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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
엘리야의 거절과 군사들의 죽음 1:9~12
9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아하시야를 만난 엘리야 1:13~18
13 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16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17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
18 아하시야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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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아하시야는 오십부장과 군사를 엘리야에게 보내지만, 하늘에서 내린 불이 그들을 태워 버립니다. 세 번째 오십부장은 무릎 꿇고 엎드려 생명을 귀히 여겨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 사자(천사)의 지시대로 엘리야는 아하시야에게 가서 그의 죽음을 예고합니다. 아하시야가 죽고 여호람이 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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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거절과 군사들의 죽음 1:9~12
하나님의 심판 선언에 회개가 아닌 완고함으로 반응하면 징벌이 이어집니다. 아하시야는 엘리야에게 오십부장과 50명의 군사를 보냅니다. 자신에게 죽음을 선언했기에 무력을 사용해 그를 잡아오려는 것입니다. 오십부장은 산꼭대기에 앉은 엘리야에게 “내려오라”(9절)라는 왕의 명령을 위압적으로 전합니다. 이에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오십부장과 50명의 군사를 모두 죽게 합니다. ‘하나님의 불’(12절)은 갈멜산 대결 시 하늘에서 내려온 불을 생각나게 합니다. 불은 엘리야가 참선지자라는 것과 하나님의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잘못임을 알려 줍니다. 아하시야가 한 번에 교훈을 얻지 못하자 비극적 상황이 두 번이나 일어납니다.
● 더 깊은 묵상
아하시야가 보낸 오십부장과 50명의 군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하나님 말씀을 들었음에도 내 판단을 고수하다가 고생한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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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시야를 만난 엘리야 1:13~18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과 태도를 보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세 번째로 온 오십부장은 엘리야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목숨을 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두 번의 사건을 통해 엘리야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실히 알고 두려움을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명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15절)라는 표현에서 군사들이 자신을 잡으러 온 상황을 엘리야가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두려워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입니다. 엘리야는 담대히 왕 앞에 서서 그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전합니다. 심판 선언을 반복해서 듣고도 회개하지 않은 아하시야는 말씀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죽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세 번째로 온 오십부장은 엘리야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나요?
내 힘과 의지를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 은혜를 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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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에서 생각할 것
하나님이 한 시대를 움직이시고자 크게 쓰신 사람들은 최악의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요셉, 다니엘, 에스더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고,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가 낯선 문화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부모 없이 고아로 자랐으면서도 황후의 자리에 오른 에스더는 백성 전체가 몰살될 상황에서 그들 모두를 구할 임무를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생각만 해도 겁이 날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의지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 평안하지 않아도 그것에 대해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든든한 배경도 없고 지금은 나설 분위기가 아니라는 핑계를 대서도 안 됩니다. 그때 오히려 하나님은 최악을 최상으로 바꾸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을수록 더 담대해야 합니다. 대적이 강성하고 기고만장할 때가 오히려 하나님이 일하실 시기입니다.
잘 안되는 현실적 이유를 대며 비판만 하는 ‘겉똑똑이’가 되지 마십시오.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일수록, 주님을 믿는 내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최악의 상황은 절망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최상을 바라볼 시기입니다.
성경 인물 열전 / 김문훈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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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하 1장 13절
아하시야가 세 번째로 오십 부장과 군사들을 보냈다는 것은 자신의 뜻을 꺾을 마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오십 부장은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구합니다. 이는 불쌍히 여겨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앞선 오십 부장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이 엘리야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깨달았기에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춘 것입니다. 시대의 악함을 탓하기 전에 교만한 자아를 철저히 부인하는 사람은 언제나 은혜를 입습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의인은 겸손해져서 은혜를 얻지만 죄인은 교만을 더해 멸망을 자초한다. - 토머스 왓슨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인간적인 힘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제 불신앙을 용서하소서. 매사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겸손한 신앙인이 되길 원합니다. 저 자신을 위해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오직 경외함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21 내가 예수 믿고서)
왕상 22:5~53절입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하시야에 대한 총평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런 아하시야 통치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단락 구분
13~14절 살려달라고 간구하는 오십부장
15~16절 왕에게 하나님의 신탁을 전달한 엘리야
17~18절 아하시야 왕의 죽음
배경이해
17절에서 왕이 엘리야가 전한 말씀대로 죽었다고 표현하는데, 열왕기에서는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그 선지자가 참 선지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시가 된다. 이것은 신명기 18:22에서 언급된 것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도 없으면 가짜 선지자라고 하였다. 이를 기준으로 열왕기서는 계속해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고 있다. 열왕기상 22장에 이것이 잘 나타나는데, 아합의 왕실에 있던 시드기야를 위시한 거짓 선지자 무리와 참 선지자 미가야를 대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매순간 주님께 먼저 의뢰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겠다고 결단을 내리도록 하자
우리가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는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잊지 말고,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신실하신 주님께서 당신이 하신 말씀들을 모두 이루어 나가시는 그 모든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 보면서, 그분의 놀라운 일들에 감사하고, 즐거워하도록 하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17절 말씀대로 아하시야의 생명을 취하십니다. 아하시야의 죽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명증했습니다. 아하시야가 하나님께 묻고 자비를 구했다면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을 것입니다(참조. 6절). 하나님은 그를 고치심으로 자신의 자비를 드러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신의 행위에는 심판의 불길로, 자비의 호소에는 구원의 손길로 응답하십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5~9,11절 아하시야는 자신의 죽음을 선포한 사람이 엘리야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이유가 자신의 불신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릎을 굽히기보다, 선지자의 무릎을 꿇리려고 군대를 보냅니다. 그의 행동은 무모한 도발이고 가장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말씀을 굽게 만들려면,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굴복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며, 말씀을 왜곡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선전포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4,10,12절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는 진정한 말씀의 사자였습니다. 그는 왕의 서슬 퍼런 위협에도 왕의 죄를 고발하며 ‘반드시 죽으리라’고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속히 내려오라’는 왕의 준엄한 명령에도, 굳게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말씀의 사자가 동시에 세상 권력을 대변하는 왕의 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침묵하거나 굴복하지 말고, 내게 주신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말씀의 전달자로 삽시다.
