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크리스마스...
어제 어느 분께서 혼자 고민 고민하다가 저에게 작은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표님께서 워낙 바쁘셔서 그 동안 차마 부탁을 하지 못했어요.”
‘조금 일찍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하다가 한편으로는 제가 얼마나 바쁘다는 표시를 하고 살았으면 그분이 그런 생각을 했을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나, 한가해요!”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만 사람들은 저의 그 말도 믿는 눈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덴마크라는 나라는 세계에서 국민 행복도가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덴마크처럼 국민 행복도가 높은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도자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높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후진국인 나라의 특징은 지도자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도 또한 낮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 큰 산 하나를 넘었다고 약간은 안도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산 넘어 산처럼 보입니다.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던 박근혜와 최순실은 자신들의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강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때 맞춰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박근혜를 살려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들을 볼 때마다 저는 좀비 영화에서 떼 지어 몰려다니는 좀비들의 잔상이 떠오릅니다. 생각도 없고, 맹목적이면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
세월호 때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생떼 같은 아이들 죽음에 온 국민이 분개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김없이 좀비들이 나타나 그만하자는 악마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단식 농성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치킨과 족발을 시켜먹는 파렴치함도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람이기를 포기한 모습 같았습니다.
그렇게 세월호의 참사도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어영부영 끝이 나나 싶었습니다. 그럴 즈음 어린 아이의 청아한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최순실 농단이 밝혀진 후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어린 아이의 노래 소리를 듣고 국민은 촛불을 들고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박근혜의 탄핵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번에 국민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든 까닭은 단순히 박근혜 한 사람을 끌어내리려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촛불은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쌓인 적폐를 해소하고 낡은 체제를 허물어뜨리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정국을 보면 국민들은 그저 기가 막힙니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 등 산적한 과제가 너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은 어느 것 하나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놓고 이 인간들은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제 저녁에 아는 형님 한 분과 술 한 잔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께서 사육신 가운데 한 분인 성삼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성삼문이 하도 말을 안 들으니 수양대군은 성삼문의 아버지를 잡아다 놓고 아들 앞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로 온몸을 지졌습니다.
눈앞에서 아버지의 살이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도 성삼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양대군을 왕이라 부르지 않고 대감이라 불렀습니다. 결국 성삼문의 아버지는 온몸이 검붉게 익어서 죽었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 수양대군은 이번에는 성삼문의 어린 아들을 데려와 자루 속에 처넣고 몽둥이로 마구 두들겨서 온몸을 짓이겨 죽였습니다. 그제야 성삼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수양대군이 그걸 보고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 아버지는 인두로 지져도 가만히 있더니 지 새끼를 죽이니까 눈물을 흘리는구나!”
그러자 성삼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자기가 왜 죽는지는 알고 죽지만 저 어린놈은 자기가 왜 죽는지 모른 채로 죽지 않았습니까.”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그 분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무리 그래도, 아이를 산 채로 짓이겨 죽이던 그 시절보다는 나아졌을 거야. 그걸 믿고 살아야 하겠지?”
그 말에 맞장구를 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연 예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요? 나아졌다면 과연 누구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을까요?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 300여명의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면서 감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나아졌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