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드레싱 룸에서의 축하는 확실히 절제되어 있었다.
리버풀은 안필드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뒀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위르겐 클롭의 선수들은 그들의 팀 동료 루이스 디아스가 겪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경기장에서의 승리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 선두 토트넘과의 승점을 3점차로 좁힌 가운데, 전 포르투 공격수는 토요일 콜롬비아 최북단 라 과히라 지역의 바란카스 마을에서 납치된 아버지 루이스 마누엘의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도시 북쪽 크로스비의 집에 있었다.
현지 보도와 당국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 실레니스 마룰란다 역시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오토바이를 탄 무장괴한들에게 끌려갔지만, 그녀는 무사히 구조되었다고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소식이 게시되었다.
"이번 경기를 준비하는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습니다," 고 22년에 걸친 기간 동안 1,000경기가 넘는 경기를 준비했던 클롭이 말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잘 해결되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형제를 위해 싸우는 것이었고 그것이 그들이 한 일입니다."
토요일 저녁 리버풀의 타이타닉 호텔에서 동료들과 함께 있었던 디아스는 그의 부모님이 납치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클롭과 이야기를 나눈 후, 이 26살의 선수는 그의 아내 폰세와 그들의 어린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동의를 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을 돌봐줄 이들을 말이죠," 클롭이 설명했다. "그의 가족 중 몇몇도 그곳에 자리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함께하고 싶어하는 이유입니다.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이후, 그의 어머니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었고, 그것은 너무나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모색하고 있지만 약간의 거리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정보를 얻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방해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는 그 일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지원을 원할 뿐이에요."
목요일 유로파 리그 툴루즈와의 홈 경기에서 휴식을 취한 후, 디아스는 일요일 스티브 쿠퍼의 팀을 상대로 선발로 나설 최전방 3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스쿼드에서 이탈하자 디오구 조타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원정팀을 상대로 첫 골을 터트린 후 벤치로 달려가 아드리안으로부터 디아스의 등번호가 새겨진 리버풀의 유니폼을 받았다.
조타는 2022년 1월 포르투에서 £50m의 이적료에 이적한 이후 58경기에서 14골을 터트린 포워드를 지지하는 선수들, 스태프들 그리고 팬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던 가운데 그의 유니폼을 높게 들어 올렸다.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만약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식으로 반응할지 모르겠네요," 고 조타가 감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경기를 뛰려고 했었습니다. 저는 그를 대신해 경기에 나섰고 우리가 그와 함께 있고 모든 것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유니폼을 들어올렸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를 지지하고 우리가 그와 함께한다는 것을 그저 보여줄 수 있을뿐이에요."
조타는 크로스비 마을에서 디아스와 매우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며, 이곳에는 아드리안과 최근 이사를 한 다르윈 누녜스도 있다. "루초" 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디아스는 클롭의 스쿼드에서 매우 인기 있는 선수이며 그의 부모님의 소식은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런 날에 어떻게 축구 경기를 정말 중요한 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그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고 클롭이 말했다. "전 살면서 이러한 문제로 고군분투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곳은 언제나 저에게 안전한 장소였습니다, 때로는 선수로서나 코치로서 저의 은신처이기도 했조요. 90분이라는 시간동안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죠. 하지만 그것을 하는 것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우리가 이 경기에서 추가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과 루초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선수들은 유니폼을 꺼내들었고 저는 그것에 대해 100%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정말 감동적이면서도 훌륭했습니다."
콥들은 경기가 치뤄지는 동안 디아스의 이름을 반복해서 외쳤고 미드필더 도미니크 소보슬라이는 "우리 중 그 누구도 홀로 걷지 않아, 루이스" 라고 말하며 이를 가장 잘 요약했다.
그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콜롬비아 경찰과 군대가 동원됐다. 구조 임무와 관련자 체포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 대하여 약 2억 페소 ($48,000, £40,000)의 보상금이 제시되었다.
