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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악양면 평사리 고소성교차로에서; 건너편은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사리(高士里) 죽천마을
08:35 평사리 강 건너 전남 광양시 죽천마을; 가물 때면 걸어서 오갈 수 있겠다
영남아. 호동아 소리치면 들릴 것 같다
서쪽 순천으로는 백운산, 남쪽 광양으로는 쫓비산이 가로막아 실제적 으로 강 건너 이쪽 하동군이 생활권일 듯하다
08:43 악양면 평사리 외둔마을 입구 교차로; 평사리 '토지드라마셋트장'과 악양면으로 가는 1004번 '악양서로'
토지드라마 셋트장은 10여번 방문하였고 아내와 섬진강 답사 때도 걸어봤으므로 생략하고 '부부소나무' 방향 농로를 가로질러 보기로 하다
08:50 평사리 무딤들 농로길 입구에서 바라본 고소성 군립 공원(좌)과 멀리 형제봉(1.116.2m)
평사리(平沙里): 중국 샤오샹팔경(瀟湘八景)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에 따온 이름이다.
섬진강 포구로서 수률 교통의 요충지이며, 마을 앞으로 넓은 악양들이 있어 일찍이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제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하면서 둔촌동(屯村洞), 평사동(平沙洞), 검두동(儉頭洞) 각 일부가 통합되어 악양면 평사리가 되었다
08:52 평사리 최참판댁 방향; 동북방향으로는 지리산 지맥이 찬바람을 막아주고
남서로는 악양천과 섬진강 물이 있어서 농사가 더 잘되는 게 아닐까 싶다.
08;58 평사리 무딤이들 농로; 부부소나무
섬진강 오백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인 평사리들(무딤이들)은 만석지기 83만여 평에 달한다.
09:02 평사리 무딤들 중앙의 두 그루 소나무; 일명 부부송
최참판댁에서 평사리를 내려다 보면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그 소나무
부부소나무; 수령이 200년이라는 설도 있다.
토지의 '서희와 길상' 혹은 '용이와 월선' 부부 소나무' 혹은 그저 '사랑송' 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09:13 자전거를 타고 작업하러 가는 누이에게 부탁하여 남긴 인증삿
사진 찍기 좋아하는 누이다. 갖가지 포즈를 주문하며 10여장을 찍는다
09:16 줌인; 좌편 긴 건물이 박경리문학관, 우편이 최참판댁 일 듯
3월 아내와 답사할 당시 사진, 박경리문학관
아내와 답사할 때 사진; 최참판댁
답사 당시 최참판 댁 마당
09;18 내 눈에는 풍년인데. 농사에 문외한이라
09:23 색감으로만 보면 풍년인 듯하다
09:23 줌인; 하동 신선봉(615.3)에서 형제봉(1.116.2)으로 가는 '신선대 구름다리'인가 보다.
대단하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갈 수 없는 길이 된듯하다
09:29 마을 안쪽 악양면 소재지 방향
악양면(岳陽面): 삼한시대 변한(弁韓) 낙노국(樂奴國), 삼국 시대 소다사현(小多沙縣).
우리말 ‘아가’는 악아(岳兒)로 쓰는데 ‘악(岳)’은 ‘작다’는 ‘소(小)’에 해당하고,
양(陽)은 ‘따사롭다’에서 ‘롭다’를 뺀 ‘다사’로서 악양은 ‘소다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삼한 시대 757년(경덕왕 16) 악양현(嶽陽縣)으로 개칭되어 하동군 속현이 되었고, 1018년(현종 9) 진주목에 이속되었다.
1702년(숙종 28) 하동군에 이속되어 악양면이라 하여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이름의 기원: 삼국지에도 나오는 2500년 역사를 가진 중국 후난성(湖南省) 북동부 웨양(岳阳)에서 빌려온 명칭이다.
평사리의 동정호와 악양루도 웨양(악양)에 있고 시인 두보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차용했을 것이다..
