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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11(화). 8:20 AM
거리 : 23.3 km
소요 시간 : 10h 26m 15s
이동 시간 : 8h 14m 52s
휴식 시간 : 2h 11m 23s
평균 속도 : 2.8 km/h
총 획득고도 : 882 m
최고점 : 891 m
난이도 : 보통
2020년 5월의 동서횡단(한강일주). 9월의 북한강 일주, 10월의 낙동감일주 도보여행을 끝으로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장기도보여행은 중단하게 되다.
그리고 코비드19가 심해지던 2021년은 경기도의 여러 도시와 성남시 각 동을 차례로 돌아보는 도시 한바퀴돌기를 하였다. 그러나 2021년 겨울부터 금년 2022년 3월까지는 이러저러한 일들이 생겨서 걷기를 중단하고 컴퓨터와 씨름을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체중이 10여kg이나 늘었다.
그 사이에 3차까지 접종을 하고 거리두기도 완화되어서 장기도보여행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불어난 체중을 감안해서 10일 이내에 완주할 수 있는 섬진강을 택하였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3월 23일 부터 2박 3일 섬진강 답사 드라이브를 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바뀌었다. 낙동강. 한강 다음 금강을 걷는 게 순서일 듯 싶어서였다. 결국 제11차 전국일주 도보여행 금강금강일주(2022년 5월 2일-18일)를 끝낸 후 그 길을 아내와 2박3일로 드라이브하였다.
다시 차일피일 하다가 10월 11일부터 21일까지 섬진강일주도보여행(전국일주 12차)을 하게 되었다. 뒤이어 영산강걷기를 할 생각이었으나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이제까지 미루고 있다.
섬진강
섬진강은 길이 223 km, 유역 면적 4,914㎢로 남한에서 네 번째로 큰 강이다. 낙동강과 한강이 1300리. 금강이 1000리인데 섬진강은 6백리 길이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과 장수군 장수읍의 경계인 팔공산(八公山, 1,151m) 옥녀봉 아래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 지리산 기슭을 흘러 광양에서 남해에 합류한다. 높은 산 기슭 깊은 골짜기를 흐느기 때문에 다른 강에 비해 폭과 유역면적이 좁고 수량이 적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큰 도시와 큰 공업단지가 조성되지 못해서인지 다른 강에 비하여 풍광과 수질이 좀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전남. 전북. 경남의 3도에 걸쳐 있어 가야문화와 백제문화, 신라와 백제의 경계, 임진과 정유왜란 때는 왜군의 침입 경로, 조선 말기 동학농민전쟁.독립운동, 6.25 전쟁 전 후의 여순반란사건과 빨지산 토벌 등등으로 많은 피가 흘려졌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모래가람·다사강(多沙江)·사천(沙川)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바닥에 바위와 돌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보였다.
고려말 1385년 왜구가 하구로 침입했을 때 수십만의 두꺼비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도망 갔다는 전설에 따라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일주를 끝내고 나니 그 이름이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아마도 강에게 물어보아도 그럴듯 싶다. 차라리 다사강(多沙江)이나 금수강산의 금수강(錦繡江), 아니면 가늘고 길면서도 돌이 많다는 특징을 살려서 섬석(纖石)강 부르는 것이 나을뻔 했다는 생각이 들다.
섬진강은 백운면과 마령면에 충적지(沖積地)를 발달시키고 성수면에서 구불구불하게 흘러 임실군 운암면에서 갈담저수지로 흘러든다. 순창군 적성면에서 오수천(獒樹川), 남원시 금지면과 전남 곡성군 곡성읍 경계 에서 요천(蓼川), 곡성군 오곡면 압록에서 보성강(寶城江)과 합류하여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서부터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경계를 이루며 광양시 광양만을 지나서 여수와 남해군 사이로 남해에 들어간다.
전체적으로 경사가 급하고 강폭이 좁고 바닥에 바위가 많아서 배가 운행할 수 있는 곳은 하류의 약 40km 뿐이다. 유역의 연평균 강우량은 1,408㎜인데67%가 6월과 9월의 4개월 동안에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인 근래에도 연속으로 큰 물난리가 났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
전국일주도보여행 제12차 섬진강일주 제1일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대미샘 -임신마을 -반송마을-석전마을 -동창리 -백운면 -운교리 원산마을 -원운교 -계남 -마령면 -강정리 강정교회
08:20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데미샘유원지 입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금강발원지인 전북 장수군 수분리 뜬봉샘 유원지와 비슷한 느낌이다
어제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직행버스로 임실 도착. 10분 후 백운면 행 막차에 승차하여 동창리 하차. 동창교회(고상진목사)에서 하룻밤 묵게 되다.