일요일, 경찰청장인 윌리엄 살라망카 장군은 디아스에게 전화로 그가 직접 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라 과히라에 왔다고 말했다.
"지난 밤 우리는 당신의 어머니를 구출했습니다," 살라망카가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공개된 통화에서 말했다. "그녀는 안전하고 건강해요. 우리는 콜롬비아 군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경찰의 모든 공중 및 지상 능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우린 당신에게 소식을 계속 알릴 것이나, 당신의 감정에 연대감을 느끼고 있으며 당신과 동행하며 이는 우리 콜롬비아인들은 모두를 감동시켰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물을 것이 있냐는 그의 질문에, 디아스가 답했다: "가족들과 계속 연락을 취했기에 지금으로선 물을 것이 없네요."
콜롬비아 내무장관인 루이스 페르난도 벨라스코는 그의 아버지가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인 베네수엘라로 끌려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음을 인정했다.
"저는 라 과히라의 모든 이들에게 우리를 도와주고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정보를 전달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들이 루초 디아스에게 행한 일은 루초 디아스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전체를 상대로 한 일이며, 콜롬비아 전체가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고 그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디아스의 아버지를 찾는 것은 축구선수의 "영웅"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디아스는 고지대 사막, 바람이 부는 해안선과 대규모의 도착 와유족으로 유명한 콜롬비아 최북단의 라 과히라 출신이다.
약 40,000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바란카스 마을에서 와유가 성장한 후, 남미에서 가장 큰 노천 광산인 헐킹 세레존 광산을 지배했다. 디아스의 아버지는 원래 근처의 Lagunita de la Sierra 출신인 그의 가족과 함께 와유 혈통의 근원이다.
Mr Mane라는 별명을 가진 루이스 마누엘의 삶은 아내 실레니스와 함께 자녀들에게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 두 사람은 지난 해 결혼했고 결혼식을 위하여 라 과히라로 돌아왔다.
루이스 디아스는 축구를 하는 세 명의 아들 중 하나였고, 그의 형제들인 롤러와 제수스 역시 하위 레벨에서 뛰고 있다. 그에게는 여동생 애니도 있다. 포르투 B팀에서 뛰고 있는 제수스를 제외하고 가족들 모두가 정기적으로 안필드를 방문하고 있으며 그들은 여전히 콜롬비아에 거주하고 있다.
라 과히라는 가난한 지역이며 바란카스에서는 대부분의 일이 세레존 광산과 연결되어 있다. 디아스의 아버지는 노동자들에게 길거리 음식, 특히 염소 스튜의 일종인 friche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와유의 별미를 판매했다.
게다가, 그는 작은 축구 학교를 운영했고 디아스는 6살의 나이에 그곳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 팀은 세레존에 있었고 디아스의 광부의 아이드로가 함께 축구를 했었다. "저의 아버지는 저의 영웅입니다," 고 몇 년 후 디아스가 말했다. "아버지는 저에게 축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루이스 마누엘은 또한 아들의 또 다른 우상인 호나우지뉴의 DVD를 구하기 위해 현지 시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브라질리언의 재능의 일부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이 촉망받는 선수의 경기에 스며들었다: 디아스는 멋을 부리며 드리블을 선보였고 그의 발기술 래퍼토리로 현지에서 유명해졌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것은 재판을 위한 여행 비용을 지불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디아스는 어린시 절 만성적으로 저체중이었고 이는 라 과히라의 고립과 맞물려 17살이 될 때까지 그가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역의 어린아이들에게 가끔씩 음식 토큰을 나눠주며 디아스는 자신의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배고프지 않다고 주장하며 팀 동료들에게 이 토큰을 나눠준 것으로 평판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콜롬비아에서, 이후에는 포르투로 디아스의 예상치 못한 커리어가 펼쳐진 뒤에도 그의 아버지는 그의 커리어에서 중심으로 자리했다. 아들의 리버풀에서의 데뷔전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던 루이스 마누엘은 휴대폰으로 카디프 시티를 상대로한 디아스의 교체 출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흔들리는 핸드폰 신호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체로 활약하는 아들의 모습을 라이브로 보았고 마침내 그가 미나미노 타쿠미의 득점을 도우는 결과를 낳았다.