09:34 최참판댁 맞은 편 악양면 축지리(丑只里) 대축(大丑)마을 대봉감마을
09:36 평사리 무딤이들;
무딤이: 밀물 때는 물이 역류하여 들어오고, 홍수가 나면 물이 강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물이 무시로 드나드는 들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09:52 평사리공원
10:35 섬진강100리 테마로드 개치나루터; 토지길1코스의 시작점. 건너편은 광양시 다업면소재지
박경리의 '토지'의 인물들이 나가고 돌아올 때 사용하였던 나루터
개치: 두 개의 물이 만나는 곳. 악양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인 듯
10:38 대나무 숲길
10:41 두꺼비 쉼터 가는 감나무 오솔길이 정겹다
10:45 하동 흥룡리(興龍里) 두꺼비 나루터 쉼터(흥룡횟집).
육안으로 보면 좀 유치스럽게 보이는 시멘트 작품인데 사진찍기에 좋은 색감이라 한장
10:49 이젠 밤나무 쉼터로 간다
건너편은 광양시 다압면 다압초등학교. 다압중앙교회가 있다
10:54 흥룡교차로 부근의 섬진강 백사장이 넓어서 물놀이 하기 참 좋아 보인다.
지금도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옛날 여름철에는 물놀이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듯하다
10:56 흥룡교차로 : 건너편은 전남 광양시 고사리 고사마을
여기도 호동아, 영남아 부르면 이야기 할 수 있을 듯하다
이편은 하동군 하동읍 홍룡마을
흥룡리(興龍里); 마을에 있는 용소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흥룡(興龍) 또는 흑룡(黑龍)이라 하였다. .
문화 유적으로는 삼국시대 유적지인 고분군과 유물 산포지가 있다.
흥룡은 조선 성종 때 의성 김씨(義城金氏)·진양 하씨(晋陽河氏)·곡부 공씨(曲阜孔氏)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11:18 흥룡리 호암(虎岩)마을
임진왜란 이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영산 신씨(靈山辛氏)와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처음 들어온 이래 경주 최씨(慶州崔氏)를 비롯한 여러 성씨가 정착하였다.
11:21 뒤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저 산은 구재봉(77.7m)일까
11;29 호암마을 교차로;건너 편은 광양시 다압면 고사리(高士里) 관동마을일듯. 섬진강 매화길이 계속된다
11:39 화심리 돌티미마을 돌티미전망댜: 강 건너는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소학정마을
돌티미:돌 사이(돌 틈)로 길이 나 있어 돌티미
도사리(道士里) 역시 매화로 유명하다
11;42 뒤돌아 본 상류방향
11;44 여기도 벚꽃계절엔 찾는 사람이 많겠다
11;46 뜬금없는 곳에 눈에 띄었는 데 역시 모든 문이 닫혔다. 아무나 출입하게 할 수 없는 사유가 있으리라. 안을 드려다 볼 수도 없었다
그 교회의 성격과 가치관을 알게하는 성경 구절이 매우 희안한다. 교회밖 비석에 새겨진 성구도 이상하다.
12:19 하동읍 화심리 신지마을 교차로; 연합 판매장인 듯
내가 도보여행 중임을 안 누이들로부터 시원한 배즙을 대접을 받고 몇 봉지 선물로 받다.
12:24 하동읍 화심리 선장(仙掌)마을 ; 추억의 19번 도로
화심리(花心里):1750년경 의령 여씨(宜寧余氏)가 정착하면서 광비등(光碑嶝) 또는 화심(和深)이라 칭하였다가,
1872년 마을 지형이 화심(花心) 형국이므로 화심동(花心洞)으로 바꾸었다(박경리의 토지에도 이 마을 여참봉이 등장한다).
벚꽃. 매화꽃. 배꽃 길로 이름난 국도 19호선이 지나므로 추억의 19번도로라고 부르는 듯하다.
선장(仙掌)마을 ;'신선의 손바닥' 위에 놓인 것처럼 예쁘고 아담한 마을이라는 뜻
12:26 건너편. 광양 다압면 다사마을
다압면(多鴨面):전라남도 광양시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이다. 섬진강을 경계로 경남 하동군, 중천천을 경계로 전남 구례군과 마주한다.
