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호 동화 당선작(이효정 : 봄을 깨우는 작은 거인)

[진영희]

봄을 깨우는 작은 거인

이효정

“반짝반짝.”

나는 보드라운 흙 속에 묻힌 씨앗을 꺼냈다. 씨앗은 손바닥 위에서 아기별처럼 반짝거렸다.

“정말 멋진 곳이야.”

많은 생명들이 겨울잠을 자며 땅 속에 빛을 모으고 있었다. 땅 속은 별처럼 빛났다.

나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나는 나무뿌리를 어루만졌다.

‘나도 아빠처럼 봄을 깨울 수 있을까?’

나는 걱정이 앞섰다.

아빠는 봄을 깨우는 거인이다. 겨울엔 땅 속에서 씨앗을 돌보다가 때가 되면 땅 위로 올라가 봄을 깨운다. 아빠가 봄을 깨우면 온 세상이 알록달록해진다. ‘이젠 내가 겨울바람을 몰아내고 봄을 깨우는 거인이 되어야 해.’

여태 아빠가 봄을 깨웠는데, 그런데 내가 봄을 깨워야 한다니.

“휴~.”

한숨이 나왔다.

아빠가 떠나기 전날이었다.

“온기야, 아빠가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안 돼요.”

나는 놀라 아빠를 붙잡았다. 아빠와 떨어지는 건 상상해본 적 없었다.

아빠는 내 어깨를 잡고 눈을 맞추었다.

“땅속에 빛이 없는 곳이 있어. 검은 연기가 땅위에 가득해. 내가 가서 빛을 모아 씨앗을 깨워야 돼.”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있는 씨앗들을 생각했다. 마음이 아팠다.

“저도 따라 갈래요.”

“넌, 여기서 봄을 깨워야지.”

“하지만 저는 봄을 깨우는 방법을 몰라요.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넌, 이미 알고 있단다.”

“못해요.”

아빠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빠,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나는 혼잣말을 하며 아빠가 떠난 곳을 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깜박, 깜박.”

“어?”

씨앗 하나에서 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씨앗이 다시 빛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다시 건강한 씨앗이 되어라. 후우~.”

주문을 걸듯 씨앗에게 입김을 후 불었다. 아빠가 했던 것처럼.

며칠 전 입김을 불어주었던 씨앗이 다시 살아났다.

나는 마음이 뿌듯했다.

“야, 예쁘다!”

나는 소리 나는 곳으로 등을 돌려보았다.

“깜짝이야. 그렇게 빨리 움직이면 어떡해.”

작은 날개가 급하게 움직였다. 작은 날개는 휘청거리다가 다시 날았다.

“너 누구니? 어떻게 들어왔어?”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작은 날개는 포르르 내 어깨에 앉았다.

“나도 몰라. 갑자기 바람에 날아왔어. 눈을 떠보니 이 곳이었지.”

나는 아빠가 떠난 곳을 보았다. 아마도 아빠가 가신 곳으로 길이 생긴 것 같았다.

“여긴 어디야? 별이 있는데, 나 죽은 거야?”

작은 날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걱정하지 마.”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 쪽으로 날아가면 밖으로 다시 나갈 수 있을 거야.”

나는 조금 전 보고 있던 곳을 가리켰다.

“저 쪽이 어딘데?”

“네가 들어온 곳.”

“깜깜하잖아. 무서워 혼자 못 가.”

작은 날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배고파 날 수가 없어.”

작은 날개는 불쌍한 표정으로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잠시만.”

나는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작은 날개는 부지런히 쪼아 먹었다. 물도 꿀꺽 마셨다.

“히야. 이제 배부르다.”

작은 날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고마워 친구.”

“난, 온기야. 넌?”

“나는 이름이 없어.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음…… 날개. 어때?”

“날개? 좋아!”

날개는 기분이 좋은지 제자리에서 날아올라 빙빙 돌았다.

파란 하늘 아래서 날아다니는 날개의 모습이 떠올랐다.

“봄이 오면 나가는 게 좋겠다. 지금쯤 겨울바람이 더 심해졌을 거야.”

나는 날개에게 말했다.

“봄은 언제 오는데?”

날개가 물었다.

“글쎄?”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자신 없는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시간이 지나 씨앗들은 곧 터질 것처럼 잔뜩 부풀어 올랐다.

