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타원 김혜성 원정사님은, 1924년 6월 25일 전남 목포에서, 부친 김신석 선생과 모친 남일심행 여사의 4남매 중 막내로 출생하시었습니다.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신 신타원 원정사께서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시고 조숙하시였으며 막내였지만 자립심이 강하셨습니다. 당시 부친은 조선은행이라는 공직에 있어 전근이 잦았으나 신타원 원정사께서는 주로 광주여고에서 학업을 계속했고 후에 서울에서 이화전문학교를 다니셨습니다.
신타원 원정사께서는 스무살 되던 해, 12월 국산 홍인천 명예대호법과 결혼하시어 당시 전주지방법원 판사였던 남편을 내조하면서 4남2녀의 자녀를 양육하시며 유난히 효성이 지극한 남편과 시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대가족 속에서 맏며느리 살림을 시작하신 전통적인 한국여성의 부덕(婦德)을 닦으신 어른이셨습니다.
신타원 원정사께서는 1963(원기 48)년 혁타원 송예성 종사의 인도로 종로교당에서 입교하셨으며 입교의 연원이 되어주었던 올케와 알뜰한 도반으로서 우애와 법정을 나누시며 신앙·수행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신타원 원정사께서는 1977(원기 62)년 4월 9일 ‘신타원(信陀圓)’이란 법호를 수증하시고 1985(원기70)년 ‘정식법강항마위’에 승급하셨으며, 1988(원기73)년 11월 6일 ‘대호법(大護法)’의 법훈을 받으셨습니다. 1991(원기 76)년 4월 28일 ‘정식출가위’에 승급하시어 종법사님 자문역할인 원로회의 의원으로도 활동하셨습니다.
신타원 원정사께서는 부군과 같이 서울대학교 법대 후배들을 위해 인혜장학회, 1988(원기73)년 3월 예비교역자 육성을 위한 국신장학회를 설립하여 새 회상의 법음을 널리 전할 전문인재양성사업에 힘을 쓰셨습니다.
겸양과 인덕으로 베풀고도 베풀었다는 상이 없으셨던 신타원 원정사께서는 수양에 전념하시다가 노환으로, 오늘 6월 5일 오전 11시 삼성서울병원 에서 열반에 드시니,
세수는 90세시오,
법랍은 50년 3개월,
공부성적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 4호,
원성적 정특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