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4일 [음력 : 2006년(丙戌年) 윤7월(辛酉) 12일(丙申)]
오늘의 관심뉴스는 세게를 제패한 우리 한민족의 여전사들의 활약내용을 전합니다. 과연 한민족의 여성들은 지구상에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일깨워준것이 아니가 하는 뿌듯함에 오늘 하루가 즐거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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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여자청소년 축구팀, 중국 5-0 꺾고 '우승'
20세 이하 세계 여자청소년 축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을 생중계하던 러시아 TV 중계진은 북한이 세계 최강 중국에 5-0의 완승을 거두자, 이렇게 말했다.
말 그대로 북한 여자 대표팀은 3일 저녁 9시(한국시간 4일 오전 2시)에 러시아 모스크바 로코모티브스타디움에서 끝난 중국과의 결승에서 전반에만 3골, 후반에 2골을 잇달아 집어 넣어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던 중국의 콧대를 꺽었다.
이로써 북한은 사상 처음으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날 경기는 3-4위 결정전인 미국과 브라질 전때부터 시작된 강한 비로 인해 전후반 내내 수중전을 치러야 했다.
전반 초반까지 중국의 정교한 패스에 고전하던 북한은 29분 미드필더 조윤미(19·4.25선수단)가 중국의 골네트를 흔든 것을 비롯, 39분과 전반 로스타임 때 미드필더 김성희(19·평양시체육선수단)가 연속 골을 터뜨려 전반을 3-0으로 리드했다.
후반전이 시작된지 7분만에 북한의 이날의 MVP 김성희가 이번 대회 골기퍼부문 올스타로 선정된 중국의 장얀루 선수를 제치고 골을 넣었고, 곧바로 4분 뒤에는 이번대회 포워드 부문 올스타 길선희(20·리명수선수단)가 코너킥 볼을 받아 오른쪽발로 가볍게 차넣어 쐐기를 박았다.
특히 김성희는 이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 이번대회 6게임 가운데 5골을 넣어 중국의 마샤오슈(18·다롄)와 함께 득점왕 자리에 올랐다.
이에 앞선 3-4위 전에서는 준결승에서 북한에 진 브라질이 미국과 전후반을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6-5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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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동전속의 인물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세상떠남
1975년 독일 발행 슈바이처 탄생 100주년 기념은화
독일의 의사, 신학자, 철학자, 오르간 연주자.1875. 1. 14 ~1965. 9. 4 .
1952년 노벨 평화상 받음.
루터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스트라스부르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이곳에서 1899년 철학박사학위, 그 이듬해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 Von Reimarus zu Wrede〉(1906)라는 저서로 신학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인물로 인정받았다. 또 1893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해 곧 능숙한 음악가가 되었다. 파리에서 오르간을 가르친 스승 샤를 마리 비도르는 그가 바흐 해석에 독특한 감각을 지녔음을 알아차리고 바흐의 인생과 예술을 연구하여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으며, 그결과 〈J. S. 바흐 : 음악가이자 시인 J. S. Bach : le musicien-poete〉(1905)이 나왔다. 1905년 박애사업에 헌신하기 위해 선교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발표했고 1913년 의학박사가 되었다. 그를 돕기 위해 간호사 훈련을 받은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함께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가봉에 있는 랑바레네로 출발했다. 그곳에서 오고우에 강둑 위에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세웠다. 처음에는 자신의 수입으로 기구를 갖추고 병원을 운영하다가 나중에는 여러 나라의 독지가 또는 재단의 기부금으로 보충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그곳에서 적국 외국인(독일인)이라는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그뒤에는 전쟁포로로 프랑스에 억류되기도 했다. 그는 점차 전세계의 문제에 관심을 돌렸으며 〈문화철학 Kulturphilosophie〉(1923)을 쓸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자신의 철학을 발표했다. 생명을 존중하는 이러한 그의 철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윤리원칙으로, 그는 이 원칙이 문명의 존속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방치되었던 병원을 다시 세우기 위해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와 오고우에 강 위쪽 약 3.2㎞ 지점에 병원터를 잡고 얼마 뒤 나병환자 거주지도 추가로 세웠다. 1936년 무렵 병원에는 350명의 환자와 그들의 친척이 있었고, 나병환자 거주지에는 150명의 환자가 있었으며, 약 36명의 백인 의사·간호사와 다수의 원주민 근로자가 환자들을 보살폈다.
