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도시, 시안(西安)
시안(西安)은 산시성(陝西省)의 성도(省都)로 관중분지(關中盆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세운 호경(鎬京)에서 비롯되며, 그뒤 한(漢)나라에서 당(唐)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 년 동안 단속적이었으나 국도(國都)로 번영한 역사적 도시로 그 동안 우리의 귀에 익은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가장 번영했던 당대(唐代)에는 동서 9.5km, 남북 8.5km의 규모에 인구 100만이 넘는 계획적인 대성곽 도시를 이루어 멀리 서방에도 그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나 당나라의 쇠퇴와 그에 따른 병란으로 장안도 파괴되어 쇠퇴하였다. 따라서 서안은 오래동안 중국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비단길의 출발지로서 중국문화를 인접국가에 확산시킨 문화의 중심지이다. 청나라때 중국의 수도였던 베이징에 비하면 서안은 오래 동안 중국인의 삶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있는 진정한 중국의 고도라 할 수 있다. 지난 번 박근혜 대통령이 시안을 방문한 것도 시안이 가장 중국다운 전통도시이기 떄문일 것이다.
비단길(Silk Road)
현재 시안의 시역(市域)은 명(明)나라 때 구축한 주위 13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와 교외로 되어 있으며, 명·청대에 서안부(西安府)를 설치한 바 있으나 중화민국 때에 그것을 폐지하고 산시성에 직속시켰다. 구시가는 당나라의 장안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고도(古都)의 면모를 간직하는 한편 관공서와 상점 등이 밀집해 있다.
성 밖의 동교(東郊)·서교(西郊)에는 신흥공업지구가 형성되어 대규모 화력발전소가 건설되고 면방직·기계·항공발동기·비행기제조·전자공업 등이 활발하다. 특히 면방직공업은 규모가 큰 여러 공장이 가동되어 생산량이 많은데, 그 원면은 질·양이 다같이 뛰어난 관중분지산(産)의 목화로 충당된다.
남교(南郊)는 문교지구를 이루어 시안교통대학· 시베이(西北)공업대학·시베이전자과학기술대학 등 여러 기술분야의 대학, 연구소 등이 모여 있다. 룽하이(龙海), 셴양(咸陽), 퉁촨(銅川), 옌안(延安), 한청(漢城), 후셴(戶縣)철도 등이 있으며, 고속도로가 통하고 있다. 또 시안 셴양국제공항이 있다.
셴양국제공항
시안 철도역
시안은 역사도시답게 고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혼재해 있다.
시안의 여름은 기온이 상당히 높지만 습하지 않아 견딜 만하고, 겨울 기온도 그다지 낮지 않아 여행에 큰 불편함이 없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봄과 가을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노동절과 국경절 시즌에는 매우 혼잡하다. 중국의 골든위크인 5월 초와 10월 초를 제외한 봄과 가을에 찾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시안은 비단길의 출발지로서 중국문화를 인근의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는 물론 멀리 유럽까지 전달한 명실공히 전통적인 중국문화의 중심지이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시안을 방문한 것도 시안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특성 떄문 일 것이다.
시안은 중국의 내륙도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로 부터 거리가 멀지만, 최근 직항노선이 개설되어있다.
시안 여행에서 음식이 불편하다. 또 길거리음식을 잘못 먹으면 고생을 하게된다.
오랜 역사도시이기 때문에 사적이 풍부하다. 주요 명소로 다싱산쓰, 시안 칭전다쓰, 시안 화산, 파먼쓰, 다옌타, 명대성벽, 샤오옌타, 시안 구러우, 시안 중러우, 진시황릉, 첸링, 화칭츠 등이 있다. 특히 진시황의 병마용갱은 시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며, 명대성벽과 화칭츠도 볼 만하다.
