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제사
지난주 4월 5일은 식목일이자 한식(寒食)이었다.
한식은 설, 단오, 추석과 우리의 전통적인 4대 명절 중 하나였다.
한식제사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는 시점에서 조상을 기리고,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뜻깊은 날이다.
올해의 한식 제사는 가족묘원을 조성하고 처음 치르는 제례였다.
예전에는 한식제가 기제사나 명절 차례에 비해 무척 힘들고 번거로운 행사였다. 조상들 산소가 무려 다섯 군데 산에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로따로 떨어진 장소를 찾아가 제사나 성묘를 드리는 일이 불편하고 힘든 일이었다. 여러 군데 있던 산소들을 가족묘원 조성을 하고 한곳에 모시니 모든 일들이 수월하고 편리해졌다.
가족 묘원을 조성하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이장(移葬)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와 계약을 하고 일이 시작되었다.
늦가을 새벽 쌀쌀한 날씨에 먼저 조부모님 산소에 도착하였다. 간소한 제물을 차려 놓고 잔을 올렸다.
이어서 파묘작업이 시작된다. 옛날에는 산역(山役)이라는 게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했지만 지금은 모든 게 기계화 작업이다.
파묘 작업을 하는 포클레인 기사는 숙련된 전문가였다. 잠깐 사이에 봉분을 모두 허물고 땅을 파 헤친다.
유골이 안치된 바닥이 들어나니 기계는 멈추고 인부들이 들어가, 호미로 바닥을 긁으니 드디어 나란히 누워계신 조부모님 유골이 나타났다. 순간 나도 모르게 한탄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생과 사의 허무감과 인생무상이 슬픈 감정을 유발한 것 같다.
내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도 조부모 슬하에서 살았었다. 대종손의 귀한 존재를 늘 말씀하시며 나를 극진히도 사랑하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셨다.
수습된 유골들은 각각 하얀 종이에 쌓아 아담한 박스에 넣었다.
다섯 군데 무덤을 모두 파묘하고 수습한 유골은 10박스였다. 화장장 예약이 어려워 유골 박스를 보관할 장소를 걱정하기에 나의 서재 방에 안치해 달라고 했다.
구청에서 묘원 장지 허가가 나서 등기를 하고 화장장으로 갔다.
유골들은 화장장에서 가루가 되어 나왔다.
가족 묘원에 도착 정해진 위치에 땅을 파고 흙속에 안치가 되었다.
땅은 흙이고 흙은 만물을 살리는 바탕이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 위에서 삶을 구사하다가 이렇게 흙으로 돌아간다.
한식제사와 산소관리의 유래는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와 관련이 있다.
한식은 동지 이후 105일째 되는 날로, 봄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로 여겨진다.
이날 자손들은 조상들 무덤을 찾아가 산소를 정리하고 가꾸며 제사를 지낸다.
한식제사는 조상을 기리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산소를 깨끗하게 하고자 하는 전통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인류문명의 발전과 제례문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제사문화도 발전해 왔으며, 제사문화는 인류의 신앙, 예술, 과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제사문화를 통해 인류는 신과 소통, 조상에 대한 존경, 사회적 결속 등을 이루며, 이를 통해 인류문명도 발전해왔다.
제사는 조상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조상들을 기리고 존경하는 의식이다. 조상들과의 연결을 유지하고 그들의 가르침과 지혜를 계승하며, 흩어져 살아가는 자손들이 한데 모여 결속을 하는 자리가 제사의식 이다.
금년 한식제가 모두 끝나고 묘역을 살펴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가족묘원내 잔디가 골고루 잘 자랐고 깔끔한 표시석 아래 나란히 누워 계신 조상님들의 평온한 모습에 안도감을 느낀다. 지금의 이곳은 조상과 후손들이 저승에서 만나는 날 모두의 영원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한 집안에 살아계실 때 내가 본 애증의 세월도 끝나고
지급은 모두가 침묵 속에 나란히 누워 계시다.
아무쪼록 지금의 안식처에서 평안히 영면(永眠)하시기를 기원하며 귀갓길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