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오늘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열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히 폭발적이다
요즘 많은 해외여행 유튜버가 외국에 나가서
한류열풍 그 생생한 현장을 영상으로 전달한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열풍이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1992년 한국은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많은 부문에 교역이 이루어졌다
1997년 <사랑이 뭐길래>란 드라마가
중국으로 수출되어 방영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한류(韓流)라는 용어가 처음 탄생했다
2003년 일본에서 방영된 <겨울연가>는
역사적 대흥행으로 한류열풍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일본 현지에서 강력한 팬덤이 형성되고
팬들은 대규모 한국방문이라는 역동적 현상이 일어났다
2005년 일본 NHK와 중국 후난위성TV를 통해
중국 전역에 방송된 이영애 주연의 <대장금>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대장금 신드룸이 일어났다
중국 일본에서 시작된 한류열풍은 홍콩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를 휩쓸고 아랍권을 넘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열풍이 K-Pop(팝)을 거치며
미국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005년 <동방신기>
2006년 가수 <비>
2008년 가수 <보아>
2009년 <원더걸스>
2012년 <소녀시대>
2012년 가수 싸이 <강남스타일>
2013년 <방탄소년단(BTS)>
2018년 <엑소(EXO)> 등은
아시아 지역을 넘어 중동 유럽 남미
미국 시장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특히 BTS의 열풍은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기 위해 한글을
배우려는 열기로 이어졌다
한류열풍에 있어서 영화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
해외 영화제에서 주연상 감독상을 받고
그랑프리를 하는 등 한국의 영화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은 정말 대단하다
<오징어 게임>은 한류열풍, 한류 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인에게 한국의 전통 놀이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OST도 매우 호평을 받아 세계의 많은 방송국들이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오징어 게임 OST를 사용하고 있다
한류열풍은 한글을 배우게 하고
한국 음식을 맛보게 하고
한국 제품을 구입하게 만든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우영우 김밥이 알려지면서
해외에서 김밥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패션, 음식, 인테리어 등 일상 전반에
한류열풍이 일어나고있다
심지어 K화장까지 유행하는 추세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 한강이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워커힐(Walker Hill)은 그냥 단순한 호텔이 아니다
김일성 남침으로 3년 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유엔군과 주한미군은 바로 철수 못 하고
당분간 계속 남아있게 되었다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오직 자유를 지키기 위해
16개국 연인원 180만 명이 참전했고 이 중 10만 명이
대한민국을 위해 장렬히 전사했다
전쟁이 끝나고 단계적으로 유엔군은 철수하고
주한 미군은 주둔했다
유엔군 5만여명은 우리 대한민국을 위하여
자신의 나라로 철수하지 못하고 휴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유엔군 사령부와 우리 정부는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주한 유엔군 장병들의 전용 휴양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당시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유엔군에 대한 보은책의 일환으로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 만큼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 건설하였는데
한국 최초로 극장식 나이트클럽이 개설되었고
패션쇼가 열릴 수 있도록 고급 시설로 지어졌으며
실내 수영장까지 마련되어 훗날 이 실내 수영장은
우리나라 수영선수들이 훈련장으로 쓰기도 했다
이 워커힐(Walker Hill)의 이름은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워커의 언덕(워커힐)"이라 명명 하였다
워커라는 이름은 미8군 초대 사랑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가
전사한 월턴 워커(Walton H.Walker) 장군의 이름인데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워커장군은 중장으로 그의 아들은 대위로 부자가 한국전에 참여했다
워커장군이 없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김일성 손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유엔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고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 선까지 후퇴하였다
버티느냐 죽느냐(Stand or Die)라며 낙동강 방어선
포항· 영천· 대구· 창녕· 마산· 통영을 연결하는 이른바