그는 음악과 학문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버린 적이 없었다. 〈사도 바울로의 신비 Die Mystik des Apostels Paulus〉(1930)를 출판했으며,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강연과 연주회를 가졌고, 음반을 만들었으며, 1911년 아내와 함께 시작한 바흐의 작품에 대한 편집도 계속했다. 〈바흐의 오르간 작품 Bachs Orgelwerke〉(1912~14), 노벨상 수상 연설문인 〈현세계의 평화문제 Das Problem des Friedens in der heutigen Welt〉(1954)는 전세계에서 널리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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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속의 인물 164 (스페인-에이자기레)
1000-1971
에체가라이 이 에이자기레(Jose Echegaray y Eizaguirre) 1832. 4. 19 ∼1916. 9. 4.
스페인의 수학자·정치가·극작가.노벨문학상
1904년 프로방스의 시인 프레데릭 미스트랄과 함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 19세기 후반기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초기에 수학교수였으며 1868년에 공무원이 되어 여러 직책을 거쳤다. 1874년 재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스페인 은행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 희곡 〈수표장 El libro talonario〉은 그가 42세였던 1874년까지는 상연되지 않았으나 그는 여생에 연평균 2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다작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초기 작품은 거의 낭만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나 헨리크 입센과 그밖의 극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후기에는 명제극을 썼다. 그는 종종 풍자적인 반전을 사용하여 논제를 드러냈다. 예를 들면 〈미치광이 또는 성자 O locura o santidad〉(1877)에서는 정직이 사회에서 광기로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가 자신의 모든 희곡에서 다룬 수법은 멜로드라마식이었다. 비록 오늘날에는 잊혀졌으나, 자신의 부족한 희곡적 효과를 보충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사용했던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는 당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의 허구성, 상황의 비진실성, 제어되지 않은 과시적 문체 등으로 인해 대부분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스페인 연극계에 대변혁을 일으키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주요작품으로는 역사에 관련된 낭만주의의 주제와 비슷한 〈칼 손잡이 En el puno de la espada〉(1875)·〈죽음의 한복판에서 En el seno de la muerte〉(1879)·〈미치광이 신 El loco Dios〉(19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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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간도협약 체결
간도(間島)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고조선ㆍ고구려ㆍ발해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다가 오랫동안 미개척상태로 남아있던 간도가 우리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것은 1712년 청의 강희제가 조ㆍ청(朝ㆍ淸)간 경계를 분명히 할 것을 제의하면서였다. 이때 세워진 것이 ‘백두산 정계비’다.
이후 170여년간 잠복해있던 간도의 귀속문제는 1881년 청이 조선정부에 간도지역 조선인의 본국송환을 요구하면서 다시 표면화됐다. 흉년이 들어 조선 사람들이 대거 간도로 이주했기 때문이었다. 양국 간 을유담판(1885)ㆍ정해담판(1887)을 열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조선정부는 간도주민에 대한 직접적인 관할권을 더욱 강화해 나갔다. 일제도 을사조약 후인 1907년에 ‘간도는 조선영토의 일부’라며 조선정부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 했으나 사실은 2년뒤 간도를 높은 값에 팔기위한 술책이었다.
1909년 9월4일에 청과 ‘간도협약’을 체결, 간도의 철도부설권과 탄광개발권 등 각종 이권을 챙기는 대가로 간도를 청에 넘겨준 것이다. 조선사람들이 100년이상 피땀흘려 개척했던 광대한 지역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우리 영토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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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제로니모 투항하다.
'하품하는 사람'이란 인디언 이름을 지닌 제로니모(Geronimo, 1829-1909)가 1886년 9월 4일 넬슨 마일스(Nelson A. Miles) 장군에게 투항함으로서 사실상 아메리카 인디언의 보호구역 정착 계획이 모두 마무리되게 되었다.
제로니모는 보호구역 탈출과 체포 송환의 화려한 전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경력은 1885년 5월 7일에 시작되었다. 이 날, 제로니모는 35명의 아파치 전사와 8명의 소년, 101명의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애리조나 산 카를로스(San Carlos)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탈출했다.