내외분이 서울 출장 중에도 전화와 문자로 친절 하게 안내해 주셔서 잘 도착하다. 미리 문을 열어 놓으셔서 평안한 하룻밤을 지내다.
새벽기도회 후 출발하려는 데 아침 식사를 권하시고 차로 데려 다 주시다. 오늘 마령면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하룻밤 더 묵기로 하다.
잠자리가 찾는 걱정만 하지 않을 수 있으면 그날은 걱정할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감사할 뿐이다.
08:23 데미샘까지 1.19km; 우편 산길과 좌편 공원길로 갈 수 있다. 아내와 답사할 때는 우편 산길로 올라갔기에 이번에 찻길로 올라가 보았다.
전북 산림 환경 연구소가 관리하는 데미샘 자연휴양림은 섬진강 발원 지 데미샘 동쪽의 천상데미(1,080m) 아래에 있다. 약 2㎢의 지역에 숲속의 집, 휴양관, 물놀이터, 숲 문화 마당 등의 시설과 야생화 단지와 자연폭포 등 볼거리도 갖춰져 있다. 휴양림이 있는 선각산은 81과 195속 301종의 식물이 보존된 곳으로 정상부의 철쭉 군락지와 고산습지부의 층층나무군락, 천상데미에서 오계치에 이르는 신갈나무 군락지 등이 있다. 와룡휴양림, 삿갓봉, 팔공산 등을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2km의 등산로도 조성되어 있다. 반려견 동반 전용 객실을 운영하여 불편을 최소화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08:26
08:28 우리 세대에게는 산골짝 개천에 도룡룡과 가재가 서식하는 것을 강조하는 게 이상하게 여겨진다.
08:36 이번에는 우편 산기슭길
08:39 철사줄로 잘 엮은 징검다리.
그러나 비가 조금 많이 오면 건너기 힘들어 보이다
08:40 데미샘까지 0.69km. 500m에 27분 걸렸다. 허참
체중 조절에 실패한 80대에게는 소숫점이 잘 못 찍힌 것으로 느껴진다. 6.9km로
천상데미; 하늘위로 가는 봉우리 혹은 하늘 위로 솟은 봉우리
08: 46 결코 심한 오르막이 아니다.
그런데 무릎은 무릎대로. 심장은 심장대로 힘들다고 난리다. 총체적 난국이다
08:57 숨 고르기를 하려고 허리를 굽혔을 때 눈에 들어온 이끼와 작은 꽃과 잎새들.
09:03 점점 더 거칠어지는 호흡. 지난 4월 아내와 답사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6개월동안 6 kg가 늘었기 때문 일 것이다. 아마 이번에도 4-5 kg은 줄일 것이다
09: 08 남은 170미터도 1.7km 처럼 느껴졌다
09:13 마침내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마을 상추막이골 데미샘. 33분만에 690m를 올랐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 섬진강의 발원지.
전북. 전남. 경남 3개도 10개 시·군에 걸쳐 230여㎞를 흐르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긴 강인 섬진강의 발원지이다.
금강의 발원지(장수군 수분리)와 이웃하여 전체 적으로 역 태극 형태를 취하고 있다.
데미샘이 있는 봉우리를 '천상 데미‘라고 부르는 데, 데미’는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다.
그러므로 찬상데미는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 란 뜻이다.
섬진강의 발원지인 샘이 천상데미에 있다 하여 '데미샘'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09: 14. 마침내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 입구부터 1.7km 인데 1시간 걸렸다
발원지의 물인데 마실 수가 없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
마실 수 있게 조성하는 게 어렵지 않을 듯 싶은데. 무슨 사연이 있나?
천상데미로 올라가는 데크(3월 답사 때 사진)
09:17 이제부터 흐르는 물 따라 내려가는 길.
발원지를 찾아 올라가는 길보다는 발원지에서 물을 따라 흐르듯 내려가는 길이 좋다.
이 또한 나이 탓이리라.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의 순리를 거스리는 모험보다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게 쉽고 평안한 길을 택하게 된다.
09:17 자주 만나보고 통성명을 했는데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미안스럽다
09:35 힘이 들어서 중간에 내려 놓았던 배낭을 다시 메다
2017년 6월 서울 - 부산 도보여행 당시에는 숫자를 넣지 않았다.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거리 여행 만 12차가 되었다. 13차로 된것은 12차 영산강 일주를 하고
이어서 하려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일은 모르는 거다.
09:39 물길따라서 내려가는 발길은 가볍고 빠르게 된다.