‘워커라인’의 방어작전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한 인물이 워커 장군이다
워커장군은 애석하게도 1950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앞두고 중국군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수훈을 세운
자신의 외 아들 워커 대위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수여하는
은성무공훈장을 전달하기 위해 이동 중 의정부 북방 축석령 부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향년 61세의 삶을 마감했다
워커힐은 1963년 3월 6일 유엔군이 사용할 수있는
리조트와 레크리에이션 센터가 먼자 개장하고
1964년 4월 8일 워커힐호텔을 개관하였고,
1968년 국내에서 2번째로 카지노를 개장하였다
1973년 워커힐은 선경개발(주)에서 인수하여 사명을
선경개발 (주)워커힐로 변경하였고 지금은
SK네트웍스(주)워커힐을 공식 이름으로 쓰고 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주한미군 주둔은
한국의 대중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기간중 많은 미국 연예인들이 위문 공연차 내한했다
세기의 배우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가 다녀갔고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가수
모니카 루이스(monica-lewis)도 다녀갔다
냇 킹 콜(Nat King Cole)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조니 마티스(Johnny Mathis)
그리고 코메디의 거장 밥 호프(Bob Hope)는
전쟁 기간중 무려 세 번이나 한국을 다녀갔다
주한 미군 미8군 무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최초 연예기획사도 생겨나고
록밴드가 결성되고 재즈가 들어오는 등
미국 대중음악이 하나의 교과서처럼 받아졌다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1966년 한형모 감독이 만든 음악영화다
지금은 작고한 남정임과 트위스트 김, 서영춘, 구봉서가
주연을 맡아 당시 대중문화예술의 집약체를 보여주는 영화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원본과 흑백 복사본을 수집
디지털 복원으로 당시 원본과 가깝게 고화질로 복원한 영화다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양대훈(서영춘)은 한국전쟁 때 잃은 딸 <양순애>를
찾기 위해 서울로 가던 중, 기차에서 우연히
삼룡(트위스트 김)이란 사람을 알게 된다
서울이 초행길인 그는 삼룡에게 길안내를 부탁한다
삼룡도 첫사랑 <옥순이>를 찾아 서울로 가는 길이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워커힐 공연장에서
구봉칠(구봉서)이 키운 신인 가수 남미라(남정임)의
공연을 보게 되는데 결론은 <양순애=옥순이=남미라>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오늘날 구성 탄탄한 시나리오로 본다면
약간 허접한 스토리 전개일 수 있지만
이 영화는 60년대 인기가수의 노래와 코메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아주 소중하고
길이 보존해야 할 주옥같은 영상자료의 영화다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당시 시내버스와 승용차들
거리의 교통경찰, 도로 위엔 요즘같이
차선이 없어서 오늘날 동남아의 어느 국가를 보는 것 같다
명동 입구의 백빽한 간판은 빌딩을 가릴 정도고
거리를 행보하는 사람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넥타이는
5. 60년대 유행하던 폭 좁은 넥타이 일명 새끼줄 넥타이로
요즘은 보기 어렵다
당시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가수들이
외국의 팝 번안곡을 흥미 있게 들러주는데
당시 시대 상황과도 잘 맞물려 있다
키보이스-바람난 노처녀(원곡 : Wooly Bully(울리불리)1966년
이금희-다함께 흔듭시다(원곡:Whole Lotta Shakin' Goin' On )1955년
위키리-국경의 남쪽(원곡: South of the border )1939년
쟈니브라더스-방앗간집 둘째딸(박춘석 작곡)1965년
박재란-밀집모지 목장아가씨 1964년
이미자-흑산도 아가씨 1965년
현미-밤안개 1962년
김상국-버드나무 아래서(원곡: Bury Me Beneath the Willow)1966
한명숙-노란 샤쓰의 사나이 1961년
유주용-넝쿨장미(원곡:Ramblin Rose) 1962년
특히 영화 속에서 <키보이스> 시절의 윤향기와
우리나라 최초 해외진출 걸그룹 <레이디버그>의 보컬
장미화의 모습은 무척 인상 깊게 뇌리에 남는다
이 영화는 음악영화이기 때문에 영화 속 가수 남미라가 부른
주제가 <검은 이별의 글씨>는 1965년 가수 태성미가
발표한 <파란 이별의 글씨>를 제목만 살짝 바꾸어
남정임이 영화 속에서 립싱크 했다
전우 작사 박춘석 작곡 <파란 이별의 글씨>는
엄청난 한 히트를 했고 급기야 1968년 정진우 감독이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문주란이 주재가를 불렀는데
문주란의 <파란 이별의 글씨>도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디지털 복원으로 화질이 1080프로그래시브라서
60년대 서울의 거리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재미도 있다
대중문화를 통해 시대적 상황과 흐름을 담은
좀처럼 보기 힘든 귀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검은 이별의 글씨>
작사: 전 우
작곡: 박춘석
노래: 태성미
눈물이 날까
입술을 깨물면서
안녕이라고
마지막 잡은 손목
하고 싶은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하고
다시는 못 올 길을
당신이 간 뒤에
구겨진 종이 조각에서
흐느끼는
검은 이별의 글씨
눈물이 날까
고개를 숙이면서
안녕이라고
조용히 잡은 손목
처음부터 이런 날을
생각을 했지만
쓸쓸히 돌아서는
마음 괴로워서
찢어진 종이 조각에서
사무치는
검은 이별의 글씨
첫댓글
휴가는 끝났는지?
