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9 금
해돋이 마중이 점점 우리 여자들에게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 되었다. 눈만 비비고 나와 조금 낮은 기온에 앞섶을 여미며 주고받는 인사가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이었다. 해가 점에서 시작하여 양쪽 잘록한 포도주잔이 되었다. 좌우 구름이 형성한 고무풍선 효과였다. 본체와 상관없이 주변 환경에 따라 엉뚱한 물체가 되다니. 뜻밖의 발견이었다. 나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겠지. 어제 기원이 구체화되었다. 우리 가족 무탈을 아니 그냥 오늘 골프, 실수가 최소 되게 해주소서. 매일 새벽에 나와 문안드리겠나이다.
반대편 분홍빛 하늘에 하얗고 둥근 달이 예쁘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해와 달을 동시에 보다니! 정말 아름답고 신기한 자연현상이다.
오늘 골프장은 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카보레알(Cabo Real Golf Club)이었다. 이 회장부부와 한 팀이 되었다. 지난번 잘 맞던 퍼터가 안 됐고 아이언은 매번 빗나갔다. 골프가 잘 되게 하소서 기도를 태양신은 들어주지 않았다.
점심이 포함되지 않은 골프여서 가져간 바나나, 사과, 달걀 1개, 에너지바 3개로 점심을 대신했다. 워낙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인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공 낙하지점을 정확히 알고자 남편이 칠 때는 뒤에서 공의 궤도를 따라가려고 애썼다. 마지막 홀에서 둘 다 공의 비상을 놓쳐 찾느라 혼비백산했다. 게다가 카트 구멍에 꽂아둔 공이 없어져 마치 남편 탓인 양 기분이 무척 상했다. 나중에 보니 카트가 덜렁거릴 때 꽉 박혀 있지 않던 공이 튕겨나갔던 것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 격이다. 이 증세가 날로 증가해서 탈이다. 남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내 감의 타당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겠다.
2022-12-10 토
수평선 위로 번지는 붉은 기운이 한 줄기의 짙은 구름을 뚫지 못하더니 방파제가 길게 하늘에 떠 있는 형상이 되었다. 그 덕에 옆 공간에서 오르기 시작한 태양은 바다에 떠있는 반사체가 되었다. 재미난 착시 연상 작용이었다. 하늘이 거꾸로 바다가 된 수사학(rhetoric) 현상을 체험한 것이다. 태양이 어제보다 더 선명하고 동그랗게 보였고 달도 어제보다 더 밝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예보가 이런 것이구나.
오늘 골프장(Puerto Los Cabos Golf Club)의 남녀 화장실 구분 표시가 무척 농담스러웠다. “남성은 왼쪽으로 왜냐하면 여성이 항상 옳으니까(Men to the left because Woman are always right!)” 골프 치는 남자는 적어도 말로라도 여자를 존중한다는 의미일 것이나 오죽 평소에 낮잡아 보면 그렇게 빈정대는 생각이 들었을까. 허긴 여자가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았던 시대를 지나 많이 동등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사실이긴 하다.
오늘도 동반자는 이 회장 부부였다. 해변가 어느 콘도에서 리듬을 타고 싶은 충동이 절로 이는 생음악이 울려 퍼졌다. 무슨 파티이기에 비키니 차림 여자들이 저리 많을까 별세계를 엿본 사실이 대견스러웠다. 어제처럼 마지막 홀에서 공을 잃었다. 금방 기분이 잡쳐버렸다. 즐기는 골프는 언제나 이루어질까.
이 사장이 부인의 69세 생일을 축하하는 저녁식사를 냈다. 식당(Flora Farmes)은 오아시스가 연상되게 다양한 종류의 야자수가 높이 솟아 있고 공예품전시장, 옷가게, 스파, 바, 커피점을 갖춘 넓은 공간이었다. 말하자면 사막 속 상업단지였던 것이다. 사막이 마케팅현장이 될 수 있다니.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다. 허긴 이곳 전체가 역발상 현장이다.