미합중국 정부는 제로니모 체포를 위해 5천 여명의 정규군과 아파치족으로 구성된 5백 명의 인디언 외인부대, 그리고 민병대를 동원했다. 제로니모는 16개월 동안 사막과 산악 지대를 전전하며 저항을 계속하는 동안, 75명의 미국 시민, 2명의 장교와 8명의 병사, 12명의 인디언 외인부대 군인을 살해했다. 이 기간 동안 제로니모 측은 장정 6인과 소년 전사 2명, 여성 2명과 아이 1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1886년 3월 25일부터 27일까지 제로니모와 정부군 사이의 투항과 관련한 1차 협상이 있었다. 제로니모는 이 협상에서 자신과 자신의 부족이 2년간의 유배기간이 지나면 본래의 보호구역으로 귀환시켜준다는 조건으로 항복에 동의했으며, 미군 측 협상 책임자인 크룩(Crook)도 이런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나 "조건 없는 무조건 항복"이라는 상부 지침이 하달되자 협상은 파기되었다.
1886년 4월 28일 제로니모 체포 추격군 지휘관이 크룩장군에서 마일스 장군으로 교체되었다. 1886년 8월 23일 마일스 장군의 추격부대가 제로니모와 대치하는 데 성공했으며, 다음 날인 8월 24일 게이트 웃(Gatewood) 중위가 제로니모를 만나 항복 권유했다.
9월 4일 제로니모는 부족을 이끌고 마일스 장군에게 투항했다. 그러나 항복을 거부한 3쌍의 남녀 아파치는 멕시코로 도주했다가, 그 곳에서 멕시코 국경 수비대에 의해 모두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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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6년 서로마제국 최후의 황제 폐위
1260년 Guelphs(겔프파 :중세 이탈리아의 교황파)와 Ghibellines(기벨린파: 중세이탈리아의 황제파)가 중부 이탈리아에서 몬타페르티(Montaperti) 전투를 벌였다
1460년 신숙주(1417-1475), 여진(女眞) 정벌.
1658년 (효종9)김육 사망
1767년 영국 정치가 찰스 타운센드(Charles Townshend) 사망
1768년 프랑스 작가 비콩트 프랑소와즈 르네 드 샤토브리앙(Vicomte Francois Rene de Chateaubriand) 태어남
1813년 영국 건축가 제임스 왓트(James Wyatt) 사망
1824년 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태어남
1837년 모르스 전신기 발명
1857년 프랑스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 사망
1870년 프랑스 보나파르트(Bonaparte)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가 퇴위하고 3번째 공화국이 공포되었다. 제2제정(帝政) 폐지
1882년 뉴욕, 처음으로 전기 점등.
1886년 아파치족의 제로니모 미 육군에 항복하다.
1892년 프랑스 작곡가 밀로 출생
1896년 프랑스 극작가 겸 감독 앙토닝 아르투(Antonin Artaud) 태어남
1904년 세브란스 병원 개원
1905년 영국 소설가 마리 레널트(Mary Renault) 태어남
1907년 노르웨이 민족음악파를 창시한 작곡가 그리그 사망
1909년 첫번째 보이스카웃 랠리가 런던 교외의 크리스탈 궁전에서 개최되었다
1909년 청-일양국, 간도에 관한 협약체결. 이로서 간도를 청국령으로 인정.
1932년 오스트리아 빈서 세계평화회의 개막, 14개국 대표 80인 참가
1933년 쿠바 노동자 반란
1936년 마드리드에서 카바렐로를 수반으로 하는 인민전선정부 성립
1937년 호주 수영선수 다운 프래저(Dawn Fraser) 태어남
1940년 미국 Columbia Broadcasting System(CBS)은 W2XAB스테이션에서 컬러 텔레비젼을 실험했다.
1944년 소련군 헝가리에 진입
1944년 연합군이 벨기에의 안트워프(Antwerp city)를 탈환했다.
1948년 국군, 경리병과 창설
1948년 항공基地司를 육군항공사령부로 개칭하고 산하 비행부대 창설
1949년 미국 골프선수 톰 왓슨(Tom Watson) 태어남
1949년 소련, 동독 농지개혁 완료 발표
1950년 여자의용군교육대(여군학교 전신) 창설
1951년 유엔군 한국전쟁에 소련군 참가 발표
1953년 전미 제24사단장 Dean 소장 포로교환으로 귀환.
