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시적 다니던 충남중학교(대전시 동구 신흥동) 에는 야구부가 있었다.
방과 후에 집으로 돌아갈 때쯤 운동장에선 언제나 시커먼 얼굴의 야구 선구들이 시원한 함성을 내 지르며
야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스탠드에 앉아 한참 동안 구경하고 집에 가기도 하였다.
나는 본시 학자집안 출신으로 공부에만 매진할 뿐 운동에는 취미가 별로 없으나 언젠가 저 멋진 유니폼 한 번 입어 봤으면.....
하는 생각은 늘 있었다.
우리 <충남중학교야구부>는 대전에서 한밭중학교 야구부와 쌍벽을 이루는 야구명문 구단이다.
내가 재학 시절에도 전국대회 결승에 올라 관광버스 타고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 가서 목이 터져라 응원한 적도 있다.
결승에서 아깝게 졌으나. 승패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결승전이 끝나고 팔을 흔들며 교가를 부를 때 왠지 눈물이 났다.
그 후 우리 야구단은 1995년에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 나가 당당히 우승을 차지 하기도 하였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당시 대전을 연고로 한 <OB베어스>는 홈런타자 김우열과 투수 박철순을 앞세워 원년 우승을 차지했다.
고3 가을, 야간 자습을 도망 나와 학교 앞 문구점에서 한국 시리즈 결승을 지켜보던 그 짜릿함이란.......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
덩치 큰 서양사람, 우락 부락한 남미 선수들을 삼진으로 돌려 세우는 박찬호의 직구 정면 승부는 정말 멋졌다.
그래서 내 등번호는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61번이다.
내 나이 올 해 마흔여덟.
나는 <남부연회 야구팀>의 멤버가 되었다.
내게 처음 도착한 근사한 야구 유니폼을 만져보고 입어 보면서 나는 오래 전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도 야구선수다!!!
첫댓글 왠지 모를 감동이... ㅎㅎ http://cafe.daum.net/nambubaseball?t__nil_cafemy=item 여기로 가시면 야구복 입은 송목사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전혀 상상도 않가지만 감동 자체입니다.
송목사! 충남중 후배였네.참 반갑네..난16회여 우리때도 야구부가 전성기였지... 송목사!감리사님과 선교부총무님을 야구팀고문으로 모시면 좋겠는데.. 그래야 남지방 야구팀이 활성화되지않을까...
그렇게 해요. 밥도사주고 목욕도 시켜줄사람이 팰요하니
조선시대 이조판서를 지낸 송준길(송시열의 아들)선생도 48살에 지금의 송촌동에 동춘당(同春堂)이라는 별당(別堂)을 지었습니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同春)!!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송목사님! 피어나는 봄처럼 열심히 하세요.