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신비, 교회
에베소서 6:19-24 / 이규현목사
작년 2월 첫 주부터 에베소서를 살펴보았습니다. 1~3장까지는 교리, 4~6장까지는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에베소서는 한 단어, 한 구절, 한 문단이 깊고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드라마를 잘 드러냅니다. 에베소서의 출발은 하늘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복을 회복하는 일이 구원입니다. 그 복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교회는 신령한 복을 받은 선택받은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계획을 세상에 알리시려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성도는 하늘의 감추어진 비밀을 안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정함을 받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백성으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일들을 알게 된 백성들이 할 일은 찬양입니다. 신앙의 출발점은 찬양입니다. 찬양은 신자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사람들에게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찬양은 세상의 노래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신약의 공동체는 끝없이 예배합니다. 예배로 시작하여 예배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압도할 때 세상의 헛된 영광에 무릎 꿇지 않는 신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자가 참된 예배자로만 산다면 이 세상에 흔들릴 것이 없습니다. 찬양이 약해지면 세상에 떠밀려 다닐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우리는 땅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늘을 계속 바라보아야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눈을 뜬 자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목회 기도에서 잘 나타납니다.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7-19).
신앙은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전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모으셔서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23). 교회는 예수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보다 더 강조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결된 유기체입니다.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세상 조직체들의 목적은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이 주체가 아닙니다. 철저히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적인 힘을 모으는 곳이 아닙니다. 세력화하고 힘으로 목적을 이루어 가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힘을 동원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신 적이 없습니다. 힘을 통한 세력화를 꿈꾸셨다면 고작 12명의 제자만 뽑으셨을 리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힘을 완전히 해체한 것을 말합니다. 세상은 힘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힘을 내려놓는 방식을 가르치셨습니다. 기독교가 힘을 동원해 십자군 전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치명적인 역사의 실패, 기독교의 오류로 평가를 받습니다. 힘으로 하면 힘으로 망하게 됩니다. 십자가로만 복음이 전해집니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면 우리는 언제나 십자가의 원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가 책임지십니다. 세상의 어느 조직이나 기관, 심지어 국가라도 2천 년의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한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신비로운 것은 교회는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력이 강력하게 역사하는 유기체입니다. 기계적으로 연합된 곳이 아니라 유기적인 방식으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구원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예배와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느냐를 확인해야 합니다. 강한 신자, 강한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을 때 일어납니다.
2장은 인간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에서 구원받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녔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처참한 상태였습니다.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인 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기회도 없습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태에 있던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우리 안에는 어떤 소망도 찾을 수 없습니다.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걸작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재창조가 되었습니다. 죄의 도구였던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전에는 무가치하고 철저히 망가진 상태로 살았던 우리를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위하여 걸작품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비밀을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바울은 그 복음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자임을 선포합니다. 그것이 3장의 내용입니다.
4장은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우리를 불러 모아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영적인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보다 더 강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우리의 죄성은 하나 됨을 깨뜨리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 됨을 파괴하고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세상을 보면 늘 긴장과 대립을 하며 살아갑니다. 혼란과 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신앙공동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 되게 하신 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누가 더 잘났고,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됨을 이루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를 바라볼 때 용납과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경쟁하고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잘 이룰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성숙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로 세워져 가는 일에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왜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합니까?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목표가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서신서에 지속적으로 하나 됨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다양한 지체를 가졌으나 몸은 하나 됨을 요구합니다. 하나 됨을 거부하면 몸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홀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홀로는 훈련이 안 됩니다. 불편하지만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갈등이 일어나지만 조금씩 깎이면서 부드러워지고 관계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 됨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공동체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친밀한 관계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십니다. 교회는 갈등과 반목, 분열, 혼란 가운데 있는 세상에서 전혀 다른 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자라남”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성장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납니다. 직분을 주신 목적도 자라가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도 독립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1-15).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과 자라가는 것이 지상 교회의 목표입니다.
