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직관의 세계
2)영적인 각성(Purple)-영적인 빛
영적인 본성을 우리와 연결시켜주는 사하스라라 차크라는 우리의 물리적인 삶의 일부가 되어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도록 수용하는 능력이다. 에너지체계의 대부분이 영혼에 의해 활력을 갖게 된다면 보라색 사하스라라 차크라는 신성과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도록 직접 배열된 기도의 차크라이다(Myss, 1996/2019). 천개의 꽃잎으로 왕관을 만들고 성취된 전체의 풍부함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아래 방향을 가리킨다. 사하스라라 차크라는 모든 상반되는 것들의 통합이며 그것은 여성과 남성, 천상과 지상, 신과 인간과 의식과 무의식, 존재와 비존재의 결혼이다. 상반되는 것들의 통합은 개별화의 목적이다(Bittlinger, 2000/2016).
신(神)이나 신성(神性)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인간과 신의 부재(不在)를 겪고 있는 사람이나 심혼 혹은 초개인적 가치와 단절된 사람들도 초개인적이고 초월적인 심혼(心魂)적 경험을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체험을 자기(Self)라고 한다(Birkhäuser-Oeri, 2003/2007).
인간의 영혼은 특별한 종교적 행위나 의식을 행하지 않더라도 이미 인간의 정신 안에 신과 신성이 존재한다. 정수리 차크라의 활성화는 우리들을 신의 세계로 안내하고 모든 것을 통합하여 하나가 되게 한다. 서로 상반되는 모든 것들이 더 이상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두이며 또한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하스라라 차크라에 이르면 더 이상은 심리적 원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박미라, 2020).
우리의 영혼은 인간의 발전을 촉진하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하나의 용기(container)이다. 우리는 때로 명상하고 때때로 기도하며 세속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활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생명체와 신성의 다채로움을 숭배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인간 영혼의 사명이다(Myss, 1996/2019).
무의식을 돌보며 의식을 확장시키는 일은 바람직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삶의 목표에 대한 통찰력을 추구하고 진정으로 신이 원하는 인생의 도리가 무엇인지에 지속적으로 질문하며 멈추지 않고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차크라의 통합을 의미하는 보라색 차크라는 모든 것을 지배하며 분리되거나 파괴될 수 있는 것이 없다. 양극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표면적인 세계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Bittlinger, 2000/2016).
하나의 세상을 지향하는 보라색의 직관적 에너지는 신성한 생명의 빛을 세상과 세상에 속한 유기체들에 더욱 확장시켜 제공한다. 지상에 머무는 동안에 인간의 목표는 환상을 초월하여 영혼의 내면적 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으로 우리 스스로가 창조하는 모든 것에 책임을 가지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현재를 살지 못하는 상태는 사회적 부적응 상태이거나 현실을 도피하는 병리적 상황에 놓여있는 것으로 비현실적이고 맹목적인 사이비집단의 일원일 수 있다. 그래서 영적인 각성을 경험하고 빛으로 나아가는 존재들은 특별한 인간을 사랑하는 박애정신과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과 지혜로 행동하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과 모든 생명들에 봉사하며 살아야 한다(Myss, 1996/2019). 인생의 목적과 자신의 삶에 대한 숭고한 경외심을 일깨워주는 사하스라라 차크라 색채명상을 하면서 회복되는 존재감은 나의 동력이 되는 것 같았다.
다음 표Ⅳ-7은 사하스라라 차크라 색채명상의 치유과정을 제시하였다.
인간의 생명력이 들어오는 사하스라라 차크라는 명상과 기도를 통해 내면의 각성을 얻도록 도우며 초월적인 차원의 삶을 우리 자신에게 연결하고 믿음과 기도의 행위를 통하여 에너지를 축적하는 보물 창고이다. 생명력은 우주와 신(神) 또는 도(道)에서 인간의 에너지 체계 속으로 끝없이 밀려드는데 이 힘이 몸과 마음과 영혼을 살찌게 한다(Myss, 1996/2019).
나의 우주는 슬픔으로 가득차서 때때로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울음으로 채워질 때가 있다. 울음이 실타래처럼 길게 나와 깊은 설움에 잠겨질 때면 그림 Ⅳ-32와 같은 만다라를 그렸었다. 이번에 사하스라라 차크라 색채명상 중에 그리게 된 만다라에서는 울음이 들어있는 것 같고,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그린 원은 나의 단점을 예리하게 재단하듯 가슴을 찔러 왔다.
마치 물위의 거울처럼 느껴지는 보라색 만다라에 잠을 잘 수 없던 고통의 시간들이 비쳐졌다. 류마티스를 진단받게 되기까지는 알 수 없는 고통으로 그 이후로는 병명은 알게 되었지만 명확한 치료약이 없는 고통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영적인 에너지를 알게 되었고 지금은 통증과 연합하여 잘 지내고 있다. 내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면 분명 나의 통증이 한 몫 단단하게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통을 이겨낼 내면의 능력이 나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몸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이 눈으로 가슴으로 운 울음이었다. 울음이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마음을 집중하여 보라색으로 만다라를 그리다 보면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느낄 즈음에 저절로 나오는 기도와 형용할 수 없는 빛의 잔치에 초대되는 신비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림 Ⅳ-33은 천 개의 꽃잎을 세면서 그린 것으로 모두 다섯 장을 그렸는데 그중에 한 장이다. 일 천배를 드리는 정성을 생각하며 천 개의 차크라 색채명상 후에 공을 들여 보았다. 아무 바램 없는 기도를 드리며 오직 보라색을 생각하였는데, 정수리 중심에서 빛을 내고 존재를 정화시키는 근원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하스라라 차크라 색채명상은 우주적인 일체감을 일깨워 주었다. 정신에 영향을 주고 진정한 초월적인 체험을 하게 하는 보라색 에너지는 전체성을 경험하게 하고 신의 빛을 보게 하는 것 같았다. 창작은 일종의 명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통찰하는 것만이 아니고 자신의 감각들을 현재의 순간에 몰입하고 즐거움을 찾으며 때때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외감과 행복감을 보상받는 강력한 경험을 하게 하여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Hansen, 2001).
