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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구두 수선공의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난 안데르센은 어려서부터 가정 형편이 늘 좋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며 생활이 더욱 어려워진 그는 유력자
집안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고 후원을 받았다.
원래는 연기자가 꿈이었으나 늦은 나이에 입학한 학교에서 "죽어 가는 아이" 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해 호평을 받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그는 "엄지 공주,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눈의 여왕, "같은 대표작을 비롯해 매년 동화를 발표한다.
1843년에 나온 동화집에는 그의 최고 걸작인 "미운 오리 새끼"가 수록되어 있었고, 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안데르센의 명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해진다.
이제 그는 왕족과 귀족을 비롯한 상류층 인사들과 교제하는 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고국인 덴마크에서는 종종 혹평을 받았고, 오히려 독일이나 영국 같은 외국에서는 더 일찍부터 명성을 얻었다.
안데르센이 태어날 당시의 덴마크는 상하관계가 뚜렷한 사회였다.
신분이 천한, 가난한 소년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신분 상승을 한다는 것은 외부의 도움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데르센은 어려서부터 불우한 환경을 벗어나고자 사회적, 경제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의 앞에 나서야 했다.
어디를 가든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일 소개장을 지니고 다녔고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로 써서 알렸다.
그로 인해
내면에는 불안감과 자괴감이, 외면에는 출세욕과 허영심이 공존했다.
그는 일생 동안 아웃사이더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사가 바로 내 작품에 대한 최상의 주석(柱石)이 될 것이다"라는 안데르센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굴곡 많았던 자신의 인생을 반영한다.
미운 오리 새끼는 안데르센 자신이었고 백조가 된 후에도 미운 오리였던 시절을 떨쳐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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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는 최초의 근대 아동문학이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아이들만을 위학 작품은 아니다.
안데르센은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양식의 동화를 창작하고 싶어 했다.
그의 동화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의 이야기를 어린이용 소재로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 많다.
안데르센은 실제로 "아동문학가"로만
낙인찍히는 것을 싫어 했다고 한다.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의 동상을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나는 한 번도 아이를 내 등에 태우거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적이 없다. 내가 쓴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단지 내 이야기기의 표면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안데르센은 동화의 세계를 아름답게만 미화시키지 않았다. 그는 "가장 환상적인 동화는 현실에서 솟아나온다"
라며 가끔은 추하고 냉혹한 인간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의 상상의 세계는 현실을 토대로 하였기에 더욱더 생명력이 넘쳤다. 그는 작품 안에서 사회 부정이나 어리석음과 같은 세태를 풍자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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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갑니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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