09;45
09;52 정비된 물길
09:54 수영장
09:56 두꺼비와 박쥐; 섬진강에 얽힌 두꺼비의 전설을 보여 주는 작품(?)
부근 휴양시설 수향채(4월 답사 때 사진)
09;57 데미샘=천상샘 왕복 약 3.4km인데 왕복 1시간 40분 걸렸다. 허참이다
10: 16 다시 데미샘 자연휴양림에서 출발
10; 31 뒤돌아 본 데미샘 방향. 지도로 보면 좌편이 선각산 삿갓봉, 우편이 천상데미일 듯
10;41 신암리(莘岩里) '신나무'와 바위가 많은 마을이란 뜻일까
산골 깊숙한 마을은 대부분 외침이나 내란 혹은 핍박이나 약탈을 피해 온 사람 들이 살기 위해 찾아 들면서 생긴 듯하다.
10;45 신암마을
10'52 임신마을: 임하(林下)마을+원신암(莘岩)
10:55 신암교 신암저수지;
팔공산 북쪽의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저장되었다가 데미샘에서 내려온 물과 합류한다.
11: 04. 흰 개와 흰 닭들이 어울려 지내는 모습. 닭을 놀라게 했다고 뭐라고 하는 듯하다. 이렇게 개와 닭도 사이 좋게 지내는데
요즈음에는 과거에 상극관계. 앙숙관계, 적대관계 등으로 표현 하던 동물의 관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 아마도 배가 불러서 그런 듯 싶다.
고양이와 쥐를 봐도 그렇다. 유독 인간만 더욱 으르렁대고 물고 뜯으며 싸우는 것을 보면 인간이 태어날 부터 부패한 존재라는 말이 실감 된다.
11:18 데미샘힐링빌리지
11:29 사과 농장과 노란 벼가 조화롭다
11:40 죽장에 삿갓 쓰고 지팡이만 짚으면 김 삿갓 길을 걷는 것이다.
시인이 되지 못한 것이 안타갚다. 시 한수를 남 길 수 있다면 좋으련만.
11:56 신암리 대전(大田)마을;
이 골짜기의 좁은 논과 밭을 대전으로 여겼던 그 사람들은 이 정도로의 땅으로도 만족했으리라.
11:58 섬진강 상류는 폭은 좁으나 기울기가 급한 편이고 바위들이 있어 물 흘러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12:15 반송리; 무르익은 벼의 색감이 화려하게 느껴지다
12: 26 강(?) 건너 두원마을
12:32 백운면 반송리(盤松里) 원반 마을 입구
밀양 박씨·전주 최씨 등에 의하여 형성되었고, 500~600년 수령의 반송이 있어서 원반마을 이라 이름 한다.
반송(盤松);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나무의 생김새가 쟁반(盤)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2:33 최양선생 유허비(遺墟碑). 전국방방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유허비
유허비: 한글은 물론 한자로 봐도 그 뜻을 알기 어렵다. 그저 유적지라고 하는 게 나을 듯하다.
12:37 마을 주민을 위해 만들었다는 쉼터.
고목이 줄지어 있는 풍경이 그윽하다. 시간만 있으면 한잠 잤으면 제격이겠다.
12:53 반송 두원(斗元)교에서 뒤돌아 본 풍경;
두원은 고려말에서 조선 시대에 청자·분청사기·백자를 생산하던 자기 생산 가마터가 있었다고 한다.
물길을 넓히고 물가에 나무를 심어 조성한 유원지; 사람들이 많이 찾을 듯하다
12;59 반송리 석정려: 박리풍.박성휴 부자의 효성과 제사를 잘 드린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연이어 돌아가신 삼대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소모적인 것인지를 알면 착잡한 느낌이 든다.
1년 중 소복을 벗을 날이 얼마 되지 않아서 결국 백의민족이 되었던 것이라는 말이 생각나다
정려(旌閭) ; 깃발 정+마을 려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워 깃발을 달아 표창하던 풍습.
정문·정려를 세운 것은 신라 때부터이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와서는 전국적으로 상당수 세워졌다.
신라시대의 효녀지은(孝女知恩)과 빈녀양모(貧女養母)
고려시대는 효자, 조부모 잘 섬기는 손자, 아내가 죽은 뒤 장가들지 않고 혼자 사는 의로운 남편, 수절하는 부인, 정조를 굳게 지키는 여자 등이 해당
조선왕조는 유교적 풍속 교화를 위하여 충신·효자·순손(順孫)·의부(義夫)·절부(節婦)를 선정 문려(門閭)를 세워주고 요역 면제, 상직(賞職) 또는 상물(賞物)을 주었다. 양반가문의 명예였으며 공사천(公私賤)인은 면천하여 신분 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등 실제 이익을 주어 후손들이 본받도록 하였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의 전쟁 중에는 효자·충신·열녀의 수는 몇 배 늘려 민심을 격려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예나 이제나 대상 선정의 목적, 기준 , 선정 방법 등에 문제도 많았다.
