇게 사라졌다.”(국민일보, 2019. 11. 14 자)
팬데믹은 첨단과학의 시대라고 하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사스(SARS), 신종 플루(influenza A H1N1), 메르스(MERS-CoV), 그리고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까지 팬데믹은 꾸준하다. 도대체 팬데믹은 왜 반복되는 걸까? 물론 자연현상의 일부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일이 터질 때마다 인류는 큰 고통과 위험, 그리고 죽음과 공포에 노출되었다. 자연과학은 그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혼신을 다해 노력하고 있고, 신학과 철학과 윤리 등 인문학에서는 이 팬데믹의 의미를 찾기 위해 다각도로 성찰하고 있으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팬데믹의 역사는 성경에도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그 이유와 대처방법도 분명하다.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서두에 역사의 팬데믹을 약간 서술했지만 이 글의 주제는 성경 속의 팬데믹을 살펴보고 그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처한 오늘의 팬데믹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 방법을 찾는데 있다.
1. 팬데믹은 ‘하나님께서 실행하시는 구원과 심판의 집행방식’일 때가 있다.
[신 28: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군사 전문 계간지 MHQ(The Quarterly Journal of Military History)에 게재했던 특집이 히트를 치자 그 내용들을 묶어 「만약에 1」이라는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은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만약 다른 결과로 끝났다면 후세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가정(假定)을 바탕으로 결과를 유추해 보는 대체역사의 기록이다. 그 중 제1장인 ‘크리스천 없는 세상’을 쓴 윌리엄 맥닐은 기원전 701년 앗수르와 유다 왕국 간의 전쟁을 회고하면서 만약에 이 전쟁에서 앗수르가 이겼더라면 유다 왕국의 ‘바벨론 유수’는 더욱 빨리 찾아왔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만약에’ 그리되었다면 유대교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며 이 유대교와 연관이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역시 발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 두 종교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윌리엄 맥닐이 언급한 이 전쟁이 성경에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침공한 앗수르 군대를 전멸에 가깝도록 멸해 주셔서 히스기야 왕으로 하여금 대승을 거두게 하셨다. 이 기사는 성경 세 권에 각각 기록되어 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 19:35)”.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대하 32:21)”.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 37:36)”. 여기에 주목할 단어가 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여호와께서 천사를 보내어”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셨기에 앗수르 군 십팔만 오천 명이 죽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또는 천사)를 통해서 십팔만 오천 명을 멸하시고 유다에 승리를 안겨 주셨는데 어떤 방식이었을까? 일반역사에서는 이 부분을 ‘괴질(怪疾)’이라고 말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염병 창궐, 즉 팬데믹이라는 수단으로 역사하셨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의 분부로 전염병을 돌게 했다는 유사 사건은 사무엘상 24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팬데믹을 출애굽 직전에도 애굽에서 실행하셨다. 애굽인들의 가축에 생긴 돌림병(출 9:1-7)과 애굽인들에게 번진 악한 종기(출 9:8-12)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광야에서 고라와 다단과 온이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하자 하나님으로부터 온 염병이 시작되어 이스라엘 사람 만 사천칠백 명이 죽었다(민 16:46-50). 모압 평지 싯딤에서는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고 그들의 신 바알브올에게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역병으로 이스라엘을 치셨다. 이 일로 이만 사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민 25:1-9).
이처럼 팬데믹은 하나님께서 현세에서 역사하시는 구원의 집행방식이거나 심판의 집행방식일 때가 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 본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수단이었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조롱했던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수단이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도록 말이다.(시 1:6).
2. 팬데믹은 ‘인류가 교만에서 돌이켜 겸허해 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
[겔 6:11]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마침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망하되 [12] 먼 데 있는 자는전염병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삼상 2:3]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인류의 문명은 꾸준히 발전하여 왔다. 인류는 제트여객기와 자동차 등의 교통수단, 방송, 인터넷, 화상전화 등의 매스미디어(the mass media)를 통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으면서 ‘지구촌’이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워 보이는 지구촌이 팬데믹 앞에서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예전에는 특정 지역만의 팬데믹이었으나 이제는 터졌다하면 세계가 공포에 떨어야 한다. 과학이 그 많은 바이러스들을 다스린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현대는 하늘을 지배하기 위하여 인공위성과 우주선을 띄웠지만 천문학은 아직도 태양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땅을 지배하기 위하여 땅속의 지층과 지질을 연구하지만 지질학은 아직도 지진 앞에 속수무책이다. 해양학은 아직도 태평양의 밑바닥을 잘 모른다. 기상학은 하루 앞의 일기도 완벽하게 예보하지 못하고, 의학은 알고 있는 질병보다 모르는 질병이 훨씬 많아서 질병 정복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이것이 인간문명의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문명을 자랑하며 자만에 빠져 왔다. 아담과 하와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는 마귀의 말에 속아 죽음을 선고 받았다. 바벨 사람들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언어를 흩으시자 꿈은 깨어지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문명을 완성해 가기 위하여 꾸준히 힘을 쏟았다. 철학과 과학의 상당한 발전을 이룬 20세기에 이르자 ‘인류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지성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일어난 10년 동안에 약1억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억 명이 부상당하는 대재앙을 겪으면서 인류는 인간문명의 한계를 깨닫고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문명은 인간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으나 또한 고도로 발달한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어 스스로를 파멸로 몰았다. 성경은 그것을 자만(시 94:4, 렘 48:42)과 교만(신 8:14, 삼상 2:3)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자만심이 바로 ‘지성을 가장한 불신앙’이다. 이처럼 현세에서 이 자만과 교만을 깨거나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칼(전쟁)’과 ‘기근’과 ‘팬데믹(전염병)’이다.
