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난 지혜(약3:13-4:8)
갈등
1. 지난 주일에 잠언이 전하는 지혜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오늘 야고보서 본문에도 지혜에 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13절,“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질문하며 말씀이 시작되었어요. 지혜와 총명은 예로부터 오늘까지 사람이 지녀야 할 가장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고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어요.(왕상3:5) 이때 솔로몬이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장수나 부, 원수의 생명을 멸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한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도 주셨어요. 오늘 본문 야고보서는 신약의 잠언과 같이 지혜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1:5,“너희가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고보는 지혜가 부족할 때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했어요. 야고보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받은 바 있다는 증거에요. 야고보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시고, 그것을 구한다고 꾸짖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의 경험적인 이야기입니다. 경건과 지혜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땅에서 나지 않고 하늘로부터 나기 때문입니다.
2. 경건한 자는 참 지혜를 소유합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지혜를 탐구했습니다. 또 지혜를 사랑했습니다. 철학을 영어로 philosophy라고 하죠. 이것은 헬라어 philia(사랑)와 sophia(지혜)의 합성어입니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란 말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일찍부터 지혜를 얻기 위해, 지식인들을 초청하여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헬라에서는 학원이 오래전부터 유행했습니다. 당시 지식인들이 학원(아카데미)을 개설하고, 제자들을 모았어요. 비싼 값을 받고 제자들을 가르쳤어요. 성 어거스틴도 예수님을 만나기전에 그랬습니다. 히브리인들도 헬라인들만큼 지혜를 사랑했습니다.
그들도 헬라인들 이상으로 지혜 있는 인물들을 존경했어요. 지혜자의 가르침을 받기 원했어요. 유대인 지성인들, 지혜자들을 랍비라 부릅니다. 랍비들은 헬라인들처럼 학원을 차리지는 않았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헬라인들처럼 고액 과외비를 받지도 않았어요. 예수님도 이름 있는 랍비 가운데 한 분이셨어요. 유대인 랍비들은 학원을 차리지 않고, 지방을 순회하며 회당을 중심으로 가르쳤어요. 랍비들이 마을에 나타나면, 온 동네가 들썩이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요즘은 아무리 유명하다는 강사를 초청해도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아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1980년대 초반-그렇지 않았아요.
3. 유명한 강사가 교회에 오면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였습니다. 지난 주간 김동길 교수님이 소천하셨는데, 이 분이 한때 명 강사였어요. 제가 섬기던 교회 본당이 1,200석 정도였는데 가득 채우고 복도까지 이동식 의자를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에 정보 수집이 쉬워서 구태여 지혜 있는 말을 듣기 위해 어떤 특강이나 세미나 등에 몰리지 않아요. 검색만 하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설교나 간증도 마찬가지입니다. 헬라인들과 히브리인들의 지혜, 두 가지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오늘 본문에서 이 두 가지 지혜의 차이를 말씀합니다. 15절, 먼저 위로부터-하늘의 하나님께로 온 지혜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추구하던 지혜입니다. 지혜의 출처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아니라 땅 위로부터도 옵니다. 땅 위로부터 온 지혜는 15절, 정욕의 것이요 귀신(사탄, 마귀)의 것이라고 야고보는 말합니다. 야고보는 사람들이 얻는 지혜의 출처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매우 단순한 분석이에요. 야고보는 지혜를 말하며, 왜 이렇게 분석하며 말할까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까?
갈등 심화
4. 야고보는 지혜의 출처를 이렇게 밝힙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위로부터-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이고, 어떤 것이 땅 위로부터 온 지혜라고 야고보는 말합니까? 위로부터 난 지혜는 13절,“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게 합니다.”17절,“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습니다.”위로부터-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하나가 귀하고 소중해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요. 선행, 온유함,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음.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으면 세상은 평안합니다. 이런 것들도 가득하면 사람들이 모두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입니다.
땅 위로부터 온 지혜는 14절,“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16절,“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땅 위로부터 온 지혜는 독한(악의적인) 시기, 다툼, 자랑, 진리를 거스르는 거짓말, 혼란, 모든 악한 일 등입니다. 하나도 선하거나 소중한 것이 없어요. 쓸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이 지혜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 곧 사탄(마귀)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위로부터 온 지혜와 전혀 반대의 결과입니다. 야고보는 두 가지 지혜의 출처를 말하며 4:7-8에서,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은 가까이 하라고 선언합니다. 야고보가 이렇게 선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마리
5. 야고보는 당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직접 보고 듣는 목회 최 전선에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사도로 부름을 받고, 주후 62년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네로 황제의 박해 때, 대제사장 안나스에 의해) 30년 정도 교회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야고보는 어느 한 교회만이 아니라 여러 지역, 여러 교회들에게 영향을 주는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그의 리더십이 잘 나타나 있어요.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어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되며, 유대인들이 동요했습니다. 이 문제로 교회사 최초의 공의회가 예루살렘에서 열렸어요. 베드로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임하시는 일들을 보고했습니다.