섬진강가로 섬진나루, 다압나루, 입석나루 등이 있다. 도사리 섬진 마을 일대에서 매해 3월 광양매화문화축제가 개최된다.
면 소재지인 고사리를 포함해 5개의 법정리가 있다.
여지도서에 "다압면'이 처음 나타나는 데. 다사촌(多士村)과 압척촌(鴨尺村)의 합성 지명으로 보기도 한다.
12:32 건너편 다사리 다사마을인듯
12:47 화심리 신지마을 ;건너편은 다압면 도사리 매화마을
도사리(道士里) 지난 3월22일 섬진강 답사 드라이브 당시 아내와 다녀간 곳이다.
12:54 화심리 신지.선장마을 길을 걸을까 하다가 그냥 강변길을 따라 걷기로 하다
13:05. 하동읍 화심(花心)里마을
13:10 휴식과 충전과 점심을 위하여 마을 길로 옮기다
13:19 하동읍 두곡(豆谷)리 재접전문식당 "팔도강산" 재첩회덮밥 15.000원
14:42 다시 강변 길로 나오다 하동읍내 산책은 생략.
답사 여행 당시 아내와 1박하면서 읍내 산책을 하였기 때문이다.
14:45 하동 문화예술회관과 갤러리
14:49.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하동 나루터 쉼터; 섬진강변 갤러리(사진 작가 청파 강태진)
화개 동천 벚꽃 십리길
14:51 하동 나루터 공원 쉼터
14:51 화사한 옷과 흰 머리가 주변 색갈과 어울려 보여 한장 찍는데
뒤에 영감님이 따라오신다. 혹시 했는데 별말씀이 없으셨다
전시된 사진 중 한장; 평사리 부부소나무 ; 이런 풍경이 가능하다는 걸 체험헀기에 공감이 되었다
14:54 하동나루터 쉼터에서 바라본 섬진교 방향.
가물었는데도 이 정도의 강폭과 수심이라면 큰 배도 넉넉히 드나들었을 것이다
15:02 김용택의 시를 찾아보다
섬진강 10
전라도나 경상도 여기저기 이곳 저곳 산굽이 돌고 논밭두렁 돌아 헤어지고 만나며 아하,
그 그리운 얼굴들이 그리움에 목말라 애타는 손짓으로 불러 저렇게 다 만나고 모여들어
굽이쳐 흘러 이렇게 시퍼런 그리움으로 어라 둥둥 만나 얼싸절싸 어우러지며
가슴 벅찬 출렁임으로 차오르나니 어화 어화 숨차 어화 숨막히는 저 물결
어화 어기여차 저 시퍼런 하동 포구
길이 좋아 뒤돌아보다. 이런 산책길이 전국적으로 조성되어 있다는 게 대단하다
15:05 섬진교 아래 강변길. 섬진강에서 최초로(?) 본 배(?) 그러나 배라고 할 만큼 큰 배가 보이지 않았다
섬진강은 영산강보다 훨씬 긴 데도 4대강으로 섬진강이 아닌 영산강을 꼽는 것은
영산강은 배가 운행할 수 있는 구간이 긴데 비하여 섬진강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15:17 하동 송림공원 ; 섬진강 답사 여행 당시 아내와 산책 했다
신라와 백제의 사신들이 모여 앉아 군사동맹을 맺은 유서 깊은 숲
조선 영조 21년(1745)에 당시 부사였던 전천상이 강바람 과 모래바람의 해를 막기 위해서 심었던 소나무숲.
섬진강의 은빛 흰 백사장과 8천여 평에 수령 50 - 300년생 푸른 소나무 900(혹은 750)여 그루가 섬진강 맑은 물과 어우러져 있어,
옛 시인들이 하동을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고장’이라고 노래할 정도로 유명했고,
60년 점 만 해도 수백 척의 어선이 정박하였다.
지금은 토사가 쌓여 강바닥이 낮아지고 육로가 발달되어 뱃길이 끊긴 지 오래된다.
