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지를 볼일이 없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는 아침을 먹고 날 무렵이면 땟국물이 졸졸 흐르는 얼굴에 누더기 옷을 입은 거지들이 이 동네 저 동네로 밥을 얻어먹으러 다녔다. 거지들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뭉쳐 다녔는데, 그중에는 어린 거지도 항상 끼어 있었다. 지금도 세수를 한지 오래되어 시커먼 얼굴에 빨래를 하지 않아 기름때가 빤질빤질하게 밴 커다란 옷을 걸쳐 입고, 가져온 깡통이나 비닐봉지에 음식을 담아주는 어머니의 얼굴만을 쳐다보던 까맣고 순하던 어린 눈동자가 선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필자처럼 중년의 나이가 되었겠지만,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삶의 파도를 어떻게 헤치고 이겨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가 되어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거지만 불쌍한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야 성인이 되어 돈벌이를 할 수 있다면,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불우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을 옛이야기로 흘려보낼 수 있다. 정작 불쌍한 사람은 먹고 마시는 육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라 불쌍한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육체의 문제라면 부지런한 노동만 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영혼의 문제는 육체의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헐벗고 굶주려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오늘은 불쌍한 영혼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가장 불쌍한 영혼은 바로 죽은 영혼이다. 이들은 도살장에 끌려갈 운명의 소처럼 비좁은 우리에 갇혀 사육당하는 가축과 같다. 이들의 운명은 예외 없이 적당한 때가 되면 도살장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살과 뼈는 정육점에 팔려갈 것이다. 그러나 짐승들은 영이 없기에 육체가 죽으면 혼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과 달리 영혼이 붙어 있으며, 그 영혼은 불멸하기에 육체가 죽더라도 영혼이 가야할 거처를 찾아가야 한다. 아시다시피, 영혼이 가야 할 곳은 천국 아니면 지옥이다. 그래서 천국을 준비하여 자격을 갖추지 않은 영혼은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활활 타는 지옥에 던져질 운명이다. 그렇다면 사육되어 도살장에 끌려갈 가축의 처지보다 불쌍한 운명이 아닌가? 그게 바로 죽은 영혼이다. 죽은 영혼이라면 지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말한다. 사람들은 소나 돼지농장의 불결하고 비좁은 우리에서 사육당하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들을 불쌍히 여기겠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영혼이 더욱 불쌍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짐승들이야 생명을 잃으면 존재자체가 사라지고 말지만, 사람들의 영혼은 그 때부터 끝도 없는 고통의 시작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고 관심조차 없는 세상 사람들을 만나면 잘 대해주기 바란다. 도살장으로 끌려갈 짐승보다 더욱 불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불쌍한 영혼은 병든 영혼이다. 병든 영혼은 말 그대로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영혼이다. 병든 영혼의 증세는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이 없는 영혼이다. 말하자면 걱정과 염려, 분노와 짜증,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영혼의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알지 못하고, 육체가 요구하는 대로 탐욕과 쾌락을 쫓아다닌다. 평생 돈을 쫓아다니며 쌓아두고, 그 돈으로 방탕을 좇아 술에 취하고 음란의 쾌락을 즐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쾌락의 진통제는 효력이 끝나면 심한 금단현상이 나타나서 더 많은 쾌락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코올을 비롯한 도박, 주식 게임, 포르노, 쇼핑, 운동, 일중독에 걸리는 것이다. 평생 돈을 쫓는 사람도 실상은 공허하고 허전한 영혼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병든 증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신앙의 유무에 상관없이 세상의 것을 쫓아 육체의 만족을 채우려는 사람들은 영혼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넘쳐난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잠든 영혼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를 영접하고 규칙적으로 교회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이유는 자신들의 영혼이 천국에 간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두 부류의 영혼들은 천국이나 지옥 자체를 믿지 않거나, 믿더라도 자신이 들어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체념하고 있는 상태인데 반해서, 이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천국행을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잠든 영혼은 말 그대로 깨어 있지 않은 영혼이다. 깨어 있는 영혼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영혼이 되려면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 항상 깊고 친밀하고 교제를 나누며,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잠자는 영혼은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교회봉사를 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각종 기도회에 참석하기는 하지만, 정작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 사람이다. 잠자는 영혼의 특징은 성령이 내주하는 마음의 상태로 알 수 있다. 성령이 안에 들어와 있다면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고 자유함을 누리며 산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직분이 무거워도 성령과 동행하는 영적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영혼이 잠자는 사람일 뿐이다. 예수님은 성령이 내주하여 동행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의식을 반복하는 것으로 천국의 자격을 착각하고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영혼이다. 그들의 내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공허하고 냉랭한 영혼으로 답답해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채우지 못하는 영혼의 공허함을 세상과 세상의 것을 찾아 채우고 있으니, 그 무지와 어리석음에 답답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이러 부류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불쌍한 영혼은 유리방황(遊離彷徨)하는 영혼이다. 이런 영혼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 한 때 교회에서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왔거나, 현재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의식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허전하고 건조한 이유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더러는 교회에서 영혼의 허전함을 채워주지 못해 기존의 교회를 떠나서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리거나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딱히 가야할 교회를 찾지도 못했기에 지금의 교회에서 주저앉아 있는 중이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공허하고 메마르다. 그 이유는 성령이 안에 없기 때문이다. 성령이 안에 들어오면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영혼이 굶주리고 목마르기 때문에 마음에 만족함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여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교회에서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영적 습관을 가르치지도 훈련시키지도 않기 때문에, 기존의 교회에서 만족을 하지 못해서 부초처럼 떠돌아다니는 중이다. 이런 영혼들이 잘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의 지도를 받고 건강한 교회공동체에 들어가면 문제가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습관을 멘토링하며 영적 습관을 훈련시키는 지도자와 건강한 공동체가 드문 게, 안타까운 우리네 교회의 현주소이다. 그렇지만 유리하고 방황하는 영혼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잘 알고 있기에, 앞선 3부류의 영혼 중에서 해결책에 가장 가까이에 접근한 영혼이다. 그러나 다른 부류에 비해 조금 낫다는 것뿐이지, 전체적으로 볼 때 위태롭고 암울한 상황에 놓인 것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 4가지 부류 중에 어디에 들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만약 이 4가지 부류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 삶의 현장에서 늘 평안하고 즐겁고 자유하게 살고 있다면 참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만약 위의 4가지 부류에 속해있다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으며 이 땅에서도 평안하고 형통한 삶은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잘 살펴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결단하길 바란다. 그래야 이 땅에서 평안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다가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될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