http://blog.naver.com/goodaylee/220317610564
http://cheonrim.blog.me/220375864617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96000&cid=42864&categoryId=50869#TABLE_OF_CONTENT8
진시황릉(秦始皇陵)
산시성(陝西省) 린퉁현(臨潼縣) 여산(驪山) 남쪽 기슭에 위치하며,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했던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의 구릉형 묘이다. 동서 485m, 남북 515m, 높이 약 76m의 거대한 능이다. 사마천이 저술한《사기》 <진시황본기>에 의하면, 시황제 즉위 초부터 착공되어 중국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는 70여 만명이 동원되어 완성되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드는 등 천상과 지상을 모방한 지하 궁전을 만들고 도굴자가 접근하면 화살이 자동발사하는 비밀스러운 장치도 갖추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아직 발굴로 밝혀진 바는 없다. 능은 장방형의 두 겹의 담장으로 싸인 능원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쪽 담과 바깥 담의 사변 길이는 각각 2,525.4m, 6,294m이며, 현재는 지상에서는 능의 흔적을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담벽 아래에서는 도수도(陶水道), 능원 내외에서 3곳의 건축유지와 수많은 배장묘와 순장묘가 발굴되어 전체적인 규모와 구조가 확인되었다. 특히 능원 동문 밖의 거대한 병마용갱은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었고, 능원 밖에서 발견된 100여 개의 형도묘는 건설 당시의 가혹한 강제노역의 실상을 짐작하게 한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http://saleru1004.blog.me/220553907827
http://blog.naver.com/ksj1002s/220551542079
명대성벽(明代城壁)
중국의 성벽 중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고성으로, 1370년부터 1378년에 걸쳐 축조되었다. 아래폭 18m, 위폭 15m, 높이 12m의 두꺼운 성벽이 옛 도시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사방으로 커다란 성문이 나 있다. 특이한 점은 각각의 문을 드나들 수 있는 신분이 엄격히 규정되어 있었다는 것. 지금은 입장권만 구입하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 여러 개의 길 중에서 실크로드의 입구로 유명한 시먼(西門) 또는 안딩먼(安定門)으로 불리는 서쪽 문이 명대의 성루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성벽의 폭이 넓어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가기 좋다.
시안 구러우(西安 鼓樓)
시안(西安)에 있는 누각으로 북을 쳐서 시간을 알리던 곳이다. 중러우 보다 4년 빠른 1380년에 세워졌다. 종루는 성문이 열리는 새벽부터 낮까지, 고루는 성문이 닫히는 시간부터 한밤중까지 담당했다.
구러우의 기초는 장방형으로 청색의 벽돌로 쌓았으며, 높이는 약 33m이다. 이곳에는 전러우의 대고(大鼓) 외에도, 동서남북 사방에 모두 24개의 북이 있으며, 북의 표면에는 24절기가 그려져 있다.
http://105man.blog.me/110122250870
시안 중러우(西安鐘樓)
시안(西安)에 있는 명나라 시대(1384년)의 종루이다. 높이 38m, 면적 1,377.4㎡ 규모의 목조건물로 매 시간마다 종을 울려 시간을 알려주던 일종의 시계탑이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1384년에 시간을 알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외관 3층, 내부는 2층으로 된 정사각 모양의 누각으로 못이나 이음매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시안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동서남북이 연결되어 있는 교통의 중심지에 있다. 중국 내의 종루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창건 당시에는 광지제(廣濟街) 입구에 있었으나 뒤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주변에는 먹을거리 장터와 상점들이 많고 시안 성벽까지 양쪽 도로변에 백화점, 은행,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종루행 버스를 타면 쉽게 찾아갈 수 있으며 개방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http://105man.blog.me/110122250870
화칭츠(華淸池)
시안시(西安市) 동교(東郊)의 린퉁현(臨潼縣) 남쪽, 리산(驪山)의 산록에 있는 온천이다.
시안에서 35㎞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온천수가 풍부하여 주나라 때부터 무려 3천여 년 간 온천 휴양지로서 유명하다.