15:19
15:22
3월 답사 여행 당시 사진들
답사 당시 사진. 모래사장의 재첩 형상 조형물
15:24 푸른 송림공원과 강변 은빛 흰 모래
15:27
15:37 옛 섬진강철교. 강변길과 풍경 사진 찍느라 깜빡하다
계획은 옛 철교를 걸어 강을 건너 섬진강 자전거길을 걷는 것이다.
아내와 답사할 때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강변길의 편함과 분위기에 취해서 큰 실수를 했다. 저녁에 내일 코스를 점검하다가 비로소 알게 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남파랑길 47코스도 걸어보게 되었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15:39 새 철교; 이 사진 구도를 잡는 데 집중하다가 지나쳤던 것이다. 허참
15:43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을 이어주는 옛 섬진교철교(우편)와 새 철교
두 철교를 비교하며 찍으면서도 건너가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15:51 하동읍 신기리(新基里) 부두길
신기(新基);100여 년 전부터 대대로 짚신을 만들어온 마을로 전체 60가구 중 57가구가 짚신을 만든다.
농한기는 물론 농번기에도 각 농가에서 재첩을 캐기도 하고 짚신을 만든다.
짚신은 농사지은 후 벼를 베어 닷새 가량 말린 짚으로 만드는데, 일곱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첫번째 새끼줄을 가늘고 길게 꼬고, 이것을 신틀에 걸어 한 매듭씩 신을 삼고가위등으로 곱게 다듬어 뒤축을 앉히고,그 다음 총과 돌기총을 꿰고, 앞축 부분에 짚을 꼼꼼히 감아서 골을 메운 뒤 망치로 때려 모양을 잡는다. 매듭으로 크기를 조절한다. 마을 주변에 하동송림, 금오산,지리산 청학동 등의 관광지가 있다.
16: 97 하동읍 재첩잡이 마을 상저구(上猪口) 마을
저구마을 ; 상저구 마을은 신기리에 들어가는 입구 마을이다.
마을 모양이 돼지의 윗 턱과 닮았다고 하여 불리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동정씨, 창녕조씨, 김해김씨, 성주배씨(星州裵氏)가 터를 잡고 살았는데 부산방면과 여수방면의 해운이 발달된 포구였다.
하동을 대표하는 특산물 섬진강의 재첩 생산지로 잘알려져 있으며, 재첩은 마을 주민들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신기항은 하동읍 항의 기능을 이어 받아 한때 성황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섬진강의 토사가 적체되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
16:18 하동읍 목도리 하저구(下猪口)마을:재첩을 잡는 배들
16:23 씻은 재첩을 분류 작업은 누이들의 몫이다. 닭튀김으로 새참 중이었다. 두 조각을 얻어먹었는데 결국 저녁이 되었다
씻어낸 재첩: 작은 배로 바닥을 긁어 잡은 재첩을 분류하다. 도구의 간격이 6cm라 어린 것들은 빠져나간다고 한다
재첩(하현河蚬허시앤)은 하동 방언으로 갱조개(강조개)에서 유래된 말이다. 가막조개, 재치, 애기재첩, 다슬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모래가 많은 진흙 바닥에 서식하는 민물조개로 우리나라에는 낙동강과 섬진강 하구 유역에 많이 서식하였다.
1987년 낙동강 하구에 제방이 축조된 후부터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르렀으며, 지금은 섬진강 유역에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다.
크기는 평균적으로 3㎝가 되지 않을 만큼 매우 작다. 색깔은 서식지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는데
모랫바닥에 사는 개체는 황갈색, 모래펄에서 서식하는 개체는 검은색에 가깝다. 껍질 안쪽은 대개 엷은 붉은빛을 띤 보라색 바탕에 흰색이다.
껍질은 성장선이 뚜렷하며 규칙적이다. 둥근 삼각형 가까운 모양으로 표면에는 광택이 난다.
두 껍질을 연결하는 인대가 발달하여 잘 떨어지지 않으며, 껍질이 단단히 붙게 하기 위하여 세 개의 돌기와 그 양옆에는 그보다 약간 긴 돌기가 있다.