“휴우.”

가슴이 답답했다. 아빠라면 벌써 봄을 깨웠을 텐데. 나는 아직 봄을 어떻게 깨워야할지 몰랐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응. 봄이 올 때가 된 것 같아!”

날개가 날아오며 대답했다. 그리고 내 어깨에 앉았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날개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봄이 빨리 오면 좋겠지?”

“당연하지.”

날개는 내 손가락에 머리를 비볐다.

“칫. 이제 여기를 떠나고 싶은 거야?”

나는 입술을 쭉 내밀고 말했다.

“난 새니까. 하늘을 날아야지.”

“그러다 또 떨어지면?”

날개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날다가 떨어져도 날 수밖에 없어.”

“그게 뭐야.”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날개가 나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번엔 봄이 아주 늦게 올지도 몰라.”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늦어도 괜찮아. 봄은 꼭 올 거라는 걸 알고 있거든.”

날개는 가슴을 앞으로 힘껏 내밀고 날갯짓을 하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기쁜 얼굴이었다.

“봄이 오면 우리 같이 산책하자. 나는 하늘을 날고, 너는 달리는 거야. 빙글빙글 춤을 추는 건 어때?”

날개가 가볍게 날며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빠가 돌아오실 거야.’

마음이 초조해졌다.

어느 날, 날개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온기야! 이리 와 봐! 여기 씨앗들이 이상해!”

날개가 말한 것처럼 씨앗들의 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쪼그라든 것도 있었다.

“아!”

눈물이 핑 돌았다. 봄을 기다리던 씨앗들이 시들어 버린 것이다.

“나 때문이야. 내가 봄을 깨우지 않아서. 흑흑흑.”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봄을 깨웠다면 씨앗들이 새싹을 틔웠을 텐데.

나는 씨앗을 다시 살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봄을 빨리 깨워야 해. 하지만 나는 봄을 깨우는 법을 몰라.”

나는 씨앗들을 품에 안고 울었다.

날개는 늘 그랬듯이 내 어깨로 내려앉았다. 내 얼굴에 자기의 머리를 비비며 나를 위로했다.

“넌 할 수 있을 거야.”

‘넌 이미 알고 있단다.’

날개의 목소리에 아빠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온기야. 우리 봄을 깨워 보자.”

날개가 포르르 날아오르며 말했다. 처음 자신이 왔던 길로 조금씩 날아가며 나를 돌아보았다.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래. 이제 피하지 않을 거야.”

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날개를 따라 밖으로 나아갔다.

밖은 생각보다 추웠다. 겨울바람 때문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온기야.”

“날개야.”

나는 날개가 추울까봐 품에 꼭 안아주었다.

“온기야. 넌 봄을 깨울 수 있을 거야.”

날개의 마음이 가슴으로 느껴져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응.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눈을 감고 간절한 마음으로 따뜻한 봄바람을 상상했다. 언젠가 땅 속에 있던 씨앗을 살렸던 것처럼 간절한 마음을 담아 숨을 내뱉었다.

“후우우~~~.”

따뜻한 숨이 흘러나왔다.

날개는 힘찬 날갯짓으로 땅 위에 온기의 따뜻한 숨을 퍼뜨렸다.

‘고마워 날개야!’

날개가 봄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사뿐!”

나는 힘을 내어 걸었다.

겨울바람이 한 발 물러났다.

“사뿐, 사뿐!”

겨울바람이 두 발 물러났다.

“사뿐, 사뿐, 사뿐!”

겨울바람이 세 걸음 물러났다.

내가 걸을 때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온기야, 봄이 왔어!”

날개는 기뻐하며 하늘을 높이 날았다.

“내가 정말 봄을 깨운 거야?”

땅 속 새싹들이 얼굴을 속속 내밀었다.

나무에 연둣빛 새순이 점처럼 돋아났다. 물감처럼 번져가는 초록의 물결을 보며 나도 활짝 웃었다.

날개는 어느새 날고 있었다.

내 발소리가 사뿐사뿐 날 때마다 꽃이 피고 싹이 돋았다.

“쿵, 쿵, 쿵…….”

아빠가 돌아오셨다.

“우리 온기가 해냈구나!”

“아빠!”

아빠는 내 등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나는 봄 언덕에서 아빠의 긴 이야기를 들었다.

날개가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진영희]

동화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활동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