서주(西周) 말기에 주유왕(周幽王)은 지금의 화칭츠에 궁을 세웠다. 당(唐) 때인 644년에는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탕취안궁을 지었고 현종(玄宗)이 이를 증축한 뒤 화칭궁이라 개칭하였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연애시절에는 이곳이 매우 번성하였고, 당시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안사의 난(安史之亂) 이후로 화칭츠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화칭츠 온천수의 수온은 43℃ 이다. 풍부한 광물질과 미량의 원소가 함유되어 있으며, 온천욕을 하기에 적합하다. 구탕츠 위에 탕화칭궁위탕이즈 박물관을 새로 건설했으며, 리룽지와 양귀비가 사용한 롄화탕,하이탕탕, 쥐룽탕, 구이페이츠 등이 보존되어 있다.
http://105man.blog.me/110186830346
다싱산쓰(大興善寺)
산시성 시안(西安). 중국밀교의 총본산인 대흥선사로, 서진(西晉)무제 때인 기원전 4세기에 건립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밀교였기 때문에 의혹과 권력의 압제를 많이 받았다. 수당(隋唐)시기에 매우 번성하였으며, 중국 밀종(密宗)의 발원지이자 진언종의 본거지이다.
http://105man.blog.me/220004318992
칭전다쓰(淸,眞大寺)
당나라 때(742년)에 건축된 시안 최대 규모의 이슬람 사원으로, 모스크보다는 일반적인 불교 사찰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아직 모스크 건축양식이 정착되지 않은 시기에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상숭배를 엄금하는 이슬람교의 철칙대로 칭전다쓰의 경내에는 단 하나의 신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어서 아라비아 문자가 새겨진 월비를 마주하면 그제야 비로소 이슬람 사원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사원은 총 4개의 ‘진원’이라 불리는 구역으로 나뉘는데, 그중 제4구역의 예배대전이 가장 핵심이다. 1,000여 명의 이슬람교 신자가 서쪽의 알라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예배실이기 때문이다. 칭전다쓰 주변에는 양고기 꼬치나 이슬람풍의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회교도 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http://105man.blog.me/110180891560
파먼쓰(法門寺)
시안 시내에서 120㎞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1,800년 역사의 유서 깊은 고찰이다. 당대 황실의 사찰로 번성했으나 당의 멸망과 함께 사찰의 존재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파먼쓰가 재조명된 것은 19세기 말 홍수로 인해 명대에 지어진 8각 13층 전탑이 소실되면서부터였다. 두 번에 걸친 홍수 피해로 재건작업에 착수한 문화재 당국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탑 아래에 아무도 모르던 지하궁전이 존재했다. 발굴에서 귀중한 문물이 1,000여점이 나왔다. 그중 가장 값진 것은 부처의 손가락뼈에서 나온 신진사리로, 이를 모시고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현재 파먼쓰 맞은 편에는 파먼쓰 박물관이 들어서 지하궁전의 출토품을 전시하고 있다.
http://chinawest.blog.me/220161751103
다옌타(大雁塔)
당 고종은 어려서 여읜 어머니 문덕황후를 기리기 위해 648년에 츠언쓰(慈恩寺)를 건립했다. 현장법사가 645년 인도에서 가져온 산스크리트 경전을 번역하고 보관하기 위해 경내에 다옌타(大雁塔)를 비롯해 다양한 건물이 세워졌다. 그러나 당 말기, 전쟁을 겪으며 츠언쓰는 심하게 훼손되었고 다옌타만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빈 절터를 지키게 되었다.