"들어가 도움을 주는 루이스의 마법" 이라고 그는 블루 라디오 블로그 데포르티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엄청난 축하와 애정을 받았습니다."
보고타에 위치한 TV 채널인 Win Sports의 진행자 카를로스 알레만이 말했다. "루이스와 그의 아버지는 매우 가까운 사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매일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루이스 디아스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들은 라 과히라에서 비슷한 삶을 삶고 있다. 그들은 더 넓은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여전히 바란카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루이스 마누엘의 가르침은 이후 디아스의 사촌 조셔가 운영하는 루이스 디아스 에스페란자 재단으로 발전해 왔으며, 이 재단은 원주민 보호 구역의 4곳을 포함해 약 15개의 스포츠 학교를 운영하며 상당한 문제에 직면한 지역 사회에 투자를 하고 있다.
라 과히라는 콜롬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이며 베네수엘라와 긴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와 경제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와유족 인구가 두 나라로 나누어져 있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콜롬비아를 통치했던 우익 정치인들과 휴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가 인해 베네수엘라의 좌파 정부 사이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분열되는 것이 목격되었다.
와유의 성장은 체계적인 단점을 초래한다. 태양, 모래, 바람의 사람들로 알려진 그들의 역사는 스페인 통치에 대한 강력한 반란에서부터 그 지역의 광산 회사들과의 격렬한 논쟁에 이르기가지 투쟁의 역사이다.
2017년 미주인권위원회는 지난 8년 동안 4,470명의 와유족 어린이가 영양실조나 관련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콜롬비아 헌법재판소에 보고했는데, 이는 전국 평균의 5배가 넘는 수치이다.
와유족이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민족해방군등 정부와 단체들의 교전에 휘말리면서 1960년대부터 준군사 세력이 이 지역을 황폐화시켰다. 디아스가 7살이던 2004년, 우파 성향의 북부 블록 조직은 인근 엘살라도 마을에서 60명의 와유족을 살해했다. 인근 베네수엘라 국경과 보고타로부터의 고립은 이 지역에서 준군사 세력의 활동을 부풀린 요인이다.
2019년, 라 과히라는 콜롬비아에서 가장 폭력적인 지역으로, 살인율인 10만명당 73.1%에 달했다.
역사적으로 이 국경은 효과적이라기 보다는 이론적인 것에 가까웠기에 양국과 와유족 사이의 통행이 가능했다. 정치적 분쟁으로 인하여 강경한 국경을 강제하려는 시도로 이어졌지만, 밀수업자들과 준군사조직들은 여전히 정기적으로 발각되지 않은 채 통과하고 있다. 당국은 루이스 마누엘 이곳을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월 29일 일요일, 콜롬비아에서는 라 과히라를 포함한 지역 선거가 치러지고 있었는데, 이는 세계적이며 루이스 디아스에게는 개인적인 일이기도 한 이야기에 정치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https://theathletic.com/5010168/2023/10/29/kidnapping-luis-diaz-liverpool/
* 의오역다수
첫댓글 루초 우리는 함께야 YNWA
제발 무사히 끝나길...
아무일도 없이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하시길 기원합니다!!
제발 무탈하길.. 긴 글 번역 고맙습니다👍
제발 ㅠㅠㅠㅠ
부디 잘 해결되길...
모든 것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아버지가 조속히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YNWA
안전하게 귀환 하시길 기원합니다
긴 글 번역 감사합니다!
제발 무사귀환하시길
YNWA
제발 무사귀환하시길🙏🙏
무사히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YNWA
잘읽었습니다 무사귀환🙏
제발 간절히 기도 합니다
무사히 돌아오시길 긴 번역 감사합니다
무사 귀환을 기원합니다. 🙏
YNWA
YN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