13a절 두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는 끈질기게 군대를 보냅니다. 삶에 대한 애착과 집착 때문에 무모한 일일지라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력을 다한 일이 그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키우고 심판을 굳힐 뿐입니다. 고난의 늪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지만 더 깊은 수렁에 빠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돈과 권력을 앞세워 벗어나보려고 애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자기 힘을 빼고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13b,14절 세 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에게 명령하지 않고 호소합니다. 왕의 편에서 엘리야를 굴복시키지 않고, 엘리야 앞에서 굴복하고 자비를 구합니다. 생명의 주권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기에, 자신의 생명과 부하들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무릎을 꿇습니다. 자기를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아하시야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아하시야에게 기대했던 모습이 바로 이런 겸손한 태도였을 것입니다.
15,16절 엘리야는 말씀대로 행합니다. 내려가라면 내려가고, 말씀을 전하라면 전했습니다. 내려가지 않을 이유를 찾고, 전하지 못할 핑계를 찾지 않았습니다. 이런 ‘단순한 순종’은 하나님과 오래 동행하고 교제하면서 축적된 철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의심하고, 실천을 앞두고 우물쭈물 망설인다면, 아직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못한 까닭입니다.
기도
공동체-말씀을 순종하는 삶이 저와 공동체를 살리는 길임을 믿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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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꾼을 시켜 바알세붑 우상에게 헛된 것을 구한 것에 대해 결국 죽을 것이라고 엘리야가 전하자, 아하시야는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을 보내어 그로 하여금 산에서 강제적으로 체포하여 내려오게 명령합니다. 한 명의 선지자를 내려오게 하기 위해 군사 50명을 보낸 것은 힘으로 그를 겁박하고, 스스로 원하는 육신의 회복을 위해 엘리야를 이용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아하시야가 자신의 죄에 대해 돌아보고, 엘리야를 통한 엄중한 경고에 대하여 엎드렸다면, 그는 눈물의 회개로 여호와 앞에 나아가 치유의 손길과 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의지했던 우상은 그러한 교훈을 그에게 가르쳐 주지 못했고, 신앙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갈멜산에서처럼, 두 번에 걸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100여 명의 군사를 다 태워 버렸고, 아하시야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보낸 세 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 앞에 무릎 꿇고 간청하며,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는 왕이 보내어 엘리야에게 가지 않을 수도 없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전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지혜와 겸손이 있었습니다. 엘리야 역시 이전에 아하시야의 어미인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선포하고, 군사도 보내지 않았지만, 스스로 낙심하여 죽기를 구했던 것과 달리, 이제 여호와의 힘을 온전히 의지하고 그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담대하게 아하시야 왕에게까지 내려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반면, 아하시야는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가 여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의 죄와 실수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결국 죽음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르는 자는 그분의 지혜 안에서 자라고, 긍휼을 입어 구함을 받게 됨을 기억하고 늘 겸손히 엎드리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고난의 현장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이어야 합니다(9~12절).
아하시야는 오십부장과 오십 명의 군사를 엘리야에게 보냅니다.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 엘리야를 향하여 지휘관인 오십부장은 ‘하나님의 사람이여’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고압적인 자세로 엘리야에게 ‘내려오라’고 명령합니다. 아하시야의 명령만을 그들이 수행한 것이 아니라 왕의 완악함에 스스로 동참하는 죄악을 범함으로써 그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보낸 오십부장과 군사들은 하나님의 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하시야의 잘못된 판단과 영적 무지함 때문에 애꿎은 군사들만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현장으로 나를 이끌어 가시면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인간적인 방법만을 찾고 있기에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말씀하시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현장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인식할 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과 계획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알량한 잔꾀나 나의 인간적인 방법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명심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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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삶 -
아하시야왕은 세 번째로 오십부장과 군사를 엘리야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온 오십부장은 그들의 생명을 귀히 봐달라고 무릎을 꿇어 간구합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사자의 지시대로 왕에게로 가서 그의 죽음을 전합니다. 아하시야는 죽고 여호람이 왕이 됩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13~14절).