성경에는 다수의 병들이 소개되며 발병의 원인과 해결책 또한 다양하다. 상처나 미생물에 의한 질병이라면 의학과 항생제의 도움이 필요하다(렘 51:8, 눅 10:33-34, 딤전 5:2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생긴 질병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역사하셔서 치유해 주신다(요 11:4). 마귀와 귀신에 의해 발병하는 경우나(마 9:22, 막 9:22 외)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 죄를 지었거나 계명을 어겼을 때 생기는 질병도 있는데 이때의 치료법은 회개와 기도이다(막 9:29, 약 5:15). 팬데믹과 관련된 병들도 나열되는데 염병(레 26:25, 민 26:46 외 여러 곳), 전염병(출 5:3, 눅 21:11 외 여러 곳), 역병(합 3:5), 돌림병(출 9:3, 15) 등이 그것이다. 고대 사회에서의 이러한 병들은 짧은 시간에 사회의 존립을 심각하게 위협하였기에 공포 그 자체였다. 특히 선지자들이 예고한 팬데믹(전염병)은 칼(전쟁)과 기근과 함께 최악의 징벌로 여겨질 만큼 심각한 3대 재앙이었다(렘 27:8,13; 겔 5:12-17, 6:11-12, 7:15 등).
그러므로 인류에게 꾸준히 닥친 팬데믹을 포함한 재앙들은 그 때마다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으며, 인류는 문명의 교만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허해야 한다.
3. 팬데믹은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으라는 암시’일 수 있다.
[열왕기하 8: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하면서 만약 이스라엘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을 받았을 때, 이 성전을 향하여 회개하고 기도하면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한다. 이는 재앙을 만나 불행이 임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금 기억하며 새롭게 설 기회를 갖게 해달라는 신앙재정립의 의미이기도 하다.
사무엘하 24장에도 팬데믹의 기록이 있다. 다윗은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분부한다. 요압은 인구조사가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됨을 상기시키며 만류하였으나 다윗은 강행을 명령하였다. 이것이 범죄인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사 늘 이기게 하셨고, 다윗은 그 하나님을 순전하게 경외하였다(삼하 8:6, 14, 24:3). 그런데 이제는 자기의 군대로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인구조사였으며, 당연히 그 자리에는 하나님이 배제되었다. 안타깝게도 다윗이 잘못을 깨달은 것은 인구조사가 끝난 후였다. 그는 징벌이 따라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하나님께 회개하였다 (24:10). 이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7년 기근’과 ‘3개월간의 패배하는 전쟁(칼)’과 ‘3일의 전염병(팬데믹)’ 등 세 가지의 징벌을 제시하시면서 다윗에게 하나를 선택하게 하셨는데 다윗은 가장 짧은 징벌인 팬데믹을 선택하였다.(24:13). 3일 간의 이 짧은 팬데믹으로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사망했는데 다윗이 회개하며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단을 쌓고 회개의 제사를 드리자 팬데믹은 끝이 났다(삼하 24:24-25). 역대하 3:1에 의하면 과거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했던 모리아가 바로 이곳이었고, 훗날 솔로몬이 지은 제1성전의 터가 바로 이곳이었다. 다윗이 팬데믹을 극복한 곳에 성전을 세우도록 하나님께서 계시했다는 사실은 분명 중요한 메시지가 있음이 틀림없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당하신 골고다도 바로 이곳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는데, “하나님은 긍휼이 크신 분(24:14)”이라고 한 다윗의 고백이다. 다윗은 팬데믹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의 권세가 어떠한지, 자신을 향한 언약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삼하 7:15)”고 하신 언약을 떠올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되새겼을 것이다. 월터 브르그만은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에서 “다윗과 더불어, 우리는 마지막 단어가 전염병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자비(69쪽)”라고 했는데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 팬데믹을 당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류는 앞으로도 꾸준히 팬데믹을 겪을 것이다. 그 때마다 몇 가지의 메시지를 되새겨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올바로 예배하고 신앙을 생활화 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정의 없는 제사(예배)를 드리며 성소의 마당만 밟는 유다의 헛된 제사를 거부하셨다(사 1:11-14). 그러므로 예배하기에 앞서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사 1:15-17)”를 생각해야 한다. 예배하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구도자의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인류의 문명이 주는 편함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추구해야 한다. 죽음이 눈앞에 와 있는데도 먹고 마시고 연락하겠다던 어리석은 부자가 되기보다는(눅 12:16-21),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경은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롬 8:22)”고 했는데, 해산의 고통은 결코 편하지 않다. 그러나 해산의 고통 후에 맑고 밝은 눈동자로 눈을 맞추는 어린 생명의 눈웃음을 보는 어머니의 그 행복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안이듯이 말이다.
셋째, 팬데믹의 주제와 메시지는 전염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이스라엘은 그 말씀이 사실임을 경험하였다. 이스라엘은 팬데믹을 통해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과 저주의 언약을 회고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싯딤에서 그랬고(민 16:46-50), 광야에서 그랬고(민 25:1-9),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그랬고(삼하 24:25), 바벨론 강변에서 그러했듯이(시 126:1-6, 137:1) 지금의 우리도 그렇다. 팬데믹의 주제는 전염병이 아니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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