특히 천민과 일반 백성의 희생과 충성, 부녀자의 희생을 장려(강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준 것도 적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13:07 백운면 동창리 석전마을
동창리(東倉里) ; 마을이 마령현 동쪽에 위치해 있고 사창(社倉)이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창촌(倉村)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3:10 석전 마을; 원래는 돌이 많은 곳인데 돌을 골라내고 밭으로 만들었으리라.
13:21 동신마을
14:40 어제 밤 잠자리를 제공한 동창교회; 숙소에 들어거 잠시 쉬어가다
1977년 백운교회에서 이 마을에 사는 교인들을 위하여 설립한 교회. 예배당은 오히려 백운교회보다 더 크다.
새벽기도회에도 1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열성이 있는 교회다
수령 818년
14: 43. 교회 맞은 편 보호수 느티나무;
수령 818년이란다. 보호수로 지정된 것이 40년전이니 금년 858세겠다
14:47 백운면으로 가는 임진로
14:53 멀리 북쪽으로 마이산(馬耳山)이 보이다.
순간적으로 부모님 생각이 난다. 특히 아버님과 함께 둘러보던 추억이.
15: 01 백운중학교(白雲中學校); 1973년 개교. 2021년 제47회 졸업(누계 3.730명)
2022년 신입생 4명 현재 3학급 남3 여5 계 8명 교직원 12명 .
5년 후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설마 개나 고양이 학교로 바뀌지는 않겠지.
15: 04 백운면 백암리; 서기 1905년 8월16일 설립된 백운교회
1905년 8월 17일 메실 교회 설립. 1910년 5월 교인이 총 40명이 되었다.
1912년 3월 화산 교회로 개명, 1932년 9월 평장리로 이전하여 평장교회로 개명하다.
1940년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와 탄압으로 집회를 중지하였다.
1946년 부귀면 세동 교회 진경철 집사가 화산리로 이사 와서 1947년 화산 마을에 예배당을 건축하여 예배하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집회가 중단되고 조흥식 전도사가 순교하였다. 1973년 현 위치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백운 교회로 개칭하였다.
1974년 5월 평장 교회를 분립시키고, 1977년 5월에 동창 교회를 분립시켰다.
일본이 강제로 대한제국(조선)과 을사보호조약(늑약)을 맺은 1905년에 시작한 교회!!!
15:23 흰구름마을 백운면
15:23 거북바위?
15:43 원산마을. 좌편 물레방앗간 가는 길. 우편 정미소 가는 길.
정미소는 아직도 있다. 물레방앗간도 하나 남았다는 데 지나치기로 하다
둥근 바위 형상의 작은 동산 원산(元山)이 있어서 원산 마을인 듯
15:54 백운면 중앙의 운교리 원은교(雲橋里元雲橋)마을.
이 지역에도 인삼밭이 종종 눈이 띈다
16:09 원운교 마을 길. 고목의 기이한 형상
16: 18 백마교에서 본섬진강; 원 운교마을에서 운교리로 건너가는 다리
운교리(雲橋里): 마을 가운데 있는 산의 형국이 운중반룡(雲中盤龍)의 형상인데 그 앞에 다리가 있어 운교리라 하였다고 한다.
16: 20 백운면 운교리; 백마교 건너서 우편 진안고원길
16:25 건너편 시루봉 기슭 백운천의 팔각정 만취정(晩趣亭); 흔히 볼 수 있는 만취(晩翠)가 아니다.
조선 순조 시절 건너편 방화 마을 이사 온 진양 하씨 5형제가 친목계(친목회)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오형제와 30여명의 계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런 친목계는 전국방방곡에 있었던 것 같다
만취(晩翠):1. 늦겨울에도 변하지 아니하는 푸름. 2. 늙어도 지조를 바꾸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만취(晩趣); 늙어서(도) 무언가를 얻기를 바라는(위하여) 마음으로 모였던 정자.