1962년 증권시장 개장
1963년 프랑스 정치가 로베르 슈망(Robert Schuman) 사망
1964년 자유언론수호 국민대회 발기준비회의, 범국민운동 전개방침 결정
1964년 정부, 언론보복조치 철회
1965년 독일 선교사, 철학자, 오르가니스트 알베르트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사망
1970년 소련 키로프 발레단(Kirov Ballet)의 나탈리카 마카로바(Natalica Makarova)가 서방국가로 망명하다.
1970년 태풍 빌리호 강타 53명 사망실종
1972년 일본-중공, 해저케이블 설치에 합의
1973년 북한 노동당, 김정일을 당중앙위 서기(書記)에 선출. 이때부터 김정일이 북한의 실권을 행사.
1974년 미국-동독, 워싱턴서 대사급 수교 조인
1975년 이스라엘-이집트, 2차 시나이협정 조인
1981년 부마고속도로 개통
1981년 상공부, 제5차 5개년 상공부문 계획 발표
1982년 27회 세계야구대회 서울 개막 - 한국 우승
1984년 동독 호네커 수상 서독방문 취소 발표
1985년 대서양 연안에 침몰해 있는 타이타닉호가 원격조종장치에 의해 촬영되다.
1985년 북한 허담, 비밀리에 서울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과 비밀 회동
1988년 영국 세관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네덜란드로부터 영국에 마약 밀수입하려는 것을 적발하다.
1989년 벨기에 범죄소설가 조르쥬 시메농(Georges Simenon) 사망
1990년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개최(서울),연형묵 북총리 입경(4~7일간)
1990년 한국-잠비아 국교 수립
1993년 육군, 공병학교에 PKO 전담교육대 창설
1994년 일본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 개항
1995년 북경 세계여성회의 개막
1996년 이스라엘 수상 네탄야후(Benjamin Netanyahu)와 팔레스타인의 야시르 아라파트(Yassir Arafat)가 만나 교착상태에 빠진 회담을 재개하는데 서명했다.
1997년 아랍 하마스조직의 3명의 자살폭탄테러범들이 서부 예루살렘에서 자살폭탄테러를 기도해 3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하고 190명의 사람들이 부상당하다.
1997년 영국 심리학자 한스 후르겐 아이생크(Hans Jurgen Eysenck) 사망
1997년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롯시(Aldo Rossi) 사망
1998년 북한 중앙방송, 8월 31일 12:07시에 인공위성 <광명성 1호> 발사성공 주장. 탄도(彈道)미사일이 아니며, 위성(衛星)에서 27mega helz로 신호발송중이라고. 미국은 위성이 아닌 미사일 발사라고 밝힘
1999년 동티모르 주민투표 결과 78.5%가 독립에 찬성
2000년 동아시아 여성포럼, 대만에서 개막
2001년 이용호 게이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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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첫댓글 여자 축구가 아무리 청소년경기라고해도 세계최강이라하던 중국과 미국을 꺽고 우승했네요...^^ 스코어가 제눈을 의심하게할 정도로 대승이네요...^^ 항상 단일팀을 얘기하는데 그럴때마다 그 저력이 얼마나될까 항상 궁금합니다.
북한 여자축구가 중국을 꺾고 우승합니다. 축하할 일이네요. 아프리카에 병원을 짓고 봉사한 위대한 의사 슈바이쳐가 세상을 떠납니다. 슈바이쳐 이후 많은 국가의 의사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아 빈곤국가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데 그 분들 모두 존경스럽습니다. 연형묵 총리가 입셩하네요, 북이 많이 변해야 합니다. 그간 왔다간 테크노크래프트들이 개혁을 건의하다 좌천되거나 한 것 같습니다.
한민족 여전사 낭자님들의 쾌거에 함성한번 질러 봅니다. .............. 정말 장하다 ! 한글도스님 말씀처럼 어깨가 으쓱해 지며, 내 자신이 뿌듯함에 오늘 하루가 즐거울 것 같습니다 오늘같은날은 외국에 나가있어서 지나가는 여성 들 마나야 되는것 아니가요? ㅎㅎㅎㅎ
오늘의 소사를 보면서 오랫만에 댓글을 남기네요. 오늘 슈바이처가 세상을 떠난 날이군요. ^-^
통일이 되면 간도를 반드시 찾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은 지금도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부여사까지 자기네들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조선까지 자기네 역사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빨리 통일이 되어서 간도 및 만주 지방 백두산을 찾아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