예약 시각을 기다리면서 꽃밭 및 채소밭을 둘러보고 아이스크림과 야생무궁화 마가리타를 마셨다. 그리고 45분간 구어서 나온 돈육 티본스테이크를 맛보았다. 엄청 맛있었다. 종업원이 작은 조각 케이크에 초 1를 꽂아 주며 주위 전등을 꺼주니 완전 축하분위기가 되었다. 모두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머나먼 낯선 이국땅에서 짧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들이 보내는 진정한 마음 선물을 받다니. 문뜩 삶의 본질이 터득되는 듯했다.
2022-12-11 일
오늘 아침 해는 군인 철모가 연상됐다. 약간 볼록한 달은 이틀 사이 팍 준 느낌이었다..
쉬는 날이라 4륜 오토바이를 타보기로 했다. 우리 나이에 재미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코앞에 놓인 기회를 거절할 수 없었다. 거금 $750를 내고 2인승 ATV(all-terrain vehicle)를 1시간 탔다. 사방 삭막한 언덕 사이 모래 자갈길을 흙먼지 날리며 우둘두둘 울퉁불퉁 좌우로 쏠리며 에스 자를 그리며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엄청난 엔진 소음 속을 달린 후, 청록색 파도가 우렁찬 해변 길에서 바람을 맞으며 직선으로 달릴 때가 신나고 멋있었다. 충분히 광고 주인공으로 착각될 재미가 있었지만 가성비 생각에 유감이 더 컸던 역시 젊은이들의 오락이었다. 울렁거리는 경치를 즐기도록 강요된 조수보다는 다양한 운전을 시험해보는 운전수가 더 좋다는 결론이다.
집에 돌아와 늦은 점심으로 라면과 왕새우구이 4대를 먹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거쳐 마른 옷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처음으로 여자들만의 수다다운 수다를 파시오에서 펼쳤다. 마음이 통하는 이런저런 사소한 일상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
소화도 시킬 겸 모처럼 동네를 산책했다. 시장기가 전혀 없어 생략하려던 저녁을 오프로 여사 덕에 냉이 된장국, 김과 함께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었다.
첫댓글 달이 그렇지 ? 아주 신기해.
보름달은 새벽에 서쪽으로 지고 초승달은 해가 진후에 서쪽에 잠간보여.
내가 좋아하는 "별"이란 노래가 있는데 가사중에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함께 나오더라"
별함께 나온것이 아니고 하루종일 떠있었는데 햇빛에 가려 안보이다가 해진후에야 서쪽에 잠깐보이고 지는거.
이노래 부르면서 달뜨는 시간을 한참 찾아보았어 ㅋㅋ
ㅎㅎ 말이 재미있어. 옳은 것도 right 오른 쪽도 right
우리말도 그래 바른(쪽) 바른(생각, 사람)
오늘도 3일이 지나네. 다 지나갈까바 조금씩 지나기를 바라는데 잉 ~
첫날 공 몇개 줍더니 자꾸 잃어 버려..
안타깝게스리…
꽃들이 많이 예쁘게 피었네
매일 골프 !!! 저렇게 해 먹으면 돈도 적게 들고 잘먹고. 나한테 어디로 여행가면 좋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 그럼 난 얼른 로스 카보스. 11 일 지났나? ㅎ ㅎ
젊은이들의 오락이라고 생각하는
2인승 ATV 를 즐긴 날일세.
광고 주인공으로의 착각까지 맛보며...
와우 !!! 멋져유.
모래먼지바람(?) 속에
경위孃 스카프도 춤추듯 날리고 있을 듯.^^
골프가 어렵긴 어렵지?
태양신도 경위양 기도를 흘려버리셨나? 아니면 더 분발시킬려고 못들은 척 하셨나? ㅎ ㅎ
경위 사진 실력은 볼때마다 감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