그들이 늙어서(도)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같은 시절 백성들이 늙으막에(늦게라도) 얻기를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16: 27 운교리 삼각주 퇴적층 지질의 바위 위 누정에서 그들이 보았던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노후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풍경을 보려고 했다면 그 풍경은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백운천과 그 건너편 자기들이 사는 방화마을과 그 넘어 내동산(887.8m)이었을 것 같다
16: 30 마령면 거문들 운계로 농로; 덕현리 방화마을 진안고원길. 금강도보 여행 당시에 도 걸었던 길이다. 머리를 숙인 누런 가을 벼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마령면(馬靈面); 고려 때부터 마령현이라고 불렸다. 진안의 상징 마이(馬耳)의 마자와 ‘영봉(靈峯)’의 영자를 합하여 부르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 시대 백제에서는 마돌현(馬突縣), 마진(馬珍) 또는 마등량(馬等良)이라 하였고,
통일 신라 시대(757년 경덕왕 16)에 이름을 마령(馬靈)으로 고쳐서 임실군에 붙였다가, 고려 초에 전주로 이속되다.
조선 시대에는 1413년(태종 13)에 진안현으로 편입시켰다.
16:42 운계로 방화마을; 가을 만취정에서 이러한 풍경을 취했을 것이다
16: 50 마령면 방화(芳花)마을 마령소망교회
방화산촌(芳花山村) 마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방화마을; 2007년 10월에 산촌 생태 체험 마을로 선정되었다.
2008년 부터 조성을 시작하여 2009년에 완료하였다. 휴양관·약초 재배 단지·약초 체험관·펜션·황토방 등의 시설이 갖춰졌으며 등산로도 조성되었다.
16:56 계남마을 농로
16:58 마이산 기슭 원평지마을 방향
17:01 계서리 계남(溪西里溪南)마을 정미소 극장
공동체박물관 계남 정미소(溪南精米所);사진작가 김지연이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던 정미소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보존 차원에서 ‘정미소’를 매입하여 시설은 그대로 둔 채 문화 체험 공간, 전시 등을 통해 지역 주민을 위한, 주민 스스로가 참여하는 생활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도록 하였다. 2006년 5월 개관. 2008년에 문화 예술 위원회 기금, 2010년에 문화 예술 위원회 기금 및 한국 연구 재단 기금에 선정되었다.
2013년부터 휴관 중이라고 한다. 전국의 지방자치 단체나 문화단체들이 이런 곳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주는 교훈을 심각하게 받아 들였으면 좋을텐데
17:16 계남마을; 제주 양씨·천안 전씨 등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내동산 계곡물이 남쪽으로 흐른다는 이유로 계남(溪南)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7: 21 계남교에서 본 섬진강 하류 방향
17:31 섬진강변길 운계로; 이 시간대에는 날벌레가 많아서 걷기가 힘들 정도다
17:40 석교(石橋) 건너편 오동마을 일몰
17: 41 마령면 넘어 보이는 마이산이 신기 신비하다
17:43 마령면 석교마을 가는 길
17:44 석교마을과 마이산
17: 51 마령면 마령교회와 마령면 소재지 방향
어쩌다 보니 마령교회를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역사도 깊고 지역사회를 봉사활동도 많이 하는 것 같았는데.
17:53 마령교에서 본 마령면
17:58. 마령교에서 본 섬진강 하류 방향
18:05 마령평야 생활박물관. 시간이 넘어서인지 문이 닫혔다. 면 단위로 생활박물관이 있다는 게 특이하다
18:17 백주년 기념식을 했다는 마령초등학교
1922년 4월 4년제 공립학교로 개교. 21년 제99회 졸업(합계 6.290명 졸업)
문제는 이러한 학교도 재학생이 6학급에 남 18 여 9 계 27명이고 교직원이 20명이라는 것이다.
18: 31 갑자기 어두워지다. 식사할 곳을 찾고 있는데 동창 교회 고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오다.
인근의 강정리교회에 숙소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방향으로 줌인하여 보니 종탑이 보이다
18:33 원강정 마을회관
18:39 어둠이 짙게 내려 않아서 길이 보이지 않았다
18:41 진안 강정리 현대가옥 방향으로 십자가가 길을 안내해 주다
18: 46 마령면 강정리(江亭里) 원강정 길 강정교회:
연락을 받은 사모님이 종탑과 정문의 불을 환하게 켜셔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다.
사모님과 초등 5학년 막내 딸이 자모실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요깃거리도 주신다.
회의를 마치고 9시가 넘어 도착하신 정규인목사님이 전기패널 사용법을 가르쳐 주며 뜨듯하게 자라고 하신다.
웬 일인가 웬 은혠가, 오직 은혜에 오직 감사하며 축복의 기도로 보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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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을길 걷기가 얼마나 아름다우셨을까요~~!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면서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는 식탁 만찬이 떠오르네요~~
계속 이어질 후기 … 기대합니다
여디야님. 반갑고 고맙습니다.내가 뒤따를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