계속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고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있으면 신앙의 성장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1-22).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륜이 많아졌다는 것은 내가 이전보다 똑똑해졌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더 둥글둥글해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맞추어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로 세월을 보내지 말고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변화와 성장은 계속 진행형입니다.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는 여전히 결점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라고 했습니다.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이전의 부끄러운 모습들은 하나둘 벗어버려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분노를 멈추고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옛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져 가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이루어 가는 핵심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성령충만은 우리의 모든 관계를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려면 성령충만해야 가능합니다. 교회 안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 힘으로 사랑하기 힘듭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과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대는 것은 성령충만해야 가능합니다. 바울은 5장부터 가족 관계를 말합니다. 부부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 안에서도 성령충만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영입니다. 분열과 다툼과 경쟁이 심각한 관계 안에 성령이 역사하셔서 하나 되게 하십니다.
부부가 하나 됨을 이루어 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대로라면 매일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정 안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한 몸을 이루어가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비밀이 있습니다. 부부가 한 몸을 이룰 때, 그 안에서 주어지는 신비가 있습니다. 가정을 기획하신 의도가 분명히 있습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곳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쉽게 깨어져 가는 현상은 매우 위험한 징조입니다. 단순히 가정이 무너졌다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이 온전히 세워져 가는 일에는 사랑과 복종, 권위와 질서의 문제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정이 깨어진다는 것은 소중한 원리들이 더 이상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기본적인 원리들을 가정 안에서 배우고 경험해야 합니다.
성경은 풍성한 결혼 생활을 강조합니다.
신앙공동체는 핵가족화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부부 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국은 신앙이 관계를 통하여 나타나야 합니다. 관계의 핵심은 부부의 관계입니다. 사랑과 복종은 관계를 맺어가는 데 요구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것을 경험하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 안에서 관계를 맺는 훈련을 하고, 성숙을 경험해 가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일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가는 일에 필요한 훈련의 과정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불완전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용량을 넓혀가라고 그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모여서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용서, 인내와 사랑입니다. 내가 점점 자라가고 깊어져 가는 것이 답입니다. 이전보다 내 마음이 더 평안을 누리고 있다면 상대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자랐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관계 회복에 있습니다. 관계를 훈련하는 곳이 가정입니다. 얽히고설키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성품을 빚어가시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십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갈수록 극단주의적인 문화 현상들이 득세합니다.
갈수록 세상은 불안감이 더 높아집니다. 세상은 지배하려고 하고 억압하려고 하고 복종시키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지배와 억압이 아닙니다. 복음은 상호 복종하게 합니다. 복음은 통일하게 하려는 능력이 있습니다. 진짜 복음이 들어가면 모든 경계선을 지웁니다. 통일은 에베소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6). 이 모든 일이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없습니다. 복음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면 우리가 할 일이 보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영적 전쟁을 강조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복음 증거입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6:19). 교회의 존재 이유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받은 복을 우리에게서 멈추면 안 됩니다. 하늘의 복이 땅에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8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3:8-9). 교회가 할 일은 언제나 영적인 일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왜 죽으셨는가를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으면 안 됩니다. 예수의 피 흘리심은 오직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복음이 약해졌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희석될수록 교회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고 영혼을 살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기 때문에 세상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세상에 빠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의도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은 정치로 될 일이 아닙니다. 사회운동으로 세상이 변화될 수 없습니다. 초일류 기업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그 사람도,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귀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일이 우리를 통하여 확대되어야 합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할 일이 분명해집니다. 바울은 지금 갇힌 자로, 복음을 전하다가 매인 바 되었습니다. 감옥 안에 있지만 여전히 그를 지키고 있는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 20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악한 존재와의 싸움이 마지막까지 펼쳐집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사역을 끝까지 방해합니다.
마귀는 교회를 파괴하려 하고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붙들고 주님이 주신 지상의 사명을 다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지상의 교회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상의 교회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지만 교회는 여전히 신비로운 곳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비밀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고통하고 신음하는 세상에 진정한 소망이 있습니까? 아무리 보아도 없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세상에 알려야 할 사명을 받은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세상에 유일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구원에 대한 감격으로 날마다 찬송하고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비밀을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온 세상에 알려서 온 땅이 복음으로 통일되는 일에 헌신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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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