높이 64m의 탑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중국 정부의 주도로 복원사업이 시작됐으나 지나치게 화려해 고풍스런 멋이 나지 않는 츠언쓰를 찾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 반면 오래된 건축물의 풍취가 감도는 다옌타를 찾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많다. 4각 7층의 누각식 전탑인 다옌타는 각층 사방에 있는 아치형의 작은 창으로 시안 시내의 전망을 감상하며 올라갈 수 있어 인기가 많다.
http://105man.blog.me/110190320644
샤오옌타(小雁塔)
707년 고종의 아들 예종이 아버지를 공양하기 위해 세운 젠푸쓰(薦福寺) 경내에 있는 탑이다. 원래 높이는 15층이었으나 1556년 산시대지진 때 훼손되어 현재는 13층 높이의 탑으로 남아 있다. 의정(義淨)이 인도에서 많은 경전을 가져와 이곳에서 56부 230권을 번역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다옌타와 상반된 모습의 샤오옌타(小雁塔)는 처마 간격이 좁은 밀첨식으로 지어졌다. 내부는 좁고 가파르지만 나름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다옌타와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여성적인 느낌의 샤오엔타를 비교하며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juhyun0613/120092005558
첸링(乾陵)
산시성 셴양 지역의 량산(梁山)에 위치한 당(唐) 고종(高宗) 이치(李治)와 측천무후(則天武后)의 합장묘이다. 684년에 축조되었다. 당(唐)의 18개 능묘 중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왕릉이다. 첸링은 산의 형태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고, 사방에는 안과 밖 두 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있다. 내성(?城)의 길이는 1,450m, 두께가 24m이다.
본래의 성벽과 지상에 세워졌던 건축물은 현존하지 않으며, 첸링 정면의 주췌먼에서부터 중양산링(中央山陵)까지의 선다오(神道)만 유적으로 남아있다. 선다오(神道)는 산허리에서 시작하여 완만하게 위쪽으로 뻗어 있으며, 양쪽에 각각 돌로 제작된 말, 짐승, 사람, 화뱌오 등 돌조각이 늘어서 있어서 번성했던 당(唐)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선다오(神道)의 끝부분에는 측천무후(則天武后)자신을 위해 세운 '무자비' 고종(高宗)을 위해 세운 '성기비' 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17개의 배장묘(陪葬墓, 고대에 신하나 처첩의 영구를 황제나 남편의 무덤 근처에 매장)가 있다. 그 중 의덕태자묘(懿德太子墓), 영태공주묘(永泰公主墓), 장회태자묘(章?太子墓)는 발굴된 이후 대외에 개방되고 있다. 3개의 묘(墓)에 있는 벽화는 당묘(唐墓)벽화의 최고로 꼽히고 있다.
http://chinawest.blog.me/220161702492
시안 화산(華山)
중국 산시성(陝西省) 동부 친링(秦嶺)산맥 동단 웨이수이강(渭水) 연변에 있는 산으로, 1992년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로 지정되었다.
오악(五岳) 중 하나인 서악(西岳)으로, 타이화산(太華山) 또는 화산(花山)이라고도 불린다. 다섯 개의 주봉 중 가장 높은 것은 난봉(南峰)으로 높이는 2154.9m이다. 그 외에도 약 36개의 작은 봉우리가 있다.
화산에 210여개의 명소가 있으며, 도교 성지로 되어 있다. 유명한 도교 승려인 진전, 혁대통, 하원희 등이 이곳에서 수행하였다. 기원전 2세기 서봉묘라는 도교 사원이 화산 기슭에 있었다. 도교 신도들은 화산에 염라대왕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서봉묘를 염라대왕과 그의 신하를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여겨졌다.
순례의 목적지가 된 타이산(泰山)과 달리, 화산은 등정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화산 인근 주민들이나 황제만이 방문했으며,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순례자가 방문하지 않는 장소였다. 화산에서는 다양한 약초가 자라고 유명한 약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영생을 찾는 사람들이 화산을 방문했다.
화산의 5개의 주봉 중 하나인 차오양봉(2,096.2m)은 일출을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히고, 뤄옌봉은 화산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그 높이가 2,154.9m에 달한다. 롄화봉(2,082.6m)은 봉우리 모양이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으며, 그 외에 위뉘봉과 윈타이봉이 있다.
http://blog.naver.com/kks2465/220068218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