오늘 새벽 우연히
들렸다가
어마어마한 자료를
접하고 읽고 또읽고 사진 자료를 키워 보느라 한시간이 훌쩍 지나갔네요~
오늘날
우리 나라를
세계에 알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할수있는
한류의 역사를 이렇게 자세하게 알수있게 기술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최근 몇년들어
넷플릭스에서
보여주고 있는
한류 콘텐츠의 저력은 우리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이바지를
하고 있지요~
올려준 사진을
확대해보니
종로 우미관 쪽인것 같은데 당시
패션이나
종로통 상점가들이
너무 신기하고
다실이나 록 카페?피부과도 보이고
시민들 옷차림을 보니 서울에서도
가장 멋쟁이들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하긴 도심에서도
화신.신신 백화점이 모여있던
종로가 최고의 거리였다니 가히 짐작이 갑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YMCA 옆 골목
우미관 쪽을 둘러보면서 일제시대
이정재.김두환등이
떠오르고
여기가
정치 건달들의 활동 무대였구나
상상하게 됩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건물들이 신기하고
우미관 자리도
보존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키보이스 원년멤버 였다는 윤항기
차중락.
위키리.장미화.박재란.
젊은 시절의
남정임.구봉서.서영춘.트위스트김등
참 귀한 사진들...
폭염에 코로나에 칼부림에
무서워서 휴가 집콕,방콕했습니다 ㅋㅋ
집이 최고의 피서지
포스팅된 사진 속의 거리는
옛 코스모스백화점 자리가 있던
명동 입구입니다
종로쪽엔 요정이 많아
정객 협객들의 아지트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지
옛날 영화가
보고싶어지는
요즘입니다.
시골에서 살았으니
그당시 도회지
생활상도
궁금하고
슬쩍슬쩍 보고
듣던 연예계 모습을 거슬러 올라가
보고싶어
옛날 영화를 상영한다는
허리우드
극장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연히 작년?
재작년 여름인가
제주도 4.3사건의
진실을 다룬 다큐영화 소식을 접하고 무작정 가서
관람 한적이 있지요
관객은 거의
노인들이었고
영화 시작전
감독이 직접 나와서
영화를 찍으며 겪은 에피소드며
직접
산 증인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아 어렵게 만든 영화인데
문정부 시절
극장에
올리지도 못했던
영화라며
진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애원하듯 홍보를
부탁하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된 영화관이라
냉방도 잘 안되고 비롯
의자옆에
컵 홀더도 하나 없어
음료나 커피도 계속
들고 마셔야 하는
극장이지만
날씨가 선선해지면
허리우드에서
재상영하는
작품들을 골라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국산영화들...
워커힐억서 만납시다 저 영화
스크린에서 봤으면
좋겠는데
불가능 하겠지.
테블릿으로 찾아봐야겠네요
요즘은 TV로도
유튜브를 볼수 있다던데
어떻게서든 한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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