아하시야왕은 세 번째로 오십부장과 군사들을 엘리야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세 번째로 엘리야를 찾아온 오십부장은 이전에 기세등등하게 찾아 온 오십부장들과는 달랐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여 완악하고 사악한 왕에 의해 보냄을 받았지만, 전임자들의 경우를 교훈 삼아 매우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로 엘리야를 찾아 온 것입니다.
그의 겸손한 태도는 본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온 군사들의 생명까지도 살리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는 선지자가 왕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고 있음과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내려오라’고 명령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간청을 했습니다.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해 자신의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아하시야 왕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서도 순종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내 자신이 교만한 믿음입니다.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 역시나 교만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잔꾀를 써서 현재의 상황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면 이 역시 교만한 믿음입니다. 엘리야 앞에 겸손함으로 자신을 낮추어 굴복할 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내 자신의 욕망과 정욕을 내려 놓고 겸손하게 그리고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당당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15~16절).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아하시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앞에 당당하게 나아갈 것을 지시하십니다. 엘리야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서 행동하였습니다. 두 번에 걸친 왕의 강압적인 명령에 의해 산을 내려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두려워 말로 함께 내려가라는 명령에 의해 엘리야는 산을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 선 엘리야는 당당하게 왕의 잘못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의지하려 한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는 왕이 병들어 올라간 침상에서 결코 내려오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세상의 최고의 권력자인 왕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왕의 군사들을 자기 앞에 무릎을 꿇도록 했고, 불순종한 왕의 죽음도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당당함입니다.
내 자신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될 때, 당당할 수 있습니다. 왕 앞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힘보다 하나님의 힘이 크십니다. 살리고 죽이는 것이 왕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라는 사실을 믿을 때 당당할 수 있습니다. 주변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사람답게 당당하게 행동하고, 말씀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매너를 갖추어 지혜롭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17~18절).
하나님은 분명 아하시야 왕에게 두 번에 걸쳐 불 심판을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오십부장의 경우를 통해 살 수 있는 방법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깨닫지 못했던 왕은 결국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죽자 그의 형제였던 여호람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아하시야 왕의 보여준 이 행동 즉, 이방 신에게 도움을 구하고, 뜻을 묻는 그의 행위는 열왕기서 전체 줄거리의 축소판과 다름이 없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죄에 대해 심판의 메시지를 주고 계심에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함 속에 계속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인내하시는 시간이 지나면 심판하시는 시간이 다가 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여러 상황과 사람들을 통해서 회개하고 회복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기회가 주어진 지금 회개하고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죄를 꾸짖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겸손한 믿음의 행동을 통해 생명을 얻는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왕하 1:13~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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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아하시야는 두 번이나 오십부장과 군사를 엘리야에게 보내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을 사릅니다.
세 번째 온 오십부장은 그들의 생명을 귀히 봐 달라고 간구합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사자 지시대로 왕에게 그의 죽음을 전합니다. 아하시야가 죽고 여호람이 왕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엘리야 체포를 위한 군사 파견(1:9~14)
교만하면 멸망당하지만 겸손하면 화를 면합니다. 아하시야 왕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듣고도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완악해집니다. 이는 그가 즉시 엘리야를 잡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엘리야를 잡으러 간 첫 번째와 두 번째 오십부장 및 군사 50명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인해 죽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파견된 오십부장은 엎드려 엘리야에게 자신과 군사들의 생명을 귀히 여겨 달라고 겸손히 요청합니다.
참된 겸손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입니다.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기억하며 늘 그분의 행하심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엘리야를 찾아가는 세 번째 오십부장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 적용 질문: 공동체 안에서 겸손하게 섬기려면 내게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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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시야의 죽음(1:15~18)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식언하지 않으십니다. 우상에게 묻고 하나님께 묻지 않아 죽을 것이라는
엘리야의 예언대로 아하시야 왕은 죽음을 맞습니다. 본문은 아하시야 왕이 엘리야의 심판 예언
그대로 죽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는 아하시야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심판임을 나타냅니다. 그가 왕위에 있었던 기간이 불과 2년도 되지 않으며 자녀가 없어
동생인 여호람이 그의 뒤를 이었다는 사실 또한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셨음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결코 헛되이 돌아가지 않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은 분명히 이루어집니다(사 55:11).
이것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확신하며 붙들 수 있는 이유입니다.
- 묵상 질문: 아버지 아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서도 아하시야가 그 전철을 그대로 밟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약속보다 상황이나 다른 것들이 더 크게 보일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의 반응일까요?
오늘의 기도
제게 주시는 말씀을 그저 지나치지 않고, 참되고 신실한 약속으로 받는 믿음을 주소서.
화와 복을 약속대로 이루시는 주님!
그 주님 앞에 더욱 겸손한 자가 되어 허락하신 모든 것을 감사로 받기 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지혜와 우리의 지식으로 갈 바를 찾을 수 없고,
여호와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말씀과 성령의 의지하여 저희의 삶을 비춰 보고,
예수 그리스도 함께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못 박고,
그의 부활과 함께 새롭게 다시 거듭난
담대한 그리스도의 걸어가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운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광선을 비춰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