야고보가 최종 발언하며,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자존심은 지켜주고요. 야고보의 중재로 유대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갈등이 해결되었습니다. 야고보가 이렇게 중재하는 일에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시기와 다툼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항상 갈등이 있어요. 야고보서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2:2-4, 교회에서 서로 차별하고 악한 생각으로 판단한다.(부자-좋은 자리에 앉으라, 가난한 자-어디에 앉든지 무관심) 2:6, 너희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갔다고.
6. 4:16,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자기의 수완이나 재주나 건강을 믿고 교만한 자들이 있었다.) 5:4,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삯을 주지 않았다.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 이것이 세상-불신자나 타종교인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교회 성도들의 이야기였어요. 교회는 다니지만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 화평이 없어요. 관용과 양순과 긍휼이 없습니다. 선한 열매도 없습니다. 편견과 거짓만 있을 뿐입니다. 야고보는 목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문제들을 보면서, 이것의 발단이 무엇인지 발견했습니다. 성도들이 위로부터-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가 아니라, 땅 위-마귀(사탄)로부터 난 지혜를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의 분석이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양상은 야고보가 목회하던 때만이 아니라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 오늘까지도 똑같아요. 세월은 1000년, 2000년 흘러가도, 사람들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있어요. 야고보는 시기와 다툼, 갈등과 싸움의 출처를 말했습니다. 4: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정욕이 문제입니다. 싸움은 보통 싸움이 아니고, 군인들이 싸우는 전쟁을 말합니다. 이 전쟁의 원인은 정욕이고요. 3:15, 정욕의 것은 귀신의 것입니다.
7. 야고보는 사람들이 시기하고 다투고 싸우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 간의 갈등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임을 밝힙니다. 영적인 전쟁이기에 야고보는 4:7-8,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라고 선언했어요.“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마귀가 주는 모든 것은 무익합니다.(백해무익) 이것을 잘 알았던 야고보는 범사에 마귀가 잘못된 지혜로 성도의 삶에 영향을 줄 때 대적하라고 선포했어요. 성도들이 마귀의 악영향하에서 벗어나는 길을 야고보는 연이어서 가르쳐주었어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우리 삶에 두 가지 영이 항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요.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또는 성령)이, 다른 한편에서는 마귀(또는 정욕)로부터에요. 이 사실을 성도들이 부인하지 말고 기억하고 인정하고 누리기를 야고보는 당시 교회들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전해주었습니다. 4:2-3,“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8. 성도들이 삶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욕심, 시기, 정욕을 이기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지만 정욕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아요.(기도의 기초 원리) 야고보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욕심-시기-정욕을 불러일으키는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마귀 대신에 하나님께 복종하게 됩니다.(4:7)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주 앞에 나를 낮추게 됩니다.(4:10)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마귀의 영향 아래서 죄인들이 되어 손을 깨끗하게 하지 못합니다. 두 마음을 품고 성결하지 못합니다.(4:8) 야고보는 경건 생활에 탁월했던 사도입니다. 그가 당시 성도들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적절한 처방을 주었어요.
복음 제시
9. 오늘 본문 말씀을 가운데, 마치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이 비치는 것 같은 말씀이 보입니다. 5-6절,“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으느니라.”앞서 4절에서, 간음한 여인들을 향하여 세상과 벗이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말 것을 권했어요. 그러면서 성령이 성도들을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말씀의 정확한 구약 인용 구절은 없어요. 구약 성경에 두루 보이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성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하나님이세요. 성령은 성부 성자와 같이 완전한 인격적인 존재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삶을 살면 성령님은 근심하세요. 사63:10,“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출애굽 때 회상하며) 사도 바울도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권면했어요. 엡4: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리라.”성령님은 성도들을 인치시고 구원을 보증해주시는데, 성도들이 위로부터 난 지혜를 따르지 않고 귀신의 것을 따르면 곤란합니다.
10. 반면에 성도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십니다.(습3:17) 위로부터 난 지혜를 따르는 자들이 겸손하고, 땅 위의 것으로부터 난 지혜를 따르는 자들이 교만한 자입니다. 야고보는 잠3:34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선언했어요. 이 복음을 따라 성도들의 선택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자 하시고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누구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까? 얼마나 송구스럽고 감사한 말씀입니까?
기대
11.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통해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선택하고 결단하시겠습니까? 위로부터 난 지혜를 따라 살아가도록 결단합시다.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도록 마음을 굳게 정합시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도록 결단합시다. 다 같이 일어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오늘 찬양은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