긴 장화를 신고 1m가량의 끌개로 모랫바닥을 긁거나 긴 막대 끝에 부챗살 모양의 긁개가 달린 ‘거랭이’란 도구를 이용하여 물이 빠져 나가는 강바닥에 깊이 박아 두었다가 나중에 물이 빠지면 이를 훑는다. 육안으로 크기를 선별하여 어린 재첩은 다시 강에 방류한다.
16: 39 남파랑길 하동포구 방향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남파랑길 표식에 놀라다.
2017년 10월에 39박 40일 남해안 종주도보여행 당시에는 남해군에서 섬진대교를 건너 광양시로 포스코 제철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요근래에 남파랑길을 정하면서 이곳을 포함시켰는가 보다
16: 43 하동군 목도리 목도1길; 섬진강대교가 보이다
목도리( 牧島里); 원래는 강섬(하중도)었다가 지금은 육지가 되었다.
기러기가 많이 날아와 서식하여 목도(鶩島)라 하였는데, 조선 시대에 말을 놓아 먹이던 곳이어서 목도(牧島)라 하였다.
17:04 하동읍 목도리 문도(文島)마을과 구룡마을
17: 08 하동포구공원; 하동포구 아가씨 노래비
하동포구(河東浦口): 화개, 악양, 하동(하동읍), 하저구, 갈사 등지를 거쳐 바다에 이르는 하동의 섬진강 물길 중에
배가 드나들던 개(강이나 개천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어귀라는 의미이다.
17: 23 횡천교: 하동읍 목도리와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경계
고전면(古田面): 조선시대 하동군 고현면(古縣面)과 마전면(馬田面)을 합할 때 지은 이름이다
17: 30 섬진강 대나무 숲길
17:31 고전면 신월리 노화마을 신월 늪지 산책길;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걸어보고 싶었는 데.
17: 37 멀리 보이는 하류방향 섬진강교
17: 43 뒤돌아 본 신월 습지 공원
18: 09 좀 더 찬란하고 황홀한 일몰의 황혼을 기대했는 데. 이 정도로 본 것으로 감사하다
뒷산 모양이 마치 반달처럼 생겼으므로 신월리라 하였다..
18: 21 하동군 고전면(古田面) 전도리(錢島里) 선소(船所)마을 프린스모텔
전도리: 원래 마을 앞들 가운데 섬처럼 생긴 조그만 산이 있어 앞섬·전도(前島)라 했는 데 후에 전도(錢島)로 바뀐 듯하다.
돈이 되는 섬이라는 의미일까?
하동에서 예약할 때 경로우대(?)하여 저녁식사 값만큼 할인 받았는데 식당이 영업을 끝냈다.
주인에게 두유 하나 얻어 생식을 풀어 저녁을 대신하다.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감사
18:21 프린스모텔 특실
1인 경로 우대까지 받았는 데 이렇게 좋은 특실을 주어서 이번 섬진강 일주 도보여행 마지막 밤을 호사스럽게 지내게 해준 주인장에게 감사 감사하다.
와이파이도 잘 열려서 내일 여정을 확인하기 위해 현 위치에서 광양시 배알도 가는 코스를 검색하다.
네이버와 카카오맵 모두 하동 송림공원으로 뒤돌아가 섬진교를 건너가라고 한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큰 착각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되돌아 가기에는 이미 너무 먼 곳까지 왔다. 그래서 오늘의 착각도 더 좋은 결과 곧 모두가 가는 자전거길이 아닌,
남들이 걷지 않는 새로운 코스 를 걷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기로 하다.
오늘은 모처럼 섬진강의 강 다운 풍경과 의미 있는 곳들을 그것도 아주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였다.
아내에게 오늘 밤 숙소 사진을 보내니 주인장이 너무 고마운 분이라고 함께 감사하였다.
구하지 않은 것도 주시고, 구한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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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동 송림공원에서부터 시작한 2020년 1월 겨울장기도보가 생각나네요.
남파랑길 표지판이 반갑기도 하고요.
ㅎㅎㅎ
같은 길을 걸으며 다른 계절의 풍경을 보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