자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아에 의한 무의식의 의식화 정도에 따라 변화하고 성숙하기 때문에 자아에 대해 형식적인 정의 외에 일반적인 묘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이부영, 2002). Jung(1974, 진교훈, 유영돈, 2003, 재인용)은 자아의식을 신체적 요소와 환경간의 충돌에 의해 발생되며 일단 자아가 하나의 주체로서 자리 잡으면 외부세계와 내부세계 간의 충돌을 통해서 점차 발전해가게 된다고 하였다. 자아의식은 자기신체와 자기존재에 대한 의식을 통한 충돌들의 기억들로 형성된다. 자아의 무의식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무의식은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이부영,2002).
그림 Ⅳ-34는 밝은 빛과 사랑해야하는 존재들을 생각하며, 원을 그리고 각을 맞추어서 그린 만다라이다. 만다라를 그리는 것은 그 순간의 내 자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개성화가 진행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스스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시간동안을 고심하고 형태를 만들었다. 이미지를 시각화하면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테메노스를 마련하고 우리 내면을 살피며 신성성을 발견하는 일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다라의 상징은 중심을 보호하는 거룩한 장소로 테메노스라 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심상영, 2019).
그동안에 만다라를 그릴 때는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내면의 목소리와 다투거나 언어로 꺼내지 못하는 분노가 있을 때였다. 마치 일기를 쓰거나 낙서를 하듯이 때로는 간절함을 버무린 기도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자신을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는 했었다. 그럴 때면 패배감과 상실감으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겉돌거나 그 안에 잠겨버렸던 적이 많았었다. 사하스라라 차크라 색채 명상을 하고 난후에 '기쁨의 보석'이란 제목의 만다라를 그리면서 즐거움과 조화로움의 평균대에서 중심을 잡으려 하였다.
일상의 삶에서 연상되는 색채들을 동원하고 직선적인 요소와 원을 사용하여 색이 가진 강렬한 상징으로 삶 자체의 기쁨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인생에서 누리게 되는 기쁨이야말로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보석중의 보석으로 생명에 대한 경외와 가치를 부여한 나름의 행복과 기쁨을 사하스라라 차크라를 명상하며 경험하였다. 이렇게 원대한 목표를 갖는 것과 관계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신앙과 가치관과 양심, 용기와 휴머니즘에 영향을 주는 보라색 차크라는 형이상학적 뼈대를 이룬다. 또한 광범위한 우주관을 갖게 하며 우주에서의 내가 가진 목표를 생각하게 만든다(Northrup, 1998/2000).
Jung(1973, Fincher, 1991, 재인용)은 만다라를 인간정신 속의 중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의 성격에 중심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였다. 이런 중심은 인간생활의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어서 모든 것을 정돈하며 그 자체가 에너지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현대를 사는 인류에게 팽배해 있는 원형을 Jung은 해체(disintergrate)로 보았는데 팬데믹 현상으로 심각한 정신증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 만다라가 가지는 통합성은 어느 때 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림 Ⅳ-35는 연구자 자신에 대한 상징적인 만다라로 우주 색채명상 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에 집중하여 표현하였다. 완성된 이미지를 바라보며 정리되는 마음의 자락들을 정갈한 다기를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신성한 존재와 하나가 되어 가려고 한다는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자라기를 기다리려한다. '천국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는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와 생명나무를 십자가 밑에 그렸다. 또한 모든 물질을 이루는 4원소인 물과 흙과 바람과 불도 표현하고 생명의 성장과 존재에 대해서도 나타내고 싶어서 공작새와 나무도 그려 넣었다. 항상 함께하는 사랑과 보호의 에너지를 주는 천사의 이미지인 날개와 눈으로 비로 빛으로 존재하는 우주의 영광을 시각화하고 싶었다.
여전히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고 눈도 내리지만, 이제는 빗속과 눈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낮은 소리로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담았다. 매체는 명료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하려고 마커펜을 이용하였는데 강하게 채색되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불의 기운을 품은 나무 십자가에 죄와 죄의식을 내려놓아 진정한 자유를 얻고, 성령과 물로 거듭나 영원한 사랑의 은총 속에 내가 머무를 수 있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 지금은 고단하고 외롭고 무서운 절망의 늪을 지나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어진 삶속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가고 있어 외롭지 않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의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과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함께 내는 울음과 맑은 웃음소리가 섞인 찬송가가 내게는 위로가 되고 신께는 영광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인간정신의 통합을 향한 성장은 자연적인 성장과정으로 한 개인이 타인과 구별되는 고유한 자기를 찾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자기실현의 과정이라 한다(Fincher, 1991/1998).
<차크라 색채명상을 통한 예술치료사의 자기실현에 관한 자전적 내러티브 탐구/ 전진옥 건국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치료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